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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별 암/대장암

식생활 개선으로 직장암 이긴 의사 김선규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0. 2. 11.

식생활 개선으로 직장암 이긴 의사 김선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바람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크고 작은 질병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종 건강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레이디경향」은 실제로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건강 ‘달인’들을 만나 그들만의 건강관리법을 배워보기로 했다. 불로장생의 비법은 아니더라도 이미 실천해본 이들이 전하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건강관리법은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명심하자, 건강한 삶은 미리 예방하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을.

암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결코 낯선 단어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암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아닌’ 특정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질병으로 생각하고 살아가지만, 암은 국내 전체 사망자 사망 원인 중 10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이다. 그만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주의해야 하는 질병이란 뜻이다.

흔히 암은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다. 암 환자들은 암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일부에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단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암은 그 원인과 경과에 따라 얼마든지 치료 가능한 질병이다. 물론, 암은 처음부터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암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의학적 조치와 생활습관 개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통해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다.

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무절제한 생활이 가져온 암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선규씨(56)는 질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던 중 암 선고를 받았다. 그가 직장암 3기 선고를 받은 것은 1998년, 한창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던 40대 중반의 나이였다. 생명과 건강에 대해서는 뭐든지 다 알고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할 것만 같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에게도 암이 찾아왔다.

암세포가 사람을 가려서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많은 이들이 의사라면 건강관리를 철저히 할 텐데 어쩌다 암에 걸리게 됐냐며 의아해하시는데, 사실 의사들도 자신의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아요. 매일 질병에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면서도 ‘나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죠. 저도 누군가가 이상한 증세가 조금이라도 있다고 말하면 ‘당장 병원에 가라’고 충고하면서 정작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건강검진도 잘 받지 않았어요.”

과도한 음주에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문제였다. 평소 술을 무척 좋아해서 진료가 끝난 저녁마다 매일 술을 마셨고 그것도 새벽까지 과음하는 일이 예사였다. 밤새 술을 마신 뒤 한숨도 자지 않고 진료하러 나갈 때도 있었다. 곱창, 튀김 같은 안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는 과식으로 이어졌고, 좋아하는 고기나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었다. 당연히 운동과도 거리가 멀었던 시절이다.

“식습관이며 생활습관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죠. 몸무게가 105kg까지 나갔을 때도 있었어요. 심각한 비만 환자였어요. 그래도 학창 시절부터 쭉 특별히 아팠던 적도 없고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몸이 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어느 날부턴가 설사가 계속되면서부터였다. 약을 먹으면 조금 가라앉았다가 또 며칠 만에 나타나곤 했다. 처음에는 과음하면 설사를 하기도 하니 ‘술병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설사가 이어지는 것을 지켜본 아내의 강력한 권유로 병원을 찾았다.

“저는 워낙 건강 체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암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진료 일정이 바빠 병원 가는 걸 계속 미뤘는데, 아내가 ‘꼭 가야만 한다’고 우겨서 겨우 검진하러 갔어요. 아는 의사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해서 진료하러 나가기 전 일찍 검진을 받았죠. 그런데 이 선생님이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촬영을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혹이 보이는 것 같대요. 황급히 대학병원에 가서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직장암 3기 판정이 나오더라고요.”

두 눈으로 확인한 대장에는 시뻘건 덩어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구보다 병의 경과나 위험성을 잘 아는지라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머릿속이 멍해지고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천만다행으로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는 크게 퍼지지 않은 상태. 일단 수술부터 받아야 했다. 암 덩어리를 포함해 장을 20cm 정도 잘라내는 수술이 이루어졌다.

자연에서 찾은 여유와 안정
보통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이 이루어지고 나면 항암제 투여와 방사선 치료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결심을 내리고 다른 길을 택했다. 암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의 생활습관과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을 바로잡지 않는 이상, 결과조차 장담할 수 없는 항암 치료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술 후 제 생활을 되돌아봤을 때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생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절제한 내 생활을 바로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다 싶더군요. 빡빡한 삶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결심이 서자 가족과 병원을 뒤로하고 지리산 깊숙한 마을을 찾아 둥지를 틀었다. 빈 텃밭을 일궈 채소를 심어 가꾸고 산을 오르며 나물과 약초를 캤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하염없이 산과 마주하는 날도, 하루 종일 방 안에 누워 있는 날도 있었다. 도시의 소음 대신 새소리를 듣고, 탁한 매연 대신 상쾌한 바람을 마셨다.

“어린 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깨끗한 자연에서 생활하니 처음에는 정말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어요. 일과에 대한 압박감이나 스트레스가 없어지니 ‘이게 사는 거다’ 싶기도 하더라고요.”

지리산 맑은 물을 마시고 기름과 첨가물에 찌든 음식 대신 자연이 키운 제철 음식을 먹다 보니 저절로 건강도 좋아졌다. 긍정적인 마음과 질병 극복에 대한 믿음을 키우기 위해 국선도, 태극권 같은 운동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태극권으로 몸의 흐름을 돌게 하고 낮에는 등산을 하거나 텃밭을 가꿨다.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일어났고, 식사는 규칙적으로 무공해 천연식을 먹었다. 모든 것을 비우고 여유를 끌어안은 지리산 생활은 행복했다. 다만, 직장암으로 수술을 하고 나면 설사가 잦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제외하고는 만족스러웠다.

