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 50%씩 책임지면 어떨까요?
정정수(기전대학교 예술조경과교수, 순천만국제조경박람회총감독)
2년 넘게 발견되지 않는 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2009년 11월, 차에서 내릴 힘도 없을 만큼 병이 악화 됐을 때 동료들에 이끌리어 00대학 병원에 입원했다. 이틀 동안의 검사를 마친 후 담도 암으로 병명이 판정되어 수술 날짜가 정해지자 병원에서는 동의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내용은 수술 후 잘못돼서 죽더라도 죽는 사람, 또는 그 가족이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자신이 없는 수술을 그들은 왜 권하는 걸까?
이와 같은 의문에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담당의사에게 50%씩 책임을 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지만 그가 웃으면서(그 웃음은 미묘했다.)하는 대답은“ 동의서가 작성되지 않으면 수술할 수 없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수술하지 않으면 넌 곧 죽어”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수술을 미루더라도 하루를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밤 꿈, 나는 요단강을 건너는 배를 타기 직전에 돌아서는 일이 생겼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검정색 배 앞에서 몇 년 전 간암으로 세상을 등진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저승사자라고 느껴질 만큼 키가 커 보였고,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정수야! 너 왜, 여기 왔니? 저쪽으로 가자.”며 배에서 먼 곳으로 나를 인도 했다. 이십여 걸음을 옮기고 나서 배가 있는 곳을 바라봤더니 배가 없어졌고, 이상하다는 생각에 친구를 바라보니 그도 역시 사라지고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니 악몽에 몸이 젖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 지인들에게 말하기를 “나쁜 병에 걸리면 병원에서 수술에 의존하지 않고 공기 좋은 숲에 들어가서 살겠다.”고 말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런 생각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할 때 더욱 건강을 지켜야 된다는 집식구의 권유로 1994년 여름 장두석 선생님의 지도로 건강교육을 받고 난 후 병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후 장두석 선생님은 물론 서울생활관 이선재 선생님과도 평소에 왕래와 친분을 깊게 갖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확고부동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랬는지 2년 넘게 병으로 고생하는 동안 나를 치유하기 위해 생활관을 찾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꿈속에서 요단강을 건너는 배를 타지 않았던 나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병원과 의사의 말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래, 내게는 병을 고칠 수 있는 큰 스승이 계신데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에 서둘러 퇴원하고 장두석 선생님께 연락한 후 광주에 있는 댁으로 찾아뵈었다. 1년 전 국내에서 5위 안에 꼽히는 대학 병원에서는 200만원이 넘는 비용으로 각종 첨단 장비를 이용해 검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죽겠는데 정상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의사들은 가당치 않게도 언제나 나를 겁주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을 찾아뵈니 “침상에 누워보라” 하고 배의 이곳저곳을 손으로 만지시더니 어느 한 곳을 나더러 만져보라 하신다. 그 부분이 서늘하다. 그렇다면 이 부분이네, 곧이어 오른쪽 갈비뼈 부분을 만지시면서 담(쓸개)이 부은 것 같다고 하신다.
이건 뭐~ 최첨단 기계가 구석구석 뒤져서도 찾지 못한 것을 손길(촉수)만으로 정확하게 진단했다는 데에.............할 말이 없다.
선생님의 권유로 전주생활관을 소개 받고 15일 동안 단식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올바른 식생활을 통해 건강을 되찾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전주 생활관을 선택한 것은 학과장을 맡고 있던 대학이 전주에 있는 관계로 2학기 학사과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에 대한 배려였다. 이곳에서의 생활 15일과 138기 교육 11일, 그 후 회복을 위한 15일을 전주생활관에서 건강을 되찾으며 보냈다. 황달, 혈뇨, 가려움, 불면증, 복부통증, 피곤함, 오른쪽 어깨관절통증 등의 병세는 이 기간에 모두 없어진 듯 보였다.
병세에 관한 징후
누군가에게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담도 암 혹은 췌장암을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명치 근처 아랫부분에 통증이 있으면서 오한이 있다.(병세가 깊어지면서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통증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로 밤에 아프다.)
◎ 1개월에 2~3번 정도 아주 붉은색의 혈뇨가 나온다.
◎ 부분적으로 가렵다가 온몸이 가렵지 않은 곳이 없다. (손톱으로 강하게 긁고 싶지만 상처가 걱정되어 면 소재의 속옷을 말아 쥐고 사용했다.)
◎ 하루 2~3시간 외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불면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 황달은 온몸은 물로 얼굴과 눈에 나타난다.(처음에는 눈부터 황달이 나타난다.)
◎ 오른쪽 어깨 관절통증이 생활이 불편할 만큼 점점 아파왔다.(어깨관절 전문병원에서 진찰 결과를 보여주며 수술을 권했으나 수술은 받지 않았고 지금은 정상이다.)
◎ 동물성 지방을 섭취한 날 저녁에는 반드시 심한 통증을 견뎌야 했다.
단식을 하며 건강교육을 받는 동안 위에 나열한 현상들은 거짓말처럼 없어지기 시 작했다.
제발 잠시라도 잠잘 수 있다면 살 것 같겠다............... 잠을 잘 수 있었다.
이제는 제발 가렵지만 않다면................................. 가렵지 않았다.
오늘 밤에도 아프고 오한이 올까?
일상처럼 반복되는 온갖 증상들을 매일 이렇게 기다렸지만 어제 밤도, 오늘밤도 몸이 아프지 않았다. 그러기를 3년 8개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내게 그러한 아픔은 다시 찾아오지 않고 있다.
물론 지금도 완치 됐다는 생각은 않고 교육받은 내용을 80% 이상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치유된 지 1년 후 두 살 차이의 남동생이 병원에서 암을 진단받았다고 해서 찾아갔다. 누구나 그렇듯이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되며 동생의 표정만으로도 불안함을 읽기에 충분했다. 진단받은 부위는 “담도” 형제가 같은 병에 걸렸던 것이다. 술을 매우 좋아하는 형제였기에 결과가 같았는지 모르겠다. 동생에게 나와 같은 방법을 권했고 동생 역시 지금은 건강하다. 그러나 1년 전 이와 같은 병을 갖은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도 권했지만 그는 내 말 보다는 의사의 말을 믿었으며 수술 후 5개월 뒤 사망했다. 이렇듯 주변에서 담도 암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11명 모두 사망했으며 수술 후 2년 4개월을 넘긴 사람은 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5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사이의 연령층이며 여자보다는 남자가 많았다.
누구나 각자 모두가 자기 몫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생활관에서는 가르쳐준다.
책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도 가르쳐준다.
치료는 늦다!! 치료가 아닌 예방이어야 한다!!!
나는 15년 전 건강교육을 받았기에 수술에서 벗어나서 지금 이 세상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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