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류별 암/기타암

[스크랩] [임파선암]의사는 바로 자기 자신 -분자생물학자인 앨런 박사의 성공투병기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9. 4. 11.

의사는 바로 자기 자신

분자생물학자인 앨런 카퓰러 박사의 혼성세포 임파종 투병 사례


하버드대 의학박사 앤드류 와일(Andrew Weil)박사가 치유 경험담을 듣기 위해 만나본 암 환자 중 앨런 카퓰러라는 분자생물학자가 있었다. 앨런은 1962년 19세의 나이로 예일대학교 생물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록펠러대학에서 6년간 암을 공부한 후 생명과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새로운 화학요법 치료제를 개발하고 그것들이 DNA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데 바쳤다. 연구과정에서 ‘온통 유물론적인 체계’라고 부르는 의학을 포기하고 시골로 이사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과 노력이 필요했고 앨런은 그러한 생활에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1989년 6월, 사타구니 부근의 임파선이 부어오른 것을 발견했으나 통증이 없어 곧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혹이 난 자리에 냉ㆍ온찜질을 번갈아 가면서 해 봤어나 아무 효과가 없었고 그런 와중에서 힘든 일을 계속했다. 그는 말했다. 양쪽 사타구니에서 상당한 크기로 자라났다. 결국 그는 대학원 시절 친구 의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신체 전체에 CT촬영을 권했고 촬영결과는 목에서 사타구니까지 25~30개 정도의 비정상적인 혹이 발견되었고 조직검사 결과 혼성세포 임파선암으로 밝혀졌다. 의사는 가장 먼저 화학요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자연식품 옹호론자인 앨런의 장모는 곡식과 채소 위주의 정식요법으로 암을 치료하는 내용이 담긴 책을 보내주었다. (정식正食 요법:사쿠라자와 유키카스에(日)가 만든 건강법으로 서구에서는 매크로바이오틱스macrobiotics로 알려져 있다. 동양전래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법칙에 맞게 삶의 방식을 바꿈으로써 인간성의 향상을 추구하는 거시적 생명관을 토대로 한 식이요법이다.) 그는 식이요법으로 암을 다스리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 중 장수식 요법에 관한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한 채 꿀을 먹고 생즙을 마시면서 당분을 너무 많이 섭취했고 담배도 피웠고, 카푸치노를 하루에 두 잔씩 마시는 생활을 했다. 정식요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완전히 엉터리인 셈이다. 1989년 11월,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모두 끊고 엄격한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정식요법은 현미, 일본식 된장을 이용한 미소수프, 콩, 조리된 야채, 해조류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기본적인 동양식 승려식단’이었다. 그 식이요법은 과일과 샐러드도 금했고, 기름기도 안 되고, 빵도 안 되고, 식이요법 보조식품도 금했으며 육류와 유제품, 설탕과 술도 모두 금했다.


“화학요법을 받아 볼 생각은 안했나요?” 와일박사가 이렇게 물었다.

“농담으로 하시는 말씀이죠? 나는 분자생물학자입니다. 나는 그것이 사람들한테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압니다. 그런데도 나 자신에게 독을 시험해 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몇 해 전 의과대학 면접시험에서 내가 암을 치료하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 하 이제야 기회가 왔구나.’생각했죠. 정말로 나는 현미와 야채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고, 식이요법을 통해서 내게 필요한 양을 충분히 섭취했습니다. 음식들은 충분히 씹어야만 했습니다. 그 요법은 내게 잘 맞았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정식요법을 따르고 있는 데 내 건강상태에 따라 강도를 조절합니다.”


앨런은 이후 화학요법을 권유하는 의사들을 계속 만나왔다. 어느 때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병원 문을 들어섰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 나왔다. 식이요법을 따르고 나서 11개월 동안 아무 반응이 없어 답답해진 마음에서였다. 그러다가 1990년 9월, 사타구니에 생긴 혹이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10월 말이 되자 혹이 사라졌고 혈액검사 결과 들쭉날쭉하던 각종 수치들도 안정을 되찾았다. 이 결과를 두고 유명한 종양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암 진단을 받고 식이요법만으로 완치된 경우는 자기가 알고 있는 한에서 앨런이 유일한 사례라고....”


방심한 탓일까?

1993년 초, 거의 무너지기 시작한 식이요법과 일이 가져다주는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임파계는 다시 비정상적인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입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다른 일을 해보려고 애쓰던 그는 앞날이 불확실한 생의 교차로에 자신이 서 있다고 느꼈다.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는 엄격한 식이요법을 내팽개치고 단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오른 쪽 잇몸이 감염되었고, 이어 왼쪽 귀도 감염되었다. 감염된 귀에서 고름이 흘러내리자 왼쪽 목의 임파선이 부어올랐다. 그것들은 악성 진행이라기보다는 감염에 대한 완만하고 암시적인 반응이었다. 이후 감염이 치료되었는데도 임파선은 부어오른 상태로 있었다. 앨런의 목에는 비정상적인 혹이 여섯 개나 생겨났다. 오른쪽 세 손가락에는 발진이 생겼다. 그것은 가려움증에서 시작되어 고름이 줄줄 흘러내리는 농포, 그러다 그것은 결국 딱딱한 껍질이 생겨서 없어지는 순환을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앨런은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앨런은 친구가 건 내 준 자료를 보고 멕시코 티화나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곳에서 정식요법보다는 엄격하지 않았지만 돼지고기와 토마토, 식초를 엄격히 금한 혹시요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혹시요법 Hoxey Therapy : 약초를 끓이거나 갈아서 마시는 약, 연고, 분말 등 세 가지 형태로 환자를 치료하는 요법) 이때가 1993년 봄.

티화나에서 치료받으면서 앨렌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서양의학적 치료에 익숙해 있던 앨런은 그곳 의사들의 인간적인 자상함에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혹시요법을 실천하면서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앨런은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깨달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는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는 바로 자신이며, 사람은 마땅히 자기 자신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비법은 자만심을 버리고, 자신의 관념을 버리고, 단지 우리 몸이 스스로를 치유하게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