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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버섯 관련 글/차가버섯 투병사례

차가버섯-외국의 말기암 완치 사례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0. 8. 29.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을 대체의학적인 개념으로 치료하는 오아시스 홉 병원의 말기암 환자 완치 사례입니다. 참고로 읽어 보기 바랍니다. 이 병원에서는 말기암 환자가 완치되면 기적이라 부르고 신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 만큼 드문 일입니다. 한국에서는 차가버섯을 복용하면서 스스로 암을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다하고 말기 암을 완치해도, 신(神)에게 감사는 하겠지만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 만큼 흔하고 그리고 검증이 되어 있습니다. 이글을 끝까지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곧 오아시스 홉에서 자랑하는 두 가지 사례를 더 올리겠습니다.


DONALD FACTOR onCE HAD CANCER, NOT ANYMORE

Max Factor's Son

15 years Cancer Survivor


도날드 팩트씨는 한 때 암환자였지만 더 이상 아니다. 맥스 팩트의 아들, 15년 생존


Donald Factor is the son of Max Factor; the legendary make-up artist. He was a patient at Oasis of Hope and God worked a great healing miracle in his life. Donald was kind enough to share his testimony.


도날드 팩트는 맥스 팩트의 아들이고 훌륭한 메이컵 아티스트다. 그는 오아시스 홉 병원의 환자였고 신(神)은 그에게 위대한 치료 기적을 행하였다. 도날드는 자신의 사례를 기꺼이 증언하였다.


"My name is Donald Factor. I was living in London in November of 1986 when I was diagnosed with carcinoma of the lung that had spread to my liver. Basically the doctors in England didn't hold a lot of hope for me. They were very apologetic and offered a treatment which they thought might extend my life for a little while, but not for very long. I didn't feel like accepting that prognosis and decided to go and see Dr. Contreras.


“내 이름은 도날드 팩트이고 1986년 11월 간에 전이 된 상태의 폐암 판정을 받았을 때 런던에 살고 있었다. 영국의 의사는 나에게 치료의 희망을 걸고 있지 않았고 그리 길지 않은, 약간의 생존시간을 연장하는 치료를 권했다. 나는 이런 치료 방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래서 Contreras 박사를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I'd met Dr. Contreras a few years before in a conference in England and was very impressed with his approach. He told us they used modern medicine combined with other natural things and a lot of love and faith. My wife and I moved from England to Los Angeles and then we drove down to Tijuana to the hospital where I was treated. When I arrived I was in an extremely weak condition. It was 10 days after the original diagnosis and the cancer had spread to my spine. I was in excruciating pain with my sciatic nerve affected so I could hardly walk. I was loosing weight rapidly too. They took a look at me at the Contreras clinic and were quite concerned. They too were not very optimistic about my future, but as Dr. Contreras Sr. said, because both I and my wife were very committed to doing everything possible to beat the cancer, they were prepared to work with us.


Contreras 박사는 몇 년 전 영국의 어떤 회의에서 만났고  그때 그의 치료 방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 그는 우리에게 그들은(오아시스 병원에서는) 최신의 의학과 다른 여러 가지 대체의학과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치료한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나는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나를 치료해줄 병원이 있는 Tijuana 로 갔다. 도착했을 때 나는 상당히 허약한 상태였다. 처음 진단 받은 지 10일이 지났고 암은 이미 척추까지 번져있었다. 좌골신경 영향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고 걷기도 힘이 들었다. 몸무게도 빠르게 줄고 있었다. Contreras 클리닉에서 정밀검사를 했고 의사들이 나의 상태가 비관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와 나의 부인이 치료를 위해서는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의지를 보고, Contreras 박사는 나를 치료해 보기로 했다.


To make a long story short, it succeeded. I knew Tijuana, I was born and raised in Los Angeles, and it was a place we used to go to do naughty things when we were teenagers. It wasn't ever a place that I associated with getting well, rather a place that I associated with getting sick. I was very impressed with the Contreras clinic when I went inside and met the people; I had never experienced a hospital where the doctors would treat me as a human being instead of a bunch of symptoms or a disease walking through the door. Suddenly, there was a team of people there who were interested in me and they were involving me in the course my treatment would take. I was being asked, I was being informed and suddenly I was part of the of the team that was treating me. I wasn't just an object that was being treated. And that was tremendous and I realized that there was another side of Tijuana that I never imagined possible in my youth.


