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을 먹고 나니 졸리다. 항생제 치료 중인데 입이 쓰다. 진통제 때문에 간이 상하면 어쩌나. 항상 부작용이 걱정이다. 도대체 약의 부작용은 왜 생기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으나 무엇보다도 약이 길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약에게는 공간 감각이란 게 없다.
대학 시절 은사 심창구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님의 정의를 빌리면, 약이란 우리 몸속에서 ‘질병이라는 자물쇠를 여는 열쇠’와 같다. 문이 잠겼을 때 열쇠수리공의 도움을 받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약물 분자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우리 몸속 효소와 단백질에 결합하면 아픈 몸이 나아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길눈이다. 어디에 가서 문을 열어야 하는 지 모르는 길눈 어두운 열쇠수리공처럼 공간 감각이 부족한 약물 분자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비슷한 자물쇠가 눈에 띄면 일단 한번 열쇠를 넣고 돌려본다. 하필 비슷한 자물쇠가 달려 있는지라 열려서는 안될 곳의 방문이 열린다. 결과는 약의 부작용이다.
![열쇠](http://health.chosun.com/site/data/img_dir/2015/12/10/2015121000959_0.jpg)
약의 부작용은 약이 길을 잘못 찾아서 생긴 현상
얼마 전 특허만료로 화제가 되었던 시알리스의 경우가 그렇다. 이 약은 비아그라와 비슷한 발기부전치료제이다. 남성의 ‘그곳’이 우뚝 서려면 먼저 음경해면체에 혈액을 공급하는 길이 넓게 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cGMP라는 혈관확장 물질이 필요하다. 시알리스 같은 발기부전치료제는 PDE5라는 분해효소에 달라붙어 혈관확장물질이 얼른 분해되는 것을 막는다.
그런데 간혹 이 약을 복용하고서 허리가 아프거나 몸살이 났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왜 이런 부작용이 생겼을까? 길눈 어두운 약물 분자가 비슷하게 생긴 다른 곳의 효소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사람의 근육에는 PDE5와 뒷글자만 다를 정도로 유사한 PDE11A라는 효소가 존재하는데, 시알리스가 이 효소에 달라붙어 몸살을 일으키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다른 약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발견된 PDE 효소만 12가지다. 모양은 비슷한데 역할과 위치가 다른 12가지 효소가 있다는 말이니 공간 감각이 없는 약에겐 매우 난처한 상황이다.
비아그라는 눈의 망막에 있는 효소를 건드린다. 발기부전치료제를 먹고 나니 스마트폰 화면이 파랗게 보이는 부작용도 가끔 나타나는데, 이 역시 우리 몸속에 들어간 약이 제 갈 곳을 잘못 찾았기 때문에 생긴다. 약 복용 뒤에 머리가 아프거나 코가 막히는 부작용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부 그놈의 약이 길눈이 어두운 바람에 생기는 부작용이다.
알레르기치료제가 뇌에 가면 졸음 유발
그러니 약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딴 길로 새는 걸 막아야 한다. 방법 한 가지는 약물 분자의 모양을 다듬어서 몸이 아픈 곳의 자물쇠에만 들어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약이 어떻게 생겼는지 미묘한 구조상의 차이에 따라 그에 맞는 자물쇠 종류가 달라지는데, 이로 인해 약마다 부작용이 달라진다. 약의 분자 구조를 조금 더 세밀하게 설계해서 단 한 곳의 자물쇠에만 꼭 맞게 만들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
문제는 자물쇠가 워낙 비슷하게 생겨서 열쇠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약이 특정한 구역으로는 못 들어가도록 하는 특별한 장치를 붙여주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항히스타민제의 예를 보자.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해야 할 항히스타민제가 뇌로 흘러 들어가 졸음을 일으킨다(감기약을 먹고 졸린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1세대 항히스타민제에 나타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길을 잃더라도 뇌로는 못 들어가도록 진입 방지 장치를 붙여준 약이 2세대 항히스타민제이다. 그래서 2세대 항히스타민제는 졸음 부작용이 적게 나타난다.
100% 정확한 약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
기적의 항암물질을 찾았다는 뉴스가 언론을 떠들썩하게 흔들곤 하지만 이런 물질을 실제 약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시험관에서 암세포를 죽이는 물질을 사람 몸속에 넣으면 정상세포까지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 중 어느 정도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분할 수 있는 것들을 골라서 항암제로 개발하지만 그래도 길눈이 어두운 건 어쩔 수 없다. 100% 정확히 암세포에만 가서 작용하는 항암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약 자체의 분자구조를 바꿔주는 것만으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약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예 별도의 배송대행사를 고용하는 건 어떨까? 과학자들은 그런 생각으로 약을 필요한 곳으로만 전달하는 수송체를 연구 중이다.
요즘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나노 약이 좋은 예다. 나노 사이즈로 작게 만든 수송체에 약물 분자를 담아서 암세포에만 정확하게 약을 전달하도록 타게팅(환부에 약물을 효과적으로 도달시켜 약효의 지속·증강을 꾀하는 일)하는 것이다. 나노 약은 아직 이론만큼 성공적이지 못하다. 극적인 효과를 낸 일부 연구결과도 있지만 약물 전달체의 사이즈가 너무 작다 보니 도리어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 독성을 나타낼 우려가 있다.
특정 신경만 자극해 치료하는 전자약 등장
공간 감각이 무딘 기존 약을 대신하는 기술의 첨단에는 전자약(Electroceutical)도 있다. 전자약은 사실 약보다는 전자기기에 가깝다.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리활동과 반응은 수많은 신경에 의해 조절되는데, 신경 다발은 각각의 공간에 맞게 구역이 잘 나뉘어 있다. 팔의 신경이 다리에 영향을 주거나 미각 신경이 청각에 이상을 일으키진 않는다.
전자약은 미세한 전기신호로 특정한 신경만 자극해서 인체 기능을 조절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장치이다. 기도를 폐쇄하는 천식 증상을 완화하려고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약을 쓰면 다른 곳의 신경도 함께 흥분시켜서 불안증이나 고혈압을 유발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천식 환자의 치료에는 먹는 약 대신 주로 흡입제가 쓰인다. 호흡기의 신경만 선택적으로 자극하는 전자약은 부작용 없이 천식만 치료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류머티스관절염 같은 난치성질환을 전자약으로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기기에서 보내는 전기신호로 신경을 조절하면 면역세포의 활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 롱아일랜드의 신경외과 전문의 케빈 트레이시는 수년 전부터 비장으로 가는 신경신호를 조절해서 류머티스관절염의 증상을 완화하는 장치의 개발을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전자약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모 다국적 제약회사는 재작년말, 신체에 삽입 가능하고 몸속 장기를 자극하는 전기장치를 개발하는 연구팀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정재훈(약사)](http://health.chosun.com/site/data/img_dir/2015/12/10/2015121000959_1.jpg)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고, 전자약 또한 부작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전기 또한 이리저리 흐르는 속성이 있어서 특정 신경만 선택적으로 자극하는 게 쉽지 않고, 기기가 오작동하거나 배터리가 닳을 경우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하지만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사람 아닌가. 미래 언젠가는 제 갈 곳으로만 찾아가는 길눈 좋은 약이 개발되기를 희망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정재훈 과학,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10/20151210010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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