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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당뇨교실

[스크랩] 당뇨병 관리의 일탈을 막다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4. 9. 29.

갈증과 무력감, 그리고 ‘오줌자국에 새까맣게 모여 들어 엉켜 붙는 개미떼’는 건강을 자신하던 쉰 줄의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중증 당뇨병 진단에 폐결핵 진단까지 받게 했다. 진단을 받은 뒤로 5년째 그는당뇨병 관리에 전념했다.

근 50년간 몸에 밴 식사습관도 바꾸어 ‘하루 12단위의 탄수화물을 포함해서 1800 칼로리의 음식에 그의 몸뚱이를 고분고분’ 길들였고, 혈당조절을 위해 매일 16단위의 인슐린을 ‘병원에서 마련해준 도표에 따라 몸의 각 부분을 한 바퀴씩 도는 순서로’ 본인이 직접 자신의 넓적다리나 팔뚝에 바늘로 찔러 넣었다. 단단한 각오로 철저하게 관리를 하면서 혈당수치를 포함한 당뇨병 상태가 자신감이 생길 정도로 양호해졌다.


	소설 《유실》
소설 《유실》

소설 《유실》의 작가 박완서는 당뇨병 환자가 자기 관리에 대해 갖고 있는 자신감을 다음과 같이 계속 이어 가며 묘사하고 있다. 자신의 몸뚱이를 파악하고, 투명한 시험관 들여다보듯이 투시하고 마침내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있다는 쾌감은 당뇨병이란 희한한 병을 앓아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의 몸뚱이는 이제 완전히 객관적인 대상일뿐더러 작은 시험관처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쉽사리 투시당하고 밑바닥까지 들여다볼 수도 있는 만만하기 짝이 없는 대상이었다. 그도 이제 허기증에 휘둘려서 단것을 훔쳐 먹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속 들여다보이게 빤한가. 자기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자기 몸을 휘어잡고 조절할 수 있나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그 나름의 절도는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그는 끝내 자신을 조그만 시험관처럼 빤한 걸로 취급하고, 전모를 완전히 파악한 것처럼 자신을 가지려 들었다. 더군다나 결핵 전문의와 당뇨병 전문의가 함께 입을 모아 권해서 맞기 시작한 인슐린 주사로 통증 없는 병 때문에 미처 알지 못하고 넘어갈 뻔한 몸의 나머지 부분까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건 아픔에 대한 육신의 간사함이었다.

이렇게 자기 관리에 쾌감을 맛본 자신감은 ‘자신을 움켜쥔 고삐를 늦추는 방식으로’ 당뇨병 관리에 소홀을 가져오게 했다. ‘아내가 갓난아기처럼 새근새근 깊이 잠든 한밤중 문득 홀로 깨어난 그는 몸이 야릇하게 스멀대면서 살아나려는 욕망의 낌새를 느꼈다.’ 당뇨병에 동반될 수 있는 성기능 문제를 들어 작가는 만성질환인 당뇨병 환자의 ‘물에 떠내려가서 잃어버린 것-유실(流失)’에 대한 욕구를 묘사하고 있다.

소공동 부근에서 어음을 할인해 주는 환전 브로커로서 도시의 건물 한 귀퉁이에 갇혀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당뇨병관리에 자신을 얻은 그는 어느 날 옛 친구를 만나 필름이 끊기도록 술을 마신다. 그리고 낯선 도시에서 소지품과 고액의 어음은 없어지고 낯선여자와 잔 흔적만 남은 일탈의 하룻밤을 겪는다.


	당뇨병 관리
(사진=헬스조선DB)

식사, 운동, 혈당검사, 인슐린 주사 등으로 남과 다르게 감당해야 할 일이 많다는 ‘소외감’, 합병증 공포를 의식하며 평생 지내야 한다는 ‘불안감’, 그리고 마음껏 먹고 맘대로 무리하던 예전의 생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상실감’ 등은 우울증을 곧잘 가져온다. 또 한편 사람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도로 거둬들이고 싶다는 욕구는 더러 일탈을 꾀하게 한다.

