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비뇨의학과 서호경 교수 / 국립암센터 제공
“담배 피우는 환자는 진료 안 봅니다. 가서 담배부터 끊고 오시라고 합니다.”
의사들에겐 자신만의 진료 원칙이 있다. 20여년 째 국립암센터에서 방광암 환자를 치료해온 서호경 교수도 그렇다. ‘흡연하는 환자는 담배를 끊기 전까지 진료하지 않는다’는 게 그만의 원칙이다. 당장 아픈 환자에겐 모진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결국 환자를 위해서다. 담배는 방광암 발생 위험뿐 아니라, 치료 후 재발 위험까지 높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열심히 치료해도, 환자가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온갖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서 교수를 비롯해 방광암 진료를 보는 모든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금연을 강조하는 이유다. 방광암 명의 서호경 교수를 만나 방광암 원인과 치료, 예방법 등에 대해 들었다.
-담배 얘기부터 해야겠다. 금연을 왜 강조하는지?
“흡연은 방광암의 주요 위험 인자다. 담배를 피우면 연기 속 발암 물질이 혈액으로 흡수돼 신장을 통해 소변으로 배출되고, 방광 내벽에 손상을 입혀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 흡연자의 경우 방광암 위험도가 3~5배 증가한다. 특히 남성의 경우 전체 방광암 환자의 약 50%가 흡연자며, 여성은 흡연자가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반드시 끊어야만 극복할 수 있는 암이다.”
-흡연 외에 다른 원인은 없나?
“특정 직업군에서 사용하는 화학 물질에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방광암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특히 아릴아민과 같은 화학 물질이 방광암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염료, 고무, 가죽, 직물, 페인트를 다루거나 인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위험군에 속한다. 만성 방광 염증, 지속적인 방광 감염도 방광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고, 장기간 지속적인 됴뇨관 유치와 이에 따른 반복적 감염 또한 방광암의 원인이 된다. 이외에 과거 골반 부위 방사선 치료 병력, 사이클로포스파미드와 같은 항암제 사용도 방광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유전될 수도 있나?
“유전보다는 가족력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력이 있으면 방광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생활 습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유전자도 연관이 있지만, 전립선암처럼 깊은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니다. 방광암의 발암물질을 해독하는 유전자들이 없으면 방광암이 생길 위험이 있다.”
-남성 환자가 많은데, 이유는?
“앞서 말한 위험 인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본다. 방광암은 남성 환자가 여성 환자보다 4대 1 정도로 많다. 과거에는 남성 흡연율이 여성보다 높고, 방광암과 관련된 직업군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여겼으나, 두 가지만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 예를 들어 폐암도 흡연이 직접적 원인인데, 남녀 비율이 2대 1 정도로 방광암에 비해 차이가 덜 난다. 방광암이 유독 남성 환자가 더 많은 이유를 흡연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는 거다. 최근엔 남성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과도한 음주, 건강하지 않은 식단 등 고위험 생활 습관을 가질 가능성이 높고, 남성호르몬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방광암도 전립선암처럼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치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 환자 수가 늘고 있는데?
“방광암 환자 수 자체는 2004년 2916명에서 2021년 5169명으로 약 80% 증가했다. 다만 연령구조 차이를 보정한 수치인 연령표준화 발생률을 보면 이전과 큰 변화는 없다. 흡연, 화학물질 노출 등과 같은 이유보다는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고령화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 방광암은 나이가 들수록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
-방광암은 생존율이 높은 암인가?
“방광암의 5년 생존율은 병기에 따라 다르다. 비근육침습성 방광암은 80% 이상 생존한다. 근육침습성 방광암은 50% 이상 생존하고, 암이 전이된 경우엔 생존율이 10% 미만이다. 최근 항체약물접합체 같은 좋은 약들이 많이 나와서 기대를 하곤 있으나, 전이성방광암은 여전히 예후가 좋지 않다. 그래도 전체 암 중엔 생존률이 높은 편이다. 전체 방광암 환자 중 70~75%가 비근육침습성 방광암인데, 비근육침습성 방광암은 다른 암들과 달리 혈뇨라는 확실한 증상이 있어 빨리 발견되기 때문이다.”
