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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건강상식/식품,차,음료의 효능

[스크랩] 여름 `대표과일` 수박, 언제부터 어떻게 먹었을까?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5. 8. 7.




‘세상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스마트폰을 처음 써봤을 때, 고속철을 처음 타봤던 때 등등. 이런 ‘첫 경험’ 같은 느낌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수박을 먹을 때마다 부쩍 들곤 했다.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철은 물론이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까지 일 년내내 언제나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을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수박의 제철은 역시 한여름이다. 온 세상이 녹아버릴 것처럼 땡볕이 이글거리는 8월 한낮,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베어 물고 읽어볼 만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모았다.


수박 훔쳐 먹으면 곤장 100대

엄밀히 말하면 수박은 열매채소(과채류)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측면에서 과일로 대접받는 게 사실이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남부의 칼라하리 사막으로, 건조하고 더운 곳에서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중동 지역과 지중해 지역에서 활발하게 재배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 때 중국을 거쳐 원나라를 통해 들어왔는데, 기후가 맞지 않는 탓에 재배 실패가 잦아 조선 후기까지 웃지 못할 일들이 많았다.


▲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으로, 건조하고 더운 곳에서 잘 자라는 특성을 지녔다.

 

당시 수박은 서역(西域)에서 들어왔다고 서과(西瓜)라고 불렸고 무척이나 귀한 나머지 조선 전기에는 궁에서나 볼 수 있었다.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마저 수박도둑을 엄벌로 다스렸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따르면 세종 5년 한문직(韓文直)이라는 내시가 수박을 훔쳐 먹어 곤장 100대를 맞고 귀양살이를 갔다고 전한다. 7년 후인 세종 2년에는 궁중에 물품을 공급하는 내섬시(內贍寺)가 수박을 훔쳐먹었지만, 그나마 썩은 수박이라는 이유로 곤장 80대를 맞았을 정도였다. 그 무렵 수박 한 통 값은 쌀 다섯 말과 맞먹었는데, 당시의 낮은 농업 생산성을 감안하면 오늘날과는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비싼 가격이었다.


1480년 출간된 조선시대 강희맹(姜希孟)의 농서인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에 오이?수박 재배법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16세기 이후부터 재배가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궁궐에 납품된 수박이 맛이 없다거나 종묘 제사에 수박을 올려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계자를 처벌한 사례가 나온다. 궁중이 이런 정도였으니, 백성들이 겪는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조 때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평생 수박씨는 심지 마라 / 사나운 벼슬아치들 시비 걸고 싸울까봐(平生不種西瓜子 / 剛?官奴惹是非)’라는 내용을 담은 시를 통해 관리들의 수탈을 피하려 수박 대신 호박을 심는 농업인들의 아픔을 그려내기도 했다.


물수박에서 과일의 제왕으로 거듭나기까지

굳이 조선시대가 아니더라도 맛 좋은 수박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오래되지 않았다. 수박 고르기는 ‘잘 하면 운수대통, 못 하면 처치 곤란’이나 다름없었다. 30대 이상 세대들만 해도 모처럼 기대를 품고 맛본 수박이 하필 물 수박이라 실망했던, 씁쓸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나마 수박 끝을 삼각형으로 잘라낸 ‘맛보기’를 해서 과육의 당도를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맛보기한 부분만 달거나 장맛비를 맞아 싱거워진 노지재배 수박을 울며 겨자 먹기로 사오는 경우도 잦았다. 수박이 썩 크지 않다 보니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너끈히 수박 심부름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럴 때면 맛보기로 수박 한 쪽을 먹어치운 다음 빈자리에 껍질 조각을 끼우고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찔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수박은 여름 과일의 제왕을 넘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선호도 조사 결과 2위인 사과를 9% 이상 앞지르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힘입어 수박은 연간 생산액만도 1조원이 넘는 국내 10대 주요 농축산물로 당당히 자리잡았다. 지난해 전국에서 생산된 수박은 1억1400만 통으로, 국민 한 사람이 먹은 양도 15.7kg에 달한다.