외박 전날 ‘컬컬하고 헛헛해져서 술집으로 갈 때까지 당뇨병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안했으니까. 그에게 허용된 천팔백 칼로리의 식단과 그가 복용하고 있는 약이 알코올에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는 술에 대한 공포로부터 그렇게 완전히 해방돼 본적은 당뇨병 이후 처음이었다.’ 그는 유실된 어음과 소지품을 찾아나선다. 여러 곡절 끝에 찾게 되지만 잃어버렸을 때보다 더 허전함을 느낀다.

유실물을 완전히 되돌려 받은 지금 오히려 그는 가슴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자신과 자신의 일생을 제대로 가눌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앞으론 무엇으로 소일을 할 것인가? 비밀스럽고 화려한 일탈(逸脫)이었던 것처럼 그가 없는 앞으로의 나날이 한없이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현재의 나를 확인하는 화려하고 비밀스러운 과정은 나름대로 값어치가 있다. 버린 것이 무엇이고, 그 버린 자리가 얼마나 깊고 넓은 지 헤아리고 측량하는 일은 값지다. 그 시기를 ‘당뇨병 실험기’라 부르려 한다. 당뇨병에 대한 자신만만이든 오랫동안 꾸준히 다듬고 챙기는 것에 대한 일탈이든 ‘유실’을 찾아나서는 실험은 그 기간이 짧을수록 좋다. 실험해 보되 화려함을 즐겨 빠지진 말 것.

먹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생활과 직결되는 이런 저런 각자의 형편을 스스로 다듬어야 하는 까닭에 식사요법을 위시한 당뇨병 관리 방안은 얼핏 생각하면 꽤나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더구나 두고두고 꾸준히 해야한다니.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당뇨병은 ‘치료한다’는 말보다 ‘관리한다’는 말을 더 자주 쓴다.

그 이유는 한 번에 호전되거나 단박에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뇨병 관리 방안에는 식사, 운동, 약물(경구 혈당개선제 또는 인슐린 주사), 정기적 검사, 교육 등이 있다. 이 방안 하나하나 모두가 스스로하면 되는 것이다.

식사요법의 핵심을 살펴보자. ‘제때에 먹는다(가능한 한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는 것이 이롭다. 탄수화물의 공급원으로 곡류를 주로 섭취하고, 설탕.꿀 등의 단순당은 그 섭취를 피한다). 단백질과 지방을 적당히 섭취한다(너무 적게 섭취하면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섭취가 대신 늘어 이롭지 않다). 싱겁게 먹는다(자극성 음식은 안 좋다). 술은 해롭다(당뇨병에선 술이 영양의 균형을 깨서해가 된다).’  이 중에 어느 하나 유별나게 일상과 동떨어져 할 일이 있는가. 어느 하나 억지로 남에게 시켜 할 일이 있는가. 내가 남의 눈치 안 보고 찬찬히 추스르면 되는 일상적 일들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작은 시험관 속의 현상처럼 빤하지 않다는 게 갑자기 무서워졌다’는 문장으로 소설 《유실》은 끝나고 있다. 그렇다, 병 없는 이가 어디 있는가? 다만 현재와 현재의 나를 재구성해 더 건강한 것으로 채우려 노력하며 병을 추스르고 있다. 덜어내고 비워내서 채우는 일은 가볍지 않은 스트레스다. 때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 나날이 답답하다.

스트레스 대부분은 비현실적 기대로 채워져 있어,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답답함은 현실의 재구성으로만 수그러들 수 있다. 그래서 현실을 지배하는 건강하지 않은 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원래 치료의 기술이란 막연한 기대를 허공에 매다는 마술이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힘으로 욕망을 조절해 식사, 운동, 약물치료 등의 삶을 재배치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재배치를 위한 재배치는 정답이 아니다. 의학적 방법이 치유의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

‘우리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스피노자 효과를 되짚지 않더라도, 잃었다고 몰두하는 일탈의 원인인 ‘유실’을 때론 터주고 때론 줄여주는 재배치여야 한다.


	유형준
유형준

유형준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내과 교수.

‘유담’이라는 필명으로 시인과 수필가로 활동한다. 한국의사시인회 회장, 함춘문예회회장, 쉼표문학회 고문, 문학의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문학 속에 담긴 건강 이야기를 고찰한다.


월간헬스조선 9월호(130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 기고자 유형준

출처 : 암정복 그날까지
글쓴이 : 정운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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