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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별 암/위암

[스크랩]“위암치료는 조금 긴 ‘여행’일 뿐입니다”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0. 1. 11.

“위암치료는 조금 긴 ‘여행’일 뿐입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외과 노성훈 교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위암 관련 서적을 낸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터뷰 담당을 자처했다. 위암 수술 후 사망률 0.9%, 합병증 15%, 5년 생존율 64.8%라는 국제적으로도 유래 없는 기록의 주인공을 직접 만나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며칠간의 스케줄 조율 끝에 2주일 후로 잡힌 인터뷰는 노성훈 교수의 연구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날도 그는 지금 막 두 건의 위암수술을 끝내고 나온 참이었다.

 

“이제 ‘6무(無)의 사나이’라 불러다오!”

세브란스 외과 노성훈 교수의 또 다른 이름은 ‘3무(無)의 사나이’다. 지금까지 위암 수술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칼, 콧줄, 비위관를 모두 없앴기 때문이다. 그는 칼을 버린 대신 전기소작기를 들고 수술을 진행한다. 피가 배어 나오기 무섭게 절개 부위를 지져버리기 때문에 출혈도 적다. 수술 후 고름과 가스를 배출하기 위해 의례히 달아야 했던 콧줄과 비위관도 과감히 없애 환자들의 고충을 덜었다.

그가 처음으로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건 코와 옆구리에 호스를 달고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모습을 본 후였다. 자연스럽게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데 꼭 필요하나?’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처음부터 쉽게 인정받은 건 아니다. 일부 원로 교수들은 기존과 반대되는 새로운 방법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멋지게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일 뿐인데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평균 4시간 걸리던 수술 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되었다. 그러다보니 그만큼 마취제를 덜 사용하게 되었고, 장기가 공기 중에 노출되는 시간이 짧아져 합병증도 줄었다. 콧줄과 비위관이 없다 보니 회복기간도 빨라 10~14일 정도 걸리던 입원기간이 7일로 단축되었다.

최근 노성훈 교수는 기존 3무(無)도 모자라 3가지를 더 없애버렸다. 절개자국을 25cm에서 15cm로 줄였으며, 위 주변 혈관을 잘라내고 봉합하는 데 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출혈이 거의 없어 수혈도 필요 없게 되었다. 지금도 많은 의사들이 노성훈 교수를 찾아 가르침을 청하고 있다. 그 중에는 미국, 일본에서 온 의사들이 대다수다.

 

“위암 수술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문(愚問)이겠지만 노성훈 교수를 만나면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암세포는 건드리면 더 퍼진다’는 소문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위암은 수술하면 증세가 더 악화된다’는 말을 믿고 있다.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 일축했다. 수술 후 증세가 악화되어 사망한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노성훈 교수는 “출처도 근거도 알 수 없는 책들을 진리처럼 믿고 의사의 말에는 귀기울이지 않아 소통이 되지 않은 환자를 볼 때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노성훈 교수는 위암 환자나 보호자에게 “위암은 약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수술만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전한다. 항암치료만으로는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실제로도 그는 암세포를 잘라내고 나머지는 약물요법으로 없애는 뼛속까지 타고난 ‘공격형 의사’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수술하지 않은 위암 3기 환자라도 노 교수를 만나면 수술대 위에 누워 암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위암은 조금 길고 복잡한 ‘여행’일 뿐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쳐 간 수많은 환자 중에는 잘못된 정보에 빠져 증상을 악화시키고 치료를 힘들게 만든 이들도 많았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으려는 환자의 마음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항상 아쉽기만 했다. 결국 노 교수는 ‘궁금한 내용을 풀어줄 검증된 책 하나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얼마 전 출판된 그의 책 제목은 《위암 완치 설명서》다. 

노성훈 교수는 “위암 치료는 한 번의 수술이나 항암치료로 끝나지 않는다. 한 번의 치료 결과에 일희일비할 수 없는 장기전이며, 환자와 주치의가 긴 시간에 걸쳐 평생 얼굴을 마주보고 지내게 된다. 이런 점에서 ‘기나긴 여행’과도 같다”며 책 제목에 숨은 뜻을 설명했다. 그와 이 기나긴 여행을 함께하는 환자는 완치 후에도 종종 그를 찾아온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위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이들은 노 교수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한다. 굳건한 신뢰로 이어진 ‘인생의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위암 예방, 어머니의 역할이 크다”

노성훈 교수는 “위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집안에 어머니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짜거나 자극성 있는 음식에 가족의 입맛이 길들여지지 않도록 하는 건 주방을 책임지는 어머니의 몫이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골고루 먹는 것도 중요하다. 담배를 끊고 절주하며 규칙적인 식사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 1차 예방이 식생활 관리라면 2차 예방은 정기검진이다. 위암은 초기에만 발견된다면 완치율이 95%에 이른다.

노 교수는 “가족력이 있다면 40세 전이라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위암의 유전성은 10% 미만이기 때문에 위암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생활환경에 함께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위염은 증세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므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노 교수는 “젊은층에 나타나는 위암은 예후가 나쁘므로 위염이나 위궤양 같은 증상이 1~2주간 반복되거나 원인 없이 살이 빠진다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비결? 관리할 틈도 없어 일단 긍정적 사고!”

그의 하루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열차다. 매일 오전 5시 이전에 기상해 6시에 출근한다. 회의를 마치고 수술 2~3개를 집도한 뒤 회진을 돈다. 인터뷰, 학회, 모임 등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면 밤 10시, 대체적으로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든다. 정말 웬만한 젊은이도 따라갈 수 없는 스케줄을 소화한다. 그만큼 체력도 좋을 것이다.

노 교수의 얼굴에는 주름살 하나 보이지 않고 시종일관 웃는 얼굴에 생기가 넘친다. 전체적인 인상만 봐서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다. 다시 한 번 프로필을 살펴보니 1954년생, 올해로 55세가 맞다. 따로 보약이라고 챙겨 먹는지, 아니면 뭔가 특별한 운동을 하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노성훈 교수는 건강비결에 대해 묻자 ‘허허’ 웃으며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퇴근 후 시간이 좀 있으면 집 근처 공원을 걷거나 주말에 가끔 골프를 하는 정도다. 하지만 그것도 3년 전의 일이다.

외과학교실 주임교수를 맡으면서 지난 3년간 한 번도 필드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무리없이 쓰러지지 않고 ‘열정적인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치열하게 살다보니 아플 틈이 없다’는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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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스조선 강수민 기자
사진 조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