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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별 암/폐암

명의 전상훈, 공기와 닿는 몸속 피부, 폐를 말하다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0. 2. 3.

명의 전상훈, 공기와 닿는 몸속 피부, 폐를 말하다

 

Part1. 암 잡을 수 있다, 명의열전

분당서울대병원 폐센터장인 전상훈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다. 전공의들이 가장 기피하는 과로 알려진 흉부외과를 선택한 것을 그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하루 세 명의 폐암 환자를 수술하는 그는, 한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가슴과 대면하며, 숨을 쉬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전상훈 교수는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이자 분당서울대병원 폐센터장이다. 교수 사무실은 폐센터가 있는 10층에 있었다. 전 교수는 오늘 이미 두 번의 폐암 환자 수술을 마쳤고, 2시간 뒤에 또 한 번의 폐암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마침 도쿄의과대학에서 두 명의 의사가 찾아와 인사를 했다. 그들은 병원 시설과 운영 시스템을 둘러본 뒤 잠시 후에 있을 수술에도 참관할 예정이었다.

“학생들도 가르치긴 하지만, 직접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로서 최고의 실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교류가 많은 도움이 되죠. 저도 도쿄에 가면 저분들이 어떻게 수술하는지 곁에서 지켜보곤 하거든요. 객관적인 평가랄까, 의견을 나누다 보면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걸 알 수 있게 되죠.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한다. 이렇게 말을 주고받다 보면 서로 자극도 받고, 놓친 부분도 보완할 수 있어요.”

그는 흉부외과 의사로서 자부심이 있다. 전공의들이 기피할 만큼 일은 고되고 힘들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을 상대하는 의사로서 책임을 완수했을 때 얻어지는 성취감을 사랑한다. 응급실에 위급 환자가 실려오고, 흉부외과 의사가 뜨면 영화 <십계>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모든 사람들이 길을 터준다. 전 교수는 응급실 레지던트로 있을 당시 그 모습을 숱하게 보았고, 말로는 설명 못할 벅찬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증상 없는 폐암, 예방과 조기검진이 최선

흉부외과는 흉부, 즉 가슴 쪽에 있는 심장, 폐, 기관, 식도, 대동맥 등 생명 유지에 기본이 되는 중요한 장기의 질환을 다룬다. 질환별로 크게 성인심장외과, 일반흉부외과, 소아심장외과로 나뉘는데, 전 교수의 담당은 일반흉부외과다. 후천성 판막질환, 관상동맥, 대동맥 질환 등을 다루는 성인심장외과나, 선천성 심장질환을 치료하는 소아심장외과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일반흉부외과는 폐암, 식도암, 다한증 등 심혈관 이외의 모든 흉부 질환을 다룬다.

“보통 수술에 들어가면 세 시간에서 다섯 시간 정도 걸려요. 많아야 하루에 환자 셋 정도를 볼 수 있죠. 열에 아홉은 폐암 환자로 보시면 돼요. 식도암 환자는 아주 적은 편이고요. 폐암은 암 중에서도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에 꼽혀요. 그만큼 위험하고 치명적이죠. 폐암은 어느 정도 병이 진행되기 전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기 때문에 예방과 조기진단이 필수예요. 담배는 꼭 끊으시고, 정기검진을 받으시는 게 좋아요. 가족력이 있다면 특히 조심하시고요.”

2008년 통계를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사망 수가 폐암 29.9명, 간암 22.9명, 위암 20.9명이다. 폐암은 다른 암에 비해 진단율은 높지 않지만, 사망률만큼은 최고인 셈이다. 폐암 환자를 성별로 나누면 여성보다 남성이 3배 정도 많지만, 오히려 여성이 폐암에 더 취약하다고 한다. 실제로 똑같이 담배를 피워도 암에 걸릴 위험은 여성이 남성보다 3배 정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은 폐 자체에서 주로 발병하는 선암성 폐암의 발병률이 기도에서 주로 발병하는 편평상피세포암보다 높아요. 그동안 선암성 폐암은 여성과 비흡연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흡연과는 관련이 적은 것으로 인식돼 왔죠. 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편평상피세포암 발생률이 훨씬 높았어요. 선암성 폐암은 특히 여성과 젊은 연령층에서 두드러지데, 이는 필터가 있는 저타르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과 관련이 있어요. ‘순한 담배’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깊이 들이마시게 되면서 담배의 유해 물질들이 폐 깊숙이 들어와 선암 유발을 촉진하는 걸로 보고 있어요.”


