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치료법을 시험하는 임상시험은 많은 암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에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임상시험 참여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선뜻 참여하기도, 그렇다고 외면하기도 어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하고 계약서를 꼼꼼하게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왕도이다. 항암제 임상시험과 관련해 암환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들을 모아 보았다.
Q. 사람에게 처음 적용하는 제 1상 임상시험, 정말 안전할까?
사람에게 적용하는 제 1상 임상시험에 앞서 ‘전임상연구(Preclinical Study)’가 진행된다. 전임상연구는 다양한 세포주를 이용한 세포실험과, 동물들에게 시험해보는 동물시험 등이 포함된다. 사람에게 적용하기 전에 이런 전임상연구를 통해 효능과 효과를 확인하고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얻은 후에 이를 토대로 식품의약품안전청(KFDA) 등의 허가를 받아야지만 비로소 사람에게 적용하는 임상시험을 할 수 있다.
전임상 단계를 거쳐 1상 임상시험이 진행될 때는 시험을 주관하는 각 병원마다 설치된 윤리위원회 또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심사와 감독을 받는다. 만약 다국가 임상시험이라면 다른 나라의 규제당국의 허가, 가령 미국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청(US FDA)이나 유럽은 유럽의약국(EMA) 등의 승인이 이뤄져야 임상시험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임상시험에 참여를 고려할 경우 다국가 임상시험인지 등을 의료진과 연구진에게 문의하는 것도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임상시험에는 혹시 모를 부작용을 대비해서 표준치료 때보다 더 많은 관찰과 보호가 이루어지는 편이다. 특히 사람에게 처음 적용하는 제 1상 임상시험은 혹시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연구팀에서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Q. 위약대조군에 선정되었는데, 임상시험에서 말하는 대조군은 무엇이며 꼭 필요한가?
암 관련 임상시험에 참여하려고 설명을 듣는 중 신약이 아닌 대조군 또는 표준치료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항암제로 치료받고 싶은데, 꼭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임상시험 중에서는 새로운 치료법의 효과를 확인하거나 비교하기 위해 동일한 환자군을 새로운 치료를 시행받는 군(시험군)과, 현재의 표준치료를 시행받는 군(대조군)으로 나누어 비교하는 시험을 진행한다. 즉, 시험군에게는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하고, 대조군에게는 적용하지 않게 하여 그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다. 주로 제 2상이나 제 3상의 임상시험에서 이용되며, 시험군과 대조군은 보통 신청한 피험자들 사이에서 무작위로 선정되어 나누어진다.
그러나 반드시 대조군이 포함된 임상시험이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과거의 결과와 비교하여 새로운 치료법이 명백하게 우수하다면 시험군만을 포함한 임상시험 결과를 이용할 수 있다. 즉, 이 때는 대조군의 역할을 표준치료를 시행 받은 과거 환자의 결과가 대신한다(이를 역사적 대조군, Historical Control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위장관기질종양에서 이매티닙의 효과로 시험군의 결과가 너무 좋아 대조군이 필요 없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대조군을 포함한 임상시험 결과가 필요하다.
Q. 2상 또는 3상 임상시험에서 왜 꼭 무작위로 배정하나?
임상시험을 통해 얻는 자료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가령, 연구진이 신약 임상시험을 하는데 예후가 좋은 환자만을 골라 시험군에 배정하고,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를 골라 대조군에 배정해 진행했다면, 실험을 한 신약의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 결과를 신뢰할 수는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를 ‘삐뚤림(Bias)’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삐뚤림으로 인하여 임상시험 결과가 왜곡될 경우 그로 인한 손해는 매우 크다. 실제로 과거에 잘못된 임상시험으로 인해 의료계 전체가 큰 손해를 본 적도 있다. 때문에 임상시험에 임할 때는 이런 삐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시험군과 대조군을 나눌 때, 임상시험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서 연구자 또는 피험자의 의도에 따라 시험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사위나 동전을 던져서 대상 피험자를 시험군 또는 대조군으로 배정하는데, 이를 ‘무작위배정’이라고 한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랜덤(random)'으로 배정하는 것이다.
이 때, 배정비율은 임상시험마다 차이가 있다. 보통은 시험군과 대조군을 1:1로 배정하지만 이전 임상시험단계나 또는 다른 임상시험에서 얻어지는 결과에 따라 2:1, 3:2, 심지어는 3:1이나 4:1로 시험군에 더 많이 배정되도록 비율을 정하기도 한다. 임상시험을 참여할 때, 이러한 배정비율에 대하여 연구진에게 문의해야 한다. 그리고, 서면동의서에는 이러한 무작위 방법과 배정비율에 대하여 반드시 기술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Q. 임상시험에서 ‘맹검’은 무엇인가? 혹시 ‘맹검’으로 인한 피해는 없을까?
임상시험 결과의 삐뚤림을 막기 위해 무작위배정과 대조군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작위배정과 대조군을 포함한 임상시험도, 배정된 결과를 의료진이나 환자가 알 경우 여전히 임상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령, 시험군에 배정된 피험자에 대하여 의료진이 상대적으로 대조군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면, 대조군에 배정된 환자가 임상시험 참여를 거부 또는 중지한다면, 그 결과 또한 믿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의료진이나 환자 모두 피험자가 어떤 군에 배정되었는지 모르게 할 필요가 있다. 이를 ‘맹검 (Blind)’이라고 한다.
