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혁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도로 위와 차량 안에는 무수히 많은 CCTV가 있다. 마찬가지로 수술실에서도 각종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혹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CCTV를 설치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교통사고와 의료사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교통사고의 경우 단지 도로위에 CCTV를 다는 것만으로도 예방효과가 있으며, 차량안의 CCTV는 교통사고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하지만 의료사고와 관련해서도 도로 위 CCTV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의료사고는 교통사고와 다르다
일단 교통사고는 건강한 사람이 자동차라는 기계에 의지하여 움직이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고, 의료사고는 아픈 사람을 건강한 상태로 돌리려는 과정에서 원하지 않은 악결과(惡結果)가 발생하는 것이다.
도로 위 CCTV의 경우, 운전자를 조심스럽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사고는 덜 생기게 된다. 한편 수술실에 CCTV로 의료진을 조심스럽게 만드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과정은 단지 안전운전처럼 조심만 한다고 환자가 더 잘 치료가 되거나 의료사고가 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결과가 나온 이후의 관계자의 태도도 다르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시시비비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CCTV 영상만 가지고도 합리적 사고에 기반하여 비교적 서로 합일되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의료사고는 사뭇 다르다.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사고 외에 다른 영역이 존재하고 이는 이성적 영역이 아니다. 즉, 의료사고를 중재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판단 이상의 해법이 필요하다.
10여 년 전 모 의료원 응급실에서 진료과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자정 무렵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20세 대학생이 고층에서 떨어져 사망한 채로 119에 실려 왔다. 타지에서 유학 온 학생이라서 고인의 보호자는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응급실에 도착하였다.
이미 사망한 자신의 딸을 보면서 망연자실했고, 우리 의료진에게 심폐소생술을 해 달라고 절규했다. 이미 사망한 고인을 영안실로 모셔야 함에도 마치 실성한 듯한 고인의 어머님에게 누구도 그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그 어머니는 맨발로 응급실 이곳저곳을 방황하며 울다가, 고인과 함께 있었던 대학선배들에게 갑자기 다가가 화를 내기도 하였고, 이미 사망한 고인 쪽으로 내 손을 잡아 강제로 끌고 가려고도 했다.
이렇듯 절규하는 어머님에게 짜증을 내거나 탓하는 의료진은 당연히 없었고, 심지어 그 모습에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문득 사망한 지 여러 시간이 지났음에도 ‘심폐소생술을 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려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적으로 보이지만 첨예한 수술실
수술실은 정적으로 보이나 더욱 첨예하다. 특히 시간을 조금만 지체해도 사망에 이를 정도로 중한 상황 즉, 수술방에 들어가 테이블 위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나올 가능성이 1%도 안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보호자는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의료진에게 그저 최선만 다 해 주라고 말하고 수술동의서에 사인도 하지만, 그 뜻이 결코 99% 사망할 것이라는 것을 온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기에, 수술 이후의 악결과에 대해서 의료진 앞에서 절규하고 원망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결코 보호자가 이상한 사람이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병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인간은 예견된 죽음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예측했더라도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인 듯 하다. 그래서, 교통사고와는 달리 일단 의료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그 책임소재 여부나 예견된 악결과였다고 하더라도 보호자를 위로하고 유감을 표하는 것이 의료진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렇듯 교통사고와 의료사고는 원치 않는 사고발생이라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예방이나 사고발생 때 해법은 상당히 다르다.
◇CCTV 강제화가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위중한 상황에서 보호자가 온전히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수술실에서 의료행위는 다른 공간에서의 의료행위보다 더욱 긴장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란 영화에서도 보면 주인공이 손가락을 다쳤을 때 주위 동료들이 아무도 수술해 주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아무리 주인공이 의사이고 극악한 난이도의 수술로 실패해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호소했으나, 막상 수술 후 악결과에 대한 상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수술실에 CCTV를 강제로 달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수술 성공율 1%의 가능성에 동의하고 수술했더라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 수술이 끝난 후 보호자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싶어지게 될 것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것은 보호자가 이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이성적인 판단과 제대로 수술이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수술실에 상주하는 마취과 교수님의 칼럼 일부를 인용해본다.
