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늘 존경하던 부모님의 삶. 땅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농부의 오롯한 인생은 소년에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기업에 취업했지만, 언젠간 나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리라 다짐했죠. 운명이었을까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고로 잠깐 맡았던 농사일을 계기 삼아 계획보다 일찍 농업인의 길을 걷고자 결심합니다. 청년의 얼굴엔 구슬땀과 함께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찾은 자신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일찍 시작했을 뿐, 늘 꿈꿔온 귀농
▲ 영농후계자 천동우 씨를 만나러 가는 길!
끝없이 늘어선 자동차의 행렬과 그 위로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모습이 어쩐지 어색해 보이는 울산 북구 상안동의 농공단지. 이곳이 이제 막 3년 차에 접어든 35살의 젊은 농부가 새로운 도전을 펼치는 곳입니다.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성실하게 근무하던 천 씨.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번듯한 직장에서 손에 흙 안 묻히고 살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의 인생 경로가 갑작스레 바뀐 이유는 수확 철에 크게 다친 아버지 때문이었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아들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평생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아버지를 위해 힘이 되어줄 방법은 한 해 농사 망치지 않게 대신 일을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직장과 농사일을 병행하기 시작한 천 씨. 그런데 이상하게도 농사일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나이 좀 더 먹으면 귀농하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병원 생활이 길어진 탓에 농사를 더 지으면 지을수록 결심이 굳어졌죠. 이왕 할 일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시작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 싱싱한 부추가 자라고 있는 부추재배시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요?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천 씨 부모는 결국 아들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퇴원한 아버지를 따라 아침, 저녁으로 일터에 나가 부지런히 일하는 아들의 모습이 그만큼 믿음직해 보였던 탓도 있었죠. 아버지는 천 씨에게 가장 중요한 작물이었던 부추농사 1,500평을 맡겼습니다.
동료이자 인생 선배, 주변농가
울산의 특화 농산물인 부추를 작물로 선정한 천 씨. 부모님이 오랫동안 지어온 작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 농가 대부분이 부추 농사를 짓고 있어 재배 노하우를 얻는 일이나 판로를 확보하는 일이 비교적 용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농후계자 대출을 통해 약 1억 원의 자금을 마련한 천 씨는 토지 2,000평을 추가로 임대하고 하우스 14동을 세웠습니다. 주변 농가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지만 초보 농사꾼치고는 상당한 규모였죠! 부모님이 지어오던 농사라 자신있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니 특별한 지출이 따로 없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귀농 초기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초기 자본 등 상당한 계획을 세워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농촌에서의 삶이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 재배하는 부추를 살펴보고 있는 천동우 씨
아버지 어깨너머로 농사일을 배우긴 했지만, 부추란 작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천안연암대학 후계농교육을 시작으로 농업에 관한 기본기를 다지기 시작했는데요,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은 물론,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강의 등 농업에 관해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모조리 받았습니다.
“이론 교육으로 기본기를 쌓았다면 농업 현장의 노하우는 이웃들에게서 얻었죠. 다시 말하면 동네 아저씨, 형님들인 셈인데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셨어요.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어오셨던 분들이라 저 역시 쉽게 어울릴 수 있었죠. 인생의 선배이자 훌륭한 선생님들이죠.”
함께 농사를 짓는 일은 여러모로 도움이 됐습니다. 부추는 보통 수확량 대부분이 서울 가락시장으로 출하되는 데, 주변 농가와 부추 작목반을 형성하여 대규모 물량을 보내면 운송비나 물류비가 크게 절약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작물로 시작해 점점 규모와 종류를 다양하게 확장하겠다는 귀농 초기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부추 재배 성공을 발판으로 다양한 작물에 도전하기 시작한 천 씨. 여러 작물을 키워보며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달콤 쌈사름한 농업의 세계
학교 급식 납품은 정말 매력적인 기회였습니다. 지역 급식센터에서 요구하는 품질 수준만 맞추면 적당한 가격에 끊임없는 수요가 생기는 고정 거래처였기 때문이었죠. 당근, 고구마, 양파 등 친환경 농산물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잔류 농약이 검출되어 계약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제가 뿌린 게 아니라 주변 농가에서 농약이 흩날려 날아온 탓이니까요. 꼼꼼히 따져보니 계속 납품했다 해도 큰 소득은 없었을 거라는 결론도 얻었죠. 까다로운 친환경 재배 방법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하다 보니 생각보다 남는 게 별로 없었어요. 실패를 교훈 삼아 친환경 재배에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일이고 경쟁력을 갖추는 길이니까요.”
