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쇼크 등 여러 합병증 불러 심장수술 수혈률, 미국의 2~3배… 유럽 등 수혈 최소화 가이드 있어 국내, 불필요한 수혈 관행적 시행… 수혈 여부·양, 의사마다 천차만별 제도적 장치 마련, 수혈 최소화해야
수술을 할 때 수혈(輸血)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료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무분별한 수혈에 대한 반성과 반발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병원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 이뤄질 때 수혈률은 78%로 미국(8%), 영국(8%), 호주(14%)에 비해 최대 10배높다. 심장수술 수혈률은 76~95%로, 역시 미국(29%)에 비해 2~3배 높다. 고려대안암병원 박종훈 병원장(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장)은 "안 해도 될 수혈을 관행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올 하반기부터 병원이 '수혈'을 얼마나 적절하게 하는지 평가(요양급여 적정성 평가)한다.
◇수혈, 사망 위험 높여
수혈은 결코 '좋은 치료제'가 아니다. 순천향대서울병원 무수혈및환자혈액관리센터 이정재 센터장은 "똑같은 수술을 했을 경우 수혈을 한 그룹과 하지 않은 그룹을 비교한 결과, 수혈 한 그룹은 다양한 합병증 때문에 입원 기간이 길고 사망 위험이 높다는 연구가 수십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수혈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대표 부작용은 간염·에이즈 등 감염병, 알레르기 쇼크, 급성 폐손상, 면역억제 저하 등이다. 수혈은 과다출혈 등 꼭 필요할 때를 빼면, 가급적 안 하는 것이 좋다. 미국·유럽·호주 등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수혈의 잠재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수혈 최소화 움직임과 함께, 의료진의 적절한 수혈 여부에 대한 제도적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박종훈 병원장은 "수혈의 85%가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게 진행됐다는 조사도 있다"고 말했다.
◇수혈 판단, 의사마다 제각각
질병관리본부는 환자의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7g/㎗ 이하일 때 수혈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7~10g/㎗이면 의사 판단 하에서 수혈을 결정하고, 10g/㎗ 이상이면 수혈이 불필요하다. 이정재 센터장은 "이런 가이드라인은 의료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수혈을 결정하거나, 얼마나 많은 양을 수혈해야할 지에 대한 판단은 의사마다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바른세상병원 정형외과 경봉수 원장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의 경우 한쪽 무릎만 수술을 하면 400㎖짜리 혈액 2팩, 양쪽 무릎을 하면 혈액 5팩을 기계적으로 수혈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수혈분과 양기화 평가책임위원은 "지난해 대학병원· 전문병원 10곳에서 시행한 무릎 인공관절 수술 수혈 적정성 예비 평가 결과, 혈중 헤모글로빈 10g 이상일 때 불필요하게 수혈을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며 "한 번 주문한 혈액은 반납이 불가해 수술 전 혈액 은행에서 혈액을 주문한 뒤 필요 없는 수혈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환자 안전 문제도 있지만, 인구 고령화 시대에 수혈 최소화는 불가피하기도 하다.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수혈을 했다가 '혈액 부족 대란'이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지금도 혈액이 부족해 수혈이 필요한 수술을 앞둔 환자는 직접 헌혈자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정재 센터장은 "헌혈 인구의 90%는 40세 미만이지만 수혈 인구의 90%는 40세 이상이다"며 "젊은층이 줄면서 2017년부터 헌혈 인구가 줄기 시작해 혈액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소 수혈 위한 제도 정착해야
수혈 최소화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지금까지 마련돼있지 않다 보니,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환자 혈액관리 프로그램'을 자체 운영하고 있다. 7년 전 혈액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한 고려대안암병원은 의사가 수혈 처방을 내릴 때 '왜 수혈이 필요한지' 기록해야 한다. 수혈 처방이 된 건에 대해서는 다른 의사들이 평가를 할 수 있으며, 잘못된 수혈 처방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교정한다. 순천향대서울병원도 최소 수혈을 위한 여러 의료진들이 다학제적 논의를 함께 하고 있다. 관절전문병원 분당바른세상병원은 2014년부터 '무수혈, 최소수혈 인공관절수술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양기화 평가책임위원은 "수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적정성 평가를 확대해 나가겠다"며 "수술 분야도 무릎 인공관절 치환술부터 시작해 산부인과 수술 등 다른 수술까지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소 수혈을 위해서는 수술 전에 철분제를 투여해 빈혈 등을 교정하고, 수술 중에는 지혈제를 투여해 출혈을 가능한한 줄인다. 수술 후에는 필요하면 철분제를 투여한다. 수술 전에 환자 혈액을 뽑아놓고 수술 중 필요할 때 투여를 하거나, 수술 중에 흘린 피를 모아서 처리를 한 뒤 다시 투여하는 방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