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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치료/국내외 암관련 시설

시한부 미국인들에 침뜸은 큰 위안 줄것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0. 2. 4.

시한부 미국인들에 침뜸은 큰 위안 줄것

미 조지아주에서 호스피스병원 건립 추진하는 이건주씨
 

 

 

» 이건주(54) 소망병원 원장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봉사할 때가 됐어요. 100여년 전 미국 선교사가 제중원(세브란스병원 전신)을 세워 우리 국민에게 베풀었던 의료 혜택을, 미국 시골에 호스피스병원을 지어 갚아나갈 겁니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호스피스병원 건립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건주(54·사진) 소망병원 원장은 26일 조지아주 159개 군(카운티) 가운데 적어도 47개의 투자이민 허가지역에 한인 호스피스병원을 세우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조지아주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말기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호스피스병동을 적어도 3년 안에 각 군에 하나씩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이 원장은 의료인 봉사활동 단체인 닥터스호스피스조지아와 함께 뜻있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투자이민(EB-5)을 유치 중이다. 이 단체는 2005년 이 원장 등 7명이 시작해 지금은 조지아 의료인 550명이 호스피스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서 의대 졸업뒤 미국행
동부 첫 한인종합병원 세워
‘회원 의료비 할인제’ 운영

 

“크리스티카운티의 코델을 방문했을 때 농부 출신의 구청장은 동양인을 처음 보는 표정이었어요. 여러 차례 만나 호스피스병원 설립 취지를 설명하며 설득하자 지난번 업무협약(엠오유) 체결 때는 난생 처음 정장 차림으로 비행장까지 마중을 나왔더군요.”

이 원장과 닥터스호스피스조지아의 노력으로 카터스빌에는 미국인과 한인 의사가 합작한 호스피스병원이 문을 열었고, 코델과 호킨스빌에는 이 원장 대학동기 등이 투자이민 형식으로 건립을 추진 중이다.

어렸을 때는 캐나다에서, 의사가 된 뒤로는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해온 이 원장은 “호스피스 활동은 한인들이 평범한 미국인들과 일상 속에서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이것이 진정 미국 주류사회로 나아가는 길이고, 이런 노력 끝에 한인 출신 주지사도 나오고 상하원 의원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난해 뜻밖의 ‘원군’을 만났다. 지인의 소개로 ‘뜸의 황제’ 구당 김남수(95) 선생을 초빙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말기 환자에게 몰핀을 지속적으로 투여하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보아온 그에게 침뜸의 고통 완화 효과는 가물에 감로수였다. 이 원장은 “아흔이 넘은 노인을 미국에 모실 엄두가 나지 않아 직접 찾아가 시장으로 국수를 드시러 가자며 슬쩍 떠보니 흔쾌이 나서시더라”며 “나보다 빨리 걸으시는 데다 안경 없이도 신문을 보는 모습을 보면서 침뜸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40년 경력의 토미 어빙 조지아주 농림부장관은 구당한테서 침뜸을 받고나서 그의 열성적 팬이 됐다. 그를 통해 조지아주시사를 비롯해 정치경제계 거물 인사들이 침뜸 찬미가들이 됐다. “호스피스병원은 우리 전통의술을 미국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이 원장은 말했다.


1980년 캐나다에서 역이민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돌아온 이 원장은 연대 의대에서 졸업한 뒤 캐나다 토론토대학과 미국 예일대에서 내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1994년 다시 4년 동안 암 전문의 공부를 계속 하겠다고 하자 아내는 이혼까지 거론하며 반대를 했다. 아내의 뜻을 따르자 문제가 생겼다. 비자가 만료된 것이다. 미국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보건소 소장을 하면 영주권을 바로 준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지원을 했다. 이 원장이 조지아 애틀랜타에 정착하게 된 이유다.

 

“당시 조지아주 전체에 한인들이 수천명에 불과했어요. 지금은 10만명에 이를 정도로 한인 사회의 규모가 커졌지요.” 이 원장은 2005년 혈액·암 내과, 비뇨기과, 소아과, 부인과 등 13개 진료과를 확보한 종합병원을 세웠다. 설립 캐치프레이즈가 ‘무보험 환자에게 희망을’이다. 미국 동부지역에서는 한인이 세운 최초의 종합병원이다.

최근 이 원장은 병원 설립 당시부터 품어온 또하나의 꿈을 이뤘다. 지난해 11월 회원제 의료비 할인 프로그램인 ‘뉴호프 케어’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4인 가구 기준 월 60달러만 내면 각종 진료비를 50% 이상 깎아준다. 회원들에게는 또 1년에 네차례 각종 건강검진 기회가 주어진다. 미국 가정은 보통 한달에 1천달러 이상의 의료보험료를 지출하다보니 많은 한인들에게 병원 출입은 언감생심이다. “지난해 가을에 남성을 대상으로 한 뇌졸중 검진으로 3명의 환자를 찾아냈어요. 이 분들에게는 제2의 삶을 선사한 셈이죠.” 이번달에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암 검진을 하고 있다. 현재 500여명인 회원을 올해말까지 1만명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이 원장은 또 현지의 에모리존스크릭병원과 한국의 강남세브란스병원, 목포한국병원과 협진 협약을 맺어 한인들에게 값싸고 질 높은 의료 혜택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후속 진료는 미국에서 받는 식이다. 이 원장은 오는 28일 협력병원장들과의 회의를 위해 방한할 예정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으면 미국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값싼 의료보험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병원 직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뜻을 합쳐 일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이런 희망에서 나옵니다.” 이 원장은 고교 시절 김영욱의 공연을 보고 바이올리스트를 꿈꾸었다. 그는 음대 출신인 홍성구 소망병원 홍보팀장 등과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환자들 앞에서 작은 공연을 하는 것이 올 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애틀랜타/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