"24년前 스텐트 시술로 담도암 환자 살렸죠"
심찬섭 건국대병원 소화기병센터장
일본서 기술 배워 국내 최초 도전
환자 상태 호전돼 성공 쾌감 만끽
제품 잇단 개발로 이름 널리 알려
"먹고 죽은 귀신은 혈색도 좋다는데 단 열흘만 음식을 삼켜보고 죽게 해주세요".
1980년대 초반 식도암이나 담도암에 걸린 환자들이 당시 30살을 갓 넘은 젊은 의사인 내게 이렇게 애원해왔다. 암이 식도를 막으면 음식물이 넘어갈 수 없었고 담도를 폐쇄시키면 심한 구역질이 나고 황달까지 생기기 때문이다.
1986년 5월 초 나는 환자들의 이 같은 갈망을 해결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당시 순천향대병원에 재직하던 내게 50대 중반의 한 남성 담도암 환자가 찾아왔다. 그는 합병증인 폐쇄성 황달로 밤새 잠을 못 이뤘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패혈증까지 와서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다행히도 나는 당시 내시경 및 소화기용 스텐트(혈관이나 소화기관이 막히지 않게 해주는 지지대)의 대가인 일본 교토 제2적십자병원의 나카지마 마사쓰구 선생으로부터 관련 시술법과 의료기구를 공수받아 국내 첫 시술에 나설 수 있었다. 여러번 나카지마 선생의 시술장면을 지켜보고 옆에서 시술을 도와줬지만 막상 혼자 힘으로 최신기기를 이용해 스텐트를 삽입하려니 걱정이 컸다. 시술 후 일본에서처럼 이론과 실제가 맞아떨어져 스텐트가 제대로 작동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시술한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불안감과 조바심,호기심이 뒤섞인 상태로 서둘러 중환자실로 찾았다. 우려와 달리 환자는 열이 떨어지고 담도안을 가득채웠던 고름이 빠져나오면서 한결 편안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그 순간 밤새 뒤척임에 무거웠던 몸과 마음이 날아갈듯 가벼워지면서 성공의 쾌감을 만끽했다.
이를 계기로 담도암과 췌장암으로 폐쇄성 황달이 온 6명의 환자에게 이 시술을 시행해 국내 학회에 발표했다. 국제적으로도 드문 사례라 국내 내시경 전문가들은 나의 연구 발표에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식도암 스텐트 삽입 시술에도 한층 자신감을 갖게 됐다. 3년여 뒤엔 전국적으로 이 시술이 확산돼 많은 암환자들이 임종 전 훨씬 오랜 기간 편안하게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게 됐다.
스텐트 연구는 1982년 일본 교토로 2년간 해외연수를 떠나면서 시작됐다. 당시로선 생소한 내시경과 스텐트에 대해 나카지마 선생은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그의 은사인 가와이 게이치 교토 부립의대 교수가 1986년 초 개발한 첨단 내시경 기기도 국내 의사로는 처음으로 내게 보급해줬다. 지름 5~10㎜의 좁은 담도에 안지름이 3㎜쯤 되는 플라스틱 스텐트를 삽입하는 것은 당시로선 대단한 일이었다.
공장에서 정밀기계로 생산하는 요즘의 스텐트와 달리 당시에는 폴리우레탄 재질에 구리철사를 관통시키고 뜨거운 물을 부어 늘여빼는 원시적인 수작업으로 스텐트를 만들었다. 그나마 이를 만드는 재료도 나카지마 선생에게 부탁해 항공 택배로 받았다. 이런 선생의 도움과 나의 연구 열정이 어우러져 이 분야에 대한 테크닉은 날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운도 따랐다. 1991년 철사망으로 된 큰 구경의 비(非)피막형 금속스텐트를 쓰고 있던 독일 뮌헨 테크니컬의대의 홀스트 노이하우스 교수는 독일의 국제워크숍에 참가한 내게 돼지 담도에 이 스텐트를 직접 삽입하는 시술을 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비피막형 스텐트는 종양이 스텐트 안으로 자라들어와 금세 스텐트가 막혀 버리는 단점이 있었다.
나는 신경민 태웅메디컬 사장에게 금속스텐트에 플라스틱 피막을 입힌 스텐트를 개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천신만고 끝에 개발은 됐지만 원하는 위치에 스텐트를 안착시킬 만큼의 정밀도가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다 1996년 안성순 엠아이텍 사장이 미국에서 더 나은 스텐트 재료를 구해 세계 최초의 담도용 피막형 자가팽창형 금속스텐트를 개발했다. 1998년에는 나의 성(姓)을 따 안지름이 9.1㎜나 되는 '심하나로' 스텐트까지 출시해 유럽 아시아 남미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2년 후 미국 회사들이 심하나로를 모방 · 변형한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점유율이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스텐트 개발은 환자의 고통을 해소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일념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남보다 앞서 200여편의 관련 논문을 쓰고 의료계에 나를 알리는 바탕이 됐다. 주위의 많은 이들이 스텐트 회사를 차려 큰 돈을 벌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지만 이만하면 능히 만족할 일이 아닌가.
2010-11-07 17:2
출처 :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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