‘숨’으로 시작해 ‘숨’으로 마치는 인생

전상훈 교수는 천생 의사다. 작은아버지, 고모부, 사촌에 이르기까지 주변에 의사가 많았다. 그래서 다른 길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흉부외과를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는 폐를 어떻게 생각할까?

“애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맨 처음 하는 게 뭡니까? 울면서 숨을 쉬는 거잖아요. 스스로 살기 위해 숨을 들이켜는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첫 숨을 쉬면서 삶을 시작하죠. 또 마지막에 죽는 걸 두고 ‘숨을 거둔다’고 하잖습니까. 우리 삶의 시작점과 방점을 찍는 곳이 바로 폐죠.”

전 교수가 경북대 의대 레지던트 시절에 겪은 추억 하나를 들려준다. 응급실에서 중환자를 볼 때였다. 퇴근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칼에 찔린 50대 여자가 응급실로 실려왔다. 칼이 좌심실까지 파고들어 상처가 깊었다. 혈압이 크게 떨어져 심장이 뛰다 말다를 반복하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 새벽에야 마쳤다. 뇌사에 빠진 게 아닌가 하고 체념을 하려는 순간, 환자가 오줌을 누는 것이 아닌가! 콩팥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그 후로 그는 가망이 없다며 지레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병이 위중한 환자는 가슴을 연 뒤 한 가지 수술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해야 합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술 과정도 복잡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전날 그걸 머릿속에 그리면서 연습을 해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죠.”

직접 수술을 하는 의사로서 늘 최고의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지만 그걸 부담으로만 여기진 않는다. 그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그래서 천생 의사다. 아마 그는 꿈속에서도 수술을 하거나 논문을 쓰고 있지 않을까?


폐암 조기진단은 ‘저선량 CT’로!

폐암은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 암이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때를 놓쳐서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이 3분의 2나 된다는 통계가 있다. 따라서 조기 발견과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폐암 진단은 흉부 엑스선 촬영, 흉부 CT(전산화단층촬영), PET(양전자단층촬영) 또는 기관지 내시경을 통해 종양을 관찰하고 조직검사를 통해 확진하게 된다. 폐암을 일찍 발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엑스선 촬영보다 저선량 흉부 CT가 좋다. 저선량 CT는 방사선량을 낮춰 촬영하므로 지름 3mm 정도의 초기 폐암 병소까지 찾아낼 수 있다. 그만큼 조기 발견 가능성이 높다.

흡연력이나 암 가족력이 있는 45세 이상의 성인은 해마다 저선량 CT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또 폐암 고위험군(20년 이상 흡연자, 가족력, 특수환경 종사자)은 매년 1회, 여성ㆍ비흡연자는 폐암이 빈발하는 나이인 60세 이후 일반검진항목 외에 추가로 저선량 CT검사를 권한다.

 

전상훈 교수의 질병 예방 생활습관

폐는 나무가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기관지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가 뻗어 있고, 말초기관지 끝에 나뭇잎에 해당하는 공기주머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나무가 광합성을 하며 호흡하듯, 인간도 숨을 쉬며 살아간다. 전상훈 교수는 그렇게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산다. 그가 생각하는 ‘건강’의 비결은 멀리 있지 않다. 하루하루 즐겁게 일하며 열심히 살기. 결국 답은 긍정에 있다.

