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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암환자를 위한 작은정보

스크랩 [아미랑] 회복으로 향하는 징검다리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4. 9. 8.

<암이 예술을 만나면>
 
김태은 교수가 그린 그림.
저는 병원에서 환자분들과 미술치료를 할 때 존엄치료를 기반으로 한 ‘자서전 만들기’를 진행하곤 합니다. 존엄치료는 캐나다 마니토바대 정신과 교수인 초키노브에 의해서 개발돼 임종기 암 환자에게 인생을 되돌아보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분명히 하며 소중한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해주기를 바라는지를 이야기할 기회를 제공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환자의 통증을 완화시키고 삶의 질을 높여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삶의 의미, 목적, 그리고 존엄감을 강화합니다. 특히 환자 가족의 삶의 질이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저는 굳이 임종기 환자가 아니어도 암을 진단 받은 이후 적극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들께 이 작업을 진행해보곤 합니다. 많은 환자분들은 암 진단이라는 사건 이후에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바라보는 과정을 걷게 됩니다. 존엄치료의 과정을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속을 썩여서 미워하기만 했던 남편이 이제는 나의 간병인이 돼주어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복잡한 마음, 돈이 없어서 대학 공부도 포기시키고 일찍 취직하게 했던 딸이 지금 환자의 치료비를 다 부담하는 것에 대한 고맙다고 말하기도 미안한 마음, 드디어 집을 장만하고 이사했는데 아직 다 짐도 다 풀지 않은 시점에서 암을 진단 받아 하늘이 원망스러운 마음….

이런 감정을 상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슴을 치기도 하고 때론 추억을 떠올리며 달콤한 미소를 짓기도 하는 과정에서, 환자분들은 모두 비슷한 말씀을 합니다. “선생님, 제 삶이 드라마 같지 않나요?”

그러면 저는 삶 속 어려움을 씩씩하고 용감하게 극복했던 경험, 인내와 끈기로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기억을 더듬어보게 합니다. 그 기억은 항암 치료를 받는 지금 힘든 과정에 분명히 자양분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더 이상 환자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희망이 담긴 이미지를 그려 선물하곤 합니다. 그 선물을 자서전의 책 표지로 선택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때 환자분들께서 정말 많이 고르시는 이미지는 ‘징검다리’입니다.

징검다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아마도 물가를 건너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것이며, 출발한 장소와 도착할 장소의 환경은 서로 다른 면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그리는 징검다리는 분명히 회복과 건강으로 연결되는 다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치료 중인 환자분들이 계시다면 징검다리 저 건너편에서 우리를 맞아줄 회복과 건강의 장소를 한 번 그려보세요. 그림을 직접 그릴 힘이 없으시다면 잠시 눈을 감고 마음속에 징검다리를 건너 회복의 장소로 가는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여러분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건강한 몸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징검다리를 건너느라 아슬아슬할 때도 있겠지만, 용기를 내셔야 합니다. 용기를 내 건너서 도착한 곳에서는 치료받으며 고생스러웠던 날들을 보상해줄 아름답고 풍요로운 무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멈추지 않고 걸음을 내딛는 여러분을 제가 진심을 다해 응원합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9/03/2024090301776.html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