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똑똑 ‘췌장암 극복의 날’ 현장스케치
“췌장암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의료진을 믿고 희망을 잃지 마세요. 저처럼 장기 생존도 가능합니다.”
췌장암 완치 판정(진단일로부터 5년)을 앞두고 있는 박영옥(52·경기 안양시)씨의 말에 많은 췌장암 환자·보호자 300여명이 귀를 기울였다. 그의 표정은 밝았으며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헬스조선·대한소화기암학회가 지난 12일 공동으로 주최한 ‘건강똑똑’ <췌장암 극복의 날, 대국민 건강강좌>에서였다. 박씨는 그의 주치의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황진혁 교수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박씨가 처음 췌장암을 진단받은 것은 5년 전인 2013년 11월. 겨우 47세였다. 발견 당시 이미 3기였다. 명치가 콕콕 찌르는 듯 아팠다. 위염인 줄 알았다. 증상은 1년 넘게 이어졌다. 결국 병원을 찾아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췌장에 이상소견이 발견됐다. 더 정밀한 진단을 받았다. 췌장암이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두려웠다. 홀로 화장실을 찾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절망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다. 치료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췌장암의 완치법은 수술이었지만, 이미 췌장 근처의 혈관까지 암이 퍼져 있어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약 7개월간 9차례에 걸쳐 항암제를 투여 받았다. 다행히 치료 효과가 좋았다. 수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암의 크기가 작아졌다. 수술을 받았다.
이제 남은 일은 재발이 발생하지 않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다. 췌장암은 재발이 잦고, 재발 시 예후가 좋지 않은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꺾어버렸다. 수술 후 한 달 만에 등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아파서 누워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심해졌다. 재발이었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보다 더 큰 절망이 찾아왔다. 1차 치료 때까진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견뎌냈던 그였다. 자신을 돕던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마음을 잡았다. 황진혁 교수와 상의한 끝에 다시 길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이번엔 방사선치료를 병행했다.
16차에 걸친 긴 싸움이 시작됐다. 1차 치료 때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항암제를 투여한 직후로 이틀간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병원을 찾았다하면 5kg이 빠져서 집에 돌아왔다. 악착같이 버텼다. 힘을 내 밥을 떠넘겼다. 그렇게 1년 반, 암의 크기가 매우 줄어들었다.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필요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다시 1년 반이 지난 현재, 그는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지낸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암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다. 통계적으로 암을 진단받은 지 5년이 지나면 완치로 분류된다. 엄밀히 따지면 암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췌장암의 평균 생존 기간이 진단 후 1년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사례는 대단히 고무적이다.
박씨는 “식사에 대해 많이 묻는데, 항암치료를 받은 직후를 제외하곤 오히려 다른 가족들보다 더 많이 먹었다. 단백질을 위주로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라서 이겨냈다’고 말해준다”며 “암을 받아들이고, 힘이 들겠지만 담담하게 치료를 받으며, 밝고 활기차게 생활하면 희망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의 존재 자체가 행사장을 찾은 300여명의 환자·보호자들에게는 희망이었다. 박수소리는 오래도록 지속됐다.
황진혁 교수는 “엄밀히 따지면 전이가 발견됐기 때문에 4기에 해당한다”며 “다른 암도 마찬가지로 진단 후 5년까지 생존해 있으면 완치로 분류되는데, 그의 경우 다음달 4일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조기진단 어려운 췌장암, 그래도 ‘단서’는 있다
췌장암은 익히 알려진 대로 5년 생존율이 약 10%로 굉장히 낮다. 진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환자 10명 중 8명이 3~4기에 발견된다. 게다가 박씨처럼 췌장의 바로 옆으로 흐르는 복부대동맥으로 쉽게 전이돼, 수술도 어렵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송시영 교수는 “환자 70%가 1년 안에 사망한다”며 “최근 환자가 급증하고 있어 2030년이 되면 남성에선 5위, 여성에선 3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견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췌장암에도 단서가 있다고 강조한다. 췌장암이 보내는 위험신호는 ▲뚜렷한 이유 없이 체중이 6~10kg 감소하고 ▲황달이 있으며 ▲위·대장내시경 검사에서 이상이 없는데 복통이 계속되는 등이다. 또한 ▲복부·허리·등 부위 통증이 심하고 ▲식사 후 복부 통증과 구토·구역질이 나타나며 ▲50세 이후에 갑자기 당뇨병을 진단받은 것도 췌장암의 신호 중 하나다.
◇췌장암, 4기도 치료 가능
췌장암이 의심되면 복부초음파, 혈액검사(종양표지자), CT, MRI, 내시경초음파, PET-CT 등으로 진단할 수 있다. 유일한 완치법은 수술이다. 그러나 수술이 가능한 경우는 10명 중 2명에 그친다. 서울대병원 류지곤 교수는 “췌장 바로 옆으로 지나는 복부대동맥으로 쉽게 전이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최근에는 항암요법이 좋아져서 전이된 암을 없애고, 암의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시도할 수 있는 환자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방승민 교수는 최신 항암치료법을 소개했다. 그는 “현재 췌장암 치료제로는 ‘폴피리녹스’, ‘아브락산’, 그리고 폐암치료제인 ‘타세바’ 및 방광암치료제인 ‘젬시타빈’ 등이 췌장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며 “다만, 최근 등장한 면역항암제의 경우 효과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췌장암 치료제에 대한 여러 임상시험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며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리아백스라는 이름의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6개월 안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이광혁 교수는 “최신 항암제들의 효과를 보면 ‘생존기간이 6개월 연장됐다’는 등으로 표현된다. 이를 두고 환자·보호자들은 굉장히 짧다고 느낄 수 있다”며 “그러나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평균을 의미한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100개월 이상 생존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삼성서울병원의 내부 통계를 공개하며 힘을 싫었다. 그는 “최신 항암제를 투여한 환자 101명의 무진행 생존기간(PFS, 암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생존하는 기간)을 살펴본 결과, ▲6개월 미만이 27명 ▲6~12개월 49명 ▲12개월 이상 25명 등이었다”며 “장기 생존이 분명히 가능하다. 현재 어떤 특징을 가진 환자들이 장기 생존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8/20181018027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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