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07년도에 모카페에 올려져 있는것을 퍼왔습니다.환우들 께서는 참고하시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직장암 3기 의사가 지리산으로 간 까닭은
수술만 받고 곧바로 지리산으로 항암치료 대신 산속 원시인 생활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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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했다.“ 의사가 쓸데 없는 고집을 피운다”며 화를 내는 사람도,“한번만 더 생각해 보라”며 애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선규(53·가정의학전문의·사진)씨의 생각은 그러나 확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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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손익계산을 해도 항암치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설혹 항암치료로 몇 개월 더 산다고 해도 치료 과정의 고통과 삶의 질 저하는 어떻게 보상 받을 것인가? 항암제가 자연 수명을 단축시키는 경우도 있다지 않은가? 무절제한 생활습관 때문에 생긴 암이니 생활습관 부터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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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직장암 3기 선고를 받은 것은 개인의원을 운영하던 1998년 5월. 진료를 마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일이 예사였던 때였다. 술과 고기와 튀긴 음식을 좋아했고, 당시 몸무게는 100㎏이 넘었다. 설사가 멈추지 않아 동네 병원을 거쳐 모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갔더니“다른 장기로는 퍼지지 않았으니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서둘러 1998년 6월 수술을 받았다.
암은 환경 때문이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오염된 음식과 공기와 정신…. 공해가 없는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의 흐트러짐을 바로잡고, 자연이 선사한 좋은 먹거리를 섭취하면 면역력이 되살아나 암 세포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항암치료도 거부하고 찾아간 곳이 지리산 가장 깊숙한 ‘논실마을’이다. 그곳 빈집을 수리해 텃밭을 일구며 ‘산 사람’으로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안감까지 버리고 온 것은 아니었다. “항암치료 받으면 나을 텐데 쓸데 없는 짓 하다 죽는 것은 아닐까”라는 회의감이 처음엔 시시때때로 밀려왔다. 그 때마다 김씨는 “아냐, 이것이 옳은 방법이야”라며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긍정적인 생각은 세포의 면역력을 증강시킨다고 하지 않는가? 김씨는 죽음이 떠오를 때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버릇이 돼 요즘도 1주일에 한번씩 혼자 노래방에 가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야 말로 긍정의 힘을 온 몸 세포 세포에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자연은 자기 품에 찾아 든 김씨에게 풍성함으로 보답했다. 텃밭 두 고랑만 파종해도 다 먹기 힘들만큼 소출이 풍성했고, 산에는 취나물 참나물 같은 무공해 먹거리들이 널려 있었다.
집 근처 고목나무에는 암 환자에게 좋다는 겨우살이가 기생하고 있었다. 김씨는 그것을 직접 채취해 달여 먹었다. 암 환자들이 비싼 값에 사서 먹는 영지버섯도 그 곳에선 공짜였다.
“온실에서 재배된 야채와 달리 자연의 풍상(風霜)을 뚫고 새 순을 낸 자연의 먹거리는 그 자체가 기이한 영양소로 가득 찬 항암식품이다. 그것을 먹으며 의식적으로 암 세포가 내 몸 속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의사인 제가 덜컥, 암에 걸렸습니다 오염된 몸과 마음이 병을 부른 것… 항암치료 대신 지리산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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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병든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었습니다 산 생활 3년만에 암이 제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산에 들어가는 것은 반대입니다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에겐 오히려 스트레스가 돼 병이 더 악화 될 수도 있기에…
3년 만에 산에서 내려왔다. 몸과 마음이 깨끗해졌다고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다. 병원 검사 결과도 예상대로였다. 주치의는 ‘암 재발 징후 없음’이라고 차트에 썼다.
암 수술을 한 지 9년, 산에서 내려온 지 6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암 세포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5년이 지나면 완치된 것으로 간주하는 의학계 관행에 따르면 김씨는 암을 이긴 것이다.
자신의 투병 사례가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을 김씨는 경계했다. 수술은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며, 항암치료도 충분한 설명을 듣고 하는 것이 이익인지 안 하는 것이 이익인지에 대한 손익계산을 따져 보아야지 무턱대고 거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무작정 산에 들어가는 것도 반대했다. 그가 논실마을에 들어간 뒤 정확히 6개월 뒤 사촌동생이 꼭 같은 직장암 3기로 들어와 함께 생활했으나 동생은 암이 전이돼 3년 만에 사망했다.
김씨는 “나는 촌 사람이라 산 생활이 오히려 재미있었지만 도시에만 살던 사람은 산에 들어오면 심심해서 1주일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산에 있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돼서 병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암 환자마다 성격, 취향, 생활습관, 병의 경중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어떤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투병 방법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1년부터 한국암환자협회 회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병원(연세가정의원)을 운영하는 틈틈이 전화와 인터넷으로 암 환자 상담을 진행한다.
직접 병원까지 찾아오는 암 환자에겐 몇 시간씩 얘기를 듣고 해 주기도 한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뺏기고 체력도 축나는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암 환자들의 말과 처지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김 씨는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어떻게 투병해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으며, 대체의학적 치료법을 시도하느라 쓸데 없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의료계는 수술과 항암치료 등 필요한 치료만 끝낸 뒤 나머지는 ‘내 일이 아니다’고 한다. 불안해 하는 환자들에게 정부가 믿음과 해법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 글=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 / 사진=김보배 객원기자 (블로그)iperr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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