 

1 운동 | 뭉친 근육은 그때 그때 푼다

전상훈 교수는 하루를 어떻게 시작할까? 이야기를 듣다보면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찬물을 한 잔 들이켠다. 오래전부터 습관이 되어서인지 아침은 두부나 미숫가루 정도로 가볍게 먹고 분당의 병원으로 출근한다. 아침 7시 반이면 병원에 도착해 회진을 돌거나 수술에 들어간다.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은 암센터에 머물며 폐암과 식도암 환자를 주로 보고, 수요일 오후에는 폐센터에서 외래 진료를 한다. 여기에 학생들 가르치랴, 연구 논문 쓰랴, 회의하랴… 늘 빡빡한 일정에 쫓기듯 산다.

“지금은 병원에서 모두 퇴출됐지만, 예전에는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곤 했어요. 제가 유독 햄버거를 좋아합니다.(웃음) 타고나길 건강 체질이어서 몸 걱정은 별로 안 했는데, 요즘은 힘에 조금 부치는 걸 느껴요. 오래 수술을 하다보니 어깨와 허리 쪽에 무리가 많이 가더군요. 그래서 짬짬이 헬스장에 나가 몸을 풀고 있어요.”

 

 

그는 수술을 앞두고 병원 헬스장을 찾아 1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 원래 아파트 안에 있는 헬스장을 다녔는데, 병원에 헬스장이 생긴 뒤로는 그곳을 찾고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동을 하진 않는다. 전문 트레이너가 있어 맞춤형으로 가르쳐준다. 주로 스트레칭이나 맨손운동을 하고, 근육운동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한다. 또 러닝머신을 달리며 유산소운동을 한다.

“제가 우리 병원의 요가회 회장이기도 해요. 근데 요즘은 활동이 뜸해요. 요가 실력이 뛰어난 직원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 주도로 모임을 자주 가졌죠. 그런데 그분이 다른 곳으로 가는 바람에…. 도움이 많이 됐는데, 안 계셔서 조금 섭섭하네요.”

전 교수는 솔직하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특별히 뭔가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술자리도 편하게 즐기는 편이다. 친한 친구나 동료, 선후배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좋아한다. 그래도 요즘은 다음 날 스케줄을 생각해서 자정을 넘기지는 않는다.

 

2 습관 | 담배는 무조건 끊어라

폐암 하면 일단 담배가 떠오른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지 물었다. 다행히 오래 전에 끊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폐암으로 타계한 유명인이 아주 많다.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가 그렇고, 재즈 아티스트인 냇킹 콜과 사라 본, 영화배우 개리 쿠퍼와 율 브리너, 월트 디즈니도 폐암으로 죽었다. 가깝게는 지난해 봄에 탤런트 여운계 씨가 폐암으로 타계했다. 폐암의 원인이 곧 담배라는 인상이 강한 탓에 여운계 씨가 담배를 많이 피웠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 여운계 씨는 2007년에 걸린 신장암이 폐로 전이되어 사망했다.

“담배를 못 끊어서 수술 전까지 담배를 피운 분도 있죠. 그런 분들은 보면 압니다. 기관지 섬모가 불에 그슬린 듯 훈제되어 있죠. 흔히 섬모가 기절했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럴 때는 수술을 안 하고 날짜를 다시 잡아요. 최소 2주는 담배를 안 피워야 합니다. 몸 상태가 좋아야 수술 결과도 좋으니까요.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폐암을 예방하려면 올해 금연부터 실천에 옮기세요.”

그도 한때는 담배를 피웠다. 대학에 들어가서 멋모르고 시작한 담배였다. 금연의 계기는 아주 작은 데서 출발했다. 1994년으로 기억한다. 경북대 의과 흉부외과 전임강사로 있을 때였다. 학술회의에 참가하려고 미국에 갔다 호텔 흡연 룸이 꽉 차는 바람에 금연 룸에 묵게 되었다. 호흡기내과 친구랑 한 방을 썼는데, 담배를 피우러 정원으로 나가야 했다 “번거롭게 이러느니 이참에 담배를 끊자”고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결심이 강했던 건 아니었다. 딱히 끊을 생각이 없었는데, 남자의 자존심이랄까, 말을 뱉은 김에 그냥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물론 담배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 그 후 한국에 와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온갖 감언이설을 견디며 유혹을 이겨냈다. 호흡기내과 친구도 당시 금연에 성공했지만, 3년 뒤부터 다시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담배가 나쁜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들도 금연에 성공하기 힘들 만큼 담배는 중독성이 강하다. 아예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것이 본인은 물론 타인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일이다. 진짜 남자라면 금연에 도전할 일이다.

