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東京) 분쿄(文京) 구 도쿄대 혼고(本鄕) 캠퍼스 안에 자리 잡은 도쿄대병원. 이곳은 일본의 최고 수재들이 몰리는 명문대의 부속병원이지만 1960년대 후반 이후 40년 가까이 낡고, 더럽고, 무섭고, 불친절한 병원으로 오명을 떨쳤다.
도쿄대 의학부의 한 교수는 “혹시 내가 쓰러지더라도 도쿄대병원에는 절대 데려가지 말라”고 가족에게 당부했다는 일화까지 남아 있다.
1965년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총리가 퇴원한 이후 2003년경까지는 유명인사의 발길도 끊기다시피 했다.
○환골탈태식 변화
도쿄대병원이 최근 눈부시게 변신하고 있다. 14일 오후 1시경 도쿄대병원 외래진료동. 한 60대 남성이 자동접수기 앞에서 머뭇거리자 푸른 앞치마를 두른 자원봉사자가 부리나케 달려와서 사용법을 설명했다.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한 바닥은 이곳이 “문턱만 밟아도 병이 날 것 같다”는 평가를 받던 그 도쿄대병원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ㅁ’자형 건물의 가운데 공간을 활용한 노천카페와 실내 벽에 가득 걸려 있는 그림은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체국, 은행, 슈퍼마켓, 편의점, 식당, 서점 등 생활편의시설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다.
2004년 이후 ‘1리터의 눈물’ 등 6편의 TV 드라마가 이곳을 무대로 촬영된 것은 도쿄대병원을 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뀌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전근대적 조직 혁파
도쿄대병원의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은 2003년 취임한 나가이 료조(永井良三·순환기내과 교수) 병원장이다.
나가이 병원장은 매달 두 차례씩 예고 없이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손을 제대로 씻었는지까지 점검해 직원들을 긴장시킨다. 개선해야 할 점이 눈에 띄면 휴대전화 메시지로 시시때때 지시를 내린다.
나가이 병원장이 2004년 대학병원의 전근대적인 조직구조를 급진적으로 개편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마무라 도모아키(今村知明·조교수) 기획경영부장은 “일본의 대학병원은 의학부 교수가 전공별로 각 진료과의 과장을 겸임하면서 산하 의국(醫局)의 운영을 좌우하는 게 오랜 관례”라면서 “각 교수가 독립된 하나의 병원장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종전의 병원장은 교수회의 일정을 잡고 교수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뒷바라지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나가이 병원장은 이 의국제를 폐지하고 진료과장의 문호를 교수가 아닌 의사(조수)나 강사까지 넓혀 병원장과 부병원장 등 집행부가 신속하고 종합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환자가 병원의 주인
나가이 병원장이 내건 개혁 캐치프레이즈는 ‘환자 사마(樣) 제일주의’.
사마는 ‘주인님’에서 ‘님’에 해당하는 극존칭. 콧대 높은 도쿄대병원이 ‘환자 사마’라고 부른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 의료계에서는 큰 화제를 낳았다.
물론 명칭만 바뀐 것이 아니다. 도쿄대병원은 종전의 뿌리 깊은 교수할거주의에서는 생각하기 어렵던 환자 중심의 의료체제를 구축했다.
내과부문 11개 진료과의 각 분야에서 전공과 경륜을 적절히 조화시킨 ‘내과종합팀제’를 도입하고 내과부문, 외과부문, 방사선부, 병리부 등에서 의사가 1명씩 참가해 개별 암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법을 결정하는 ‘암 보드(위원회)’를 설치한 것이 그 예.
내과종합팀제 등을 도입한 결과 다른 대학병원에서 2, 3주간 입원해도 병명을 몰라 치료를 받지 못하던 환자들이 도쿄대병원에서는 곧바로 치료를 받는 등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도쿄대병원은 올해 4월부터는 매달 세 차례씩 외국항공사의 고참 스튜어디스 등을 강사로 초청해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인사법에서부터 환자를 대하는 마음자세까지 교육하고 있다.
○잠자는 사자 깨운 법인화
나가이 병원장이 2004년 4월 국립대 법인화 조치를 계기로 처음 개혁안을 내놨을 때 내부에서는 “임상, 교육, 연구를 모두 이류로 만들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성과 앞에 불만은 쏙 들어간 상태다.
병원 운영과 의료의 효율성이 개선되면서 환자의 평균 입원일수는 2002년 26일에서 현재 15일로 줄었다. 더럽고 불친절한 병원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환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외부 구급환자는 배 이상으로, 수술 건수는 1.5배로 증가했다. 연간 신규 입원환자는 1만7000명에서 2만1500명으로 늘었다.
도쿄대병원을 찾기 꺼리던 도쿄대 관계자들의 입원 및 진료 신청도 쇄도하고 있다.
구시야마 히로시(櫛山博) 부원장은 “법인화 당시에는 연간 의료수입을 300억 엔까지 늘리는 데 6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3년 만에 목표를 조기 달성하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구시야마 부원장은 “법인화 이전에는 국가기관이었기 때문에 수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면서 “이제는 잘못하면 병원이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조직원 모두의 의식을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왜 엉망이었을까
150년에 이르는 역사에, 1950년대까지는 각종 심장 및 뇌수술을 최초로 하는 등 일본의 현대임상의학을 개척해 온 도쿄대병원이 부진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 의료전문가들은 도쿄대 분쟁의 후유증과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쿄대 분쟁은 1968년 도쿄대 의대생들이 2년간의 무급연수제도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한 뒤 전 학부 동맹파업, 경찰 투입, 총장-의학부장-대학병원장 사퇴, 입시 중단 등의 엄청난 파장을 낳았던 사태.
도쿄대병원은 이후에도 내부 불상사가 속출하면서 1980년까지 예산을 3개월 단위로 받는 불이익을 당했다. 더구나 1969년 제정된 국가공무원법 때문에 직원을 늘리지 못해 상당수 병상을 늘 비워두다시피 했다.
도쿄대병원이 간신히 재개발 종합계획을 마련한 때는 1987년경. 상환의무가 있는 재정투융자예산으로 1994년 외래진료동, 2001년 입원진료동 등을 완공했으나 법인화 전까지 900억 엔의 빚을 떠안고 있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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