“필자와 같은 마취과 의사도 24시간 카메라의 감시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나이가 많거나 각종 질환으로 이미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의 수술에는 참여하는 것이 꺼려진다. 만에 하나라도 결과가 좋지 않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화면을 돌려보는 상황이 되었을 때 수술실에서의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떻게 해석되고 오해를 부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수술 도중 환자의 상태는 시시각각 변하기 일쑤다. 의료진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며 급하면 수술실 밖에 있던 의료진을 불러 수술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잘못한 게 없는지'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다 의심스러운 광경이다. 의료진의 과감한 용기는 '성급함'으로, 조급한 마음은 '부주의'로, 수술실에서 늘상 있는 환자의 상태 변화는 '사고'로 오인되기 십상이다.”
특히나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사망했다면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다 의심스럽지 않을까. 이러한 의심이 소송으로 번질 거라는 우려까지 든다면 ‘강제로 설치된 수술실 CCTV아래에서 수술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공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번 법안 발의의 배경에는 사실상 소송의 자료로 쓰일 목적임을 명시하고 있다.
◇수술실 상황 판단에 CCTV가 도움이 될까?
한편, 수술실 안에 CCTV설치 강제화로 본래 입법목적인 의료사고예방 및 혹시 발생할지 모를 소송의 자료로 사용하여 억울한 의료사고로부터 환자를 일부 보호해 줄 수 있기는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란 생각이다.
사실 수술실 안에 CCTV를 설치했다고 해서 수술실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복강경, 로봇수술 등이 늘어나고 있는 현대 의료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이미 CCTV 영상보다 정확한 자료는 이미 녹화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CCTV의 해상도가 낮다면 수술자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리수술 등의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싶다면, 수술실 문 바로 앞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는 의료진의 출입을 감시한다든지, 수술실을 들어올 때 지문 등 생체인식을 하고 들어가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한 해법이다.
환자에게 최악의 결과는 CCTV 영상에 보여지는 만큼만 최적화된 수술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이다. 심지어 부실한 수술에 면죄부를 주는 수단으로까지 악용될 가능성까지 있다고 생각한다.
수술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는 집도의는 낮은 수술 성공률이 예측되더라도 수술이 끝나고 나면 당연히 수술의 전과정을 돌이켜보며 자책하고 안타까워하기 마련이다. 이는 거창하게 직업윤리라는 것을 들이밀지 않아도 모든 직업인에게 생기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비즈니스 성공률이 낮아도 도전하고,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항상 아쉬워하며 스스로를 책망하며 실패를 복기한다. 그런데 수술실 CCTV가 있다면 수술의 악결과에 대한 책임을 CCTV 영상에 전가하지 않을까?
스스로 수술결과에 아쉬움이 있다고 생각되어도 ‘CCTV영상으로 봐서 문제가 없으면 의료사고는 아니지’ 라는 생각과 더불어, 보호자가 수술결과에 대해서 원망하더라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CCTV 보시죠’ 하면서 매몰차게 CCTV에 그 책임을 넘겨버리지 않을까?
당연히 이렇게까지 막가지는 않겠지만, 이런 식으로 의료행태의 변화가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 피해는 수술실 위에서 최선의 수술을 받고자 하는 환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것이다.
너무 끔찍한 상상인가? 그런데, 단지 상상만인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과거에도 간단해 보이는 판결로도 의료행태 전반에 영향을 끼친 사례는 많이 있었다. 보라매 병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머리를 다친 남성을 부인이 퇴원시킨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에 자발호흡이 없는 환자로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이러한 상황에도 보호자는 퇴원을 강하게 원하였고, 환자는 퇴원 후 집에서 사망하였다.
