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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별 암/유방암

[스크랩] 유방암 이겨낸 진단검사의학 전문의 이유경 교수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6. 5. 9.

"가족력 없이 생활습관만으로 생긴 병…이후 제 삶의 패턴을완전히 바꿔놨죠"

이유경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는 1966년생으로 올해 51세다. 2007년 12월 유방암 확진 판정을 받고, 다음해 1월 수술로 암을 떼어냈다. 낫지 않는 감기 탓에 흉부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다 암을 발견한 것. CT상 폐 여러 군데에 점이 보여 이미 전이가 이뤄진 암이라고 예상했고, 추적 검사 끝에 유방암인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수술 중 유방암 말기가 아닌 2기인 게 드러났다. 2013년 1월 완치 판정을 받고, 현재는 2년에 한 번씩 종합 검진과 주기적인 재발 검사를 받고 있다.

 

이유경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
이유경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

기자가 본 이유경 교수의 첫인상은 ‘밝음’ 그 자체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선 힘이 묻어났고, 끊이지 않는 미소에서는 행복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이런 그이지만, <헬스조선>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망설이기도 했다.

 

<헬스조선>의 인터뷰 제안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가장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게 암을 경험한 사람들이 직접 말해주는 자신의 이야기였어요. 그들의 극복 사례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건강히 살 수 있는 날이 오겠구나’ 하는 희망을 봤거든요. 저도 다른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얼굴이 건강해 보입니다. 요즘 컨디션은 어떠세요?
아주 좋아요. 암을 겪기 전보다 더 나아졌죠.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식사하면서 몸 관리를 철저히 하니까 감기도 잘 안 걸리고요. 건강해진 걸 몸소 체험하는 중이에요.

암은 어떻게 발견하게 됐습니까?
2007년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어요. 이후 감기에 걸렸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낫지 않더라고요. 목디스크 수술 후 상태 확인을 위해 CT 촬영을 하러 간 김에 기관지염이나 폐렴은 아닌지 확인해보려고 조금 아래쪽까지 촬영을 했어요. 그런데 폐 여러 군데에서 뭔지 모를 점들이 발견됐고, 암이 전이된 것으로 보였어요. 어디서 전이됐을까 생각하다 여성에게 흔한 유방암을 의심해 다음날 바로 유방 초음파검사를 받았죠. 그때 유방암을 발견했어요. 당시 초음파검사를 해주던 선생님이 제 스승인데, 검사 중에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걸 보고 ‘유방암이 맞구나’ 직감했어요.

의심 증상은 없었나봐요?
특별한 증상은 없었어요. 당시 40대 초반이어서 유방암이 유방암이 잘 생기는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해 면밀하게 혼자 진찰해보지도 않았고요. 유방에서 덩어리가 만져진 적도 없었어요. 흉부 CT에서 원인 모를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시간이 더 흘러 병이 심각해졌겠죠. 어찌 보면 우연히 암을 발견한 거니까 천만 다행이죠.

흉부 CT에 나타난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간유리음영(GGO)이라는 거였어요. 아직도 이게 뭔지 정확히 몰라요. 영상 진단 기술이 좋아지면서 그전엔 모르고 지나쳤을 부분이 발견된 거라고 해요. 희귀한 건 아니래요. 여러 의사도 이게 뭔지 몰랐고, 원인이 될 만한 것을 역추적하다 유방암을 발견한 거죠.

그런데 GGO를 전이된 암으로 판단하기에는 근원이 되는 유방암 덩어리가 크지 않았어요. 이 때문에 전이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해주는 주변 분들이 많았어요. 암이 전이된 상태에서는 먼저 화학요법으로 암을 어느 정도 줄이고 수술하는 경우가 많은데, 용기 있게 수술부터 해보기로 한 것도 이런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죠. 수술을 빨리 해야 병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치료에 돌입할 수 있다는 지인의 말도 크게 와 닿았고요.