긴 이야기기를 짧게 하면, 나는 성공했습니다. 나는 Tijuana를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나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Tijuana는 십대시절 철없는 질을 하러 자주 놀러가던 곳입니다. 그 곳은 기억 속에서 좋은 장소가 아니고 오히려 머리 아픈 장소입니다. Contreras 클리닉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는 병원에서

환자를 [문 사이를 걸어 다니는 질병이나 증상의 덩어리]로 취급하지 않고 사람으로 취급하는 의사를 만난 경험이 없었습니다.  나를 치료하는 과정에 관여되고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나를 치료하기 위한 팀이 만들어 졌습니다. 질문을 받고 여러 가지 치료 정보에 대해 상의를 하면서 나도 나를 치료하는 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나는 치료하기 위한 대상물이 아니었습니다. Tijuana에는 내가 젊은 시절 상상할 수 없었던 굉장한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This all happened in 1986 so it will be 16 years this November. After the initial treatment and about a year of home therapy, I was totally clear of any sign of cancer. I went back regularly for check-ups and after about three years of being in remission, the doctors said I was cured. I said, 'I thought in the cancer business you were never cured.' And they said, 'Well it is silly to keep writing down remission year after year. We'll see you whenever you want to come back,' and that was it. I already had a lot of ideas about the orthodoxy, I suppose I'd call it, of modern science.


이 모든 것은 16년 전 11월에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병원에서의 초기 치료와 일 년 동안 집에서 치료를 하고, 암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 후 검사를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했고(영국에 있는 다른 병원) 3년이 지나서 의사는 치료되어 졌다고 했습니다.(더 이상 올 필요가 없다고) 나는, 암을 치료하는데 있어서는 당신네들은 치료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암은 치료되지만, 암을 치료하는데 현대의학만 고집하는 의사들의 생각은 치료될 수 없다고) 그들은(의사들은) ‘몇 년 동안 당신 진단서를 작성하면서 좀 그랬다. 언제고 필요하면 병원에 와라.’고 했고 그게 다였습니다. 나는 이미 현대과학의 정설에, 그렇게 불러 온,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I was never happy with it. I had known people with HIV and Aids and I was always rather disturbed at the way that disease was treated and how in those days it seemed that anyone who was diagnosed with HIV was dead within a couple of years. It didn't seem right to me, it seemed to me that there was something else and I knew a bit about alternatives and complimentary medicine.


나는 현대의학의 정설을 그리 믿지 않습니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몇 년 내에 죽는다고 취급받습니다. 나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며 대체보완의학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있습니다.


My wife had been involved with some hands on healing work before that, so I was very open to other ways of doing things. I had never had a direct experience myself as a patient being involved in a place where love and human kindness were actually applied as part of the program. I have to say it was a revelation.


나의 부인은 손으로 치료하는 어떤 일에 관련이 있었고, 나는 일을 하는데 매우 개방적 이였습니다. 사랑과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친절이 치료과정의 일부로서 사용되는 직접적인 경험을 환자 입장에서 해본 적이 전에는 없었습니다. 나는 말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My name has been given to people and I have happily talked with them telling them pretty much what I tell you now. I think one of the main things that helped early on in my treatment was the use of a catheter which was able to feed the medications directly into my liver. I think it was a Hickman catheter inserted into my umbilical vein that was able to stay in for about a year. It made taking all the medication much easier. one could simply inject whatever was needed into the end of a plastic tube and it would get through the catheter to the body without the worry of needles and veins. That was wonderful. It made life much easier and the quality of the treatment better. It worked amazingly."