수박 품질도 눈부시게 향상됐다. 한 개당 무게가 20kg에 육박하는 무등산 수박 같은 일부 재래품종을 제외하면 1960년대 후반 상품(上品) 수박은 3~4㎏ 정도였다. 크기도 배구공과 엇비슷했지만 오늘날은 4~11kg으로 무게가 다양하고, 평균 무게가 7~8kg에 이른다.  당도 또한 1980년대에는 평균 4%대였지만, 지금은 11%에 달한다. ‘수박밭 원두막‘으로 대표되던 노지재배도 크게 줄어 전체 재배면적의 83%, 생산량의 85%가 시설재배를 통해 생산된다.

 


▲ 이제 수박은 여름과일의 제왕을 넘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로 자리를 굳혔다.


수박에 꿀맛 불러온 ‘꿀수박’의 등장

이토록 획기적인 수박 품질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수한 품종 개발과 재배기술의 발전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1994년 첫선을 보인 <삼복꿀수박>을 필두로 한 약간 길쭉한 타원형(단타원형) 모양의 ‘꿀수박’이 등장한 영향이 가장 크다. 기존의 원형 수박과 단타원형 수박을 교배해 만든 <삼복꿀수박>과 <아폴로수박> 등과 같은 꿀수박 품종들은 ‘수박은 둥글다’는 선입관을 깨뜨리며 높은 당도와 아삭아삭한 질감, 7~8kg에 달하는 무게, 씨가 적어 먹기 편한 점 등을 장점으로 내세워 재배농가와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주종을 이루던 <달고나수박> 등의 원형계 수박 품종을 밀어내고 5~6년 후인 2000년대 초반에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국내 수박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일본 종자에 의존하던 저온기 재배용 품종의 국산화도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1970년대 촉성재배를 통한 4월 조기 수확이 시작된 이후부터 다양한 생산체계(재배작형)이 개발됐다. 그러나 낮은 온도에서도 꽃가루 생성과 열매 맺힘이 우수한 저온성 수박 품종 개발이 미흡해 농가들은 비싼 돈을 주고 일본 종자를 구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1989년 개발된 <금천수박>이 일본산 <감천수박>을 대체하면서 저온기 수박재배가 증가했고, 꿀수박이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한 2000년대에는 <스피드꿀수박>이 개발돼 대표적인 저온기용 수박 품종으로 자리잡았다. 이와 함께 크리스마스와 설이 끼어 있는 한겨울에도 수확이 가능한 <산타꿀수박> 품기를 누리며 재배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추세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수박 껍질이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돼 처리가 번거로운데다 1인 가구 확대, 고령화 등으로 인해 큰 수박에 대한 선호도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2등분 혹은 4등분 한 냉장 수박을 파는 대형 유통업체와 슈퍼도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개당 무게가 700g~1kg로 적고, 껍질이 얇은 ‘애플 수박’을 비롯해 속이 노란 이른바 ‘망고 수박’ 등이 선보이고 있다. 껍질이 얇고 열매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인기가 적었던 복수박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 경북 문경에서 재배중인 애플수박. 한개당 무게가 700g~1kg으로 작은데다 껍질이 얇고 씨가 적어 먹기 편하다.


“최근의 품종 개발은 껍질이 얇으면서도 당도가 높아 먹기 좋고 운반이 쉬운 3~5kg대의 수박 육성에 초점을 두고 이뤄지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기존 수박들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수박의 기능성 물질인 라이코펜(lycopene) 함량을 높이면서도 겉껍질이 검은빛을 띠는 흑수박, 기존 씨 없는 수박보다 달면서도 껍질의 호랑이무늬가 더욱 선명한 씨 없는 수박 등이 주목받고 있죠.” 김성훈 농우바이오 남부육종연구소 연구원의 귀띔이다.


수박, 알고보면 천연 이온음료

여름 과일의 대표 선수답게 수박은 전체 무게 중 92%가 수분이면서도 당분과 비타민, 무기질이 고루 들어 있다. 무더위 속에서 땀 흘리고 목마른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천연 이온음료’인 것이다. 당도가 높지만 열량이 100g당 21kcal 정도로 낮아 많이 먹어도 체중관리에도 효과적이다.


