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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게시판

스크랩 “내가 알던 세상과 단절하는 것, 단약에 그나마 가까워지는 길” [마약, 손절의 길]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4. 10. 18.

지난 2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에서 만난 김민준씨./사진=오상훈 기자

마약 관련 사건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마약을 구해 시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은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가 무심코 건넨 약물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약에 빠진 사람들 중 절반은 평생 벗어 나오지 못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 가량은 약을 끊으려고 발버둥 친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만난 김민준(가명)씨는 단약 3년차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드·가스로 시작, 3년 만에 필로폰까지
올해 49세인 김민준씨는 14세 때 처음 마약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마약에 중독됐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시작은 본드와 가스였다. 그러다 ‘러미날’로 넘어갔다. 김씨는 “인천에서 체육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운동을 하니까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든 날이 많았다”며 “러미날을 쓰니 통증이 잘 조절돼, 한 달에 이틀 정도는 운동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을 만들어 온종일 약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17세 때 ‘염산날부핀’이라는 환각제를 접했다. 1회용 주사기로 정맥을 통해 주입한 첫 약물이었다. 어느 날 선배가 “정말 센 것”이라며 가져온 약물을 대수롭지 않게 주사기에 넣고 몸에 주입했다. 필로폰이었다. 그렇게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넜다. 김씨의 머리에는 ‘참 쉽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는 “주사기를 사용한 경험이 있으니 어떤 약물이든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며 “이걸로 삶이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 외환 위기(IMF)가 찾아왔다. 운동에 이렇다 할 재능이 없었던 그는 도피하듯 입대를 선택했다. 군대에서는 당연히 마약을 할 수 없었다.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딸이 생긴 것도 그 시기였다.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딸을 낳았다. 남은 군 생활을 마저 하다가 전역했다.

그는 전역과 동시에 가족들에게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말하고 남대문으로 향했다. 마약을 팔기 위해서였다. 마약이 어떤 식으로 유통되는지 대충 알고 있어서였다. 김민준씨는 “그때는 ‘어디 가서 취직을 하겠어’라는 마음이 컸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돌이켜보니, 약물과 가까워지고자 나 좋자고 갔던 거다”라고 말했다. 남대문에서 마약을 팔던 그는 사법기관에 적발돼 처음으로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러미날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2003년경의 일이다. 그로 인해 교도소에서 4년 가까이 징역을 살았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앞으로 약물 판매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약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 ‘약물 중독’이라는 사실, 3년 전에야 깨달아
출소 후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보려 노력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공장에 취직도 했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다시 마약이 생각났다고 한다. 김씨는 “문제를 회피하고 스스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알고 있다 보니, 아무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또 마약을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 이후부터 그는 ‘마약을 구하기 위해’ 살았다. 용접공, 병원 보호사 등으로 잠깐씩 일하면서 벌어놓은 돈 대부분을 약을 구매하거나 판매상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물을 사는 데 사용했다. 마약을 구입하기 위해 한겨울에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 적도 많았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하루에 두 번 왕복하는 일도 있었다. 그 사이 13년 간의 결혼 생활이 끝이 났다. 그 사이에 그는 우울증을 얻었고, 알코올 중독으로 담낭 제거술을 받기도 했다.

그가 스스로 마약에 중독됐다는 걸 인정한 시기는 비교적 최근이다. 2019년 경, 딸이 결혼할 거란 소식을 들었다. 딸의 결혼식만큼은 맑은 정신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 생애 처음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로 했다. 김민준씨는 “이전에는 ‘나는 중독자니까 재발해도 괜찮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약을 끊을 수 있다’는 식의 합리화만 했는데, 딸의 결혼 소식을 듣고는 생각이 바뀌었다”며 “폐쇄병동에 입원한 뒤부터는 의사 등 전문가들이 시키는대로만 했다”고 말했다. 비로소 약물에 항복한 거다. ‘혼자는 안 된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야지만 진짜 단약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폐쇄병동에 1년 간 입원했던 덕분에 딸의 결혼식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전에 약물을 복용했던 사실이 적발되면서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2021년 5월에 출소한 뒤에도 단약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휴대전화에 등록돼 있던 전화번호의 80% 이상을 지웠다. 또 정기적으로 마약퇴치운동본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1년 전부터는 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3년 간 단약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삶에서 최장 기간의 단약이다.


