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클립아트코리아
2018년 11월 23일, 정부가 대마를 합법화했다. 대마 성분 약이 꼭 필요한 환자를 위해서다. 난치성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의 엄마이자, 의사인 황주연씨 사연이 보도된 게 합법화 기폭제였다. 황주연씨의 아이는 약물치료, 식이요법 그리고 뇌수술까지 했지만 계속 발작했다. 황주연씨는 의사인 남편과 치료 방법을 찾다가, 의료용 대마를 알게 됐고 해외 직구로 '칸나비디올(CBD) 오일'을 구매했다. CBD는 중독성 없이 약리 효과를 내 의료용으로 활용되는 대마 성분이다. 캐나다 등에서는 CBD 오일을 편의점에서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다. 아이는 좋아졌다. 뇌파가 안정됐다. 황주연씨가 두 번째 해외 직구를 했을 때, 세관에 적발됐다. 검찰 조사를 받았고, 구입한 약품을 압수당했다. 황주연씨처럼 CBD 오일을 해외 직구해 형사 처벌받은 뇌전증 환자 부모들의 사연이 80여 건 알려지면서, 의료용 대마 합법화에 속도가 붙었다.
이후 6년 가까이 지났다. 기자는 어릴 때 뇌전증을 진단받고 현재 의료용 대마약을 복용하고 있는 A양(22)의 어머니를 만났다. 이제는 의료용 대마 약을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글쎄요"라고 답했다.
◇의료용 대마 활용 여전히 힘들어
A양은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이라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다.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은 전체 소아 뇌전증의 1~5%로, 여러 유형의 발작이 나타나고 치료 예후는 안 좋다. A양은 안 받아 본 치료가 없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약물은 물론이고, 뇌수술과 케톤식 식이요법도 했다. 발작을 줄이려고 미주신경자극기도 가슴에 넣었다. A양은 좋아지지 않았다. 한 달에 스물여덟 번의 발작을 견뎌야 했다. A양 어머니는 "주치의는 적극적으로 모든 방법을 동원했기 때문에 아이가 이 정도인 거라고 하더라"라며 "지난 2021년부터 주치의의 권유로 의료용 대마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에피디올렉스./사진=GW파마슈티컬스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의료용 대마 뇌전증 약은 '에피디올렉스' 하나다. CBD 성분만 들어갔다. 환자가 이 약을 구매하려면 ▲환자 취급 승인 신청서 ▲진단서(의약품명·1회 투약량·1일 투약횟수·총 투약일수·용법 등 명시) ▲진료 기록 ▲국내 대체 치료 수단이 없다고 판단한 의사의 의학적 소견서 등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해야 한다. 서류 심사가 통과되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의약품을 받을 수 있다.
얼핏 봐도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A양 어머니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A양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A양 어머니는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며 "약을 먹자마자 다음날 바로 발작이 멎었다"고 했다. 딱 7개월 평화로웠다. A양 어머니는 "약을 쓴 지 7개월이 지난 후 약한 발작이 다시 나타났는데, 그 때문에 건강보험 급여가 끊겼다"고 했다.
에피디올렉스는 고가의 약이다. 3차 협상을 거치고도, 1병당 109만 6947원이다. 처방량은 환자 체중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 30kg 이상인 환자는 한 달에 두 병 이상이 필요하다. 일 년에 약값만 약 2500만원이 든다. 2021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됐고, 한 달 22만 원 정도에 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뇌전증 중에서도 레녹스가스토증후군과 드라벳증후군 환자만 건보 급여가 적용된다. 드라벳증후군도 전체 소아 난치성 뇌전증의 약 10%로 희소하고, 난치성이다. 또 에피디올렉스를 사용하기 전 다섯 가지 이상의 다른 약물을 썼을 때 효과가 없어야 한다. 에피디올렉스를 투여한 후에는 증상이 50% 이상 완화돼야 한다.
얼마나 완화됐는지 평가하는 기준은 오로지 발작 '빈도'다. A양 어머니는 "발작 횟수는 아이가 피곤하거나 월경 등으로 호르몬 변화가 생기면 쉽게 늘어나는데, 횟수로 평가한다는 건 비합리적"이라며 "약효가 커, 포기하지 못하고 원가로 약을 구매하기로 했다"고 했다. 한국뇌전증협회 관계자는 "발작을 빈도뿐 아니라 강도, 시간 등으로도 평가해야 한다"며 "발작을 5분 하던 환자가 약을 먹고 1분 한다면, 이것도 완화된 것인데 단지 빈도가 줄지 않았다고 건강 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기존 약들로 50% 완화되는 환자는 에피디올렉스로 발작이 없어질 수도 있는데, 아예 처방 받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고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급여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요청이 올 때마다 성심껏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허가된 대마 성분 약, 활용 안되고 있어
A양 어머니는 "글쎄요"뒤에 "아직도 매우 많은 뇌전증 환자가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뇌전증협회 관계자는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가 매우 다양한데, 이게 없어지려면 법이 바뀌어야 한다"며 "현재는 약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개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에서 대마 재배는 연구 목적으로만 가능하다. 에피디올렉스 제네릭(복제약) 개발을 목표로 연구하는 국내 제약사가 있지만, 국내에서 시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해당 제품이 나오면 에피디올렉스 3분의 1 수준으로 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뇌전증협회 관계자는 "효과 없는 CBD 오일이 판매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고 했다. 국내에서 대마의 씨(헴프씨드), 뿌리, 성숙한 줄기 등은 마약류로 분류하지 않는다. 생리 활성 물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부위를 활용해 CBD 함량이 매우 적은 제품을 'CBD 오일', '의료용 대마 오일' 등으로 판매하고 있다. 당연히 CBD의 효능을 이 제품으로는 볼 수 없다.