 

3 걷기 | 양재천을 걷고, 불곡산을 오르다

토요일 오후 자택 앞에서 전 교수를 다시 만났다. 오전에 수술을 하고 도곡동 집으로 바로 돌아온 길이었다. 그는 걷기에 좋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와 양재천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아직 날이 쌀쌀해 며칠 전에 온 눈이 녹지 않고 길 양쪽에 밭두렁처럼 솟아 있었다.

“운동은 아내가 참 좋아하죠. 저 다리 밑에서 마라톤 동호회 모임을 갖기도 해요. 얼마 전부터는 자전거에 푹 빠져서 아주 열심이에요. 거의 마니아 수준이죠. 언젠가 아내를 따라 북극곰 수영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처음엔 너무 추워서 겨울바다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났는데, 들어갔다 나오니 정말 개운하고 좋더군요. 아내와 같이 산책로를 자주 걷는 편이에요. 구간마다 거리 표시가 되어 있어 참 좋죠. 여기서 한강 선착장까지 딱 5km예요.”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바람을 쐬며 걷다 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주로 걷고, 뛰더라도 빠른 걸음에 가깝다. 선착장까지 왕복 10km를 걸으면 2시간가량 걸린다. 선착장에서 차나 음료도 한 잔 하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듯 운동하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산책 삼아 걷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이날처럼 혼자 걷기도 하고, 아내와 함께 운동을 나오기도 한다.

운동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주말에 시간이 비면 짬짬이 나와서 운동한다. 날이 더워지면 주로 저녁 시간에 나와 걷는다. 전 교수의 행동반경은 대체로 집과 병원으로 좁혀진다. 그래서 분당서울대병원 뒤에 있는 불곡산(344m)도 자주 오른다. 낮은 산이라 물통 하나만 든 채 한 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젊은 의사들과 산을 타고 내려와도 아직은 지친 기색을 못 느낄 만큼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가끔 타긴 하지만, 주로 병원 안에서는 걸어다니죠. 길을 훤히 꿰고 있으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손금 보듯 알고 있으니까요. 병동을 돌면서 환자를 보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수술실을 왔다 갔다 하면 꽤 운동이 됩니다. 그 이동거리를 재면 제법 될 거예요.”

4 정신 건강 | 일을 즐겨야 스트레스가 없다

전 교수를 보면 활기차고 성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늘 바지런히 움직이고, 걷고, 열심히 일한다. 아버지를 닮아 건강 체질이라고 말은 하지만, 체질 못지않게 성격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일을 정말 사랑한다. 또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가 있다. 지금껏 살면서 특별히 다른 일에 취미를 붙인 적도 없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늘 공부하고 단련해야 해요. 제 스타일이 연구와 실험을 좋아하고, 일과 관련된 범위 안에서 새로운 분야를 습득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다만 이런 건 있어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죠.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아요.”

그는 길을 못 찾아 헤맬 때가 많다. 한마디로 길치다. 하지만 맡은 바 일은 누구보다 집중해서 척척 해낸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흔히 ‘속이 상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것만큼 나쁜 게 없습니다” 하고. 그동안 수천 건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답게, 그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속(마음)을 우리 몸의 호흡기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에게 ‘속’은 곧 ‘폐’이다. 폐는 한 번 망가져서 잘라내면 복구나 회복이 어렵다. 그러니 평소에 신경 써서 잘 관리해야 한다.

