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위암을 극복한 이요섭(오른쪽)씨와 그의 주치의인 한양대병원 외과 최동호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정형외과에서 간암 진단
2014년 12월, 이요섭씨는 낙상으로 인한 왼쪽 다리 통증으로 한양대병원에 내원했습니다. 택시운전사인 이씨는 2008년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 다리의 고관절, 무릎, 발목을 다쳐 고관절 인공관절 치환술을 한 상태였습니다. 인공관절 재수술 여부 판단을 위해 정밀검사를 하던 중, 간암 1기를 진단받았습니다. 이씨는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애주가였던 데다가, 기저질환으로 B형 간염이 있었지만 ‘아직 건강하다’는 자만심에 정기 검진을 받지 않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리는 만큼 조기 진단이 매우 중요한 암 종입니다. 정상적인 조직이 30%만 남아도 기능을 하는 데 지장이 없어 이상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황달, 복수, 구토, 간성 혼수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B형 간염, C형 간염, 간경변증, 지방간, 알코올 섭취 등 간암 위험 요인이 있는 사람은 1년에 두 번 이상 정기검진을 받는 게 좋습니다. 간암은 간수치 혈액검사, 간암종양지표(AFP), 초음파 혹은 컴퓨터단층촬영(CT) 등으로 진단합니다.
가족을 향한 미안함, 자책감
간암 치료는 간암의 병기, 간경변증 유무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종양이 크기가 3cm 이하로 작고 혈관 침범 등이 없는 간암 초기 단계에는 간을 절제하는 수술 치료가 효과적입니다. 이씨는 간암은 조기에 발견했지만 수술적 절제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최동호 교수는 “간암 병기로는 초기인 1기였으나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서 간 기능이 매우 떨어져, 암을 절제하는 것만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며 “간경화와 간암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도록 간 이식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자녀들이 간을 공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정밀검사 결과, 아들과는 조건이 맞지 않아 큰 딸의 간을 이식하게 됐습니다. 그때 이씨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무척 컸다고 합니다. 손 한 번 대지 않고 고이 키운 자식들의 몸에 칼을 대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습니다. 당시 결혼한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딸에게 간을 받아야 하는 자신이 아버지로서 용납이 되질 않았습니다. 자책감이 심했습니다. 이때 자식들과 사위가 이씨의 마음을 보듬고 끊임없이 위로해줬습니다. 매번 병원을 함께 오가며 힘이 돼주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치료 이끈 의료진
간 이식에 대한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이요섭씨는 한양대병원의 첫 번째 생체 간이식 사례자입니다. 첫 사례자인만큼 불안할 법도 했지만 이씨는 의구심이 생기지도, 불안한 마음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주치의인 최동호 교수가 확신을 갖고 치료 전반에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준 덕분입니다. 이씨의 건강 상태를 매번 꼼꼼히 확인하고, 이상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지 끊임없이 확인했습니다. 이식 코디네이터인 남민경 간호사도 이씨를 가족처럼 살갑게 대하며 불편한 점이 없도록 배려해줬습니다. 의료진을 믿고 맡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간 이식 전 2015년 1월에는 경동맥화학색전술을 1회 받았습니다. 경동맥화학색전술은 간 종양이 자라는 데 필요한 산소, 영양 등을 공급하는 혈관에 항암제를 투여하고 혈관을 차단하는 치료입니다. 3월, 생체 간 이식이 성공적으로 시행돼 이씨와 딸 모두 일상으로 건강하게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1년 뒤인 2016년 3월, 정기검진을 받던 중 위암이 발견됐습니다. 간 이식을 받은 환자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면역 치유 반응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암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정기적인 검진이 필수입니다. 다행히 1기였습니다. 초기에 발견한 덕분에 내시경점막절제술로 해당 암 병변을 잘라냈습니다. 위내시경을 이용해 절제하는 수술이라 회복이 빨라 1주일 만에 다시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거부반응으로 온몸 노랗게 변하기도
간 이식 후 3년이 지난 2018년, 이식 만성 거부반응이 나타났습니다. 거부반응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새로 이식된 간을 적으로 인식해 공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이씨는 황달 수치가 15~20까지 상승했습니다(정상 황달 수치 1). 얼굴뿐 아니라 온몸이 노랗게 변했습니다. 거부반응이 심한 경우, 간 재이식이 유일한 치료방법입니다. 다행히 스테로이드 약물 치료에 반응을 보여 황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간 기능이 회복됐습니다. 이씨는 거부반응을 겪은 후, 몸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골고루 잘 먹고, 매일 운동하고, 음주량도 줄였습니다. 마침내 2019년 12월, 간암 완치판정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의료진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다른 환우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1년에 한 번 간 이식 환우회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선배 환우로서 위로와 용기의 말을 건네고 궁금한 점에 답변도 해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요섭씨>
이요섭씨./사진=신지호 기자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평상시에도 가족에게 의지를 많이 했지만 암 진단 이후로 새삼 고마운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간 이식 후로는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며 제 삶을 더 특별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딸 덕분에 보너스로 살게 된 게 아닌가 싶어 더 열심히 살게 되기도 했고요. 처음에 자식들이 간 공여자로 나섰을 때 들었던 미안한 마음만큼 알찬 삶으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게 건강관리도 철저히 하는 중입니다. 간 이식 수술이 끝나고, 헬스장까지 등록하면서 운동에 취미를 붙였습니다. 지금도 일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한 시간씩 걷고 한 시간씩 근력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2004년부터 10년이 넘게 택시를 운전했습니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아침부터 나가 승객들을 태우고 여기저기 다니는 게 제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지금은 6개월 정도 쉬고 있는데 조만간 다시 택시 운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쉬는 동안 가족, 지인들과 더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시간이 많을 때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최근 환갑을 맞이해 가족들과 다함께 4박 6일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도 큰딸이 여행 계획을 짜느라 고생했습니다. 특별한 것 없이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 먹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알게 된 동료들 10명과도 모임을 만들어서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고향인 경상도 쪽으로 자주 놀러 가는데 주로 문경을 갑니다. 도심을 떠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다보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암 극복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교수님을 100% 신뢰했습니다. 3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올 때마다 교수님께 주의해야 할 사항을 듣고 실천했습니다. 술을 무척 좋아해서 술을 줄이는 게 가장 힘들었지만 교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예전에는 술을 무조건 많이 마셨었는데 이제는 가끔 모임이 있을 때 딱 맥주 한 잔만 마십니다.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잘 챙겨 먹고 체중 관리를 위해 운동을 꼬박꼬박 열심히 했습니다.”