의료용 대마는 뇌전증 치료 외에도 다양한 질환에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에피디올렉스처럼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대마 성분 의약품으로 마리놀, 사티벡스, 카네메스, 세사멧 등이 있다. 항암 치료를 받은 후 구토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마리놀·세사멧·카네메스 등을 사용할 수 있고, 다발성경화증 환자는 사티벡스를 복용하면 경련이 완화한다. 하지만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공급한 의약품 정보를 확인해 보니, 올해 유통된 대마 성분 의약품은 에피디올렉스가 유일했다. 국내 대마 시장이 매우 작은 게 미친 영향이 크다. 암 환자를 치료하는 한 전문의는 “이런 약을 사용할 수 있는 지도 몰랐다”며 “알았어도 많이 사용되지 않는 약이다보니 후순위로 고려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 의료용 대마 규제는?
의료용 대마는 전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합법화됐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의료 목적에 한해 대마 합법화를 추진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을 고려해, 안전하게 단계적으로 법령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각 국가는 어떤 규제 내에서 관리하고 있을까?
▶캐나다=2001년 의료용 대마초를, 2018년 기호용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만 18세 이상은 누구나 30g 이하의 대마초를 소지할 수 있다. 대마초 1g당 10% 세율을 부과해, 새로운 세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만, 2021년 조사 결과 비의료적인 목적으로 대마를 투약한 사람의 절반은 불법 업자를 통해 대마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미국에서는 THC(향정신성 효과를 내는 성분)가 다량 함유된 마리화나는 'Schedule I'(1등급)으로 두고 LSD, 엑스터시 등처럼 의료용 사용을 금하고 있다. 최근 마리화나를 1등급에서 3등급으로 낮추는 규칙 제정 절차에 돌입했다. CBD는 'Schedule V'(5등급)으로, 개인이 활용할 수 있다. 38개 주 등에서는 연방법을 따르지 않고, 의료 목적으로 마리화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일부는 기호용으로도 인정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세금 충당과 술·담배 소비량의 감소로 추정된다. 워싱턴주, 콜로라도주 등은 총 세금의 1~2%가 대마 시장에서 충당된다. 다만,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조사 결과, 대마를 합법화한 주에서 청소년 대마 흡연자가 늘었고, 청년층 자살 비율이 증가했다는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
▶독일=2017년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했다. 다른 치료가 가능한 중증 환자도 의사 처방으로 의료용 대마를 사용할 수 있다. 2019년까지는 수입에 의존하다가, 이후부터 대마 재배를 허용했다. 의료용 대마에 대한 대중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해, 지난 4월부터 기호용 대마초까지 합법화됐다.
▶네덜란드=네덜란드는 1976년부터 대마초 사용이 합법이었다. 의료용 대마의 수요가 크게 증가해 2020년 의료용 대마 생산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의료용 대마 품질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 표준화, 제품 일관성 보장, 제품 추적 시스템 도입 등의 품질 관리 규제를 강화했다.
▶이탈리아=2013년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했다. 수요를 충족하면서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에서 의료용 대마초 재배, 가공, 유통을 감독하고 있다. 대마 식물을 재배할 회사를 공모해, 선정된 회사는 피렌체 군 화학·제약 공장에서 국가 감시 하에 대마를 재배할 수 있게 한다. 국가에서 의료용 대마 기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개발에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일본=일본은 대마 활용에 보수적인 국가다. 지난 2019년 사티벡스 사용을 승인했지만, 대마 제품 소지, 수입·출 등을 완전 금지했다. 다만 지난해 12월 논의 끝에 CBD 성분에 한해 '대마 성분 의약품' 사용이 합법화됐다.
▶중국=중국도 대마 산업을 매우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다만 THC 0.3% 미만 종은 재배가 가능하다. 원난성과 헤이룽장성에서 특별 허가를 받은 농가는 대마초를 경작할 수 있는데, 두 지역이 전 세계 합법적인 대마초 경작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THC 0.3% 미만 종을 재배하기 위해 중국 연구기관에서는 오랜 시간 의료용·군용 대마 품종을 개발했다. 세계 지적재산권기구에 따르면 대마와 관련된 세계 특허 중 절반 이상을 중국이 갖고 있다.
▶태국=동남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2018년 의료용 대마를, 2022년 기호용까지 합법화했다. 각종 부작용이 야기되면서 다시 대마를 마약으로 분류하고 의료용 대마만 합법화하는 조처를 취했다.
그래픽=김남희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11/05/20241105008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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