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神의 손? 수술중 신의 손길 여러번 느꼈죠” |
肝이식 세계 최고 권위자 이승규 박사 |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의 간담도외과 교수 겸 장기이식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이승규 박사를 부르는 수식어는 많다. ‘세계 최고의 칼잡이’ ‘간 이식의 권위자’ ‘베스트 닥터’ ‘세계의 인술 전도사’…. 이 박사는 국제 의료계가 미국의 MD앤더슨 암센터보다 더 주목할 만큼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살아있는 두사람으로부터 동시에 간을 받아 한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을 때 온 세계는 경이로움에 감탄을 연발했다. 이 박사가 이끄는 서울아산병원의 간 이식팀 수술실은 24시간 수술등이 밝혀져 있다. 선진국에서도 80%대에 머무는 간 이식 성공률을 96%로 끌어올린 이 박사팀에 무수히 많은 중증 간질환 환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허벅지에서 인공정맥을 끌어내 간에 연결하는 수술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성공했다. 수술의 성공은 곧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간 이식이라는 것 자체가 드라마틱한 과정이지만, 이 박사 본인이 누구보다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다. 어린 시절 심장이 쭈그러드는 ‘협착성 심낭염’이라는 희귀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간 경험이 그를 의료인의 길로 들어서게 했고, 외과의사의 길로 안내한 스승 민병철 박사와의 만남도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 1980년대 세계 최고의 간 절제 권위자였던 일본의 마구치 교수와 나눈 학문적이고 지적인 교제도 ‘이승규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을 구성한다. 지난 12일 서울아산병원 본관에 자리잡은 연구실에서 만난 이 박사는 무척 수줍어했지만, 형형하면서도 부드러운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악수를 청하자 큰 손이 불쑥 다가왔다. 거구였다. “옛날만 해도 외과의사를 하려면 내 체구 정도는 돼야 했어요. 한창일 때 180㎝ 정도였어요. 먹기도 무지 먹었죠. 보통 고기 3인분은 거뜬히 해치웠습니다. 몇시간씩 이어지는 수술을 하려면 체력이 아주 중요했거든요.” 이 박사는 의사 가운 차림이었고, 목에는 수술용 마스크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여차하면 수술대로 뛰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하는 것이 꽤나 눈이 피로해 보였다. 간 절제나 이식수술은 체내의 여타 기관 절제술과는 달리 미세함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시력을 물었더니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보통 안경 끼고는 수술을 못합니다. 보통 ‘루페’라는 확대경을 쓰고 머리에도 램프를 쓰지요. 장이나 위를 자르는 건 보통 안경을 써도 되는데, 이 일은 굉장히 섬세하기 때문에….” 이 박사는 45세쯤 노안(老眼)이 찾아왔다고 한다. 외과의사가 가진 가장 중요한 신체도구는 손과 눈이다. 이 박사는 “우리 팀의 젊은 선생들도 수술시에는 다 루페를 쓴다”며 눈이 수술을 방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위장 자르는 것은 토목공사고, 간 이식은 전자제품 생산하는 거와 비슷한 거네요.” 느닷없는 질문에 이 교수는 “괜찮은 표현이지만, 그러면 위장 자르는 분들이 기분 나쁠 텐데…”라며 껄껄 웃었다. #1. 2008년 12월. 제6차 세계간암학회가 서울아산병원 주관으로 서울에서 열렸다. 전세계에서 온 800여명의 간 전문의들이 모여 진지하게 논의를 거듭했다. 세계 최고라는 의사들이 한국 간 이식팀의 성과에 박수를 보냈다. 서울아산병원이 개원한 지 20년 만에 이 병원의 간 이식팀이 세계의 중심이 됐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2. 2008년 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간이식학회가 열렸다. 국제 의료진은 당시까지 무려 2000례(例)에 달하는 간 이식수술을 하면서 수술 과정에서 사망자가 1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모임을 함께 했던 의료진과 현지 언론들은 그 행사를 ‘생체 간 이식의 메카가 일본에서 서울로 이동했음을 보여준 학회’라고 전했다. 