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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게시판

[스크랩] [이 가족이 사는 법] 5. 쥐든 뱀이든 나한테 맡겨!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5. 12. 14.




엄마가 된 보리

천방지축 강아지 보리가 드디어 시집을 갔다. 신랑감은 청삽사리의 혈통을 이어받은 머털이. 머털아빠랑 개사돈 맺는 날. 이 좋은 날에 양가의 남자 둘이 신랑개 신부개 손 붙잡고 만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보리아빠는 일찌감치 출근해버렸으니... 별 수 없이 직업 없는 보리엄마와 자영업자 머털아빠가 암수 개들을 데리고 만나, 낯 뜨거운 첫 거사를 낯색 하나 안 바꾸고 의연(?)하게 지켜보아야만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며느리개 사위개 칭찬하는 덕담 릴레이에, 경험 많은 머털이의 과거 혼사 스캔들까지 미주알고주알 주고받으면서 말이다.


신랑의 화려한 과거사야 어찌 됐건, 새색시 보리는 머털이를 보자마자 좋아서 펄쩍펄쩍 뛰고 낑낑거리고 컹컹 짖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둘은 예전에도 몇 번 만난 사이다. 한여름엔 우리집 마당에서 물 받아놓고 목욕(!)까지 함께 했었다. 그땐 서로 데면데면 굴더니만 지금은 때가 때인지라 온몸으로 반가움을 숨기지 않는다. 개들의 사랑, 참 솔직하다.


▲그토록 신랑을 반겼건만 정작 일을 치를 땐 얼마나 울고불고 힘들어 하는지, 안쓰럽고 애처롭기가 그지없었다.


대사를 치른 지 60일째, 보리의 출산 예정일. 아침 일찍 나가보니 보리가 짚자리 위에서 몸을 떨며 가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산통이 시작된 걸까? 아침 먹고 다시 보리에게 갔더니 “어마낫!” 보리 배 밑에 눈도 못 뜬 어린것들이 고물고물했다. 네 마리였다. “에구... 보리야, 얼마나 힘들었니...” 강아지들의 몸은 아직 축축했고, 끊기다 만 탯줄이 배꼽에 치렁치렁 매달려 있었다. 끼잉끼잉-- 가냘픈 소리를 내는 새끼들의 배 밑을 끊임없이 핥으며 보리는 탯줄을 마저 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한참 동안 쪼그려 앉아 강아지 들여다보고 보리 쓰다듬다가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싶어 부랴부랴 차를 몰고 읍으로 갔다. 한우방에서 고깃점과 뼈를 얻어 집으로 돌아와 고기 미역국을 끓여 들고 다시 보리에게 갔더니... “옴마야! 네 마리가 아니잖아!!” 하나 둘 셋 넷... 모두 일곱 마리였다. 읍에 나간 그새 또 세 마리를 더 낳은 거다.

 

강아지들은 젖 먹을 때 치열하다. 올라타고, 밀어붙이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찹찹찹... 꼴깍꼴깍... 강아지들 목구멍으로 젖 넘어가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일곱 마리 중에 아주 약하게 태어난 무녀리는 젖꼭지를 찾지도 못하고 젖을 물려줘도 빨지 못하다가 결국 사흘을 못 넘기고 죽었다. 그래서 강아지는 모두 여섯 마리가 됐다. 보리는 출산 후 뒤처리를 깨끗하게 했고, 새끼들을 위해 몸을 열어 젖을 먹였으며, 여섯 새끼들의 배설물을 하나하나 핥아서 처리했다. 밥 먹으러 일어섰다 자리로 돌아가 앉을 땐 새끼들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가려 디뎠다. 촐싹대던 강아지 보리가 단숨에 자애로운 어미개로 변신하는 마법은 정말이지 신비롭고 감동적이었다. 보리는 이 모든 걸 어디서 배웠을까?


태어난 지 일주일째, 엄마 젖 실컷 먹고 평화롭게 잠든 강아지들. 배불리 잘 먹고 뒹굴며 잘 자는 게 요맘때 아가들의 일이다.


으악, 살모사닷!

강아지들이 태어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강아지 밥을 챙겨주려고 개집 쪽으로 다가간 나는 “으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개집 앞에 뱀 한 마리가 떡 버티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개집 안에는 강아지들이 쌔근쌔근 자고 있고, 개집 입구에는 보리가, 보리 바로 앞에는 뱀, 그것도 맹독을 가진 살모사가 구불구불한 몸 위로 삼각꼴 머리를 살짝 들고 있었다. 숨이 딱 멎는 짧은 순간, 보리가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오려 했다. “안 돼! 보리야!” 보리는 살모사 앞에서 멈칫 하더니, 뱀을 피해 빙 에둘러 내 쪽으로 왔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개집 안에서 자고 있던 강아지 여섯 마리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오글오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 얘들아, 안 돼!!”


나는 황급히 창고 벽에 기대어둔 각목을 하나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들은 이미 살모사 몸 위로 쫄랑쫄랑 올라섰고, 살모사는 강아지들 다리 사이로 구불구불한 몸을 꼬며 삼각형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일촉즉발의 순간, 내 손의 각목이 지면 위를 수평으로 날았다. 강아지들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왼쪽으로 밀려 쓰러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각목 끝으로 살모사를 미친 듯이 걷어내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뱀의 길다란 몸뚱이를 각목으로 자치기하듯 걷어내 오른쪽 밭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뜨리기까지는 아마 5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청삽사리 강아지가 앉은 자리가 바로 그날 살모사가 있었던 자리다. 

강아지 뒤쪽으로 지푸라기가 깔린 개집 입구가 살짝 보인다.


