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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게시판

[스크랩] `아픈 이가 있다면…` 병원선의 아름다운 항해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1. 9. 9.

아픈 곳이 생기면 병원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에서 생활하고 있는 섬마을 주민들이다. 특히 고령자들이 많다 보면 아픈 몸을 이끌고 뱃길로만 3시간 거리인 병원을 가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병을 참아 더 큰 병을 얻기도 한다.

 

이러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섬마을 주민들을 위해 매주 힘찬 항해를 하는 배가 있다. 섬마을 주민들을 빠르게 이송시키기 위한 배? 아니다. 바로 직접 진료장비를 갖추고 섬마을 환자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이 배의 목적이다. 바로 병원선. 섬 주민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병원선의 이야기를 ① 병원선의 진료모습, ② 병원선 직원들의 이야기, ③ 섬 주민들이 이야기하는 병원선. 세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따스아리 운영자> 

 

 

인천항에서 출발해 2시간 가까이 떨어진 곳에 '지도'라는 외딴섬. 거주하는 이가 많지 않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고령이다 보니 환자들이 많다. 지도에 거주하는 강희수(67세/어업) 어르신도 몸이 불편하다. 어르신은 지난 주 부터 꾸준히 한 척의 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뭍으로 나가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에요. 일주일에 한번 씩 찾아오는 그들이 있어서 너무 좋지. 무릎이 항상 아파서 고생했었는데 침을 몇 번 맞고 나서 증세가 많이 호전됐어요." 강 씨 어르신은 이번에도 여러 군데 진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강 씨 어르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병원선 '인천 531호'.

 

의료시설이 없는 외딴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갖추고 섬을 방문하는 바다 위의 종합병원이다. 병원선에는 일반의(내과), 치과의, 한의사 3명의로 이뤄진 공중보건의 3명과 간호사 2명이 각자의 전공을 살려 섬 주민들을 위한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병원선에서 이뤄지는 모든 진료는 물론, 약 처방, 치과 치료까지(보철치료 제외) 모두 무료다. 

 

 

# 배를 정박 할 수 없어도 아픈 이들이 있다면

 

매주 화요일 인천항에서는 병원선 인천531호가 우렁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의료시설이 없는 외딴섬을 향해 출항한다. 한 번 출항한 병원선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2~4개의 섬을 순항하며 낮에는 섬을 돌며 주민들을 진료 하고, 밤에는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해 섬 주변에서 대기한다. 진료는 보통 의료장비 문제로 병원선에서 이루어지지만 선착장 시설이 열악해 작은 보트를 타고 들어가야 하거나, 선착장과 마을이 먼 경우 의사들이 직접 찾아가 진료하기도 한다.

 

한참을 걸려 도착한 첫 번째 섬 '지도'는 병원선을 정박시킬만한 시설이 없는 섬. 보트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다. 변덕스러운 바다 날씨를 증명이라도 하듯,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에 안전사고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지만 병원선 의료팀은 의료장비와 차트를 챙기고 능숙하게 작은 보트에 옮겨 탔다. 

 

병원선 인천531호 황정진 선장은 "보통 이런 날씨에는 배를 띄우기 힘들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병원선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생각해서 가능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보트가 무사히 섬에 도착하자 의료진들은 진료장소인 이장님 댁으로 향했다. 병원선의 도착소식을 듣고 이미 동네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식사는 꾸준히 하고 계시죠? 지난번에 드렸던 약은 잘 드셨나요? 어디 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고요?” 내과 업무를 맡은 공중보건의 최재형(27세/내과) 씨는 '지도리 이장님 댁'에서 진료를 보고 있었다. 자신의 부모님을 돌보듯 자상하게 진찰을 하는 그의 모습은 이른바 ‘회전문 진찰’이라 불리는 병원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이 곳에서 의사는 저희가 유일합니다. 약국이나 마땅한 보건 시설조차 찾기가 힘들죠. 제가 위험한 질병을 초기발견하지 못하면 큰일이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며 환자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다.

 

한방 진료도 함께 진행 됐다. 다리 통증으로 찾아온 주민의 상태를 살피고 침 시술이 이루어졌다. "오늘 진료를 받기로 하셨던 분들은 4~5분 계셨지만, 비가 많이 오다보니 오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사실 평소 어르신들께 가장 필요한 진료 중 하나가 한방치료인데 안타깝죠." 서영덕(27세/한의과) 공중보건의는 시간만 있다면 어른들을 직접 찾아가 상태를 돌보고 싶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 병원선, 그 진가를 발휘하다

 

날씨로 인해 고생했던 지도에서 이동하여 두 번째 섬인 '울도'로 향했다. 울도는 병원선이 정박할 수 있는 섬이어서 드디어 병원선 안에서의 진료와 처방 등 병원선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치과 진료가 가능 한 것.  "어르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중 또 하나가 치과치료에요. 대부분의 주민들이 고령이시기 때문에 치아건강이 좋지 못해 빠르고 정확한 치료가 필요하죠."

