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번진 암, 믿음과 식이요법, 남편의 사랑으로 이겨 내
유방암- 김경희씨
눈을 뜨면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새날이 밝았다는 것이 기쁘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온몸에 저릿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언제나처럼 남편이 녹즙을 건네준다. 투병생활 동안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늘 웃는 낯으로 내 시중을 들어 준 남편의 얼굴에는 환하고 다정한 미소가 담겨있다. 매번 이렇게 목이 메인다. 눈 밑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쓴 녹즙을 달게 마신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려댄다. 아픔을 호소하는 환우들의 전화다. 하루 60여 통 걸려오는 전화를 남편과 번갈아가며 받는다. 하루 종일 전화를 받거나 봉사활동을 다녀오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곤 하지만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쁨에 다시 기운이 솟곤 한다.
10개월 전 유방암 검사에서 아무 이상 없다더니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언제부턴가 나른하고 피곤이 쉬 느껴지며 낮에도 자꾸만 눕고 싶고 일도 하기 싫어졌다. 낮에 누워도 낮인지 밤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아들 아이가 건네준 신문에 유방암 자가 진단하는 방법이 나와 있길래 그대로 해봤더니 왼쪽 가슴에 콩알만한 것이 손에 잡혔다. 설마하고 뜨거운 물 찜질도 해보고 파스도 붙여 봤지만 없어지지 않았다. 불안에 떨다가 가까운 큰 병원에 가서 촬영을 해 봤더니 암이라고 했다.
10개월 전에 유방암 검사를 했을 때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믿어지지도 않고 기가 막혀 멍하니 있는 내게 의사는 3일 후에 입원하라고 했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달려온 남편을 껴안고 둘이서 얼마나 울었는지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와 중학교 2학년인 아들아이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저녀석들을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니 숨이 딱 멎는 것 같았다.
입원 다음 날 4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날 무렵 아래층 사는 이웃이 내 손을 꼭 잡고 수술이 깨끗하게 끝났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온데간데없어진 한쪽 가슴과 여러 개 달린 링겔병이었다. 그 황량한 풍경에도 내 마음의 평안은 깨지지 않았다.
21일간 입원하고 퇴원하면서 6개월 동안 항암제 치료를 받았다. 임파선을 모두 절제한 탓에 떼어낸 유방쪽 부위가 아프고 무거웠다. 두려움도 컸고 항암제 치료는 힘이 들었지만 나는 남편이 병원에 같이 가겠다는 것도 말리고 혼자서 씩씩하게 잘 견뎌냈다. 어린 것들 앞에서 아픈 내색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6개월의 항암제 치료가 끝나자 병원에서는 항암제와 타목시펜(호르몬제)을 1년간 계속 먹으라고 했지만 얼마 있다가 약값도 비싸고 해서 그냥 약을 먹지 않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수술한지 2년째부터 암 세포 다시 나타나
스스로 암수술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아무런 약도 먹지 않고 식이요법도 하지 않은 채 정상인들과 똑같이 먹고 생활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수술한지 6년쯤 지나 포도요법이 좋다는 말을 듣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포도만 10일 동안 먹었는데 이상하게 다리가 결려왔다. 겁이나 수술한 병원은 가지 못하고 집에서 가까운 정형외과를 가보았지만 괜찮다고 해서 몇 개월 동안 물리치료를 받았다.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를 찾아갔지만 엑스레이를 보고 여전히 괜찮다고 했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정형외과 과장 특진을 신청해 방사선 동위원소검사를 했더니 결과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상태가 이정도면 다른 장기도 다 검사를 해봐야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전이가 됐느냐고 하니까 99% 정도 전이가 됐다고 했다. 뭔가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고 정신이 멍해졌다.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정기적으로 계속 병원에 다녔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단 말인가. 다시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에게 쫓아갔다. 따져 묻는 내게 그 의사는 실은 수술한지 2년째부터 암세포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럼 그때 바로 얘기해서 다른 큰 병원에서라도 치료를 받게 했다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너무 기가 막혀 하는 내게 그 의사는 진통제와 항암제를 타가라고 했지만 항암제는 필요 없다고 했더니 현명하게 잘 생각했다는 말을 했다.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목을 돌릴 수도 가눌 수도 없었고 허리와 등, 다리, 가슴이 다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남편이 갈아주는 당근즙 한 잔도 소화를 못시켜 밤새 변기에 엎드려 토하기를 거듭했다. 병원치료를 포기했다. 암이 한 가지만 되도 죽는데 나처럼 온몸에 퍼진 것을 어떻게 치료하며 그 치료비는 누가 다 감당하고 가족들의 고생은 얼마나 심할 것인가. 그때는 시아버님도 전립선암으로 3개월간 입원해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상황이었고, 아들은 수능시험을 딸은 고등학교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더구나 두 시동생은 미국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영주권 문제로 아버님이 돌아가셔도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고 시어머님은 아버님 병간호로 허리를 쓸 수 없어 시누이가 아버님 병간호를 맡아 하고 있었다.