대한민국의 의료수준을 세계 만방에 알린 이 두 사건의 한가운데에 이 박사가 서 있다. 지금까지 이 박사가 행한 간 이식 건수는 2540례 정도인데, 성공률이 96%에 이른다고 한다. 선진국의 85~86%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요즘도 수술실에 들어가면 긴장되십니까. “긴장하면 안되죠. 어떻게 보면 수술할 때가 가장 릴랙스할 때입니다. 사실 연구실이나 방에 있으면요, 전화도 오고, 찾아오는 분도 많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게 가장 편안한 시간이에요.” ―긴장될 때는 없습니까. “전혀 그럴 수는 없겠죠. 1년에 열댓번 정도는 긴장되는 순간이 있죠.” ―언제가 가장 긴장됩니까. “고난도 수술을 할 때, 어려운 수술을 할 때죠. 지난 8일에도 상당히 어려운 수술이었는데 저도 처음 해보는 거였어요. 새로운 인조혈관을 만들어서 하는 수술인데 녹화를 해서 지금 보고 있었습니다. 일단 잘 된 거 같아 안심하고 있습니다만….” ―2540례의 수술 중에, 물론 매번 최선을 다했겠지만 후회되는 일은 없습니까. “있죠. 역시 실패했을 때죠. 항상 저희한테 제일 디스커리지(위축)되는 건 수술이 기대대로 안될 때죠. 환자분이 기대대로 회복을 못했을 때 그때가 저희한테는 제일 큰 좌절이죠.” ―‘신의 손’에도 실패가 있습니까. 세계 최고의 간 이식 권위자에게 실수는 어떻게 발생하는 겁니까. “환자의 상태가 너무 중증이어서. 예를 들어 수술은 잘됐는데 환자는 돌아가셨다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변명 같겠지만, 실제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수술 중에 시간을 다투는 경우가 있어요. 멀쩡히 건강하게 살다 갑자기 간이 썩어가는 사례도 있는데요. 대표적인 게 A형 간염바이러스나 독버섯, 약재 이런 게 몸과 안 맞을 때 벌어질 수 있어요.” 이박사는 비록 수술 도중 사망하는 이른바 ‘테이블 데스’는 없었다고 해도 앞의 예들이 모두 실패 사례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수술 후에 환자가 예상되는 생존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한다든가, 혹은 회복이 안된다든가 이런 것이 모두 실패라는 것이다. 이 박사는 심어(이식)만 줬다고 다 사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수술 후에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잘 안되어서 악화된다든가 이런 경우도 실패 사례에 속합니다. 전략을 잘못 세운 경우도 있죠. 예를 들어 환자와 기증자 등의 케이스를 면밀히 살펴서 간 이식을 위한 구상을 짜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안됐다 그러면 다 제 실수인 거죠. 결국 제가 무지해서 환자가 돌아가시는 거니까. 철저한 시간관리와 계산을 다 하고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수술에 들어가는데 어떤 때는 갑자기 뇌파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박사가 벌인 이식수술 가운데 실패 건수는 100건 정도 된다. “경험 부족은 결국은 실수를 낳을 확률을 높입니다. 저는 수술을 젊은 의사에게 맡길 때 ‘똑 같은 실수는 결코 하지 마라’고 다짐을 받습니다. 수술할 때는 반드시 참관기를 쓰도록 합니다. 기록을 남기고 연구를 해야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될 수 있으니까요.” ―1년에 수술을 320차례 정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다 선생님의 손길이 닿은 것입니까. “팀이 하는 거지, 저 혼자서는 안되죠. 저희가 매일 오전 7시부터 1시간반 정도 중환자실에 모여 케이스를 정리합니다. 수술하기 전 환자, 수술한 환자, 수술하기 전에 대한 플랜, 수술 후 상태에 대한 점검 등이 회의 주제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제가 다 점검을 해요. 일요일에는 서열 2위인 친구가 하지만요.”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메디컬 드라마의 무대는 대부분 흉부외과입니다. 수술할 때 피가 팍팍 튀고 하는 게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보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만. 흉부외과와 간담도외과, 어느 쪽이 힘들까요.