 

 

윤정훈(27세/치과) 공중보건의는 처음 어르신들의 치아 상태를 접했을 때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놀란 적이 많았다고 했다. “한번은 50대 남성이 술에 취한 채 병원선을 찾아왔었는데 상태가 너무 심했어요. 이가 전부 깨져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임에도 본인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셨죠."

 

윤 보건의는 섬을 방문 했을 때 최대한 많은 어르신들의 치아 상태를 보고 치료를 해드리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병원선에는 진료를 희망하는 많은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왔다. 내과 진료와 약을 희망하는 분들, 한방과의 뜨끈한 마룻바닥에서 찜질을 하시며 침을 맞고자 하는 분들, 치과치료를 받는 분들까지 병원선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돌아갔다.

 

진료를 받은 이복녀(가명/60대) 어르신은 "병원선이 온다고 하면 이장님이 방송으로 다들 알려주는데 그럼 행여나 놓칠세라 달려와서 치료도 받고, 약도 받고, 담소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며 "남편은 치과치료를 받고, 나는 내과 약을 타러 왔는데 의지할 곳 없는 섬에서 병원선의 존재는 최고"라며 밝게 웃었다.

 

 

진료를 기다리는 행렬이 줄어들면, 바로 약 제조에 들어간다. 80여종의 약품을 구비해놓고 의사 처방에 따라 간호사들이 조제한다. 민우진 간호사는 "필요한 약을 제공하지만 어르신들이 제때 잘 복용하지 않으시는 경우가 많아 가슴이 아프다"면서 어르신 한명 한명 복약지도 등에 신경 쓴다고 말했다. 울도에서의 진료가 모두 끝난 배는 다시 바다로 향했다.

 

# 고령화된 섬마을, 대부분이 노인성 질환 호소

 

파도가 잔잔한 바다 위에서 잠을 청하고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병원선의 마지막 목적지는 이번에 방문한 세 곳의 섬 중 가장 큰 문갑도였다. 문갑도 역시 섬에 남은 주민 대부분이 고령층으로 주로 등 골격계 증상이나, 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노인성 질환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김해영 간호사는 “대부분의 등골격계 신경통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에게 침 시술이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김 간호사는 "혈압이나 당뇨 치료를 위한 분들에게는 일반의와 상담 후 적절한 약을 처방한다"고도 덧붙였다. 지금까지의 섬보다 많은 인원이 몰린 문갑도의 노인정은 마치 ‘사랑방’과 같았다.

 

 

거의 모든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침을 맞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혈압이나 당 수치를 재며 의사와 상담을 받았다. 혈압 때문에 진료를 받은 김성례(67세/주민) 어르신은 "혈압이 상당이 높았는데 병원선에서 주는 약을 먹고 나서부터 많이 좋아졌다”며 “섬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어  치료가 막막한데 병원선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며 밝게 웃었다. 문갑어촌계장을 맡고 있는 임성민(64세/문갑어촌계장) 어르신은 “병원선이 들어오면서 섬 주민들의 건강은 물론, 문갑도에 휴양 온 외지인들까지 안심할 정도로 섬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만족해했다.

 

병원선은 병원에 비유하자면 '1차 진료기관'이다. 수술과 같은 치료는 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섬 주민들의 사정상 육지에서의 수술을 포기하고, 임시적인 치료만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재형 내과의는 “사실 관절염 같은 등골격계 증세의 대부분이 수술이 아니면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다”며 “진통제 처방과 같은 임시방편은 잠시 편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악순환의 반복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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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내과의는 “결국 과잉진료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상담을 하고 통증에 적응하도록 환자를 설득한다”며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병원선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함께 한 병원선은 섬의 주민들에게 '병원'보다 더 따스한 의미의 '희망'이었다. 외딴 섬에 산다는 이유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자신의 건강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하지 못하는 섬의 주민들을 위해, 오늘도 병원선 인천531호는 그들의 아름다운 항해를 계속한다. 병원선의 항해로 좀 더 많은 이들이 건강과 웃음을 찾게 되길 바라본다.

 

보건복지부 대학생 기자 남혁진
apollon_nh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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