시골에 살다보면 간혹 뱀들을 만난다. 하지만 대개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유혈목이나 자잘한 뱀들이다. 사람이 뱀을 꺼리는 만큼 뱀 역시 사람 마주치기 싫어한다. 무성한 풀숲에 들어갈 땐 장화를 신고 발을 쿵쿵 구르면 뱀들이 알아서 피한다. 어쩌다 스르륵 사라지는 뱀 꼬리를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그것도 독사와 맞닥뜨린 건 처음이었다. 가을엔 뱀들이 독이 잔뜩 올라 겁이 없다더니!


강아지들과 보리를 살펴봤는데 겉보기엔 별 이상 없어 보였다. 천만다행이다 싶었는데, 하루가 지나자 보리의 목이 자줏빛 농구공처럼 퉁퉁 부풀어 올랐다. ‘물렸구나! 그래서 뱀을 피해 내게로 왔던 거였어!’ 부랴부랴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마취하고, 목 부위의 털을 깎고, 항생젠지 해독젠지 그런 주사들을 여럿 맞혔다. 그렇게 사흘간 병원 출입을 했다. 보리는 씩씩하게 잘 이겨냈다. 처음엔 자주색 부기가 목에서 앞다리까지 번지더니, 오래지 않아 조금씩 빠져나갔다. 만약 강아지들이 물렸다면? 분명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어미개 보리가 새끼들을 등지고 뱀 앞에 서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까?


 뱀에게 물려 목이 퉁퉁 부은 보리. 동물병원에 가서 목 부위의 털을 깎고 여러 처치를 받았다.



쥐가 너무 무서워

개집 근처 흙바닥에 오래 놓아둔 나무 팔레트가 있어서 그걸 치우고 주변 정리를 좀 하기로 했다. 그런데 팔레트를 함께 들어 올려야 할 남편이 심하게 망설인다. “뭐 해? 어서 그쪽 들어.” 재촉해도 머뭇머뭇... “왜 그러는데?” “응... 그게... 밑에서 쥐라도 튀어나올까봐...


푸핫!! 배꼽을 쥐고 한참 웃었다.


남편은 죽은 병아리에도 손을 못 댄다. 어미닭이 품어서 깬 병아리들 중에 약하고 병들어 죽는 병아리가 가끔 생기는데, 모이 주러 닭장에 들어갔다가 그걸 발견해도 못 본 체 나와 버린다. 집게로든 삽으로든 집어내면 될 텐데 그걸 못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거두어 묻어주어야 한다. 둘이서 함께 닭장에서 둥우리 정리를 할 때, 닭장 철망 아래로 굴을 파고 침입한 쥐와 눈이 딱 마주친 적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주변의 돌을 집어 들었는데, 그는 이미 닭장 밖으로 뒷모습을 보이며 나가고 있었다. 다 자란 수탉을 붙잡을 때도 그는 아예 손대지 않는다. 죽이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붙들기만 하는 건데도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딴청만 피운다. 원래 어려서부터 비위가 안 좋았다나 어쨌다나?


어미닭과 병아리들의 한가로운 풀밭 산책. 쥐들이 한창 극성일 때는 한밤중에 닭장에 침입해 어린 병아리들을 해친 적도 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얼른 들엇!”


다시 재촉해서 나무 팔레트를 함께 들어 올리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서너 마리의 쥐가 다급히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히익--!!” 질겁을 한 그는 팔레트를 내동댕이치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근래 쥐들이 부쩍 많아졌다. 개집 아래든, 닭둥우리 밑이든, 먹을 게 있고 숨을 곳만 있으면 쥐들은 어김없이 굴을 파고 길을 냈다. 닭 모이와 개밥을 훔쳐 먹으며 쥐들이 극성으로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곳곳에 쥐약을 놓은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그 많던 쥐약이 다 사라졌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쥐약을 먹은 쥐는 환한 바깥으로 나와서 죽는다고 했으니.



헛간 앞에 나와서 멧비둘기를 보고 있는 보리와 또리. 보리의 새끼들이 모두 새 주인을 만나 떠나고, 
수컷 강아지 또리만 보리 곁에 남았다. 몸집은 제법 컸지만 아직도 얼굴에 어린 강아지 티가 졸졸 흐른다.


쥐약 놓은 지 2~3일쯤 지났을까? 헛간 쪽에서 일하던 남편이 갑자기 “여보!!” 외마디 비명처럼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는 이미 텃밭을 향해 잰걸음으로 달아나는 중이다. “왜?” 의아해서 물어봐도 대답도 없다. “대체 뭐지?” 그가 뛰쳐나왔던 헛간 쪽으로 다가가던 나는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거기 쥐약 먹은 쥐 한 마리가 쥐구멍 밖에 나와 죽어 있었던 것이다. 기가 막혀 허허 웃다가 삽을 들고 죽은 쥐를 치워 뒤꼍에 묻어주었다.


무거운 땔감 노동 척척 해낼 땐 헤라클레스 같던 남자가, 쥐나 닭 앞에서는 겁 많은 어린애가 되어버리니... 이런 남자와 같이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모성 본능이 충만해져서, 쓸데없이 용감무쌍해지거나 어지간한 궂은일도 우습게 보는 부작용이 생겨버린다.


“쥐든 뱀이든 바퀴벌레든 뭐든!! 걱정 말고 나한테 맡기라구!” 


내가 생래적으로 동물이나 벌레에 대한 혐오감이 별반 없고 비위도 제법 좋은 건, 이렇게 비위 약한 남편을 만나서 돕고 살라는 하늘의 뜻(?)인지도 모르겠다. 하핫.





출처 : 새농이의 농축산식품 이야기
글쓴이 : 새농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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