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는 공자의 말처럼
죽음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삶’으로 남은 인생을 더 보람있게 만들 수는 있다.
특히 노령화, 난치병 등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 현대인들은 죽음에 이르는 인생 설계의 지혜가 필요하다.
죽음의 양태는 그야말로 각인각색(各人各色)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어떤 죽음이 어떤 고통을 주는지도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사형수나 말기암 환자 등의 언행에서 드러나듯 죽음에 대한 태도에 따라 그 사람의 여생이 어떨지는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로아는 세상이 자신과 멀어져가는 것을 무욕무사(無欲無私)의 관찰자로서 바라보며 차분한 행복감을 느낄 것을 조언했다. 가톨릭 신부인 알폰스 데켄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죽음을 준비함으로써 삶을 더욱 진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통스러운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 시설에서 임종을 앞둔 미국의 칼럼니스트 부크월드가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마지막 칼럼’을 통해 호스피스 생활을 ‘인생 최고의 시간’이라고 전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호스피스(Hospice)란 말기암 등 불치병 환자들에게 고통을 덜어주는 치료로 품위있게 최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호스피스는 손님, 순례자들이 쉬어가던 휴식처를 지칭한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품위있게 죽을 권리를 중시하지만 환자의 죽음을 결코 의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락사와는 다르다. 호스피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가는 이유다.
안락간호원(安樂看護院)으로도 불리는 호스피스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40년이 지났다.
그러나 사회적 관심과 지원 미흡, 인력·재정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나마 보험급여의 제한 등으로 말기 환자의 5%밖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품위있는 죽음조차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송충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