이러한 맹검 방법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피험자만 모르는 경우라면 단일맹검(Single Blind), 피험자와 의료진이 모를 경우에는 이중맹검(Double Blind), 심지어는 피험자, 의료진, 그리고 의뢰자를 포함한 임상시험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이 모르게 하며 최종 결과 분석 때 배정결과를 열어보는 것을 삼중맹검(Triple Blind)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임상시험에서 맹검이 필요하지 않으며, 때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가령, 주사약과 알약을 비교한다든지, 수술법과 방사선치료를 비교할 경우 아무도 모르게 하기는 어렵다. 이 때는 공개 임상시험(Open Trial)을 시행하게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나 임상시험심사위원회에서 임상시험에서 공개 또는 맹검법의 방법론에 대하여 과학성과 윤리성을 반드시 심의를 하게 되며, 때로는 임상시험 방법을 변경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피험자가 원한다고 맹검을 해제하지는 않지만, 피험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언제든지 ‘맹검해제(Code Breaking)’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맹검으로 인하여 혹시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까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Q. 만약 무작위배정 후 ‘위약대조군’으로 선정되어도 치료에 도움이 될까?
보다 객관적인 약제나 기기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하여 위약(가짜약)군을 대조군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이를 ‘위약대조군’이라고 한다. 많은 피험자들이 임상시험 참여에 앞서 ‘대조군’, 특히 ‘위약 대조군’에 포함될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치료법을 기대하고 임상시험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새 치료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아니한만 못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위약대조군이라고 해도 효과없는 가짜 약으로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표준치료로 치료받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위약대조군 연구라고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또한 임상시험에서 위약군 설정은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각 기관 임상시험심의위원회에서 그 과학성과 윤리성을 심의받고 반드시 승인 후에야 시행가능하며, 위약대조군의 피험자군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다양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위약대조군에 뽑혔다 하더라도 오히려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록 항암치료와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더라도 최선의 지지치료(Best Supportive Care : 적극적인 항암치료 외에도 암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가능한 증상을 예방하는 치료)를 잘 시행받은 경우,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생존기간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피험자는 시험군이든 위약대조군이든 모두 최대한의 지지치료를 지원받도록 되어 있다. 즉, 어떤 군에 들어가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지지치료를 충분히 받으며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피험자는 의료진의 각별한 관심과 주의를 받게 되므로 임상에서의 치료보다 생존율이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최근에 시행되는 많은 임상시험은 교차참여(Cross-over)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처음에는 설령 위약대조군에 배정된다 하더라도 다시 시험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물론 같은 계통의 전혀 다른 약제나 기기에 대한 새로운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러한 점들에 대해 역시 의료진과 연구진에게 충분히 문의하는 것이 좋다.
Q.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참여비용이 많이 들까?
임상시험 참여 비용은 임상시험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신약이나 새 의료기기의 효과를 알아보는 임상시험은 보통 시험할 신약이나 신의료기기를 개발한 측에서 비용을 부담하므로, 참여자에게 돈을 받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 외 여러 목적의 임상시험에서는 환자에게 일정한 비용이 부담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알려진 치료법들의 병합치료에 대한 임상시험, 가령,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같이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순차적으로 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알기 위하여 시행하는 임상시험에는 피험자에게 비용이 부담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임상시험 참여에 따른 비용부담에 대하여 반드시 의료진과 연구진과 충분히 상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연구진으로부터 추가 도움도 받을 수 있으며, 아울러 임상시험 참여 전에 이러한 임상시험의 다양한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참여여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Q. ‘임상시험’과 ‘임상연구’는 다른 것인가?
최근 임상연구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의학과 의료가 발달한 반증이기도 하지만, ‘임상연구’와 ‘임상시험’ 의 용어가 혼용되어 사용됨으로써 의료진과 환자 모두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임상연구’는 ‘임상시험’을 포함하는 보다 넒은 개념이다. 즉, ‘임상시험’은 여러 ‘임상연구’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임상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은 ‘임상시험’을 시행하는 과정과 많이 비슷하다.
다른 점도 있다. 임상연구는 때로는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같은 규제당국의 심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면제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때에도 반드시 각 기관의 ‘윤리위원회’ 또는 ‘임상시험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승인 후 시행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임상연구에 참여하기 전에는 이러한 점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Q. 내게 맞는 임상시험은 어떻게 찾을 수 있나?
일반적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지원자들은 병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피험자 모집공고를 확인하거나, 주치의에게 문의하여 참여한다. 하지만 암 치료 혹은 항암제 임상시험은 그 예민성 때문에 주치의가 먼저 환자의 상황을 살피고 권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제 1상 임상시험의 경우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 가능한 암환자에게 함부로 추천할 수는 없다. 최근clinicaltrials.gov라는 인터넷사이트을 통하여 다양한 임상시험을 소개하고 있다. 국내 임상시험도 일부 포함되어 있으므로 살펴볼 만하다.
△ 작성: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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