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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암정보

[아미랑] 삶의 질을 누릴 때 인간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3. 9. 1.

이병욱 박사의 72.7X72.7cm Acrylic on canvas 2023​

 

<당신께 보내는 편지>

항암 치료는 중요합니다. 다른 곳으로의 전이를 막아야 하고, 남아 있는 암의 사이즈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에게 돌아간다는 것 역시 중요한 사실입니다. 환자는 이 치료를 버틸 수 있도록 육체적, 정신적, 영적 기력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환자와 보호자는 외로움과 막막함을 느낍니다.

의사가 항암 치료의 부작용 등을 잘 설명해주더라도 늘 질문은 남습니다. ‘과연 이게 최선일까?’라는.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몸 상태의 변화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인지 치유의 과정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통증과 부작용이 수시로 찾아오면 절망도 수시로 찾아옵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찾아온 여자 환자 분이 있었습니다. 폐암 4기였고, 먹는 항암제로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다른 암 환자와 마찬가지로 영양 부족에 특히 물이 아주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피부가 푸석거렸고, 황달은 없는데 손끝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으며 특유의 입 냄새가 나는 것을 보아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는 물도 삼키기 어려운 연하장애도 겪고 있었습니다. 폐암의 경우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식도가 섬유화 되는 손상을 입습니다. 손상이 적으면 곧 회복되지만 손상이 심하면 연하장애가 옵니다. 다행히 물은 못 마셔도 과일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조직 자체에 문제가 있기보다 물이 넘어갈 때 꿀떡 하는 그 느낌을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었습니다.

항암제를 투여 받고 있기 때문에 물을 충분히 보충해야 하는데, 이래저래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먹기에 좋은 음식 위주로 무조건 먹으라고 했습니다. 우선 먹어야 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이 환자 분이 그랬습니다. 잘 먹으면 배변도 매끄럽게 진행될 터였습니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수면이었습니다. 폐암 환자들은 특히 잠을 잘 못 잡니다. 통증과 함께 숨 쉬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잠들면 눈을 뜨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도 다른 사람들보다 큽니다. 마사지나 목욕 등으로 심신을 안정시키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2주 뒤에 다시 왔을 때 환자는 피부가 벗겨지고 물집이 생겨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먹는 항암제의 전형적인 부작용이었습니다. 환자들은 전신에 나타나는 부작용을 무서워합니다. 그러잖아도 겁이 많은 그 분은 죽을병이 아닌지 두려움부터 느꼈습니다. 여기에 항암제로 인한 메스꺼움, 불편함이 환자의 마음을 덮쳤습니다. 석 달 뒤에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손 떨림 증상까지 왔습니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걷는 행동이 될 때 치료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질을 누릴 때 사람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암의 사이즈가 작아지는 것이 무조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삶의 질을 우선시해서 면역치료를 하다가 암의 사이즈가 줄어들 수 있지만, 암의 사이즈를 줄이기 위해 처치를 하다 보면 삶의 질은 망가지고 죽음을 재촉하는 결과가 올 수 있습니다.

환자는 무섭다며 더 이상 항암 치료를 못 하겠다 선언했습니다. 보호자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그때부터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면역치료만을 했습니다. 손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일상은 훨씬 편해졌고,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도 덜었습니다.

면역치료만 한 지 넉 달 뒤에 병원에 가서 CT로 확인해보니 폐의 상태도 훨씬 좋아져 있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하다가 중단할 경우 암세포가 커진다고 믿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입니다. 아마 계속 항암 치료를 이어갔다면 환자가 견디지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여생을 얼마나 편하게 보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더 나은 결과를 볼 수 있지요. 환자는 그 후로도 6~7개월 이상을 더 살면서 자녀들과 손주들과 삶의 마무리를 함께 지어나갔습니다. 수술 후 두어 달 버틸 것이라고 했는데, 이후 1년을 사신 겁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의 삶이 환자에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살아 있는 한 스스로 먹고 마시고 대화하고 기도하고 걷고 푹 자는 것, 이런 삶의 질은 중요하지 않은지 한 번 쯤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늘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8/30/20230830021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