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DB
유방암으로 치료받았던 60대 어머니가 30대 딸의 손을 잡고 진료실로 들어오셨습니다. 딸도 유방암. 어머니는 “좋은 것도 아닌 하필 유방암을 물려줬다”며 자신을 원망하고, 딸에게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모르십니다. 당신이 진단됐을 때보다 더 절망하십니다. 사위와 사돈들에게도 죄인이 된 듯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이제부터 암 치료를 시작해야 할 딸 걱정에, 어린 손주들은 괜찮을지도 걱정이라고요.
진료실에서 종종 ‘암을 대물림한’ 유전성 암환자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분들은 마치 무슨 죄라도 진 듯 서로에게 미안해합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암의 원인의 대부분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암환자의 5~10%가 부모들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특정 암의 발생과 관련됐다고 알려집니다.
만약 위 사례의 60대 환자분이 암을 진단받았을 당시, 그와 가족들이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면 어땠을까요? 유방암·난소암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 BRCA1과 BRCA2의 경우, 이 유전자가 발견되면 암이 진단되지 않았더라도 예방적 차원에서 양측 유방과 난소난관 절제술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암을 진단 받지 않은 상황에서 멀쩡한 유방과 난소난관을 절제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예방적 치료가 암 진단 후 받는 힘든 치료를 줄일 수 있고, 죽음의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선택이라면 용기를 내어볼만합니다. 딸의 유방암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환자와 가족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특정 변이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해도 환자의 미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암으로 진단된 환자는 자신에게 그 유전자가 있다는 것에 대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걸까요? 유전자 변이가 확인된 환자의 경우,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가족들도 병원에 방문해 유전자 검사를 받게 할 것”을 권유받습니다. 정작 암환자 입장에서는 암 진단 사실조차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것을 형제자매나 자녀들에게 전해야 하는 겁니다. 막막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본인을 통해 먼저 발견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암을 예방할 기회를 얻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습니다. 수년전, 미국의 유명 여배우가 유방암·난소암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BRCA1, BRCA2)를 갖고 있어, 예방적 차원에서 양측 유방·난소·난관을 제거했다는 이야기가 꽤 시끌벅적하게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BRCA 유전자 검사와 그와 관련한 연구, 예방적 수술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유전자 변이 확인은 환자 본인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이후 치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 환자의 경우 일반적인 대장암처럼 부분절제를 하면 수술 후 약 50%에서 또 다른 대장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로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이라는 게 밝혀지면 아전결장절제술을 고려해야 합니다. BRCA 유전자 변이가 있는 조기 유방암 환자라면 부분 절제 대신 양측 유방 절제술과 양측 난소난관 절제술을 동시에 시행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경우입니다. 유전자 검사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나와 내 가족의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한 정확한 방향을 결정하는 정보의 한 도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등의 유전자 검사는 비용이 저렴해지고, 검사 시간도 많이 단축되면서 근래에는 이 검사가 널리 시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암환자에게 권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혈연 관계에 있는 친족에게 같은 종류의 암이 발생한 경우 ▲해당 암의 평균 유병 연령에 비해 젊은 나이에 발병한 경우 ▲한 환자에게 다양한 암이 진단된 경우 ▲남성 유방암과 같이 특정 암이 이례적으로 발생한 경우 유전자 검사를 권유합니다.
유전자 변이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해 보입니다. 유전자 변이를 가진 이들이 직장과 사회로부터 차별받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유전자 변이를 이유로 고용주나 보험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책 개선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2/08/23/20220823021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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