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의 원인으로 꼽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제균 치료에 대한 의료계의 관심이 뜨겁다. 최근 일본에서 ‘모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보균자에게 제균 치료를 시행한다’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 ▲ (왼쪽부터)김범진, 신운건, 신철민
<패널 소개>
신철민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제균 치료는 현재 치료 받을 수 있는 환자들 외에도 의사의 판단 하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면 치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범진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제균 치료 대상자의 범위는 넓혀야 하지만 항생제 내성률이 높아지는 위험도 있다는 입장이다.
신운건
한림대강동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있는 환자가 제균 치료를 받기 원한다면 받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회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하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헬리코박터균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운건 헬리코박터균은 강한 산성인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세균입니다. 꼬리가 있어서 움직임도 있고요. 위 관련 질환을 논의할 때 빠지지 않는 세균이죠.
김범진 헬리코박터균이 유발하는 대표적인 질병이 만성 위염, 십이지장궤양, 위궤양, 위암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위암 유병률이 높다 보니 위암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제균 치료를 시행하고 있죠.
신운건 우리나라 성인이 80세 정도 되면 70% 정도가 가지고 있을 정도로 흔한 균입니다. 전 국민 평균으로는 50% 정도예요. 대개 후천적으로 생깁니다. 균이 사람에게 어떻게 전파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입이나 대변을 통해서 옮기는 것이 아닌지 예상하고 있죠.
사회자 국민의 절반에게 헬리코박터균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제균 치료라는 건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치료인 거군요.
김범진 그렇습니다. 제균 치료는 초치료가 있고 재치료가 있어요. 초치료는 항생제로 치료하는 건데, 세 가지 약물을 쓰는 ‘표준3제요법’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치료기간은 1~2주 정도예요. 재치료는 1차 치료에 실패한 사람들이 받습니다. 대개 네 가지 약물을 쓰는 ‘4제요법’을 시행하죠.
사회자 치료 효과는 어떤가요?
김범진 학회에서 전국적으로 분석해본 결과, 제균 치료 효과는 90% 정도였어요. 헬리코박터균은 다시 생기기가 쉽습니다. 제균 치료는 초치료 성공률이 높을수록 좋은 건데 그게 80%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치료 약제를 조절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의견이 있어요.
대상자 확대하기 전 내성 문제 간과해선 안 돼
- ▲ 신철민 교수
사회자 일본에서는 제균 치료 대상자를 헬리코박터균 보균자까지 확대했죠. 우리나라는 어떤 환자에게 제균 치료를 시행하고 있나요.
신철민 소화성궤양, 위궤양, 심장궤양 등 궤양을 앓았던 사람이나 특수한 형태의 위암인 경우 절대적으로 제균 치료를 시행하고 있고, 보험 처리도 됩니다. 최근에는 인정비급여(100% 본인 부담)로 조기 위암 내시경절제술을 받은 환자까지 시행할 수 있게 됐어요.
세계적으로는 치료 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은 가족력이 있거나 위장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제균 치료를 하고 있어요. 일본에서도 만성 위염이 있으면 제균 치료를 받을 수 있고요.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좀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신운건 맞습니다. 국내에서는 1998년도에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 가이드라인이 제정된 이후로 치료 대상자 범위를 넓힌 적이 없어요. 신철민 교수가 언급한 절대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 외에 다른 사람이 제균 치료를 하면 불법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처방을 못하죠.
김범진 무분별하게 치료 대상자를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항생제 내성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죠. 내성을 우려해야 하는 이유는 초치료 실패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표준치료에 사용되는 약물 중 클래리트로마이신이라는 약물이 있는데, 거기에 내성이 생기면 초치료는 거의 실패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클래리트로마이신 내성률이 20% 이상이면 표준 치료법을 바꿀 수 있는데, 국내 데이터로 보면 37%예요.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원래 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치료가 안 될 것이고, 내성이 없는 사람에게 쓴다면 항생제 남용이겠죠.
실제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치료 효율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치료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해서 전 국민에게 제균 치료를 권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운건 김범진 교수의 말씀은 일리가 있습니다. 국민의 절반에게 항생제를 먹이는 얘기가 되겠죠. 분명 내성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건강한 사람도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하면 위염을 줄일 수 있다는 국내 데이터가 나온다면 항생제를 잘 선택해서 치료하는 것도 예방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이제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도 치료 대상자를 확대하면 국민들이 위암을 덜 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신철민 현 시점에서는 제균 치료 대상자가 너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철 결핍성 빈혈 환자에게 철분 치료를 하는데 치료가 잘 안 될 때 헬리코박터균을 없애주는 게 치료의 일환일 수 있거든요.
