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폐고혈압 권위자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형관 교수
‘폐고혈압’은 말 그대로 폐에 발생하는 고혈압이다. 적절히 조치하지 않으면 일반 고혈압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생존율이 췌장암의 5년 생존율(2~3년)과 비슷할 정도로 낮다.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생존율이 크게 높아지지만, 낮은 인지도 때문에 진단까지 걸리는 시간이 매우 길다. 질병관리본부 조사에서는 환자 절반이 처음 증상이 나타나고 병을 진단받기까지 2년 넘게 걸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관련 학회·단체가 매년 5월 5일을 ‘세계 폐고혈압의 날(World Pulmonary Hypertension Day)’로 지정한 배경이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형관 교수를 만나 폐고혈압의 증상과 치료법을 들었다.
Q. 폐고혈압은 비교적 생소한 질환입니다. 어떤 질환인가요?
A. 흔히 고혈압으로 알려진 질환의 정확한 병명은 ‘체(體)동맥에 발생한 고혈압’입니다. 심장의 좌심실에서 피를 내뿜었을 때 체동맥으로 향하는데, 이 체동맥의 압력이 높은 상태를 말하죠. 폐고혈압은 ‘폐동맥에 발생한 고혈압’을 지칭합니다. 즉, 우심실에서 폐로 연결되는 폐동맥의 압력이 높아진 상태입니다. 정확한 유병률을 파악하긴 어렵지만, 해외 유병률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국내에 1500~2000명이 폐동맥 고혈압을 앓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Q. 일반 고혈압 환자도 폐고혈압을 동반할 가능성이 있나요?
A. 일반 고혈압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고혈압의 주요 원인인 짜게 먹는 식습관은 폐고혈압의 발병에 영향을 주지 않죠. 다만, 폐고혈압이 발병한 상태에서 이런 식습관을 유지하면 숨이 차는 등의 증상이 악화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Q. 그렇다면 폐고혈압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A. 폐고혈압은 원인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류마티스 질환에 동반되는 경우, 선천성 심장질환에 동반되는 경우, 정확한 원인이 없는 경우입니다. 류마티스 질환에 동반된 폐고혈압 환자가 가장 많습니다. 예후도 좋지 않은 편입니다. 선천성 심장질환과 관련한 폐고혈압은 예전엔 많았으나, 지금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수술로 완치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심장질환을 수술로 치료하면 폐고혈압도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다만, 수술을 받았더라도 재발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정기적으로 내원해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가장 문제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폐고혈압’ 환자입니다. 특별한 원인이 없고 증상도 다른 질환과 헷갈리기 때문에 발견이 쉽지 않습니다. 최근 특발성 폐고혈압 환자가 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원인이 추정되긴 하지만, 완벽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폐고혈압을 유발하는 ‘BMPR2’라는 유전자가 발견됐는데, 이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폐고혈압을 앓는 것은 아닙니다. 유전자가 있는 사람 10명 중 2~3명이 폐고혈압으로 진행된다고 보고됐습니다.
Q. 류마티스 질환 외에 고위험군이 있나요?
A. 루푸스와 전신경화증 환자가 고위험군에 해당합니다. 두 질환 중 특히 전신경화증은 일 년에 한 번 이상 심장 초음파 검사가 필수입니다. 루푸스는 증상이 생기면 반드시 폐고혈압 검사를 해야 합니다.
약 5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 여성들에게 많이 발병하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중장년 폐고혈압 환자도 적지 않습니다. 과거에 왜 젊은 여성에게 많이 발병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류마티스 질환이 주로 젊은 여성에게서 호발한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특발성인 환자 중에서도 젊은 여성이 많아 주요 원인으로 꼽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죠.
Q. 폐고혈압의 특징적인 증상은 무엇인가요?
A. 폐고혈압을 보는 의사 입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증상이 특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의심되는 뚜렷한 증상이 있어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데, 이 질환의 경우 증상이 다른 질환과 혼동하기 쉽습니다. 호흡 곤란, 가슴이 협심증처럼 아픈 경우, 가슴이 답답한 불편감, 심장이 두근두근 뛰거나, 심장의 맥박 수가 중간에 갑자기 감소하는 정도죠.
중증으로 진행돼도 다른 질환으로 혼동하기 쉽습니다. 숨이 차는 증상이 훨씬 심해지고, 폐동맥압이 높아집니다. 이 과정에서 피가 순환하지 못하고 정체합니다. 이로 인해 얼굴과 다리가 붓고, 배 쪽이 붓다가 결국 복수(腹水)가 찹니다. 간질환으로 오인될 정도로 간이 붓습니다. 이로 인해 위의 공간이 좁아져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거나 소화가 되지 않아 결국 영양불균형을 낳습니다. 체중은 계속 빠지지만 배는 부른 상태가 되는 것이죠.
Q. 일반 고혈압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들리네요. 폐고혈압의 생존율 또는 사망률은 얼마나 되나요?
A. 10여 년 전까지 치료방법이 많지 않았습니다. 치료제라곤 단 하나뿐이었죠. 그래서 생존기간 역시 진단 후 2.8~3년 정도에 그쳤습니다. 암 중에서 생존율이 가장 나쁘다는 췌장암과 비슷한 수준이었죠. 그러나 최근 10년간 여러 치료제가 개발됐고,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현재는 약을 잘 복용하고, 생활습관·운동 조절을 통해 5년, 10년은 무난하게 생존합니다. 또, 이런 생존기간은 더욱 길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Q. 건강보험 급여 혜택은 잘 제공되고 있나요?
A. 많은 치료제가 건강보험 급여가 됐습니다. 다만 현장에서는 더 확대됐으면 하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진단 후 1개의 치료제만 급여가 되고, 3개월 뒤 재평가 후 일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1개의 약제가 추가로 급여가 인정되는 점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폐고혈압 치료 추세와 맞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진단 후 일정 기준을 만족하면 2개 이상의 약제를 병용투여 하도록 하는데, 이를 통해 질환의 진행을 막고 긍정적인 예후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죠.
Q. 독자들에게 당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A.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아 진단까지 걸리는 기간이 깁니다. 이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선 1년 내로 줄이고자 목표를 세웠습니다. 일반인뿐 아니라 개원가 선생님들의 관심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폐고혈압이 의심되는 환자를 발견하면 폐고혈압 전문가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폐고혈압은 치료가 까다로운 편입니다. 대형병원의 경우 비교적 치료 경험이 풍부하고, 약 처방 시 부작용이 나타났거나 치료 효과를 보이지 않는 등 돌발 상황에 대한 임상경험이 축적되어 있으며, 다른 증상에 대한 협진 시스템이 돼 있습니다. 특히, 폐고혈압 환자들은 급사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3/20180503025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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