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대한 사회적 통념
지금 우리 사회일반의 암에 대한 통념은 어떻습니까? 연속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암 환자는 전부 죽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과 잡지들은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한 뒤에 사망한 암 환자의 기사를 많이 싣고 있는데 이런 보도들은 표면적으로는 당사자들이 암과 투병한 이야기를 담아 독자들에게 용기를 보여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암이란 불가피한 죽음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이야기 도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화제에 오르면 갑자기 말투를 바꾸면서 얼굴을 돌립니다. 그 까닭은 암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암 환자의 질문에 대하여 의학적인 대답보다는 어정쩡한 철학적인 대답을 늘어놓습니다. 어떤 의사는 암 환자의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어느 병원의 통계 재료에 의하면 암 병동에서 암 환자가 간호사에게 도와달라는 벨을 울렸을 때 간호사가 반응하는 시간과 일반 병동에서 일반 환자가 간호사에게 도와달라는 벨을 울렸을 때 간호사가 반응하는 시간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간호사들이 암 환자를 죽을 사람으로 취급하고 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늦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을 요약하면 암에 대한 사회일반의 통념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 째, 암은 죽음과 동의어라는 것입니다. 둘 째, 암은 그것을 제어할 가망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암에 대한 이런 무서운 사회적 통념을 좀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저가 하고 싶은 말은 암은 치명적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치명적이 아닐 수 있는 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기 암이라도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니다.”라는 통념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그 이유를 좀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본인은 말기암 환자가 죽지 않고 오래 동안 살았던 2 사람의 경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진단을 받을 당시 나이가 55세인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분은 이웃집에 살고 있어 병 관계로 자주 묻고 하여 이 분의 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지방 대학병원에서 위암이란 진단을 받고 서울 원자력 병원에서 역시 동일한 진단을 받아 거기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암이 너무 진행되어 암은 손도 대지 못하고 수술을 끝냈습니다. 원자력 병원에서 퇴원한 교감 선생님은 본인의 생명이 1년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남은 생의 마지막 1년을 가족들한테 괴로움을 주지 않을 생각으로 약간의 돈을 마련해서 가족 몰래 가출을 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찾아간 곳은 어느 조그마한 산사가 있는 오두막집이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산사에 있는 스님에게 자기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자기 집으로 우송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필요한 경비를 스님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오두막집에서 죽는 날까지 자연을 벗 삼아 혼자서 살기로 작심하고 산에서 나는 산나물을 반찬 삼아 혼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시간이 남으면 산사에 가서 참선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의사가 시한부로 말해 준 1년이라 세월이 지났는데도 교감 선생님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고 3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하도 이상하여 원자력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을 받았는데 위암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감 선생님은 스님한테 작별 인사를 하고 하산을 하고 자기 집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에 교감 선생님은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갔는데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습니다. 이 교감 선생님의 병의 경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첫 째, 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산속으로 들어 간 것으로 보아 마음을 비웠다고 생각됩니다. 둘 째, 불교라는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마음을 정화시켰습니다. 셋 째, 완전히 무공해의 자연에서 무공해 음식을 먹으면서 육체를 정화시켰습니다. 어쩌면 산나물 자체가 치료제로 작용하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넷 째, 많은 시간을 산나물을 깨려 산등성을 오르내리면서 육체의 에너지를 활성화시켰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정말로 양자의학의 교과서적인 삶을 산 덕분에 말기 암으로부터 회복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저와 가까이 지내던 정년퇴직한 교수님의 처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암에 걸린 분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유교 집안의 종가집 맛 며느님으로 당시 나이는 60세이었습니다. 처음 서울대학병원에서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다시 원자력 병원에 가서 모든 검사를 했는데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아버님 되시는 분이 어차피 죽을 병인데 수술을 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더 못할 짓이라고 말려서 수술은 하지 않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이 집안은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와송(고가 의 기와지붕에서 자라는 풀의 일종이라고 함), 영지버섯 그리고 홍삼 세 가지를 함께 끓여 오차를 만들어 수시로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명심보감을 읽었다고 합니다. 환자는 의사가 귀뜸해 주었던 6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죽이 않았습니다. 5년이 지나고서야 서울대학병원과 원자력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이 분은 그 후 84세에 암이 아닌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분을 통해서도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첫 째 명심보감을 읽으면서 마음을 정화시켰습니다. 