귀농을 하고 난 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주말도 없이 “새벽에 일어나 일을 나가는 일”이었다고 다소 겸연쩍게 이야기 하는 천씨. 그러나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평생 해오시던 일이거니와 반대를 무릅쓰고 결정한 귀농이었기 때문이죠.
어릴 적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농업인의 삶을 동경해온 천 씨는 농부로서의 가장 큰 자질인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귀농에 실패하지 않고 적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업에 실패하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피난처로 귀농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는 것을 꽤 많이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귀농은 결코 도피처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 귀농을 하고 보니 새삼스레 부모님이, 아니 이 땅의 모든 농업인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직접 농사일을 해보니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어요. 고단한 일이지만 그래서 더 보람이 있습니다.”
이젠 예전 직장 생활할 때보다 훨씬 여유로워진 일상에 만족하는 천씨. 농사를 짓는 일이 그만큼 쉽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익숙해지고 적응해 나갔을 뿐입니다. 직장 생활이든 농업인으로 사는 삶이든 결국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천 씨는 전합니다. 다만 본인에게는 농사일이 적성에 더 맞았던 것이고 일찍 찾아 행복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처음에 극구 말리던 부모님 역시 이젠 천 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 본인의 일이 많이 줄어 여유가 생겼을 뿐 아니라 아들이 농사를 주도하며 소득도 훌쩍 늘었기 때문이죠!
후회 없는 선택,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귀농을 하고 난 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천 씨. 하지만 귀농 전 상당한 고민의 시간을 보내기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보다 “젊은 나이에 농사나 지으러 귀향한다”고 수군대는 따가운 시선이 가장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직업을 농부로, 농업인이 되기 위해 나선 것뿐이었죠. 이젠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다른 목적이 아니라 단지 직업을 농업으로 선택했을 뿐이죠. 농업이 상당 부분 기계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육체적으로 힘든 게 사실입니다. 또 노동력이 풍부하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CEO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는가 하면 마케팅이나 유통에도 신경을 써야 하죠. 직장 생활보다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해도 소득이 더 적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도시에서도 한가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농촌에서도 낭만적인 전원생활이 가능하겠죠.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농업은 주말농장에서 텃밭을 가꾸는 일 하고는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할 거에요.”
최근에는 잠깐씩 틈을 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취미도 생겼습니다. 아주 먼 훗날 이룰 꿈인 줄 알았던 농업인의 삶을 일찍 시작하며 생긴 여유 덕분인거죠. 야근과 주말 출근에 제대로 된 여가생활이 없는 또래 친구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도 하지만, 규칙적인 일상이, 울타리 안에 있는 그들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농업은 시키는 대로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꾸준히 미래 농업의 대안을 찾아보는 중입니다. 팜스테이나 펜션 사업, 오리 같은 가축 사육은 여전히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느 또래 못지 않은 꿈과 열정으로 가득한 30대를 설계해 나가고 있는 천동우 씨. 마치 축구선수가 월드컵이란 큰 무대를 꿈꾸며 축구장을 찾아 훈련하듯이, 그에게 귀농이란 행위 자체가 그리 큰 의미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농사짓는 일에서 자신을 찾은 그였기 때문입니다.
Tip!
경험과 준비가 우선이다
영농후계자란 자격 덕분에 귀농 초기부터 내 농장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많지 않은 나이에 상당히 큰 금액을 대출받아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과 부추 작목반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죠. 만약 귀농지에 연고가 없고 농업 기술도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선뜻 내리기 어려운 결정일 것입니다. 자금이 충분하다 해도 큰돈 들여 농장부터 차리는 것은 반대합니다. 작은 식당 하나 내려 해도 창업 전문가들은 적어도 일 년은 직원으로 일해볼 것을 권유하는 것과 비슷하죠. 농업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지역주민과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
저의 경우엔 작목반원들이 모두 부모님을 아시는 분들이라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크고 작은 갈등이 있을 것이고, 의도치 않았던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평생을 살아온 토박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땅 사가지고 들어와 농사짓는다는 서울 사람이 얄미워 보일 수도 있는 일 같습니다.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시간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소득이 가능한 부추
부추는 농한기인 겨울에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입니다. 한번 심으면 이듬해 봄까지 4~5번을 수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번 파종 후 3~4년을 연속 재배할 수 있는 이점이 있죠. 또한 겨울 배추 등에 비해 두세 배 높은 가격으로 출하됩니다. 이미 전국에 유명한 재배단지들이 여럿 생겼고,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비교적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지만, 생산량이 많아지면 가격이 하락될 수도 있다는 점! 농업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전국 수확량이 많아지면 가격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부추뿐만 아니라 모든 농산물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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