사정이 그러니 나 혼자 살겠다고 병원에 입원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진통제를 먹으며 기도를 드리고 있는 중에 아들의 대학합격과 딸의 고등학교 합격소식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얼마 안 있어 아버님이 돌아가셨고 진통제와 파스로 통증을 참아가며 장례식을 치르고 10일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기도원에 있는 동안 남편은 아이들과 집안 뒷바라지를 하며 매일 밤 오산리 기도원까지 와서 기도를 하다가 새벽에 올라가곤 했다. 금식기도가 끝나고 꿈을 꾸었는데 30년 전에 꺾은 화초가 살아서 내 손에 쥐어졌다. 꿈에서도 ‘이건 기적이야’ 하고 말하다가 깼다.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하지만 그때쯤 내 몸은 진통제를 먹어도 아픈 상태였다. 관절염 진통제를 2알씩 더 먹었더니 진통은 좀 나아졌지만 소화장애가 오고 손발이 부석부석해졌다. 3개월 후에 주위 사람들의 설득과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감사와 봉사, 사랑으로 가득 찬 하루
병원에 입원하고 나자 담당의사는 뇌, 폐, 늑막에 물이 가득 찼고 암이 간, 등, 팔, 다리, 가슴, 척추, 골반까지 다 펴졌다고 했다. 돌아눕지도 못하는 몸에 온갖 검사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이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항암제를 맞고 나니 통증이 가라앉았다. 담당의에게 물었다. 환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냐고. 무조건 잘 먹어서 체력을 키우라는 말에 토하면서도 열심히 먹었다. 이까짓 암에게 내 생명을 내어 줄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1차 항암제를 맞고 사진을 찍어보니 항암제가 내 체질에 맞는다고 의사들이 기뻐했다. 5차 항암제까지 맞고 마지막으로 평소보다 10배 용량이 높은 항암제를 맞았다. 약 10~15일 동안은 밤낮 토하는 고통스러운 치료법이었지만 염려했던 합병증은 일어나지 않았고 열도 혈압도 모두 정상이었다. 퇴원할 때 암이 70% 정도 사라졌다고 했다. 퇴원하고 나서는 항암제의 후유증 때문에 류머티스 관절염과 만성 기관지염으로 고생을 했다. 우연찮은 기회에 식이요법을 배웠고 신문에서 면역요법이 나왔기에 배워서 열심히 따라 했다.
식이요법을 한지 6개월이 지나 다시 사진을 찍어보니 암세포가 90% 정도는 사라졌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한동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남편의 정성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동안 아내를 살리겠다고 날마다 애끓는 기도를 했고 부천에서 수원까지 날마다 식이요법용 식사를 날라다 주었고, 고2 딸아이 도시락을 1년이 넘게 새벽마다 싸주었다. 그뿐인가 식사와 설거지는 물론 이틀마다 달이는 한약과 버섯 달인 물, 하루 세 번 녹즙을 짜고, 수산시장을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게를 사와 삶아주고, 미꾸라지를 삶고, 돌나물, 컴프리, 민들레를 캐기 위해 가까운 곳, 먼 곳을 돌아다니느라 7kg이나 빠졌으면서도 짜증 한 번, 귀찮은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다. 나는 남편을 하느님이 내게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한다.
