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의 달걀은 며칠 동안이나 상하지 않을까. 일주일이나 열흘이 고작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달걀의 ‘신선함’은 한 달 이상 계속된다. 유통 기한의 기적은 닭의 사육 방식이 이룬 ‘쾌거’다. 날개 한쪽조차 펴기 어려운 좁고 더러운 축사에 갇힌 양계장의 닭들은 스트레스와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항생제와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연명한다. 그런 닭이 낳은 달걀이 항생제 덩어리가 되는 것은 정한 이치. 썩지 않는 달걀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과거와 달리 우유가 쉽게 쉬지 않는다고 느꼈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 상태에서라면 새끼를 위해 소량의 우유를 만들었을 젖소들은 공장식 축사에서 호르몬 주사에 의지해 20∼30마리 분량의 우유를 생산해낸다.
현대 과학이 이뤄낸 눈부신 발전은 식량 생산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이제 ‘굶주림은 분배의 문제’라고 말한다고 해도 이의를 달기 어렵게 됐다. 단위 면적당 곡물의 생산은 대규모 관개 농업과 비료의 혁신, 농약 살포로 과거에 비해 수십 배 이상 늘었고, 단기간에 비대하게 성장하도록 조절된 닭과 돼지, 소 등은 부자의 밥상에나 오를 고기를 전 세계 패스트푸드 체인의 값싼 점심 메뉴로 바꿔놓았다.
그렇다면 풍성해진 밥상은 인류를 건강과 장수의 세계로 안내했는가. 지난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암 발병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고지방 식품으로 인한 심장과 혈관 계통 질환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 2001년 한해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관상동맥 우회 수술과 혈관 재생수술 등을 받기 위해 156억 달러를 지출했다.
대장균 에스케리키아 콜리, 캄필로박터, 살모넬라균 등은 햄버거 한 개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비극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지난 몇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광우병 파동은 또 어떤가. 광우병의 원인에 대한 분석의 와중에 사람들은 그동안 많은 농장 주인들이 경제성 없는 수평아리와 소고기, 뼈 등을 갈아 먹여 소를 육식동물로 만들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모두 무분별한 육식이 가져온 폐해들. 미국 암연구소는 ‘음식, 영양 그리고 암 예방’이란 보고서를 통해 “다양한 채소와 과일, 콩, 최소한으로 가공 처리한 농산물 등으로 구성된 채식 위주 식단을 구성하라”고 권고했고, 미국암협회는 “암 발병률을 낮추려면 육류 섭취량을 줄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영국 의학저널’은 “사람들이 육류를 덜 섭취하고 대신 과일과 채소를 더 많이 먹는다면 연간 수백만 건의 암 발병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객관적’ 목소리는 낙농업계와 육류 제조 회사의 광고와 로비에 막혀 일반인들의 귀에 가닿지 않았다.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은 인간의 식탁이 직면한 오염과 질병 등 절박한 위기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풍요로워진 현대인의 식탁에 대한 비판적 보고서인 셈이다. 그는 책을 통해 질병과 육식의 관계, 채식의 필요성, 현대 축산 문화의 잔혹함, 유전자 변형 식품의 위험성 등을 고발한다.
저자의 특수한 신분이 눈길을 끈다. 그는 다름 아닌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기업 베스킨 로빈스를 만든 어브 로빈스의 아들이다. 그래서 책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아이스크림 속에서 태어났다” 아이스크림 콘 모양의 수영장에서 종종 아이스크림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아이스크림 제국의 작은 황제로 자란 그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꿈에서나 만져볼 부를 버리고 작은 섬으로 아주 가난하지만 충만한 삶을 선택했다. 삼촌은 50대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고, 아버지 어브 로빈스 역시 중증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은 그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켰다. 결국 그는 베스킨 로빈스의 상속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책은 많은 분량을 할애해 현대 목축이 어떻게 동물의 권리를 유린하고, 식탁을 더럽히는지도 설명한다. 농장주들은 피가 덜 밴 흰 고기를 얻기 위해 소의 빈혈을 유도하고, 닭을 좁은 축사에 가둬 심장과 폐에 기름 덩어리가 끼도록 만든다. 닭의 배설물로 닭의 사료를 만들고, 돼지와 닭 뼈 뇌 조각 깃털 등을 짓이겨 가축에게 먹인다. 동물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란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채식주의가 금욕주의는 아니다. 존 로빈스가 유제품까지 먹지 않는 완벽한 채식주의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저자는 일방적으로 “육류는 악이므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부르짖지는 않는다. 심장 질환의 원인인 지방 섭취를 줄이고, 먹이 사슬을 통해 인간의 몸에 축적되는 발암성 물질을 피하기 위해 채식을 권할 뿐이다.
육류의 폐해에 대한 학계 안팎의 논란은 역사가 오래된 것. 생계가 걸린 낙농업계의 반대 논리 역시 뿌리가 깊다. 하지만 채식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가 동원한 논문과 자료는 최소한 저자의 주장이 무리한 억측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저자의 분석은 끼니마다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고, 햄버거를 간식처럼 즐기는 미국인들에게 훨씬 충격적일 것이다. 200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1인당 육류 공급량은 40.3㎏으로 유럽국가 등 선진국(72∼124㎏)에 비해 크게 낮다고 하니 확실히 우리 식단은 아직 건강한 편이다. 하지만 10대들이 서구식 식문화에 급속도로 빠져 들여가는 마당에 10년 후 식탁 풍경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음식혁명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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