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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치료/수술

[스크랩] 호스가 만든 치료의 기적 ‘중재술’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4. 8. 29.
피부에 작은 구멍을 뚫고 ‘호스’를 밀어 넣어 암 조직을 죽이고 막힌 심장을 뚫는다. 고혈압을 잡고 배변을 돕는다. 모두 중재술(仲裁術)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요즘 병원 광고를 보면 ‘수술 없이 치료’, ‘칼을 쓰지 않는 시술’, ‘절개 않고 하루 만에 퇴원’ 같은 문구가 넘쳐난다. 역시 모두 중재술을 가리킨다. 수술이 아닌 시술의 개념을 의료에 도입시킨 중재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과거엔 큰 수술을 해야 가능했던 치료가, 이제는 피부에 구멍 하나 뚫고 혈관이나 소화관에 ‘카테터’라 부르는 가늘고 긴 특수관(管)을 집어넣는 방법으로 해결된다. 메스를 쓰지 않고, 출혈이 없고, 전신마취도 필요 없다. 여러 진료과목에서 다양한 질병에 쓰는데, 이런 치료법을 통틀어 중재술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인터벤션이라고 부른다. 중재술은 외과(수술)와 내과(약물치료)의 중간에서 이 둘을 연결해 준다는 뜻이다. 약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을 부담스런 수술까지 보내지 않고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중재술’
(사진=헬스조선DB)

동맥경화로 막힌 심혈관을 스텐트로 넓혀서 뚫는 관상동맥중재술이 가장 대표적이다. 심혈관이 꽉 막혀 쓰려져서 구급차에 실려온 환자가 이 시술로 심혈관을 재개통하고 다음날 걸어서 퇴원한다. 예전이라면 가슴을 열고 심장을 세우고 허벅지 혈관을 떼어내 막힌 관상동맥 옆에 붙여 주는 관상동맥우회수술을 10여 시간 받고 몇 주일 입원해야 했을 사람이다.

현대의학에서 중재술이 처음 시도된 장기도 심장이다. 1929년 독일 의사베르너 포르스만은 자신의 심장에 직접 카테터를 밀어 넣었다. 당시 개흉 심장수술을 하다가 죽는 환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수술을 대신할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중재술 아이디어를 처음 냈을 때, 동료 의사들은 “사람잡는다”고 반대했는데, 간호사 중 한 명이 자기 몸을 쓰라고 허락했다. 포르스만은 간호사에게 부분마취까지 했지만, “남에게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심경 변화를 일으켜 대신 자신의 팔을 째고 정맥에 카테터를 넣었다. 35cm짜리 카테터를 모두 삽입한 뒤 포르스만은 옆 방으로 걸어가서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 카테터가 심장에 무사히 도달한 것을 확인했다. 그는 심장병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공로로 1956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혈관에 카테터를 집어넣는 기법은 이후 주로 혈관질환을 진단하기 위해서만 썼는데, 50년 전에 치료까지 범위를 넓혔다. 1963년 체코에서 열린 의학학술대회에서 미국 의사 찰스 도터가 “영상장비와 카테터를 결합하면 수술을 대신하는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의사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1년 뒤 그는 혈관이 막힌 80대 할머니의 다리에 카테터를 삽입해 막힌 혈관을 뚫었다. 카테터 삽입술이 진단에서 치료로 영역을 넓히면서 ‘중재술’이라는 개념이 성립됐고, 찰스 도터는 세계 최초의 중재술전문의가 됐다.

1974년 독일에서 혈관의 막힌 부분을 넓혀 주는 풍선카테터가 개발되면서 중재술은 혈관협착 수술을 빠르게 대처했다. 약물방출카테터 등 첨단 기능을 갖춘 중재술용 의료기기도 개발됐다. 최근에는 고주파 에너지를 쏴 신경을 차단하는 전극카테터까지 개발됐는데, 전극카테터로는 고혈압도 고친다.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된 고혈압 환자의 신장에 카테터를 넣어서 고주파로 교감신경을 차단하면 혈압이 내려간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한만청 당시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가 담즙관이 막힌 암환자의 혈관에 카테터를 넣어 담즙을 빼낸 것이 첫 시술이다.
그 후 상당 기간 정체기를 겪었고,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영상의학과뿐 아니라 순환기내과, 신경과, 신경외과 등에서 광범위하게 시술한다.


	‘중재술’
(사진=헬스조선DB)

중재술이 처음 국내에 소개됐을 때 외과계열 의사들은 반대했다. ‘삽입한 스텐트가 밀려 내려가거나 다시 막히면 결국 수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하지만 가슴이나 두개골을 길게 열어야 하는 대수술에 비해, 피부에 2~3mm의 구멍 하나만 뚫어서 해결하는 중재술의 장점이 워낙 커, 빠르게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는 2003년부터 대동맥류 치료에 중재술이 개복수술을 앞질렀다. 중재술이 가능한 질병은 50가지가 넘는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령 등으로 전신마취가 어려운 척추질환 환자들이 수술하지 않고 통증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중재술의 공로다.

심혈관 카테터는 대부분 허벅지 대퇴동맥으로 넣는다. 대퇴동맥은 심장까지 곧게 이어져 있으며, 혈관이 굵고 혈관 벽이 두꺼워서 카테터를 쉽고 안전하게 환부까지 보낼 수 있다. 시술한 뒤에는 무거운 납주머니를 삽입 부위에 올려 놓아서 지혈하는데, 허벅지에는 넓적다리뼈가 있어 납주머니를 올려놓기 쉽다. 뇌혈관 중재술도 대퇴동맥에서 출발해 관상동맥을 거쳐서 올라가는 것이 기본이지만, 중간에 혈관이 꼬여 있는 경우 손목이나 목 혈관으로 카테터를 넣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뇌에 가까운 손목이나 목 혈관을 통하지 않을까. 이 부분은 지혈이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다양한 카테터의 종류
다양한 카테터의 종류(사진=헬스조선DB)
지금까지는 막힌 곳을 뚫어 주는 중재술을 소개했지만, 거꾸로 뚫린 곳을 막는 중재술도 있다. 악성·양성 종양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을 중재술로 막아서 종양을 굶겨 죽이는 색전술이 그것이다. 암 중에는 간암의 색전술이 가장 활발하다.

암조직과 연결된 혈관에 카테터로 항암제를 주입한 후 색전물질로 혈관을 막아 버리는 방법이다. 자궁근종도 수술하지 않고 색전술로 다스릴 수 있다. 자궁근종 수가 많으면 수술이 불가능하고 출혈 위험이 크다. 반면, 자궁근종 색전술은 출혈 위험 없이 근종을 치료해 준다.

그러나 중재술이 적용되는 범위가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라는 데에는 의료계 대부분이 동의한다. 의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고난도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고, 환자는 통증 없이 안전하고 빠르게 질병 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152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 강경훈 기자 kwkang@chosun.com
도움말 박병관(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 원종윤(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 강성권(양지병원 인터벤션센터장)
출처 : 암정복 그날까지
글쓴이 : 정운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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