“무얼 그래 당신이 해주는 것 열심히 다 먹으니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지…”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쑥스러운 듯 되받는 남편은 지금도 여전히 나를 위해 그 많은 음식들을 챙겨주고 있다. 오늘도 나의 하루는 감사와 봉사, 사랑으로 가득 넘치고 있다.■
김경희 씨의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
▶ 식사 : 현미, 율무, 보리쌀, 기장, 강낭콩, 각종 야채(찐 감자, 당근, 오이, 생고구마, 양배추, 브로컬리)
▶ 녹즙 : 돌나물, 돌미나리, 케일, 컴프리, 신선초, 민들레, 씀바귀 등을 갈아 식전 300cc씩 하루 세 번
▶ 콩즙 흰콩을 삶아서 믹서기에 갈아 하루 두 컵(아침, 저녁)-콩을 밤새 불린 다음 살짝 삶아서 찬물에 식힌다.
▶ 마른 새우, 멸치, 다시마(자연산), 미역(자연산), 살구씨, 표고버섯, 도라지, 파래, 김, 참깨, 솔잎, 홍삼 곱게 갈아 식전에 티스푼으로 1회씩 하루 세 번 먹는다.
▶ 홍게(키토산) 홍게(4~5마리)를 찐 후 내장, 살, 국물을 냉장고에 보관하고 하루 세 번씩 마신다. 껍질과 다리는 잘게 자른 후 말려서 분쇄기에 갈아 티스푼으로 1회씩 식전에 하루 세 번 먹는다.
▶ 미꾸라지 1근(400g)을 소금을 넣어 죽으면 물로 깨끗하게 씻어 압력솥에 적당량의 물을 넣어 푹 끓인다. 마늘을 두 대접 넣어 다시 끓이고 식으면 믹서에 갈아 하루 세 번 마신다.
▶ 사골국물 사지를 넣어 끓인 후 식사 시 항상 국으로 마신다.
▶ 영양제 종합비타민제를 하루 1정씩 먹는다.
▶ 버섯 영지버섯과 운지버섯을 달여 수시로 마신다.
▶ 과일 식후 토마토 및 사과를 1개씩 먹는다.(강판에 갈아서 마시면 먹기가 편하다.)
▶ 유산균 아침저녁 요구르트 한 개씩.
▷ 금기식품 : 감기약, 항생제, 화학조미료, 인공색소음료, 튀긴 닭, 라면
▷ 좋은식품 : 소라, 우렁, 새우, 굴, 꽃게, 해삼, 해조류, 과일, 신선한 야채, 버섯류, 콩즙, 더덕, 도라지, 김, 파래, 미역, 다시마, 멸치, 살구씨, 당근, 우엉, 토마토, 포도, 고구마, 감자, 브로컬리, 무, 무청
▶냉온욕 목욕탕이나 집에서 냉온욕을 하루 한 번씩 하거나 따뜻한 물 샤워를 한다.
▶마음을 즐겁게 가진다. 많이 웃는다. 긍정적인 사고방식.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마른 새우, 멸치, 다시마, 홍삼 등을 곱게 갈아 수시로 먹는다.
▶돌나물, 돌미나리, 케일 등을 갈아 녹즙 300CC를 식전에 하루 세 번 마신다.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생활한다.
구술·김경희 / 정리·이승희(자유기고가)
출처 :암 자연치유센터 원문보기▶ 글쓴이 : 연구실장
'종류별 암 > 유방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독] 인보사 주사 맞은 유방암 환자에게 듣는다 (0) | 2019.04.18 |
---|---|
유두에서 분비물 나오는데… 유방암일까? (0) | 2019.04.14 |
국내 유방암 예방적 절제술 4년새 6배 증가 (0) | 2019.04.04 |
가슴수술, 평생안심케어로 유방종양·보형물 파손 케어 가능 (0) | 2019.03.31 |
유방암 발병 고위험군 여성 '임신' 다르게 영향 미쳐 (0) | 2019.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