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 건강상식/일반 건강상식

[스크랩] 노시보와 플라시보라는 묘약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6. 3. 29.

약藥문問약藥답答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까? 약사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딜레마에 빠진다. 모든 약에는 노시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노시보(Nocebo)는 라틴어로 ‘나는 해를 입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노시보 효과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면 가짜약(위약)을 주어도실제로 부작용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2007년 가을, 뉴질랜드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약의 노시보 효과가 나타났다. 한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갑상선호르몬 알약 제조 공장을 캐나다에서 독일로 바꿨다. 국가는 달라졌지만 두 곳 모두 같은 회사가 소유한 공장이고 약 성분도 똑같았다. 알약의 크기와 색깔, 글자 표시만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약 모양이 바뀐 다음 18개월 동안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한 사람의 비율이 무려 2000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이하게도 일부 부작용은 실제 약의 부작용과 관련된 증상이었지만 갑상선호르몬제와 관계없는 눈의 통증, 간지러움, 구역감, 소화불량 등의 부작용을 호소한 환자들이 많았다.

 

노시보(Nocebo)와 플라시보(Placebo)
노시보(Nocebo)와 플라시보(Placebo)

가짜약 먹은 환자, 20%가 부작용 겪어
왜 이런 문제가 생겼던 걸까? 뒤이은 정부 조사에서 원인이 밝혀졌다. 약에 대한 헛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새로 바뀐 알약이 인도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유전자조작(GM)된 원료와 MSG가 들어 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었다. 덩달아 여러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에서 알약이 바뀌고 나서 부작용을 경험한 환자들의 사례를 보도하면서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뉴질랜드 정부가 ‘생산지가 독일로 바뀌고, 약 성분이 동일하며 흡수율에도 차이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많은 사람이 다른 회사 약으로 갈아타길 원했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던 부작용 경험자의 수가 줄어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듬해 여름, 언론 보도가 줄고 사람들의 관심도 함께 사그라들면서 부작용자 비율이 종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환자들 대부분이 문제의 초점이던 독일에서 만든 알약을 복용하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결국 이 모든 사태가 노시보 효과 때문이었던 것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들을 보면 노시보 효과를 경험하는 환자의 수가 상당히 많다. 어떤 약이 효과가 있는지 연구하는 임상시험에서 설탕으로 만든 가짜약을 받은 환자들도 대략 20%까지 부작용을 경험한다. 한 제약회사에서 만든 신약이 근육통에 효과 있는지 알아보려 진행한 임상시험에서는 설탕으로 만든 가짜약을 받은 사람들이 100명 중에 11명꼴로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구역질이 나는 약의 부작용이 난다며 중도에 포기했다.

2010년 이탈리아 연구팀에서 유당을 가지고 비슷한 실험을 했다. 유당은 우유에 들어 있는 당분이고, 성인이 되면 유당을 소화시키는 효소가 없어져서 우유를 마시면 복통과 설사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유당불내증이다. 이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유당 알약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복통과 는 무관한 포도당 알약을 주었다. 그런데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들 중 44%가 ‘배가 아프다’고 말했고, 심지어 유당불내증이 없는 사람들도 26%가 복통을 호소했다.

그 알약을 먹으면 배가 아플 거라고 믿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배가 아팠던 것이다. (이제껏 약의 노시보 효과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노시보 효과는 연구 승인을 받기 어렵다. 환자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해 유익이 아니라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연구를 진행하기 힘들 때가 많다.)

부작용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노시보 효과가 커질 수있다. 예를 들어 ‘피나스테라이드’라는 전립선비대증 치료약을 주면서 발기부전이나 성기능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하면, 그런 설명을 못 들은 사람보다 부작용이 세 배 가까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주 생기는 부작용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환자의 머릿속에는 50% 확률로 부작용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지만 실제 그 의미는 평균적으로 환자의 2% 정도에서 생기는 부작용일 수 있다. 그러니 약사는 약에 대해 상담할 때 조심스러워진다.

약값 비싸면 치료 효과 높다
노시보 효과의 반대편에 플라시보(Placebo) 효과가 있다. 라틴어로 ‘나는 기쁠 것이다’라는 뜻의 플라시보 효과는 긍정적인 기대와 믿음이 가짜약에 약효를 불어넣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약의 임상시험에서는 모르고 가짜약을 받은 환자들도 통증이 사라진다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플라시보 효과가 전부일 때도 있다. 그래서 제약회사가 개발한 신약이 정부의 승인을 받으려면 반드시 가짜약과 비교한 임상시험 결과를 제출하여 플라시보 이상의 효과를 증명해야 한다. 이렇듯 신약 개발에는 어려움을 주는 플라시보 효과이지만 최근에는 이를 이용해서 약효를 높이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지난 2월 이탈리아 튜린대학교 연구팀은 파킨슨병 환자의 약물 치료에 가짜약을 사용해서 도움을 주는 방법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파킨슨병은 완치할 수 있는 치료약이 없어서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을 주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때 되도록 약을 적게 써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연구팀은 환자들에게 미리 가짜약이 섞여 있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치료 5일째에 환자들 모르게 가짜 약을 주사했다.

그 결과 모든 환자가 가짜약에 반응하지 않았지만, 환자들 중 일부에게는 가짜약도 진짜약 못지 않은 효과가 나타났다. 근육의 경직도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신경의 활성 또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주도한 파브리지오 베네데티는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연구를 계속한다면 플라시보를 이용해서 환자를 속이지 않고도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파킨슨병 환자들의 경우, 플라시보 효과가 치료에 특히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심지어 약이 비싸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약효가 28%향상된다).

어떤 약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환자가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알고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게 최근의 추세다. 약의 효과로 인한 이익이 부작용으로 해를 입을 확률보다 더 클 때는 약물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일단 그렇게 약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나면 플라시보 효과는 최대화하고 노시보 효과는 최소화 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천식에 사용하는 기관지확장제를 주고, 설명을 반대로 해서 이 약이 숨을 쉬기 어렵게 만드는 약이라고 거짓 정보를 주었더니 약의 효과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반대로 증상을 악화시키는 약을 주고, 거꾸로 이 약이 천식에 효과 있는 약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자 약으로 인해 천식이 악화되는 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

인터넷 시대인 요즘에는 약사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환자가 스스로 부작용을 찾아보다 걱정을 더 키우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물론 약의 부작용에 대해 조심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은 해롭다. ‘이 약은 복용자의 2%에게 가벼운 두통 등의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하기보다 ‘이 약은 가벼운 두통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복용자의 98%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실제 부작용 발생률도 줄어든다. 컵의 절반에 물이 차 있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일수록 컵의 절반이 비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부작용을 적게 경험할 거란 이야기다. 약에 관한 한 ‘아는 게 힘’이지만, 그 힘을 긍정과 부정 중 어느 쪽 방향으로 쓸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정재훈 약사
정재훈 약사

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25/2016032502180.html


출처 : 암정복 그날까지
글쓴이 : 정운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