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예술을 만나면>
병원에서 진행되는 미술치료는 우리가 가진 다양한 감각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미술치료 시간 동안 환자들이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아로마 향을 활용해 이완을 돕고, 물소리나 새소리가 나는 청량한 음악을 배경으로 틀어 놓습니다. 또한 부드럽고 보송한 재료부터 차갑고 딱딱한 재료까지 다양한 촉감의 재료를 준비합니다. 일반적으로 미술치료는 ‘시각’이라는 감각에 초점을 두지만, 저는 환자가 개인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몰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감각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병원은 치료를 위한 필수적인 공간이지만, 환자들이 자신의 감각적 선호를 선택하고 충분히 느끼기에는 다소 제한적입니다. 소독약 냄새, 기계 소리, 하루 종일 밝은 조명 등 감각을 피로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미술치료 프로그램에서는 좋은 향기, 편안한 소리, 다양한 촉감을 선물하며 환자들에게 감각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려 합니다. 이번에는 ‘미각’이라는 감각을 주제로 환자들과 소통해 보았습니다. 각자의 병실에 계시던 환자들이 프로그램실로 모이면, 저는 먼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한지, 어떤 음식이 특정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지,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음식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음식에 대한 대화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누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되살려 줍니다. 이런 기억들은 정서적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예를 들면, 할머니가 부쳐주시던 배추전의 달큰하고 고소한 맛, 퇴근길 동료들과 포장마차에서 나눠 먹던 어묵꼬치와 뜨끈한 국물, 학원 끝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파트 복도에서부터 풍기던 엄마의 김치찌개 냄새, 외할머니가 나를 위해 들기름에 정성껏 구워주신 김의 향기, 추운 겨울 집에 돌아왔을 때 끓여주셨던 소고기뭇국의 따뜻함 등,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음식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이후 환자들은 이러한 음식의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거나, 점토를 이용해 직접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평소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고 느끼던 분들도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음식과 사람을 떠올리며 몰입합니다. “배추가 좀 더 길쭉해야지”, “우리 집 소고기뭇국은 국물이 하얀 게 아니라 빨갛죠. 이 색과 저 색을 섞어야 딱 맞아요” 등 자신만의 기억을 세밀하게 표현하며 즐거운 놀이처럼 치료에 참여합니다. 어린 시절 모래를 갖고 밥을 짓고 풀을 뜯어다 반찬을 만들던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환자들은 아이 같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작업에 집중합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환자들을 위해 숟가락을 그리고, 음식 그림이 모였을 때 가운데 놓을 꽃그림도 준비해 놓습니다. 완성된 그림이 테이블 가운데로 모이면, 모두가 마치 잔칫상에 둘러앉은 듯한 분위기가 됩니다. 서로의 그림을 보며 음식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소중한 관계를 떠올리며 따뜻한 대화를 나눕니다. “와 저거 되게 맵겠다’, ‘저 뚝배기 진짜 뜨거워 보여’, ‘나 침고였어’라며 그림을 보면서 다양한 감각을 경험합니다. 우리 모두가 ‘저 그림은 도넛을 그린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그림이 알고 보니 유명한 맛집 베이글을 그린 것이었는데 한 70대 환자가 베이글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자, 그 베이글을 그린 20대 환자는 친구를 통해 베이글을 사 와서 당일 저녁에 함께 나눠 먹는 감동적인 순간도 있습니다. 미술치료 시간이 끝나고 각자의 병실로 돌아가는 환자들의 얼굴에는 편안함과 충만함이 가득합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리고, 그 음식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항암 과정에서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의 허기가 조금씩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정서적 허기가 채워질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이렇게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을까요? 바로, 우리 모두가 지닌 소중한 사람과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병원이라는 환경 속에서 소독약 냄새, 기계 소리, 환하고 차가운 조명 같은 불편한 감각이 우리를 힘들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속에서도 따뜻한 추억을 소환하면 마음은 한결 편안해지고 위안을 얻게 됩니다.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이 따뜻한 기억들을 지금, 여기로 초대해 보세요.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5/03/18/2025031802291.html |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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