수술 후 말기 암이 아닌 게 드러나 안도하셨겠어요.
한쪽 가슴 유방 상피조직 밑으로 암세포가 1cm 정도 침습해 있었어요. 주변 림프절까지 암세포가 퍼졌지만 멀리 가지 않은 상태였고요. 암이 크게 덩어리진 게 아니고, 소보루처럼 겉에 쭉 퍼져 있었대요. 그래서 유방조직 안으로 1cm 정도 깊이에서 가슴 전체를 들어낸 거죠. 그 정도만으로도 너무 감사했어요. 치료 과정은 힘들지만, 살 수 있잖아요. 복원수술은 중요하지도 않았어요. 근육을 떼어내 어느 정도 형태를 만들어놨지만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요. 그런데 상처를 볼 때마다 저 스스로를 일깨우게 되는 계기가 돼요. 다시는 이런 아픔을 반복하지 않도록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요(웃음).

수술은 어디서 받았습니까?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계신 제 스승께 수술받았어요. 이민혁 교수님이요. 제가 순천향대 서울병원에서 직접 근무한 적도 있고요. 의사들은 자신이 확신하는 병원에 가요. 부천병원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한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동료가 선뜻 “나한테 네 몸을 맡기기엔 좀 창피하게 느낄 수도 있으니, 나보다는 다른 분에게 빨리 수술부터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고마웠어요. 뛰어난 실력은 물론이고,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스승님께 몸을 맡긴다는 점에서 안정감도 있었지요.

 

이유경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
이유경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

이후 항암 치료 과정은 어땠습니까?
2008년 3월 초부터 5월 말까지 항암제를 4회에 걸쳐서 맞았어요. 이후에 표적항암제 치료를 1년간 한 달 간격으로 12회 받았고요. 표적항암제는 암조직의 특성에 따라 효과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어요. 다행히 저는 효과를 보는 경우여서 치료를 받았어요. 일단 암치료를 위해 뭐든 해볼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상황이었어요. 이후 2014년 8월까지 7년간 경구항암제(Tamoxifen)를 복용했어요. 이 약은 여성호르몬이 유방암 세포에 작용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암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일은 중단했습니까?
항암치료를 받은 직후에는 곧은 길이 구불구불해 보일 정도로 정신이 몽롱해요. 가만히 누워서 움직이기도 어렵고요. 음식 못 먹는 것은 물론이고 구토도 하죠. 일과의 병행이 너무 힘들 것 같아 휴직 신청을 하러 병원 원장님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대뜸 만류하시더라고요. 당시 남편이 미국에 가 있는 상황이었는데, 혼자 집에 있으면 아픈 것만 생각하게 된다는 게 이유였어요. 항암제 맞고 며칠은 일시적으로 휴가를 쓸 수도 있는 거니까, 일단 휴직하지 말고 정 힘들면 그때 일을 쉬라고 하셨어요. 고민했는데, 원장님 말이 딱 맞았어요. 일단 일주일 휴가를 내고 집으로 왔는데, 항상 바쁘던 제게 일이 전혀 없어지니까 어색했어요. 몸이 괴로운 건 물론이고, 시간이 안 가는 건 더 힘들더라고요. 바로 다시 병원으로 나갔죠.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 일주일씩만 쉬었어요.

그 밖의 부작용은 없었어요?
표적항암제는 사람에 따라 구토 등의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온몸이 아프더라고요. 한 번은 밥을 먹다가 온몸이 갑자기 아파 숟가락을 떨어뜨렸어요. 이후로는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자는 동안 표적항암제를 맞았어요.

