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피부과 이우진 교수 환자 사례. 왼쪽 환자는 비전문의 피부과 의원에서 상처 치료를 10개월간 받았지만, 오히려 상처가 계속 커져 이우진 교수를 방문해 조직검사를 받았고, 흑색종을 진단 받았다. 오른쪽 환자도 흑색종을 진단받았다./사진=서울아산병원 피부과 이우진 교수
‘피부과’로 표시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는 최근 10년간 1.4배 증가했다. 2012년 1435명에서 2022년 2300명으로 늘었다. 반면 명확하게 ‘피부과 의사’라고 부를 수 있는 피부과 전문의는 줄고 있다. 전문의 자격시험 합격자 현황을 보면, 2016년엔 89명의 피부과 전문의가 배출됐다. 이후 하향세를 그리며 지난해에는 69명, 올해는 66명이 배출됐다. 다시 말해, 비전문의 피부과 진료 의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이는 국민 건강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피부과에서 미용 시술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피부암, 건선, 아토피 등 다양한 만성·중증 질환도 치료한다.
대한피부과학회는 '피부과 전문의가 국민의 피부를 지킵니다'를 주제로 '제22회 피부건강의 날' 기념 기자간담회를 12일 개최했다. 피부과학회 강훈 회장은 "피부과는 여러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필수의료 과목으로, 오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며 "비전문가에 의한 치료가 지속되며 각종 부작용과 사고가 속출하고 있어, 학회에서 피부 건강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을 전개하기 위해 나섰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선 ▲나는 피부과 전문의입니다(노원을지대병원 피부과 한태영 교수) ▲피부과도 필수의료(서울아산병원 피부과 이우진 교수) ▲피부과 의사를 거짓 표방하는 미용 일반 의사들의 행태와 문제점 및 대처방안에 대한 연구(전북대병원 피부과 윤석권 교수) ▲비피부과에서의 오진 및 치료 부작용 사례(조선대병원 피부과 나찬호 교수) 등의 발표가 이어졌다.
◇수련 과정 거쳐야 중증질환 판별 가능
'피부과 의사'가 되려면 의대 졸업 후 국가고시를 통과한 일반의사가 1년 인턴 과정을 거친 후 피부과를 전공과로 선택해 시험을 친 후, 레지던트로 선발돼야 한다. 합격하면 4년간 피부과에서 임상 수련 과정을 밟고, 피부과 전문의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피부과 의사'로 불리게 된다. 한태영 교수는 "수련 중 다양한 외래·입원 환자를 보고, 학술행사에 참여해 최근 동향을 익히고, 다른 과의 의뢰 자문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며 "비전문의 피부과 진료 의사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니, 피부 증상에 대증적인 치료만 할 뿐 증상을 유발하는 중증질환까지 알아채긴 어렵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잘 낫지 않는 상처, 가려움증 등이 있다. 나찬호 교수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자면, 56세 남성이 3개월간 개인 의원에서 접촉피부염으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아 치료받았는데 전혀 낫지 않아 결국 대학병원에 내원했고 곰팡이 질환인 잠행백선으로 확인됐다"며 "잠행백선은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면 더 악화하는 질환으로, 항진균제를 처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 64세 여성은 오른발 상처가 잘 낫지 않아 개인병원에서 3개월간 소독·치료를 받았고, 여전히 낫지 않아 대학병원을 찾았다"며 "피부암종인 흑색종 4기로 확인됐고, 방치한 바람에 척추 골전이로 진단받은 지 1년 만에 사망했다"고 했다. 흑색종은 2기까지 5년 생존율이 70~80% 정도지만, 4기로 악화하면 20%로 많이 감소하는 중증피부질환이다. 실제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 피부과학교실에서 부작용으로 3차 의료기관에 내원한 환자 74례를 분석한 연구 결과, 전문의 의원보다 비전문의 의원에서 유발된 사례가 6배 더 많았다.
피부 증상으로 다른 중증 질환을 예상할 수 있기도 하다. 뱀 모양 홍반은 폐암, 식도암, 유방암 등과 관련이 있고, 점막과 피부에 수포가 생기는 천포창은 백혈병 등 혈액·림프암 환자에서 나타날 수 있다. 또 얼굴에 심한 홍반이 올라오는 등의 증상으로 전신루푸스를 진단할 수 있다. 이우진 교수는 “피부질환은 전신 중증질환과 관련성이 깊다"며 "쉽게 놓칠 수 있는 질환 초기 피부과 전문의 진료로 중증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점 뺐을 뿐인데 상처 심해졌다… 암일 수도?
비전문의 의원은 미용 시술 중 부작용과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윤석권 교수 조사 결과 비피부과 의사가 진료 후 발생한 부작용이나 사고는 ▲피부미용시술 부작용(86.7%) ▲피부질환 부작용(63.9%) ▲피부미용시술 사고(47.6%) ▲피부질환 사고(18%) 순이었다. 대표적으로 피부암을 눈치채지 못하고 점을 제거하는 레이저 시술을 그대로 진행했다가 악화하는 사례가 있다. 편평상피세포암, 흑색종 등의 대표적인 증상은 이상한 모양의 점이다. 피부암에 레이저 시술을 하면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신경 등 중요한 장기가 많은 얼굴에 필러를 잘못 놓았다가, 운동 신경 자극으로 마비되거나, 혈관이 터져 피부가 괴사하거나, 시력이 소실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도 증가했다.
◇‘진짜’ 피부과 찾으려면 ‘빨간 사각형’ 확인을
비전문의 피부과 진료 의원인지, 정말 피부과 전문의 의원인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어렵다. 2021년도 피부과학회 설문조사 결과, 90%가 피부과 전문의에게 진료받고 싶다고 답했지만, 실제 피부과 간판으로 두 의원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28%에 불과했다.
피부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 간판(위)과 비전문의 피부과진료 의원 간판. 피부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 간판에는 빨간색 사각형 로고가 있고, '피부과'와 '의원'을 붙여서 사용할 수 있다./사진=대한피부과학회
가장 쉬운 구분법은 빨간색 사각형을 찾는 것이다. '피부과 전문의' 문구가 적힌 빨간색 사각형 로고는 피부과 전문의만 사용할 수 있다. 간판 문구로도 구분할 수 있는데, '피부과 의원'이라고 적힌 의원은 피부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이다. 비전문의 의원은 '피부과'와 '의원'을 순서대로 붙여 쓸 수 없다. 피부과를 표시하고 싶다면, '의원' 문구 뒤에 '진료과 피부과'라고 작성해야 한다. 병원 출입구에 '피부과의사회인증마크'가 있거나, 내부에 '피부과전문의 자격증'이 있는지 확인하는 걸로도 구분할 수 있다. 대한피부과의사회에서 전문의 찾기 온라인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윤석권 교수는 "최근 피부과 의사를 거짓표방하는 비피부과 의사들이 매우 많다"며 "간판에서 '진료과'라고 적힌 문구에 빛이 안 들어오게 하거나, 신고 들어오면 간판을 바꿨다가 다시 변경하는 식이고 특히 온라인에서 악용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9/12/20240912022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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