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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그밖의 중요 질병

스크랩 “뇌전증은 발작하는 희소질환? 치매·뇌졸중 다음으로 흔해”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4. 10. 16.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신경과 임성철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뇌전증은 선천성 질환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뇌전증 환자를 두고 정신질환자란 얘기부터, 치매 걸릴 확률이 높다는 소문까지 돈다. 모두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뇌전증은 환자 수가 매년 2000명 이상 증가하고 있는 흔한 뇌질환이다. 노년기 뇌질환 중 치매, 뇌졸중 다음으로 자주 발생한다. 게다가 뇌졸중으로 인한 뇌 구조의 변화는 노인성 뇌전증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다행히도 현대의학에서 뇌전증은 불치병이 아니다. 뇌전증의 원인, 증상, 치료에 대해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신경과 임성철 교수에게 물었다.

-뇌전증은 어떤 질환인가?

“뇌는 뇌파라고 불리는 전기적 신호를 통해 기능을 수행한다. 사람의 뇌에는 1000억개가 넘는 신경세포(뉴런)가 존재한다. 특정 뇌 영역에 기능적 이상이 발생해 정상적이지 않은 뇌파가 발생하면 신경세포가 과흥분한다. 이러한 신경세포의 과흥분에 의해 발작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게 뇌전증이다.”

-뇌전증은 선천적인 질환이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는 어떤가?

“물론 태어날 때부터 발작 증상을 보이는 선천적인 환자들이 많다. 그러나 후천적으로 뇌전증이 발병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뇌전증이 유전되는지 물어보는 환자들이 많은데 뇌전증은 유전적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높지 않은 수준이다. 유전적 성향이라는 건 부모의 질환이 자녀에게 이환될 확률이 있다는 뜻인데 뇌전증의 유전적 성향은 당뇨병보다 낮다. 미국 뇌전증재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뇌전증 환자인 경우에도 자녀에게 뇌전증이 발현될 확률은 10%에 불과하다.”

-뇌전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뇌의 신경세포는 억제와 흥분을 반복해 전기신호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흥분만 하고 억제를 못해 과흥분 상태가 지속되면 발작이 발생한다. 뇌의 과흥분상태를 유발하는 원인은 모두 뇌전증의 유발 요인이 된다. 즉, 대부분의 뇌질환은 뇌전증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뇌손상, 뇌혈관질환, 뇌감염질환, 퇴행성 뇌질환 등이 모두 포함된다.”

“원인은 연령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6개월 미만 영아는 분만 전후의 손상이나 선천적 기형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16세 미만 소아청소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인 경우도 많고 뇌종양, 중추신경계 감염, 뇌의 발달이상 등이 주요 원인이다. 성인 뇌전증의 원인으로는 외상이나 뇌혈관질환 등에 의한 뇌 손상과 퇴행성 뇌질환이 대부분이다.”

-유병률은 어떻게 되나?

“전 인구의 0.5~1% 수준이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명이라고 한다면 국내 뇌전증 환자는 25~50만명으로 제주도 인구수와 맞먹는다. 매년 2~3만명의 뇌전증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노년기에는 치매, 뇌졸중 다음으로 많이 발생하는 뇌질환이 뇌전증이다.”

-뇌전증 발작에도 유형이 있나?

“크게 국소발작과 전신발작으로 나눈다. 국소발작은 뇌의 국소 영역에서 발생하는 이상 뇌파로 인한 발작이다. 이상 뇌파는 다른 뇌 영역으로 전파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발작 양상을 유발한다.”

“뇌는 영역별로 담당하는 기능이 다르다. 운동 영역, 감각 영역, 시각 영역, 청각 영역 등 다양하다. 이상 뇌파가 발생하는 영역에 따라 발작 증상도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뇌의 시각을 담당하는 영역에서 신경세포의 과흥분이 시작되는 환자는 시야에 섬광이 나타날 수 있으며 운동 영역은 신체 일부분의 떨림 또는 강직과 같은 이상 운동 증상이 나타난다.”

