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원에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신 두 분의 고객이 계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점이 다를 뿐 위암이라는 것
도 같고 젊은 나이라는 것도 같았으며 이미 이곳 저곳에 전이가 이루어져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항암치료
를 받고 계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 분은 자연적으로 빠졌던 복수가 다시 차올라서 고생하는 것 말고는
모든 부분이 정상인 채로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고, 다른 한 분은 안타깝게도 얼마 전 세상을 달리
하셨습니다.
두 분의 가장 큰 차이는 한 분은 차가원에 오자마자 스스로의 판단으로 항암치료를 중단하셨고, 다른 한 분은
스스로의 의지로 항암치료를 계속해오셨다는 것입니다.
말기암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민스럽고 혼란스러운 문제는 항암치료를 받을 것인가, 혹은 받더
라도 언제까지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암 진단이 내려지면 무조건 모든 것을 병원의 판단에 맡기던 과
거와는 달리 요즘은 대부분의 암환자가 항암치료의 한계와 폐해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병원에서도
말기암환자에 대한 항암치료가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대부분 잘 주지시키고 있으며 항암
치료의 무의미함을 판단하고 치료를 중단하는 시기도 점차 빨라지는 추세에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 먼저 항암치료를 중단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항암
치료가 단지 연명을 위한 수단이며 암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한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를 늦추는 것 뿐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뭔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거의 본능
에 가까운 것입니다. 하물며 항암치료를 통해 암세포가 일정 부분 줄어든다거나 여러 곳에 전이된 암 중에서
어느 부분이 없어진다거나 하게 되면 항암치료를 통해 완치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손님께서는 항암치료를 언제까지 받을 것인가가 늘 문제였습니다. 암 진단 이후 그 분
의 가족께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항암치료의 한계를 잘 파악하여 적절한 시기에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자연
요법에 매진하기를 원했지만, 평소 원리원칙을 고수하며 강직한 성격을 가진 환우께서는 공식적인 병원치료
에 보다 비중을 둘 것을 희망했습니다. 그 분께서 차가원에 들어와 생활하신 것은 일종의 타협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 분께 항암치료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 잘 말씀드렸지만, 기왕 받기로 한 항암치료이니 만큼 계획된
6차까지는 다 받은 뒤에 그 이후의 계획을 모색하고 싶다는 뜻을 얘기하셨고, 저는 대략 4~5차 항암치료가 진
행될 무렵에는 스스로 견디기 어려울 단계에 다다를 것이니 그단계에서 더 무리하지 말고 중단 여부를 냉정하
게 판단해줄 것을 권한 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생활하시도록 부탁드렸습니다.
이미 항암치료의 한계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던 탓에 환자께서 항암치료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와
하면서 제가 좀더 적극적으로 항암치료를 만류해줄 것을 바랬던 그 분의 가족께는, 본인이 결국은 항암치료를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며 그 때부터 자연요법에 매진해도 늦지 않다며 위로를 드렸습니다.
차가버섯 자연요법과 항암치료를 병행하면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현저하게 적어집니다. 같은 암종에 같은 치
료를 받고 있는 환자라고 해도 다른 환자는 초죽음이 되어가는 순간에도 차가버섯 자연요법을 병행하는 분은
외면적으로 거의 정상인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4~5차 정도가 진행되
게 되면 병행치료를 받는 분 역시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게 됩니다.
어떤 시기에 다다르면 항암치료를 지속할 수 없는 시기가 올 것이며 그 때가 되면 본인이 스스로 항암치료의
지속 여부에 대해 판단하게 될 것이고, 만약 그때도 망설인다면 좀더 강하게 제 의견을 말씀드려야겠다는 제
계획은 보기 좋게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비록 항암치료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차가원의 프로그램도 완벽하게 실천하셨던 그 분은 자연요법과 항암치
료를 병행할 때 기대할 수 있는 일반적인 수준보다 훨씬 더 양호한 신체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항암치료의 부
작용은 늘 구토와 설사 정도에 그쳤고 안색과 컨디션은 항암치료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더 좋아지는 듯 보였습
니다.