“병원에서 폐암 수술을 받은 분들의 모임이 있어요. 숨소리회라는 모임인데, 1년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고 있죠. 거북이마라톤이라고 해서 병원 앞 탄천을 따라 2시간 정도 함께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요. 그렇게 의료진과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같은 아픔을 겪은 분들끼리 힘도 얻죠. 또 환우회에서 뜻이 맞는 분들끼리 등산반을 만들어 청계산을 오르곤 해요. 그분들을 보면 느끼는 게 참 많아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는 일을 진정으로 즐긴다. 남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고 애써 위로하지만, 그는 피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산책을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는 동안 그의 뇌는 새로 포맷한 컴퓨터 하드처럼 깨끗해진다. 그러고 나면 긍정의 힘이 새롭게 솟아나 그를 달리게 한다. 무슨 일이든 마음을 열어 받아주고, 그 일에 푹 빠져 결국 해내는 사람. 전상훈 교수는 그런 의사다. 그래서 환자들은 그를 신뢰한다.


“늘 새로운 시도로 환자를 위해 살다”

분당서울대병원 전상훈 교수는 외과 김형호 교수와 함께 국내 최초로 흉강경과 복강경을 이용한 식도암 수술을 집도한 적이 있다. 식도암 수술은 보통 식도를 절제하고 위장을 이용해 식도를 재건하는 수술을 동시에 진행한다. 가슴과 배, 때로는 목까지 절개해야 하는 큰 수술이다. 당연히 환자의 몸은 두세 건의 대수술을 동시에 받는 것과 같은 부담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식도암 수술은 20%가 넘는 호흡기계 합병증과 상대적으로 높은 수술 사망률을 기록해왔고, 폐 기능이 나쁜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기피되어 왔다.

식도암 수술에서 이처럼 호흡기계 합병증이 높은 이유는 가슴을 절개하면 통증으로 인해 기침이 나면서 심호흡이 힘들어지고, 수술 후에는 호흡과 객담 배출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배까지 절개하면서 복근 활동도 떨어진다.

전 교수는 외과 김형호 교수와 함께 2005년 4월부터 8월까지 초기 식도암 환자와 폐기능이 나쁜 식도암 환자 8명을 흉강경과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데 성공했다. 먼저 흉부와 복부에 4~6개의 투관침(5~10mm 크기)을 뚫고 수술한 뒤, 수술 마지막에 절제된 암조직을 꺼내고 식도를 재건하기 위해 흉부나 경부에 3~5cm 정도의 작은 절개만 했다. 통상적으로 식도암 수술에서는 흉부와 경부를 각각 25~30cm 정도 절개한다. 흉강경과 복강경을 이용해 최소 침습수술을 받은 8명의 환자는 수술 후 흔한 합병증인 폐렴조차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또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의 정도도 차이가 커서 기존의 가슴과 배를 절개해 수술한 경우와 비교해 진통제 사용량이 크게 감소했으며, 회복 속도도 무척 빨랐다.

이처럼 전 교수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면서 치료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깊이 고민한다. 첨단 레이저를 이용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없애는 차대세 암치료법인 ‘광역학 치료’(Photodynamic Therapy, PDT)도 그와 관련이 있다. 광역학 치료는 암세포에만 축적되는 ‘광감작제’를 암 환자에게 주사한 후 광감작제에 민감한 흡수파장을 가진 레이저를 쪼여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한다. 정상세포에 피해를 주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하기 때문에 치료에 따른 합병증과 후유증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폐암은 진단 시 3, 4기가 많아 광역학 치료의 혜택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치료법을 소홀히 해서는 의술의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전 교수는 1년에 8회 정도 해외 출장을 다닐 정도로 학회 일이나 새로운 치료기술 연구에 관심이 많다. 또 국내에서도 활발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포항공대 방사광가속기로 미세영상 촬영 실험을 하고 있으며, 마산결핵병원에서 약제내성이 생긴 결핵을 치료하기 위한 실험에도 열중하고 있다.


여성조선
취재 성재경(프리랜서) | 사진 이상윤, 오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