“전신발작은 뇌파 검사 시 뇌 전 영역에 걸쳐서 동시에 이상 뇌파가 발생되면서 발작이 발생하는 경우다. 환자가 갑자기 멍해져서 가만히 있거나 전신이 뻣뻣해지거나 떠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발작이 돌연사로 이어지는 이유는?

“뇌전증 환자는 일반인보다 사망률이 2배 가량 높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발작에 의한 외상이나 심혈관계통 및 호흡기계통의 문제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신경세포의 흥분성이 증가하면 자율신경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지는데 이러면 부정맥, 심실세동, 심장무수축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게 돌연사를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발작을 목격했을 때 대처법은?

“증상이 발생했을 때는 안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주변에 날카롭거나 위험한 물건을 치운다. 구토를 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똑바로 누워있으면 구토물이 폐로 들어가 흡인성 폐렴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구토물이 옆으로 나올 수 있게 고개를 돌려주는 정도 까지만 하면 된다. 증상은 보통 1~2분이면 끝나는데 한참이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119에 신고해야 한다.”

-뇌전증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할 핵심 증상은?

“증상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있으면 뇌전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어렵다. 다만 뇌전증 증상은 이상 뇌파가 나올 때만 증상이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의식 소실, 경련은 물론 인지기능 저하와 같은 신경학적인 증상들이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면 전문 병원에 방문해볼 필요가 있다.”

-인지기능 저하는 치매나 파킨슨병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데?

“치매나 파킨슨병은 퇴행성 뇌질환이다. 신경세포가 기능을 점차 잃어간다는 뜻이다. 이미 잃어버린 기능은 다시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퇴행성 뇌질환 환자들의 증상은 일관적이면서 점차 나빠진다. 반면, 뇌전증 환자는 뇌파 이상이 발생할 때에만 증상이 나타나고 평상시에는 멀쩡하다. 이러한 증상 양상만 들어도 퇴행성 질환에 의한 인지기능 저하인지 뇌전증과 관련된 것인지 추정할 수 있다.”

 

뇌전증 발작은 이상 뇌파가 발생하는 영역에 따라 그 유형도 다르다./사진=신지호 기자

-뇌전증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진단하나?

“환자 대부분이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진료를 받는다. 의사는 증상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병력 청취가 가장 중요하다. 증상이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 유지됐는지, 증상 이후엔 어떤 증상이 남았는지 상세히 들어야 한다. 기억을 못하는 환자도 많기 때문에 그걸 목격한 가족이나 보호자를 통한 확인도 매우 중요하다.”

“병력 청취를 통해 뇌전증이 의심된다면 뇌파 검사를 실시한다. 뇌파 검사는 두피에 전극을 붙이고 뇌에서 나오는 뇌파를 측정해 이상 뇌파를 감지하는 검사다. 다만 발작 증상이 없을 때 실시하기 때문에 30~40% 환자는 정상 소견이 나온다. 이때는 피질이형성증, 해마경화증, 뇌혈관기형, 뇌졸중 등 뇌전증을 유발하는 뇌의 구조적 병변을 찾아내기 위해 MRI 검사를 실시한다. 이외에 ‘단일광자단층촬영(SPECT)’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등의 핵의학검사, 신경생리검사 등이 추가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뇌전증의 1차 치료는 약물 치료다. 신경세포의 과흥분 상태를 안정시켜 발작으로 인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항경련제가 사용된다. 약물치료를 받는 뇌전증 환자의 약 60%는 증상 발생이 사라지며 20%는 수 개월에 1회 정도만 증상이 나타난다.”

-항경련제 선택의 기준은?