둘 째,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인 민속약이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기 암 환자가 살아남았다고 했을 때 의사들의 태도는 어떨까요? 십중팔구는 진단이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기껏 인정한다고 해도 죽지 않은 이유는 단지 기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그 죽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런 말기 암 환자가 왜 죽지 않은지에 관하여 연구를 해야 할 때이라고 봅니다. 다행히 이 방면의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심장혈관외과 의사인 이블린 와셀루스는 자신이 암에 걸려 자연요법으로 극복한 다음,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암을 이긴 400명을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은 내렸습니다. (1)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고를 말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누가 언제 죽을 것이라고 시기를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강한 자기 이미지로 태도를 바꾸었다. (3)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치료 결과에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4)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자신의 치유를 스스로 관리했다. (5)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스스로 개발과 치료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6)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기존의 암 치료법을 거부했으며, 치료약을 거부했다. (7)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외부로부터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자신을 방어했다. (8)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치유의 길로서 자연요법을 택했다. (9)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스트레스를 피했다. (10)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자신에게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11)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어떤 형태이건 간에 운동을 하였다. (12)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자신의 파괴적인 생활습관을 버렸다. (13)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질문을 하고 대답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환자들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자신들을 위한 끈질긴 투사들이었다. (14)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한 가지 약이나 치료법으로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명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다른 요소들과 형태들을 융화 흡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15)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무엇인가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삶의 목적 같은 것을. (16)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새로운 친구 관계를 개발하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다짐하면서. (17)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내적으로 고요함을 지키는 법을 찾아내었고, 유머 감각을 늘 키웠다. (18)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어떤 사람은 자연과 음악을, 또 어떤 사람은 식이 보조제 등을 치유의 일부로 썼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모두 대체의료만을 사용하였다. (19) 암을 이긴 사람들은 모두는 영적 활동과 사랑을 통한 치유를 추구했다. 모두 각자 자기 나름의 방법대로.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노에틱 사이언스(Noetic Science)라는 연구소는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남은 3,000여 명의 자연적인 치유 사례를 수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말기 암 환자가 살아남는 수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암에 대한 무서운 통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는 암 환자에게는 얼마나 나쁜 일이 되겠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1백 마리째의 원숭이 현상”이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규슈 미야자키현 사치시마 섬에 사는 야생 원숭이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원숭이 무리를 연구하고 있던 일본인 과학자가 원숭이의 기호식물인 고구마를 해안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러나 모래가 묻어서 먹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암원숭이가 고구마를 흐르는 강물에 씻는 것을 착안해 냈습니다. 다른 원숭이들도 그 수법을 알아차려 금세 많은 원숭이들이 똑같이 고구마를 씻어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1백 마리째의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는 것을 배웠을 때 그 섬에 있는 모든 원숭이들이 똑 같은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습성은 놀랍게도 자연의 장벽을 뛰어넘어 다른 섬의 원숭이나 혼슈의 다카사키 산에 있던 무리들도 똑 같이 고구마를 씻어 먹는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2003년 미내사1) 주최 국제 신과학 심포지움에서 영국의 생물학자 루버트 쉘드레이크는 “형태형성장”에 관한 여러 가지 실험을 보여주면서 “의식의 장”에 대한 생생한 강의를 한 바 있습니다.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암에 대한 나쁜 쪽으로 치우친 “의식의 장”은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말기 암 환자를 나쁜 쪽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말기 암도 살 수 있다”는 좋은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가져주기 바랍니다. 그래서 제발 이 좋은 마음을 향한 “1백 마리째 원숭이 현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강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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