대법원 판결까지 진행된 이 사건은 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환자의 퇴원(discharge against medical advice)이더라도 의사에게 살인방조죄의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병원에서 죽으면 객사라는 미신도 있었던 터라 회복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 집에서 돌아가시도록 돕기도 했었다. 즉, 의사가 환자를 집에까지 모시고 가 집에서 사망선고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라매 병원 판결 이후로 병원에서는 소생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의 퇴원 요구를 거절하였고, 환자들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그 삶을 마감하게 되었다.
과도기적 시기에는 판결이야 그렇게 났지만 반나절도 못 넘기고 돌아가실 것이 확실한 환자를 어떻게 중환자실에 붙들고만 있냐고 주장하면서 예전처럼 집에서 돌아가실 수 있게 보내드렸던 일부 의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판결에 순응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죽음이 확실한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태도 및 대한민국 장례문화는 크게 바뀌었다. 아마도 이 시기 즈음해서 대학병원의 부대시설로 장례식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 같다. 한편 최근에는 반대로 고귀한 죽음에 대해서 다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수술실 CCTV 강제화 입법도 마찬가지 경과를 가질 것이다. ‘CCTV 하나 다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간단한 생각이 의료계 생태계 자체를 바꾸는 변곡점이 될 것이고 수술대 위의 환자에게는 그 변화가 치명적일 수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수술실 내 일부 불법행위를 해결할 근본적 해법은 없을까?
세계적으로도 CCTV를 법으로 강제한 나라가 없음에도 대한민국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었다. 대리수술 등의 수술실과 관련된 선을 넘은 불법행위 및 수술실 내에서의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하여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상황에 하나라도 더 자료를 확보하고자 하는 절실함에 그 배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부, 국회는 CCTV 설치 강제화라는 해법을 들고 나왔다. 한마디로 공급자인 의사들을 통제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관료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면허관리에 대해서 보건복지부가 전권을 가지고 있다. 의사가 살인을 해도 면허가 유지된다는 비난이 의사들에게 쏟아질 때 억울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살인자를 동료로 두고 싶어 하는 의사는 없음에도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반대로 의사들이 보기에 의사로서 면허를 유지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오히려 강력하게 처벌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의사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관료들이 의학적 행위에 대해서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본질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대리수술 등의 불법행위, 각종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서 국가의 통제가 아닌 의사들의 직업전문성에 근거하여 해결하고 있다.
즉, 정부가 의사들의 행위에 일일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 스스로 전문성에 근거하여 자율규제를 통해 불법행위뿐 아니라 법 이전의 비윤리적 행위까지 관리하는 것이다.
직업 전문성이란 단지 어떠한 숙달된 전문지식과 술기를 갖추었다고 충족되는 정의가 아니다. 타인에 대한 헌신과 집단 안에 회원들은 윤리 강령에 의해 스스로 관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공익의 증진에 책무를 가지고 전문직종과 사회가 사회계약을 형성하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는 동료를 형제처럼 여기겠다’는 서약이 나온다. 이를 두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반대의 의미라고 본다. 전문직종은 바로 옆에 있는 동료가 잠재적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동료들끼리 다투지 말고 오직 환자만 생각하라는 해석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선서의 의미가 현대에 직업 전문성이라는 정의에 녹아있다.
의사를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해열제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해 고생하던 시절에, 의료시장을 통제하여 어려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골고루 조금이라도 혜택을 주도록 한 부분에 있어서 관(官)은 이미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이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단지 해열제 한 알이 아니며, 의료진과의 신뢰 속에서 최선의 의료혜택을 받길 원하고 있다. 이는 관에서 통제하고 감시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수술실에 CCTV를 강제로 설치한다고 국민들이 원하는 의료사고 감소, 더 나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환경 등이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국민들은 이미 대한민국 의료가 편하기는 하지만 안전한 의료 환경은 아니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해법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선진국처럼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의사로서 소신껏 일하고 환자와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의사이기 이전에 세 아이를 키우는 한 아빠로서도 수술실에 들어가는 모든 환자들에 새 생명이 깃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칼럼은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의 기고입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1/11/11/20211111016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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