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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건강상식/음식&요리

[내 인생의 소울푸드] 허망과 열망 버무린, 영화 제작자표 '전복밥'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0. 2. 22.



길영민 JK필름 대표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영화 국제시장이 파란을 일으키던 5년 전 겨울, JK필름 길영민(51) 대표는 서울 강남의 사무실 근처 이자카야에서 밤을 넘겨가며 요리 중이었다. 생선회, 채끝 샐러드, 오뎅탕, 대구탕, 함박스테이크 등등. 가끔은 스시도 잡았다. 사무실 일은 이른 오후에 마감했다. 걸출한 영화 제작자의 기묘한 행보, 그 연원은 다시 몇 년을 거스른다.

포스트 이벤트 블루(post-event blues)라고들 한다. 큰일을 겪은 뒤엔 우울과 허무가 온다. 길 대표도 그랬다. 2009년 해운대의 대흥행 후 길 대표의 마음은 정처를 잃었다. 사무실 근처를 산책하다 발견한 나카무라 아카데미 간판. 일본 요리라…. 6개월 초급에 6개월 상급 과정을 보태 생식·조림·구이·튀김·찜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학원을 옮겨 이탈리아 요리에 6개월, 일본 가정식에 다시 6개월을 투자했다. 허무와 모종의 열망 끝에서 초보 요리사로 변신한 영화 제작자를 나중, 이자카야의 좁은 주방까지 내몬 것은 국제시장 개봉 직후 찾아온 또 한번의 허탈이었다.

크리에이티브의 시대에 제작자는 가리워진다. 작가들의 뒤에서 편집자가 잊히듯, 감독과 배우 뒤에서 영화 제작자는 잊힌다. 잊혀야 하는지도 모른다. 흥행과 참패 사이에서 널뛰는 감정에, 망각에 대한 불안이 가세하면 제작자들은 곧잘 길을 잃는다. 길 대표는 그렇게 끊긴 길들을 요리와 미식으로 이어왔다.

그 덕에 그는 아내와 열 살, 다섯 살 된 아이들 그리고 부산서 가끔 올라오시는 노모에게 고급한 전복밥을 대접할 능력을 얻었다. 곱게 우린 가쓰오 다시에 간장·청주·미림을 넣고, 손질한 전복을 투하해 약불로 2시간을 익힌다. 전복을 건져내 식힌 뒤 얇게 썰고, 남은 가쓰오 다시는 밥물로 쓴다. 밥이 지어지면 전복 슬라이스와 쪽파, 버터를 얹어 식탁에 낸다.

제법 인이 박인 요리솜씨로 길 대표는 가족과 친구들을 대접하며 황홀하다. 아침 댓바람부터 특식을 주문하는 큰아이를 위해선 냉동된 참치살을 녹여 급히 스시를 잡기도 한다. 전복밥을 포함해 그 모든 요리는 길 대표에게 허망과 열망의 버무림일 수 있겠다.


☞쫀득한 육질만으로도 체감 가능한 고단백 얘기야 굳이. 전복의 단맛은 어디서 왔을까. 큼지막한 이 패류(貝類)는 미역과 함께 다시마를 먹는다. 특유의 단맛은 감칠맛의 대표 주자인 다시마의 글루탐산으로부터 왔을지도. 아르기닌이 풍부해 몸속의 독(毒)을 빼준다. 해삼과 어깨 겨루는 바다의 보양식이다.

출처 :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21/20200221000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