-혈뇨 외에 눈여겨봐야 할 증상은?
“방광암의 가장 흔한 증상은 통증이 동반되지 않은 육안적 혈뇨다. 아프진 않은데 혈뇨가 관찰된다는 뜻이다. 그 외에 급박뇨, 빈뇨, 배뇨통 등 배뇨증상이 동반될 수 있으며, 암이 진행된 경우 신장에서 소변이 방광으로 통과하는 것을 막아 요로폐쇄에 의한 수신증으로 측복통(옆구리 통증) 또는 신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암이 전이되면 전이 부위에 따른 증상도 동반된다. 예를 들어 폐 전이의 경우 객혈과 기침 증상을 보이고, 뼈에 전이되면 전이 부위 통증, 병적 골절, 신경손상에 의한 마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방광염이 지속되면 방광암이 발생할 수 있나?
“방광염이 자주 재발한다고 해서 무조건 방광암의 원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방광염이 잘 치료되지 않는 경우엔 한 번쯤 방광암을 의심해봐야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방광염이 많이 생기는데, 육안으로 확인되는 혈뇨 증상이 오래 지속된다면 비뇨의학과 진료를 받아보는 걸 권한다.”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나?
“우선 병력 청취 후 소변에 피가 섞여 있는지, 염증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반요검사와 암세포가 있는지 검사하는 요세포검사, 방광내시경 검사를 실시한다. 방광내시경 검사는 요도로 방광내시경을 삽입해 종양, 점막 이상 유무, 종양이 있는 경우 위치, 모양, 크기, 개수 등을 관찰한다. 혈뇨의 원인이 신우, 요관 등 상부요로일 수도 있기 때문에 복부 컴퓨터 단층촬영을 진행하기도 한다. 방광암이 진단되거나 의심되는 경우엔 병기를 평가하기 위해 흉부 컴퓨터 단층촬영과 뼈 검사 등을 추가로 시행한다.”
-국가건강검진 때 실시하는 소변 검사에서 의심 소견이 나오기도 하나?
“그렇다. 현미경으로 모든 소변을 다 검사하진 못하지만, 검사 스틱을 이용해 적혈구가 있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의사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실제 건강검진 후 소변에서 적혈구가 확인돼 추가 검사를 받으러 왔다가 방광암으로 진단된 경우는 5% 정도에 불과했다.”
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방광암은 어떻게 분류하나?
“방광 속 소변과 접한 부분은 요로상피세포로 덮여 있는데, 이 세포에서 기원한 요로상피세포암이 전체 방광암의 약 90%를 차지한다. 또한 만성 염증·감염과 관련 있는 편평세포암이나 대장암·위암의 흔한 형태인 선암이 발생할 수 있고, 드물게 폐에 발생하는 형태인 소세포암이 생기기도 한다. 이 경우 신경내분비세포에서 발생해 매우 공격적이며 빠르게 전이되는 경향이 있다. 이밖에 방광의 근육층 또는 방광을 둘러싼 결합조직에서 육종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요로상피세포암의 경우 근육층 침범 여부에 따라 근육침습성 방광암, 비근육침습성 방광암으로도 구분한다.”
-병기는 어떻게 나뉘나?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TNM 시스템을 통해 병기를 평가한다. TNM은 종양(Tumor), 림프절(Nodes), 전이(Metastasis)의 약자다. 점막 하층까지 침범하면 T1, 근육층까지 침범하면 T2, 방광을 벗어나면 T3, 인접한 장기를 침범하면 T4다.”
-치료법도 병기를 기준으로 결정하는 건가?