게다가 치료 경과 역시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간에 전이된 암세포가 3차 이후 확연하게 줄어들더
니 4차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확인됐습니다. 그 분께서 거의 다 나은 것처럼 기뻐하셨던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본인은 기뻤겠지만 그것이 결국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저는 회복의 기회를 잡
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5차에 접어들자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전이된 암세포의 일부가 사라지기까지 하는 단계에
서 항암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은 그 분의 입장에서는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 역시 결국은 원래의
상태보다 더 험악한 상황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의견을 말씀드릴 기회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분의 상태는 6차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순간에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환자와
그 가족을 자주 뵐 기회가 없어서 자세한 내용을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듯 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폐렴 증세와 혈소판 감소 증세였습니다. 폐렴이
지속되면 감염으로 인한 폐기능 부전으로 사망하게 되고 혈소판이 감소하게 되면 돌발적인 출혈이 발생했을
때 지혈이 되지 않아 사망하게 되며, 일정 수준에서 더욱 더 감소하게 되면 자가출혈이 발생하여 사망에 이르
게 됩니다.
그 분의 가족께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저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그 때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소
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항암치료의 경과가 매우 좋은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간의 암세포가 줄어들
다가 사라진 것일 뿐 원발암인 위암과 다른 곳에 전이되어 있던 암은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계속 악화되
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가족께서는 병원에 갈 때마다 담당 의사가 간의 암세포에 대한 얘기만 할 뿐
위암이나 다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으며, 물어봐도 전혀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것을 늘 의아해 해오던 차
였습니다.
더구나 항암치료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전이되지 않았던 폐도 항암치료 도중에 전이가 발생했으며, 폐렴으로
진단했던 부분도 사실은 폐로 전이된 암에 의한 증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담당의사는 간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
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전혀 설명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항암치료의 문제와 폐해에 대해서는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을 만큼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항암치료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매우 과격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항암치료를 실
시하는 의사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력한 대체의학 그룹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항암치료를 결정하고 실시하는 의사들이 그래도 최소한의 선의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
니다. 최악의 상태로 빠져드는 시기를 늦추고 연명을 도모하는 것 역시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의사
들에게는 중요한 과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암 전문의사들은 그런 선의를 가지고 항암치료
를 실시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가히 사기극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어이없는 경우입니다. 그 분의 담당 의사는 다른 부
분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한 채 좋아지고 있는 부분만 부각하여 강조함으로써 환자가 스스로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여 의료적인 조치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 의사가 그렇게 무리하게
항암치료를 강행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과도하다고 생각될 만큼 병원치료를 신뢰하고 집착해왔던 그 분이었지만, 간에 전이된 부분만 호
전되고 있을 뿐 다른 부분은 모두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항암치료의 지속 여부에 대해 좀 더 심각
하게 생각했을 것이고, 적절한 시기에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좀더 가능성있는 방안을 모색했을 수도 있었을 것
입니다.
저는 저를 믿어주시는 환우분들을 돌봐드릴 수 있을 뿐, 항암치료를 받아라 마라, 계속해라 중단해라, 이런 말
을 할 수 있는 자격도 권한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 분께도 저는 그런 한계 안에서 말씀을 드리고 제가 할 수 있
는 범위 내에서 그 분을 보살펴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그 분께 있는 그
대로 납득시킬 수 없다는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분의 실질적인 상태를 본인이나 가족이나 저나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된 지금에는 그 자괴감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단지 제가 모시고 있던 환우분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입니
다.
많은 환우분들을 뵙다 보면 제가 고마움을 느낄 정도로 훌륭한 의사들이 많습니다. 제가 평소에 의사라는 직
업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신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사기극에 가까운 일을 자행
하는 의사도 분명히 있습니다.
좋은 의사를 만나면 적절한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적절한 시기에 다른 방법론을 모색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
습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되는 상황에서도 의사 독단으로 항암치료를 밀어부치는 경
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그저 환자 본인의 팔자 소관으로 여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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