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더 역동적인 것은 심장 수술일 수 있는데, 어느 게 더 드라마틱하냐 하면 전 간 이식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수술 환자하고 이식 환자는 수술의 강도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식을 하는 환자는 이미 몸 상태가 기초부터 다 흔들려 있어요.” 이박사는 하나하나 예를 들어 설명했다. “간 이식 받는 환자의 90% 이상은 간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에서 오래 투병을 하다 옵니다. 간경화 말기가 되면 복수가 차서 배가 산만 하게 돼요. 복수는 계속 늘어나 가슴까지 차게 되죠. 그렇게 만들어진 흉수를 뽑아내는데 그러고도 계속 쌓이면 식도로 들어가 피를 토합니다. 그럼 혈압도 떨어지고 맥박도 빨라져서 환자 심장도 안좋아지죠. 나중에는 폐에도 영향을 미쳐 폐렴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면 수술하기가 곤란해져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또 복수가 흘러다니다 장에서 흡수되기도 하죠. 그럼 올라와서 암모니아 단백질이 간에서 해독이 안되니까 이게 뇌로 가서 뇌가 부어요. 그럼 뇌가 팽창하다 두개골에서 막히니까 내려앉아요. 그럼 숨골을 눌러 즉사하게 됩니다….” 이 박사는 간질환이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문제, 복막염을 잘 일으키게 되는 현상, 콩팥까지 나빠지게 만드는 증상들을 죽 설명해 나갔다. 간신증후군과 간성혼수 등에 대한 얘기도 들려줬다. 이 박사가 “걸어서 수술실에 들어가는 일반 환자하고 간 이식 환자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한 뜻을 알 만했다. 그는 “몸의 상태가 최악일 때 가장 힘들다는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거쳐 사람을 살렸다 하면 그 병원이나 그 의사는 간 이식에서 베스트라는 평가를 듣게 되는 법이다”고 힘을 주었다. ―간 이식은 몇세까지 가능합니까. “제가 간암을 절제했던 분 중 최고령은 82세 할아버지였습니다. 간 이식 최고령은 73세였어요. 원래 65세가 리미트입니다. 심장과 폐가 다 좋다고 해도 나이가 들면 녹이 슬거든요. 장기라는 게 자동차와 똑 같아요. 수술할 때 위험한 순간이 되어서 언덕을 달리다 보면 ‘탁’ 하고 설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건강이 아주 좋으시니까 한 70세까지는 이식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칭호 가운데 무엇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고 묻자 주저없이 ‘외과의사’라고 말했다. “명의요? 좋기는 하지만 좀 그렇습니다. 그렇게 불리는 것을 사양합니다. 이번에 책을 낼 때 출판사와 가장 많이 갈등한 게 책 제목이었습니다. 굳이 ‘명의 이승규’로 한다는 거였어요. 내가 극구 반대했고 결국 ‘외과의사 이승규’로 나오게 됐죠.” ―외과의사는 굉장히 많습니다. 박사님이 명의라고 불리길 싫어해도 사람들은 선생님을 그렇게 부릅니다.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닙니까. “외과의사는 외과의사로 불리는 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제가 가장 즐겨 쓰는 말은 ‘외과의사 이승규’입니다.” ―선생님이 이끄는 팀의 성공률이 유난히 높은 이유는 뭡니까. “저희가 열심히 하기 때문 아닐까요. 하하하….” ―선생님의 수술 성과를 만든 것은 손입니까. 아니면 머리입니까. 혹은 뜨거운 가슴인가요. “주제넘은 것 같지만 외과의가 되려면 손재주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머리에 든 게 있어서 지식이나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좋은 성과를 일굴 수 있죠. 이런 기본이 다 갖춰진다면 남은 것은 자기 일에 대한 욕심, 도전정신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수술 도중 절대자의 도움 같은 경험을 종종 한다”고 털어놨다. “나름대로 그런 경험을 합니다. 수술을 하면서도 절대자랄까 신적 존재랄까, 그런 손길을 여러 번 체험했어요. ‘테이블 데스’가 하나도 없는 것도 어쩌면…. 히포크라테스가 그랬다는군요. ‘진료는 의사가 하지만 치유는 신이 한다’고.” 이 박사는 “히포크라테스가 저보다 훨씬 젊을 때 이런 말을 한 걸 보면 그분이 저보다 훨씬 대단한 것은 분명한가 보다”고 다시 한번 웃었다. 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minski@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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