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암을 이겨낸 주정자씨./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주정자씨(인천 미추홀구)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건 2007년입니다. 건강검진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1기 대장암이 발견된 겁니다. 치료를 위해 입원하고 정밀 검사를 받던 중 또다시 발견된 불행, 위암이었습니다. 그나마 초기여서 대장과 위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만 받았습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주씨는 슬픔이나 절망의 감정은 크게 느끼지 못 했다고 합니다. ‘조기에 발견돼 다행이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17년 6월. 평소와 다르게 피곤하고 팔과 복부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소화제를 먹으며 버티다가 도저히 낫지 않기에 찾은 동네 병원에서 “암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보시라”는 말을 들었을 땐, 10년 전과 달리 무섭고 절망적인 마음에 길에 주저앉아 한참을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길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간내 담도암 4기였습니다. 우측 간에 13cm 크기의 커다란 암 덩어리가 있었고, 간내 다발성 전이 소견이 있었습니다. 종격동(폐와 폐 사이), 복부, 림프절 전이도 있었습니다. 간내 담도암은 간에서 담즙이 운반되는 통로인 담도에 생기는 암입니다.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대부분 뒤늦게 발견됩니다. 근치적(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수술이 가능한 환자의 비율이 30%가 채 안 됩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경우 5년 생존율이 5% 이하일 정도로 절망에 가까운 암입니다.
주씨 역시 근치적 수술은 불가했습니다. 우측 간을 절제하는 수술을 시행했지만, 통증을 줄이고 간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암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스물일곱 번의 항암치료에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예상되는 생존 기간은 3~4개월. 그때 두 아들이 나섰습니다. 주씨의 유전자 검사 결과, 면역항암제를 시도해볼 만 했는데요.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아들들의 결심에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았습니다. 총 여섯 번의 시도 끝에, CT검사에서 암이 줄어든 게 확인됐습니다. 진통제 없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통증도 호전됐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여러 차례의 고비 끝에, 최근 암세포가 모두 사라진 것이 확인됐습니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릴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포기하지 않아준 아들들 덕분에 지금은 건강한 일상을 되찾았다”고 말합니다.
세 개의 암을 이겨낸 주정자씨./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암과 이별하는 10년의 시간 동안 그가 지켜온 것들에 대해, 문답 형식으로 풀었습니다.
<주정자_위암·대장암·담도암 완치자>
-항암치료를 총 33회 받으셨는데, 상상도 못 하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게 힘들 정도로 기운이 없었어요.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으면 그 길로 못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매일, 매순간 반복됐습니다. 속은 역했고, 근육은 다 빠져서 기력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두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주고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새벽에 자다가도 깨서 된장국에 밥을 말아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희 엄마도 몇 해 전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하신 말씀이 ‘입맛이 없으면 된장에라도 말아 한 술 뜨라’는 거였습니다. 뭐라도 먹어야 살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먹기 싫고 그냥 평소 먹던 음식만이 입에 들어갔어요. 조금 기운을 차리고는 ‘먹을 수 있는 건 뭐든 먹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만 몸에 안 좋은 음식은 먹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짜고 매운 음식, 탄 음식들이요.”
이때, 인터뷰 장소에 함께 나온 언니 주명자씨가 말을 보탰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어요. 옆에서 보기에 너무 안쓰러워서 벌집밀랍, 꿀에 잰 마늘, 모링가 잎 등을 어렵게 구해 가져다줘도 안 먹는 것 같더라고요. 좋다는 음식보다 나쁘다는 음식에 더 신경을 쓰자는 마음 때문이었나 보네요.”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김장을 하셨다던데?
“아까 말했듯이 아들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었어요.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르는데 김장은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는 산골 마을에 들어가 살았는데요.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 있는 곳에서 벗어나 산수 좋은 곳에서 지냈거든요. 거기에서 쑥도 캐러 다니고, 상추도 심고, 배추도 심으며 살았어요. 캔 쑥으로 떡도 해다가 가족들에게 나눠줬고요. 그런 소일거리라도 있으니 까무러지지 않은 것 같아요. 마냥 누워만 있었다면 아마 암을 극복하지 못 했을 거예요.”
-걱정이나 불안한 마음은 안 들었나요?
“사실 저는 암에 걸리기 전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니 그때의 괴로움은 다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걱정과 두려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요. 그래서 밤에 잠을 잘 못 잤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니 더 괴로워져서, 주치의 선생님을 찾아가 수면제를 처방받았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끌어안고 지내면 문제가 더 커져요. 약을 먹고는 푹 잘 수 있었고, 생활이 더 수월해졌어요.”
-약속을 잡으려 전화했을 때, 가족여행을 앞두고 있다 하셨는데. 다녀오셨나요?
“제가 7남매인데 남매끼리 거제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3박 4일 여행 후 어제 막 집에 돌아왔어요. 우애가 좋은 편이라서 제가 암 투병을 하는 중에도 정말 큰 힘이 돼줬습니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즐겁게 살자’ 싶은 마음에, 앞으로는 1~2년마다 일곱 명이 뭉치기로 했습니다.”
-두 아드님이 큰 힘이 됐겠어요?
“아들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진작 이 세상에 없었을 거예요.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었는데, 끝까지 해보자고 저를 달랜 것도 아들들이에요. 이제 와서 말이지만, 저는 담도암에 걸렸다는 건 알았어도 4기인 줄은 몰랐어요. 이번에 완치 소식을 들려주면서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사실은 4기였고, 희망이 없었다고. 제 마음이 무너졌을 거란 걸 아들들이 안 거죠.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제게도 희망을 심어준 아들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마음이에요. 이제는 우리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휴대전화 발신음으로 트로트가 나오던데. 트로트 좋아하세요?
“태진아씨와 진성씨, 최근에는 미스트롯에 나온 김다현양의 노래를 즐겨 들어요. 이게 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에요. 암에 걸리기 전엔 마음에 화가 가득 쌓일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안 그러려고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지만 몸소 체험하고 나니 그 위력을 알 것 같습니다. 트로트에 스트레스를 실어 날려 보낼 겁니다.”
세 개의 암을 이겨낸 주정자씨와 언니 주명자씨./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지금 이 순간에도 암과 싸우고 계신 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제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분들이 바뀌진 않을 것 같아요. 본인 스스로가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살겠다는 마음이요. 그 의지는 절대로 누가 만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암환자를 곁에서 돕고 있는 가족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암환자는 정말 힘들어요. 특히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이것 해봐라’ ‘저것 하지 마라’라는 조언은 사실 암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저 곁에서 응원해주고, 지지해주고, 함께 있어 주세요.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동치미’를 만들어 주세요. 메스꺼울 때 한 줄기 빛 같았던 게 저에게는 동치미였습니다.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리게 해줄 그 무언가를 찾아서 만들어 주세요.”
주정자씨와 언니를 뒤로 하고 카페를 나섰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두 분은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씨를 암에서 구해낸 건 바로 가족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2/06/09/20220609020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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