“병기, 분화도, 환자의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데, 특히 병기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흔히 환자들에게 이야기하는 방광암 1기는 림프절 전이나 원격 전이가 없으면서 암이 근육까지 침범하지 않은 경우다. 경요도방광종양절제술과 방광내 BCG 혹은 항암제를 주입해 방광을 보존하면서 치료한다. 2기는 암의 뿌리가 근육까지 침범한 것으로, 방광을 제거하는 근치적방광절제술이 표준 치료다. 암이 방광을 조금 벗어나 골반 림프절 전이가 발견되면 3기다. 3기는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시스플라틴이라는 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 수술 전 항암제 치료를 먼저 실시하고 방광을 제거하는 수술을 진행한다. 원격 전이된 4기엔 항암제를 이용한 전신 치료가 표준 치료고, 출혈 조절 등 제한된 목적으로만 수술을 고려한다.”
-근치적 방광절제술은 어떻게 진행되나?
“방광암이 가장 먼저 전이하는 골반 림프절을 제거하고, 남성의 경우 방광, 전립선, 정낭을, 여성은 자궁 양측 난소와 질 일부를 제거한다. 소변을 저장하는 방광을 제거하기 때문에 새로운 소변길을 만들어주는 요로전환술도 시행한다. 요로전환술은 복벽에 주머니를 부착해야 하는 회장도관조성술과 소장 일부를 이용해 새로운 방광을 만들어 주는 정위성 신방광대치술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수술 받으면 완치될 수 있나?
“비근육침습성 방광암은 재발이 잦을 순 있으나 80% 이상 완치 가능하다. 근육침습성 방광암의 경우 50% 이상 완치가 가능하며, 수술 전후 세포독성항암제, 면역항암제 치료 등을 함께 시행해 생존률이 증가했다. 전이성방광암은 완치 가능성이 10% 미만이지만, 최근 면역항암제와 항체약물접합제 복합치료로 완치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수술을 받아도 배변에는 문제가 없나?
“비근육침습성 방광암은 본인 방광으로 정상적인 배변이 가능하지만, 근육침습성 방광암의 경우 방광 제거 후 시행하는 요로전환술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회장도관조성술을 받았다면 정상적인 소변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복벽에 소변주머니를 부착해 소변을 받아내야 한다. 정위성 신방광대치술, 흔히 말하는 인공방광 수술을 받은 환자는 요도를 통해 소변을 볼 순 있으나, 장으로 만든 방광은 기존 방광과 달리 방광 근육이 없기 때문에 앉아서 배에 힘을 줘 방광에 고인 소변을 배출해야 한다.”
-인공방광 수술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건가?
“반드시 소변주머니를 부착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방광절제술 과정에서 전립선 첨단부에 있는 요도 괄약근이 손상되면 소변이 빠져나온다. 이 경우엔 장으로 방광을 조성해도 소변이 계속 흘러나와서 소변주머니를 부착했을 때보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 절제면에 암이 발생한 경우 역시 새로 조성한 방광과 맞닿을 수 있어 정위성 신방광대치술이 불가능하고, 장을 이용해 방광을 조성하기 때문에 장 상태가 안 좋은 환자도 제한된다. 기본적으로 방광은 배설하는 장기고, 소장은 흡수하는 장기다. 소장으로 방광을 조성하면 계속 재흡수가 일어나므로, 이를 다시 배설할 수 있을 정도로 신장 기능이 받쳐줘야 한다. 이외에도 힘을 주면서 소변을 보기 어려운 고령 환자나 당뇨병이 있는 환자 등도 상의 후 방법을 결정한다.”
-장을 절제해도 소화 기능에는 문제가 없나?
“대부분 문제가 없으나, 드물게 소장의 끝 부분을 절제한 후 비타민B12, 폴레이트 등이 잘 흡수되지 않으면서 빈혈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소변주머니 사용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데?
“인공방광이라는 수술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방법인데, 앞서 이야기했듯 장으로 새로운 방광을 만든다고 해서 소변주머니를 사용하는 경우보다 무조건 삶의 질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방광을 제거하고 소변주머니를 사용하는 수술을 받은 환자들도 잘 적응해 삶의 질이 저하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너무 겁내기보다는 담당 의사와 상의해 적절한 요로전환술을 선택하기 바란다.”