-주치의와의 관계가 돈독해 보입니다.
“제가 첫 번째 간 이식 사례자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님과 특별한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말로 표현 못할 끈끈한 유대로 이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항상 몸 상태를 세밀히 살피고 관리해주신 덕분에 의구심 없이 치료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뿐 아니라 한양대병원 여러 의료진의 도움도 컸습니다. 코디네이터 선생님도 회복에 많은 도움 주셨어요. 항상 활짝 웃으며 안부를 묻고, 그날 기분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상 속 케어를 해주신 덕분에 정서적인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병원에 와서 수술을 할 때나 검사를 받을 때 한 번도 불안했던 적이 없습니다. 다른 암 환자분들도 담당 주치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양대병원 외과 최동호 교수>
최동호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국내 간암 치료 현황은?
“국내 간암 치료 성적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의료 체계가 잘 구축돼 있을 뿐 아니라 이식, 수술 등 치료 결과가 좋아 예전보다 생존율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간암이 진단되면 간암 진행 정도에 따라 치료방법이 달라지는데요. 크게 수술적 절제, 간 이식과 비수술적 치료인 고주파열치료, 간동맥화학색전술로 나뉩니다. 수술적 절제술이 간암을 확실하게 제거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간 기능이 떨어진 경우 간 이식만이 대안입니다. 그중에서도 생체 간 이식은 수술이 까다롭고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은 고난도 치료입니다. 건강한 사람의 간 일부를 절제해 이식하는 수술이라 공여자의 안전도 철저히 고려해야 합니다. 뇌사자 간 이식은 담도, 혈관 등을 길게 절제할 수 있지만 생체 간 이식은 최소한의 절제로 새로운 신체에 이식해야 해 난이도가 높습니다. 간 이식 후에는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도록 면역억제제 농도를 적절히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외에 비수술적 치료로 최근 여러 항암제가 많이 개발되는 추세입니다. 면역 치료와 표적 치료를 섞은 병합 요법이 등장해 간암 재발 환자나 간암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들에게도 효과가 좋습니다.”
-교수님께 이요섭씨는 어떤 환자였나요?
“의료진하고 친밀하게 지내면서 불편한 거 있을 때 언제든지 상담하고, 치료하는 절 전적으로 믿고 따라준 환자입니다. 우리 병원의 첫 번째 간 이식 사례자라 만큼 두려운 마음이 있으셨을 텐데도 의료진을 믿고 맡겨준 덕분에 치료에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난이도가 높은 수술인 만큼 신중하게 치료에 임했고, 다행히 이식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식이 끝난 뒤에는 상태 변화를 꼼꼼히 확인하며 합병증 발생 위험을 살폈습니다. 검사 수치가 안정적이라 빠르게 회복하셨는데요. 퇴원 후에도 정기 검진 제때 잘 오시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몸 상태가 괜찮으신지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가족들의 충분한 지지도 빠른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된 듯합니다. 가족들이 병원에 항상 동행하고 몸 상태를 점검해주는 등 이요섭씨를 항상 생각해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런 여러 요인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 좋은 결과가 있던 것 같습니다.”
-간암 환자가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다면?
“간 종양을 절제하거나 간 이식을 한 뒤, 암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합니다. 금주, 적당한 운동, 간 기능을 저하시키는 음식 피하기를 꼭 기억하세요. 간 이식을 받은 분들은 이요섭씨처럼 매일 꾸준히 운동할 것을 권고합니다. 체중 관리를 하지 않아 살이 찌면 지방간이 생겨 간 재이식을 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암에 좋다는 한약, 즙 등을 찾아 드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한두 가지 성분이 과잉 농축된 식품을 섭취하면 간의 해독 능력이 저하됩니다. 매 끼니 영양균형을 맞춘 식사를 하세요. 생선회, 생굴 등은 비브리오 패혈증 위험이 있어 가급적 드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외에 힘든 점이 있을 때는 주치의를 비롯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극복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5/22/20230522018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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