수박에는 기능성 물질도 풍부하다. 붉은 속살에는 항산화 물질로 잘 알려진 라이코펜이 함유돼 있는데, 스트레스 해소와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 회복에 큰 도움을 준다. 뇌졸중과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시트룰린(citrulline)도 함유돼 있다. 운동으로 인한 인체의 부담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혈관을 확장시켜 발기부전 치료제로 잘 알려진 ‘비아그라’와 같은 효과까지 내는 물질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수박을 먹는 방법은 다양하지 않다. 그냥 썰어 먹거나 화채?빙수?주스, 냉면류의 고명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박을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과육으로는 최근 집밥 열풍 등의 영향으로 화제가 된 수박주나, 수박과 치즈를 함께 얹은 수박 카프레제, 수박의 한 면만을 익혀 구운 수박 스테이크 등을 만들 수 있다. 껍질 속 하얀 부분을 활용하면 나물?샐러드?김치?장아찌?정과 등 다양한 반찬거리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육보다 더욱 많은 시트룰린을 섭취할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 고창수박우유


이 밖에도 젊은층 사이에서는 최근 시중에 선보인 ‘고창수박우유’ ‘수박 샤워젤’ 등 수박을 재료로 한 가공식품과 화장품 등을 활용하며 수박을 다양하게 즐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수박, 똑똑하게 먹고 고르자

어떤 수박이 좋은 것일까. 똑똑하게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개는 푸른색 바탕에 굵고 선명한 호랑이 털 무늬를 지니고 두드렸을 때 수박 전체가 울리는 느낌에 맑은 소리가 나며 꼭지가 달려 있고, 꼭지가 마르지 않고 싱싱한 수박을 고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맞는 것은 단 하나, 두드렸을 때의 소리뿐이다. 이 또한 당도를 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속이 붉게 변질된 피수박, 즉 속이 덜 익고 갈라져 박속같이 속이 텅 비어 있는 ‘박수박’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이마저도 산지에서의 비파괴선별기 검사 혹은 도매시장에서 수박 선별로 잔뼈가 굵은 전문 인력들이 선별하는 과정을 통해 대부분 해결되고 있는 만큼 큰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다.



▲ 수박 품질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수한 품종개발과 재배기술의 발전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반면 소비자들은 수박 껍질의 색과 꼭지에 신경을 쓴다. 특히 꼭지가 있어야 좋은 수박이라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는데, 이는 수박 유통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산지에서는 수박 꼭지를 T자 형태로 다듬어 유통하고 있는데, 이런 모양을 만들려면 수확 과정 중 한번이면 끝날 가위질을 세 번에 걸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목재 컨테이너에 수박을 운반할 경우 수박들이 서로 부딪히기 쉬운데, 이때 꼭지가 수박 껍질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수확?유통과정 중에 꼭지가 떨어진 수박은 졸지에 헐값 취급을 받기도 한다.


▲ 여름 과일의 대표 선수답게 수박은 전체 무게 중 92%가 

수분이면서도 당분과 비타민, 무기질이 고루 들어 있다.


이 때문에 수박 꼭지는 정부의 규제 개혁 대상에 올랐고, 지난 4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손잡고 꼭지를 자른 수박 유통에 나섰다. 정부에서도 수박에 대한 품질기준을 개정해 ‘꼭지를 잘라낸 부위가 완전히 말라 변색되지 않은 것’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마디로 꼭지가 싱싱한 수박이 아닌, 꼭지를 잘라낸 끝 부분이 싱싱한 수박을 고르면 된다는 이야기다.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고, 일 년 내내 후식으로 사랑받는 수박. 몰라도 되지만 알면 더 좋은 이야기들을 잔뜩 풀어놓고 나니 슬슬 목이 말라 온다. 당장 김치냉장고에 차게 식혀둔 수박부터 꺼내봐야겠다.







출처 : 새농이의 농축산식품 이야기
글쓴이 : 새농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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