물론, 암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히 떨쳐진 것은 아니었다. 항암치료까지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온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꼬리를 물었다. 대다수의 암 환자들이 그런 것처럼 김선규씨 또한 ‘나는 건강을 회복하고 괜찮아질 거야’라고 생각했다가, 또 금방 ‘암세포가 전이되거나 재발해서 나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암을 이기는 것은 마음이란 말이 있듯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도 ‘나한테 암이 찾아와서 불행하다’는 생각보다 ‘내가 병을 앓지 않았으면 산에 와서 이렇게 좋은 공기를 마시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생각하려 애썼어요. ‘암을 통해서 삶을 돌아보고 건강한 변화를 맞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요.”

전문가들은 암 환자에게 암 극복을 위해서는 환자 본인이 마음에 품고 있는 불안부터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김선규씨 또한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기에 함께 수술받았던 사람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나, 조금이라도 몸이 아프다고 느껴질 때면 억눌렀던 걱정과 공포가 불쑥 튀어 올랐다.

“사람마다 극복 방법이 다르겠지만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우선이에요. 제가 했던 태극권이나 국선도 같은 운동도 추천할 만하죠. 동작이 느리고 격한 움직임이 없어 수술 후 몸이 회복되지 않아도 안심하고 할 수 있고 특히 마음을 안정시켜주니까요.”

다만, 김선규씨는 자신과 같은 ‘산 속 요양생활’이 누구에게나 좋은 치료법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시골 생활을 해본 적이 있고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산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은 심심해서 일주일도 견디지 못할 수 있다는 것. 오히려 무료한 생활이 스트레스가 되고, 자연생활이 몸에 익지 않으면 불편함 때문에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 무작정 따라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발효식품으로 차린, 병이 달아나는 밥상
산속에서 세 번의 여름을 보낸 뒤, 김선규씨의 몸과 마음은 많이 달라졌다. 암세포는 물론 몸속에 붙어 있던 온갖 질병과 나쁜 덩어리들이 말끔히 떨어져나간 느낌이었다. 산을 내려와 찾은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가 이를 증명했다. 그는 ‘암 재발 징후 없음’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암 투병의 고비라고 하는 5년 생존을 넘어 현재까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김선규씨는 암 발병 이전과는 180° 다른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폭식이나 과식은 절대 하지 않고 식단은 현미밥, 제철 나물무침, 청국장찌개 등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가급적 유기농 식품을 구해 먹고 특히 발효식품을 많이 섭취하고자 한다. 아침은 꼭 챙겨 먹되, 저녁은 양을 많이 줄였다.

“건강에 있어 음식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서 발효식품공학과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어요.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발효식품은 소화도 쉽고 영양이 풍부해 항암 효과도 높을 뿐 아니라 건강에 무척 좋은 음식이에요. 저는 끼니때마다 청국장이나 된장국과 김치를 빼놓지 않고 먹어요. 물론 너무 짜지 않게 간을 해서요.”

주말에는 주로 등산을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스트레칭과 가벼운 체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루하지 않게 누군가와 함께 ‘게임’할 수 있는 테니스도 즐긴다.

술을 자신의 암 발병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 꼽았던 김선규씨. 이제 술은 거의 먹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즐겁게 마시는 건강한 술 한 잔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실이나 복분자주, 막걸리 같은 건 한두 잔 정도 마셔요. 요즘 막걸리 열풍이 불고 있다죠? 이런 술은 몸에 좋은 재료와 효소 등을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적당히 섭취했을 때는 건강음료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술 문화가 ‘끝까지’ 마시는 분위기라 조절을 못하는 경우가 문제죠.”

비만이 만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고 난 뒤, 김선규씨는 병원의 운영 방향도 조금 바꿨다. 비만으로 인해 건강을 해친 환자들이 생활습관을 교정할 수 있도록 치료 개념의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현대인들은 운동량은 적은데 칼로리 섭취는 많아서 쉽게 비만 체질이 될 수 있어요. 음식을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활 자체를 바꿔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죠.”

김선규씨는 2001년부터 한국암환자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들을 위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의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상담도 해주고 있다. 자신의 병원을 찾아오는 암 환자가 있으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아 쉬고 있지만 2010년부터는 정기적으로 활발히 모임을 가져볼까 해요. 몸도 아픈데다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힘들어하는 암 환자들이 많거든요.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정보도 나누는 자리가 필요해요. 그리고 사회에 퍼져 있는 왜곡된 의학 정보가 너무 많다는 생각에 그런 것들을 바로잡는 책을 펴낼 준비하고 있어요. 잘못 알고 있는 정보, 혹은 잘못 믿고 있는 ‘설’들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건강을 해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제 지식과 경험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