Donald Factor


내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지금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들을 즐겁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초기에 치료를 도와준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간에 약을 직접 주입하는 카테터라고 생각합니다. 배꼽 부근의 정맥에 삽입된, 일 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히크만 카테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약물의 주입을 쉽게 했습니다. 정맥 주사의 두려움이 없이 플라스틱 튜브의 끝 부분을 통하여 약물을 간단히 주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훌륭했고 치료의 질을 상승시켰고 삶을 편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도날드 팩트


* 히크만 카테터(Hickman catheter)이란 가슴 윗부분의 정맥을 통하여 심장으로 가는 대정맥에 삽입하는 관을 말하는 것인데 환자의 약물 주입이나 채혈을 위해 이 방법을 사용 합니다. 자기 관리가 필요한 방법 입니다.


아래의 글은 카페의 메인 화면에 있는 내용 중에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올립니다. 읽어 보기 바랍니다.


[ 이 카페에서는 어떤 암 환자가, 어떤 상태에서, 차가버섯을 어느 정도 복용했고, 운동은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를 했고, 식이요법은 어느 정도를 했고, 병원치료는 어느 정도를 진행했는지 그리고 차가버섯과 병행한 다른 대체요법에 대해서도 임상적인 관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차가버섯을 복용하는 환자의 주거환경, 환자의 성격, 환자의 완치 의지가 암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계속적인 관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차가버섯에 대해 공부를 하고, 차가버섯을 연구한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배우고, 차가와 관련된 많은 자료를 읽어보고  직접 경험한 임상을 바탕으로, 차가버섯을 복용하는 환자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카페에서는 암치료로 유명한 미국의 MD앤더슨 병원 (the university of texas MDAnderson cancer center http://www.mdanderson.org), 대체의학적인 암치료로 유명한 멕시코의 오아시스 홉 병원 ( alternative cancer treatment oasis of hope hospital http://www.oasisofhope.com/philosophy.html ),  유럽암연구소( www.ieo.it) 등에서 발표하는 말기암환자의 완치 사례를 계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이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운동요법, 식이요법, 명상요법, 웃음요법, 아로마테라피 요법, 완화요법(족욕등), 관장요법, 천연약재요법 등에 대해서도 효과와 시행과정, 환자의 만족도, 특히 말기암 환자의 대체의학적인 방법의 치료과정에 대해 계속적으로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 미국의 국립 보완대체의학 연구소(NCCAM, The National Center for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캐나다 약초학회 (CHS, Canadian Herb Society), 영국 국립 임상 약초요법 연구소(NIMH, the National Institute of Medical Herbalists),  EJHM (the European Journal of Herbal Medicine) 등에서도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세계적인 명상센터 플럼빌리지 ( http://www.plumvillage.org )의 명상프로그램과 이 센터에서 말기암을 치료하는 분들의 결과에 대해서도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카페는 러시아 톰스크 의과대학, 노보시비르스크 의학 아카데미, 시베리아 약초연구소, 시베리아 생약연구소 등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메디 TV에서 러시아 약초 [차가버섯]을 특집으로 취재할 때도 이 카페에서 전 일정을 안내했습니다. 


국내에서도 SDA 관련 요양병원, 요양원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와 관찰을 하고 있습니다.


그 좋은 시설에서, 그 좋은 환경에서, 그렇게 훌륭한 의료진의 상상할 수도 없는 친절함 속에서, 24시간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있는 말기암 환자들의 완치 확률보다, 현재 한국에서 차가버섯을 복용하면서 스스로 암을 완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말기암 환자의 완치 확률보다 더 높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말기가 아닌 환자들의, 병원치료를 병행하는, 완치율도 스스로 치료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했다면 한국에서 차가버섯을 복용하는 분들의 완치율이 더 높을 것입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차가를 복용하면서 완치를 위해 힘을 다해 노력하는 환자들에게 이들 병원처럼 가능한 항암치료를 자제하고, 항암치료를 하더라도 강도를 조절만 한다면, 완치율은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을 것입니다.


너무 늦게 차가를 선택해서, 어떤 원인으로, 혹은 스스로 완치의지가 없어서 완치는 못했지만, 치료하는 동안의 삶의 질을 따져보아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원보다 못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작나무차가버섯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