-과거와 달라진 방광암 치료·수술 트렌드가 있을까?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근육침습방광암에서는 적극적으로 방광보존 치료를 시행하고, 로봇을 이용한 근치적 방광절제술도 증가하는 추세다. 골반림프절절제술 또한 과거에 비해 적은 범위로 절제·진행 중이다. 일부 방광암의 경우 백색광을 이용한 기존 방광내시경으로 관찰이 힘들었는데, 최근 협대역 영상을 이용한 방광내시경으로 방광종물을 보다 잘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전이성방광암 환자에게 사용하는 항암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전이된 방광암 환자는 생존기간이 12개월 전후, 시스플라틴 항암제를 쓰면 14개월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항체약물접합제 엔포투맙베도틴과 면역항암제 펨브롤리주맙을 병용했더니 생존 기간이 30개월 이상까지 늘었다. 획기적인 결과다. 이외에 방광암에도 표적치료제의 효과가 확인돼 도입되고 있으며, 검사 분야에서는 소변이나 혈액을 이용해 암을 진단하고 치료 효과를 예측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방광암은 재발률이 높은데?
“비근육침습성 방광암은 50~70%가 방광에 재발한다. 절반 이상 재발한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원인이 있다. 종양을 제거해도 다른 곳에 종양이 생길 수 있고, 드물게 내시경으로 관찰되지 않은 암이 뒤늦게 발견되기도 한다. 다만 최근엔 내시경이나 방광에 주입하는 항암제가 좋아지면서 재발률이 줄고 있다. 근육침습성 방광암의 경우 방광 제거 후 약 50%가 재발한다. 방광을 제거해도 암 세포가 이미 근육 속 혈관, 림프관까지 침입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근육침습성 방광암 치료 후 근육침습성으로 재발할 수도 있나?
“그런 경우 보통 암이 진행한다고 이야기하는데, 15~30%가 그렇게 진행된다. 처음부터 근육침습성 방광암으로 발생했을 때보다 예후가 좋지 않다. 조기에 방광절제술을 시행해야 한다.”
-재발을 막기 위한 치료는?
“비근육침습성 방광암은 재발 가능성이나 근육침습성 방광암으로 진행될 위험도를 평가한 뒤 경요도방광종양절제술과 방광 내 BCG 또는 항암제 주입요법을 진행한다. 근육침습성 방광암의 경우 시스플라틴 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으면 수술 전 항암치료를 시행하고, 이후 조직검사에서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면역항암제를 부가적으로 사용한다.”
-환자에겐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흡연자는 금연해야 한다. 매우 중요하다. 환자가 담배를 피운다고 하면 진료를 보지 않는다. 금연학교에 가서 담배부터 끊고 와야 한다고 말한다. 종양을 제거해도 계속 담배를 피우면 소변에 발암물질이 유입돼 재발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몸에 좋은 게 방광암 예방에도 좋다. 과식을 삼가고, 깨끗한 물, 신선한 야채, 과일 등을 적절히 섭취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고기는 먹어도 되지만, 가공육이나 구운 고기는 피하는 걸 권한다.”
-끝으로 방광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환자를 만나보면 혈뇨를 봤는데 겁이 나서 병원에 안 오다가 뒤늦게 온 경우들이 있다. 혈뇨 증상이 있다고 해서 모두 암은 아니다. 일단 소변에 피가 보인다면 비뇨의학과에 가서 검사받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방광암은 정말 오랜만에 신약이 나왔는데 이 약제들에 대한 허가와 급여가 빨리 진행돼 방광암 환자의 생존율이 향상될 수 있길 기대한다.”
국립암센터 비뇨의학과 서호경 교수 / 국립암센터 제공
서호경 교수는
부산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립암센터 비뇨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비뇨의학과 과장, 비뇨기암센터장 등을 맡고 있다. 전문 진료분야는 방광암·요관암·신우암·전립선요도암 수술과 항암치료다. 환자 진료와 함께 방광암 임상·기초연구에도 힘쓰고 있는 서 교수는 관련 논문 발표를 통해 여러 차례 학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7/26/20240726021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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