백혈구 수치가 ‘0’으로 떨어지는 합병증도 있었어요. 건강한 사람들은 4000~5000개의 백혈구를 가지고 있어요. 유방암 환자들의 경우에도 항암치료를 받는 중 백혈구가 1000개 정도로 줄었다 다시 회복되죠. 저는 항암치료를 받고 2주 정도 지났을 때, 몸이 너무 추워 원인을 알기 위해 피를 뽑았다가 백혈구 수치가 0인 걸 알게 됐어요. 바로 무균실에 들어가서 열 내릴 때를 기다렸죠. 처음 한 번만 그럴 줄 알았는데, 항암제를 맞고 14~15일 뒤면 어김없이 백혈구가 계속 0으로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증상이 생기기 이틀 전마다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약을 주사로 맞았어요. 주사 때문에 온몸이 아팠지만, 백혈구가 아예 없는 것보다 나으니 참았죠. 항암제도 원래 3주 간격으로 맞아야 할 것을 합병증 때문에 한 달 간격으로 맞았어요.

 

수술 바로 전날에 병상에서 일을 하는 이유경 교수
수술 바로 전날에 병상에서 일을 하는 이유경 교수

암이 생긴 원인은 무엇으로 추정합니까?
비만과 모유 수유를 짧게 한 게 주요 원인인 것 같아요. 가족력은 전혀 없어요, 우리 가족 중 제가 처음으로 암에 걸렸어요. 지금 보기엔 잘 모르겠지만, 한창 살쪘을 때는 지금보다 20~30kg 더 나갔어요. 암 발병 전인 2004~2005년에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두 번, 2007년에는 목디스크 수술도 받았는데, 살이 찐 게 원인이었죠. 몸속 지방이 암세포를 증식시키는 여성 호르몬을 만들어내 암 발생에도 영향을 끼친 거예요.

제가 일을 워낙 많이 하는 워커홀릭이라 모유 수유를 많이 못 한 것도 문제였어요. 수술받기 전날까지 병상에서 일하는 모습을 남편이 찍어놓기도 했어요, 하하. 그 때문에 아이 둘을 낳으면서 각각 모유 수유를 한 달도 안 했어요. 그런데 모유 수유를 하면 유방관에 있는 여러 물질들이 배출되면서 유방암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여성분들은 웬만하면 모유 수유 기간을 넉넉히 가졌으면 해요. 저는 병원 직원 중에 모유 수유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칭찬해줍니다(웃음).

 

이유경 교수는 유방암을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 과거엔 모든 나뭇잎이 똑같은 초록색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이 아파 주변을 자세히 둘러볼 여유가 생기면서 모두 다른 색을 띤다는 걸 알았다.

 

이후 생활습관은 많이 바뀌었습니까?
암을 겪기 전후로 가장 달라진 게 생활습관이에요. 먹는 습관과 움직이는 습관이 바뀌었어요. 우선 밥이 아니라도 세 끼는 반드시 챙겨 먹어요. 한 끼를 굶으면 군것질거리를 찾게 되고, 이후 과식하게 되거든요. 먹고 배부르지 않는 건 안 먹겠다는 저만의 신념도 생겼어요. 과자 같은 것들이요. 또 TV를 볼 때 예전엔 소파에 눕거나 기대서 봤어요. 이제는 똑바로 앉거나 걸으면서 봐요. 참, 딸이 ‘엄마는 취미가 설거지냐’고 물을 정도로 설거지를 자주 하는데요, 끊임없이 내 관절과 근육을 움직일 거리를 찾는 거예요. 땅에 떨어진 것을 주울 때도, 예전에는 허리만 굽혀 주웠다면 이제 무릎까지 굽혀서 몸을 많이 쓰려고 해요. 그리고 많이 걷습니다. 웬만하면 하루 1만 보 이상 걷고요, 적어도 6000보는 넘겨요.

 

수술 6개월 뒤 미국 여행 중 화이트 마운틴에서 찍은 사진
수술 6개월 뒤 미국 여행 중 화이트 마운틴에서 찍은 사진

암의 전과 후, 심리적인 변화가 궁금합니다.
암으로 인해 미래가 통째로 없어져봤잖아요. 그 이후부터 지금 이 순간을 살아요. 미래만 계획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았거든요. 그렇다고 매 순간을 대충 산다는 게 아니에요. 똑같이 열심히 사는데, 미래를 위한 게 아닌 지금 내가 즐겁기 위해 열심히 사는 거죠. 제 카카오톡 대화명은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예요. 또, 주변의 평가에 연연하기보다 제가 옳다고 판단한 일을 더 강하게 밀고 나가게 됐어요.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이 이것이고, 내 맘에 들면 하겠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그 일이 옳다는 확신이 있고, 내가 책임질 수 있고, 나 자신한테 창피하지 않다면 전심전력을 다 하겠다는 거예요.

