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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암정보

[스크랩] 암지식의 함정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08. 5. 11.


한 해 동안 잘 팔린 소설을 보면 그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2000년에 가장 많이 팔린 소석 10권을 보면 조창인의 『가시고기』,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이 들어 있다. 흔히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타이밍, 타깃, 타이틀이라는 ‘3T'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위에서 열거한 소설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타이밍이 아닐까 싶다. 이들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암에 걸려 죽는다. 실제로 2000년의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렸고 암에 걸린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었다.

 

1960년대에도 미국의 작가 에릭 시갈의 소설 『러브 스토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하나였다. 1970년 아서 힐러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더욱 인기를 끌었다. 명문가의 부잣집 아들이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만 여자가 혈액암인 백혈병에 걸려 숨을 거둔다는 줄거리이다.


만약 『러브 스토리』나 『가시고기』, 『국화꽃 향기』등의 주인공들이 암에 걸려 죽지 않는 내용이라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내가 보기에 에이즈에 걸려 죽었거나 문둔병에 걸려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면 별로 인기 없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시시대는 과학과 문명의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암에 많이 걸리고 암에 걸려들면 죽을 수박에 없다는 공포감 속에 놓여 있다.


미국에서는 암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1971년 ‘암 퇴치법’을 제정하고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십여 년간 250억 달러가 넘는 연구비를 쏟아 부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인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암에 걸리고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이 암으로 죽을 것이라는 통계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미국인과 같은 음식을 먹고 미국인과 같은 주거 환경에서 살고 미국인과 같은 의식을 갖다 보니 그들처럼 암에 잘 걸리고 그들처럼 암으로 죽을 확률이 높아졌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지식을 쌓고 돈을 버는데 소득이 높아질수록, 그리고 지식이 많이 쌓일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또 우리의 지식은 부정적인 것이 많고 그 부정적인 지식이 부정적인 가치관을 낳고 있다. 그래서 ‘암에 걸리면 반드시 죽는다’는 지식의 함정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암에 관한 한 식자우환(識字憂患)을 넘어 목숨까지 잃는 식자사망(識字死亡)이 되었다. 즉, 암에 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암 선고를 받고나면 암세포를 앞질러 공포심으로 먼저 죽는 것이다.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위험을 실제 상황보다 훨씬 더 무섭게 느낀다. 그리고 이 증폭된 공포감이 죽음을 가져올 수도 있다. 실제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의 작가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 한 선원이 실수로 냉동 컨테이너에 갇혀 있다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니 그는 얼어 죽은 게 아니라 스스로 춥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컨테이너 벽에 유리조각으로 자기가 느낀 고통을 기록해 놓았다. 그는 손과 발이 시시각각 얼어붙는 느낌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다른 선원들이 그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런데 선원들은 깜짝 놀랐다. 냉동 컨테이너 속은 별로 춥지 않았다. 그들은 냉동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 선원은 스스로 춥다고 생각했고 그 확신이 그를 죽였다.”


공포심도 잡념의 산물


혈기왕성한 스물다섯 살에 뇌암, 폐암, 고환암 등 전신암에 걸린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이 암과 싸워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한 뒤, 주치의에게 물었다.


“내가 살아날 확률이 절반은 넘었지요?”

주치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럼 30퍼센트는 되었나요?”

여전히 의사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10퍼센트도 안 됐단 말인가요?”

주치의는 말했다.

“3퍼센트 미만이었습니다.”

 

살 확률이 3퍼센트 미만이었던 그가 재기에 성공하여 다시 세계 챔피언이 된 것은 오로지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자전거를 열심히 탔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게 죽음보다 두려웠던 그는 암 선고를 받자마자 좌절하고 의기소침해지고 모든 것으로부터 은둔하는 다른 암 환자들과 달리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반드시 완쾌해서 사이클 트랙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신념만 갖고 있어서는 부족하다. 신념은 행동과 함께 가야 한다. 기적은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신념과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암스트롱은 자전거 페달을 밟을 힘만 있으면 쉬지 않고 자전거를 탔다.


아무런 생각 없이 심심풀이로 자전거를 탄 것도 아니고 죽을까 살까 하고 걱정하면서 탄 것도 아니다. 목숨을 걸고 자전가 페달을 밟았다. 적어도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자전거 타기에 집중하자 죽음의 공포로 긴장하고 있던 그의 몸이 이완되기 시작했다.


암의 주범인 긴장감이 집중력으로 이완된 것이다. 말하자면 랜스 암스트롱에게 자전거를 타는 것은 ‘자전거 선禪'이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동물은 지식의 공포심은 없고 신념의 기적을 일으킬 수도 없다. 인간의 정신력은 지구상의 어떤 동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살 확률이 50퍼센트인 사람이 지식으로 얻은 죽음의 공포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지만 랜스 암스트롱의 경우처럼 3퍼센트 미만인 사람들이 신념의 기적을 일으켜 건강을 되찾는 경우는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지식의 공포로 살 수 있는 생명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신념의 기적으로 죽을 목숨을 살릴 것인가. 선택의 열쇠는 각자의 마음에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암이란 병이 없다면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독일의 통계학 교수인 발터 크래머와 괴츠 트랭클러가 공저로 펴낸 『상식의 오류사전』을 보면, 호흡기 질병이나 소화기 질병이 모두 없어지면 7개월, 교통사고는 5개월 십장질환은 7년이다. 많은 사람들이 암만 없다면 훨씬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암은 고작 3년 미만이다.


공포심은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로 잡념의 산물이다. 노동을 하든 기도를 하든, 암벽을 등반하거나 걸음을 걷든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든 어느 것이든 제대로 집중을 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공포심이 사라진다.


낚시는 어떨까. 양어장에 쭈그리고 앉아 손바닥만한 물고기를 잡는 것은 멍청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70대의 산티아고 노인은 조각배에 앉아 덩치가 고래만한 다랑어와 사투를 벌인다. 이것은 집중력이 없으면 안 된다. 이처럼 목숨을 건 낚시질이래야 ‘낚시 선禪’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길 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2에서 발췌했습니다.>

출처 : 루돌프브루스
글쓴이 : 라이프 코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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