◇김민준씨와의 대화
-어떻게 지내고 있나?
“3년 동안 한 거라고는 집, 마약퇴치운동본부, 병원을 왔다 갔다 한 게 전부다. 아침에 일어나면 인천의 집에서 서울에 있는 마퇴본부로 이동해 한 발자국도 안 나간다. 1주일에 한 번씩 교육이나 자조모임에 참여한다. 진료가 있는 날에는 인천참사랑병원을 방문한다. 최대한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몇 없긴 하지만 주변에 10년 이상 단약한 사람들을 보면, 모두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생활을 견뎌냈더라. 그들을 따라하고 있다.”

-지난 3년, 단약하는 동안 위기는 없었나?
“얼마 전 명절 때,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교도소에도 같이 갔고 징역도 대신 가자고 말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그 친구 목소리를 듣는 순간 3년간의 노력은 온데간데없고 둘이서 약물을 사용했던 기억들이 막 스쳐 지나갔다. 그 전화도 마퇴본부에서 받았는데 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다시 마약에 손을 댔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마퇴본부는 가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건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장소다. 이 관계가 나를 잡아주는 것 같다. 이따금씩 마약 생각이 난다. 다행인 것은 그 주기가 점점 길어지는 것 같기는 하다.”

-중독자로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건 뭔가?
“셀 수도 없다. 하나를 꼽으라면 가족들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거다. 마약을 구하는 데에는 수 억원 이상 썼지만 모은 돈은 하나도 없었고 가족에게 해준 것도 없었다. 내가 마약하는 게 주변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니라고만 여겼다. 가족들이 30년이라는 세월을 나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길 정도로 처참하게 살아왔는데, 그걸 알지 못했다는 게 새삼 충격이었다. 얼마 전, 딸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선물을 해줬다. 영양제였는데 5만원도 안 하더라.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아버지, 어머니께 처음으로 밥 한 끼를 사드렸다. 역시 5만원도 안 됐다. 스스로가 비참한 기분이 들 정도로 죄스러웠다.”

-마약 중독자들에게 조언한다면?
“마약을 건네는 이들은 하나같이 ‘너니까 특별히 주는 거다’라는 말을 한다. 수많은 중독자들을 만나봤지만 부모나 자식한테 약을 건네는 사람은 없다. 정말 특별해서 주는 게 아닌, 마약에 중독시켜 팔기 위해 건네는 것이었다는 걸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아라.”

-단약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혼자 끊을 수 있다는 생각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중독자들은 고민을 할 때에도 마약에 손을 댄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치료가 될 지 안 될 지 고민하는 것이다. 올바른 답이 나올 리가 없다. 그냥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앞뒤 재지 말고 바로 병원에 가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강제로라도 3개월 이상 몸에 약이 안 들어오면 올바른 생각이 조금씩 돌아온다.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도 버리는 게 좋다. 같이 회복하는 사람들하고 하는 얘기인데, 하나같이 약물을 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약물을 구하려고 했던 노력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스스로 약을 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조언하면 내가 마치 단약에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말 도 안 되는 소리다. 30년 가까이 마약을 했는데 3년 끊었다고 단약 성공이라고 절대 볼 수 없다. 평생 도움을 받고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공부를 하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다. 단지 단약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중독과 관련된 부분에서 내가 경험했던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목표는 아니더라도 여기서 공부해서 자격증을 딴다면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상담 같은 것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10/15/20241015021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