 

미국 여행 중 자녀들과 함께 있는 모습
미국 여행 중 자녀들과 함께 있는 모습

힘든 과정을 이긴 노하우가 따로 있다면 뭘까요?
끊임없이 걸었어요. 항암제를 맞고 나서 일주일 뒤부터는 집 밖 활동이 가능하더라고요. 최대한 많이 걸으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햇빛 좋은 낮이었고, 항상 부모님을 대동했어요. 넘어질 수 있으니까요. 조금만 경사가 있어도 힘들어서 못 올라가기 일쑤였죠. 그래도 쉬고 걷기를 반복했어요. 내 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 하나로요.

이유경 교수의 남편은 같은 병원 신장내과 김진국 교수다. 김 교수는 이 교수가 아프고 나서 함께 걷기 좋은 길을 이리저리 물색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순천향대학교중앙의료원에서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는 〈통합의료 원보〉에 ‘걷기 예찬’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이유경 교수의 남편은 같은 병원 신장내과 김진국 교수다. 김 교수는 이 교수가 아프고 나서 함께 걷기 좋은 길을 이리저리 물색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순천향대학교중앙의료원에서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는 〈통합의료 원보〉에 ‘걷기 예찬’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남편인 김진국 교수와 금슬이 좋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하하, 남편은 다정다감한 성격이에요. 매달 걷기 칼럼을 쓰는 것도 제 건강을 위해 함께 걷기 좋은 길을 찾다가 시작하게 된 거죠. 남편이 고르는 길의 첫째 조건은 ‘제가 걸을 수 있는 길’이에요. 저는 좀 털털한 성격인데, 남편은 세심한 스타일이라 같이 길을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기록을 남기고 해요. 저는 그런 데 전혀 소질이 없어요(웃음).

 

2011년 여름 제주도 ‘장생(長生)의 숲길’에서 남편 김진국 교수와 찍은 사진.
2011년 여름 제주도 ‘장생(長生)의 숲길’에서 남편 김진국 교수와 찍은 사진.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은 어디인가요?
우리 집 뒤 이름 없는 숲길이에요. 사계절을 함께 지내면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걸 보며 위안을 받아왔으니까요. 이밖에는 제주도 ‘장생의 숲길’이 저한테 의미가 커요. 네 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데 흙이 폭신폭신해서 걷기가 좋아요. 또 길의 이름이 저한테 주는 의미가 상당하죠. ‘장생(長生)’이라는 말에서 생명의 에너지를 얻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전 제주도를 가면 장생의 숲길을 꼭 걸어요. 걸을 때마다 아직도 이름이 주는 감동이 느껴져요.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병을 잘 극복한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방암 환자들에게 조언해준다면요?
유방암한테 쫄지 말라는 거예요. 병한테 기죽기 시작하면 해결 방법이 없어요. 헤쳐나가겠다는 용기가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특히 ‘천벌을 받았구나’, ‘왜 나만…’이라고 많이 생각하는데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또, 항암치료를 받아 힘들어도 쉬지 마세요. 몸 모든 근육이 파괴되는 고통을 저도 알아요. 하지만 힘이 닿는 한 죽자 살자 움직이세요. 내가 걷는 한 걸음이 이후 하루 더 살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요. 저는 요즘도 한 시간을 걸으면, 이게 나중의 1년을 기약한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걷고 있어요(웃음).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03/2016050302415.html


출처 : 암정복 그날까지
글쓴이 : 정운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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