그런데 현재 의료법으로는 그런 환자들에게 제균 치료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치료 대상자 확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걸 전 국민에게 시행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제균 치료에 사용하는 약제들이 다른 질환에도 사용되면 내성이 높아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요.
김범진 가이드라인이라는 것 자체가 전문가 집단에서 만들기 때문에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있을 수 있죠. 보험 기준이 느슨한 나라는 선택의 폭이 넓고 치료 대상자 범위도 넓지만, 우리나라는 근거 중심의 의학을 추구하다 보니 데이터가 없으면 개정하려는 노력도 떨어지죠.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참 어려워요.
치료를 원하는 사람은 받을 수 있도록 해야
- ▲ 신운건 교수
사회자 얘기를 들어보니까 제균 치료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환자가 생기네요. 그런데 무분별하게 치료 대상자 범위를 넓히려니 내성률이 높아질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김범진 그래서 세계적인 추세처럼 치료 대상자의 범위를 넓히고 종류도 다양화시키는 거죠.
신운건 외국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에요. 초치료의 성공률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치료법을 다양화 할 필요가 있죠.
신철민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치료 대상자 범위를 제한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근거를 내기 위한 연구가 윤리적인 문제가 될 경우는 근거를 낼 수 없는 경우도 있거든요.
학회 내에서도 제균 치료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모든 국민이 제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현재를 유지하자는 분도 있어요. 대다수가 공감하는 수준은 현재보다 치료 대상자를 넓히고, 지금 쓰고 있는 치료 약제를 다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자 세 분은 치료 대상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신운건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일단 위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포함해야 할 것 같아요. 가족력이라 하면 부모, 형제, 자매 중에 위암이 있는 경우죠.
그리고 헬리코박터균을 없애고 싶은 사람은 치료 받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환자가 헬리코박터균을 없애고 싶어도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질병을 가진 환자가 아니면 치료를 못 받습니다. 보험 처리를 받지 않고 치료 받고 싶다는 환자를 설득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신철민 공감합니다. 가족력이 있다든지 몇몇 헬리코박터균과 관련된 다른 질환이 있으면 인정비급여 형태로도 치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게 아니고 환자가 필요로 하고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인식을 했을 때 하는 치료가 불법이라고 생각하진 않으니까요.
치료 대상자 확대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 ▲ 김범진 교수
김범진 서양은 소화장애 유병률이 20~50%예요. 선진국형이죠. 개발도상국은 50~80%예요. 선진국형에서는 소화가 안 된다, 위가 아프다 그러면 헬리코박터균부터 검사해요. 이런 인식 때문에 치료 대상자 범위를 넓히기 쉬운 것 같아요.
신철민 서구에서는 비용 효율의 원리로 설명이 되죠. 우리나라는 위암 유병률이 높고 내시경 수가가 낮기 때문에 소화불량증 환자에게 내시경을 먼저 하고요. 미국은 내시경 비용이 워낙 비싸니까 헬리코박터균에 대한 혈액검사를 먼저 해요. 제균 치료를 먼저 하면 좋아지는 그룹이 있으니까 그런 치료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국가 보건의 측면에서 크게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위염이나 소화불량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제균 치료를 하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헬리코박터균은 소화불량의 여러 원인 중 하나니까요. 치료했을 때 효과가 있는 그룹은 일부인데 헬리코박터균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거든요. 그 사람들을 다 치료하게 되면 남용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죠.
김범진 제균 치료 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신중해야 하는 건 합병증 때문이기도 해요. 이론상으로는 합병증이 5% 정도 생길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10명에게 약을 주면 2명에게서 부작용이 일어나요. 흔한 건 구토와 설사죠. 환자 중에는 속이 메슥거리고 아프다고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항생제 내성도 문제지만 환자들의 부작용도 적지 않으니까 제균 치료를 무분별하게 확대시키는 것도 좋은 건 아니죠.
신운건 지금보다 치료 대상자의 범위를 넓혀야 하는 건 맞고요. 전 국민을 다 치료 대상으로 삼을 순 없어도 차차 대상자들의 범위를 늘려가야 하고, 내성률을 최대한 높이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항생제를 쓸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신철민 치료 대상자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앞서 꼭 필요한 환자들이 정당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보험 혜택은 받을 수 없어도 인정비급여 형태로라도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3명의 교수가 토론을 하고 있다.
/ 김련옥 헬스조선 기자 kyo@chosun.com
/ 포토그래퍼 김도균(St. DKAY)
월간헬스조선 6월호에 실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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