“현재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항경련제는 20가지 정도가 있다. 환자의 발작 양상, 나이, 성별, 동반 질환 등에 따라 적절한 약을 선택한다. 사용 가능한 약의 종류가 많아짐에 따라 환자 개인의 특성에 맞는 치료가 가능해지고 있다. 한 가지 약제만으로 발작이 조절되는 뇌전증 환자는 전체 환자의 50% 수준이다. 한 가지 약제로 조절이 어렵다면 2~3가지 약제를 병용 사용한다.”

-항경련제를 사용해도 효과가 없으면 수술을 고려하는 건가?

“그렇다. 전체 뇌전증 환자의 20% 정도는 항경련제의 병용 투여에도 발작 조절이 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이다. 이런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뇌전증 수술 치료의 대상이 된다. 수술은 이상 뇌파를 발생시키는 뇌 조직을 절제하거나 해당 부위를 전기적으로 자극하는 전극을 삽입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뇌전증 수술은 검사를 통해 이상 부위가 정확히 확인되고, 수술로 치료될 가능성 및 수술에 의한 신경학적 합병증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완료된 뒤에 가능하다. 시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서 뇌파 이상이 확인됐다고 해당 영역을 절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수술을 고려하는 환자는 30~40분 정도 시행하는 일반 뇌파 검사가 아닌 입원해서  수일에 걸쳐 진행하는 비디오 뇌파 모니터링 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이때 두피에 붙이는 전극을 사용하는 뇌파 검사로는 정확한 뇌전증 병소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필요시 두개강내에 전극을 삽입해 뇌피질에서 직접 뇌파검사를 하기도 한다.”

-절제술을 받으면 완치가 됐다고 볼 수 있나?

“절제술은 뇌전증의 원인이 되는 뇌 영역을 절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인 제거의 효과, 즉 완치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절제술 이후 증상 빈도는 줄었으나 발작 발생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약물 치료를 지속하기도 한다. 완치율이 가장 높은 내측두엽 뇌전증의 수술 치료로 70%는 완치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완치를 받기 위해, 약물 대신 수술을 원하는 환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

“간혹 약을 중단하지 못하는 환자가 차라리 수술하고 약을 복용하지 않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술적 치료는 수술 과정의 합병증 등의 문제 및 수술 후 뇌기능 손상 등 위험 요소가 있다. 약물로 증상 조절이 된다면 약물 치료를 받는 게 훨씬 좋은 선택이다.”

-환자들이 일상에서 피해야 하는 발작 유발 요인은?

“과음, 수면 부족, 임의적인 약물 사용 중단 등이 흔하게 목격하게 되는 뇌전증 발작 유발 요인이다. 이런 요인들을 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환자마다 발작 유발 요인이 다를 수 있는데 본인의 발작 유발요인으로 판단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약제 사용을 줄이고 증상 조절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강한 빛을 보면 발작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환자는 이러한 환경이 있는 공연장이나 클럽 등에 가는 것을 피하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뇌전증 환자들에게 한 마디.

“치료가 잘 되지 않을 경우 꼭 전문 진료센터에서 진료받는 걸 권유한다. 전문센터에서 정확한 진단과 최적의 치료를 받는다면 80% 정도는 약물치료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 약물 치료가 효과적이지 않은 나머지 20% 환자도 수술적 치료, 소아의 경우는 식이요법 등 다른 치료법을 통해 비교적 원활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처음 진단받은 환자들은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다는 두려움에 좌절하곤 한다. 그러나 뇌전증은 적절한 치료와 관리로 증상을 조절하면 지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에 문제가 없는 질환이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신경과 임성철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임성철 교수는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신경과 임상과장이다. 대한신경과학회 정회원, 대한뇌전증학회 정회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주요 분야는 뇌전증, 뇌염, 수면 장애 등이다. 특히 뇌전증에 관심이 많다. 뇌 영상 검사를 이용한 뇌전증 환자의 뇌 미세구조 변화 분석, 뇌파를 이용한 뇌의 기능적 연결 분석, 뇌전증 치료 약물의 임상 연구 등 뇌전증 질환의 진단, 치료 및 예후에 관련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10/14/20241014007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