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야기 서막
1990년대 초 페레스트로이카를 진행하고 있을 때 공장, 관공서, 물류창고 등의 주인 없는 물건들을 경쟁적으로 챙기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덤프트럭을, 어떤 사람은 담배를, 어떤 사람은 약을, 아파트 거주권을, 신발을, 설탕을.... 어떤 사람은 상장(賞狀. 잘한 일에 대한 칭찬의 뜻을 글로 담아 주는 증서)에 사용하는 두꺼운 종이를 한 차 가득 가져왔다가 마누라에게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런 챙기기는 능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이나 가능했고 대부분의 서민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CIS가 탄생했습니다.
1998년 여름, 일 때문에 사할린을 방문했습니다. 도착하고 며칠 동안은 환율이 $1에 8루블 정도 했는데 어느 날 자고 났더니 $1에 25루블, 그 다음 날은 32루블 까지 올라갔습니다. 2주 정도 체류하고 캄차카로 떠날 때까지 사할린의 물가 변동이 별로 없어서 떼돈 번 경험이 있습니다. 모라토리엄 선언 후 15년 정도 지난 지금은 생활정도, 물가가 거의 한국과 비슷합니다. GNP는 $15,000~20,000 정도로 추정됩니다.
1996년도부터 몇 년 동안 시베리아의 차가버섯원물을 한 달에 평균 2톤 정도 일본에 수출했습니다. 수입하는 일본인은 노보시비르스크나 이르쿠츠크 호텔에 있고 저는 시베리아 오지에 들어가서 미리 계약하고 건조기를 설치해 준 마을들에서 차가버섯을 가지고 왔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로 보상은 돈으로 받았으니까 거래는 공평했습니다.
(2005년 까지도 시베리아 오지는 러시아 현지인들도 들어가기 어려운 위험한 무법지대 였습니다. 차가버섯의 산증인 고일석 선생은 2005년 겨울 시베리아 오지에서 권총으로 협박하며 가진 돈에서 반만(^^;) 내 놓으라는 경찰을 만나 죽을 뻔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내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차가버섯과 실지로 말기암을 치유하는 자연요법 전문가가 되기 위해 암환우 분들과 같이 현장에서, 책으로, 연구소에서, 실험실에서, 많은 나라의 전문가를 찾아가서 불철주야(不撤酒夜) 배우고, 암을 완치하는 데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이십년 전에 ‘집나간 경제를 찾습니다.’ ‘경제를 살리자는데’ 같은 개그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20년 전 러시아 이야기가 나오고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큰 것은 이 블로그를 활성화시키려는데 어느 정도 목적이 있습니다.
보통의 상황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러시아 이야기를 간혹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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