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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건강상식/식품,차,음료의 효능

[스크랩] 유년의 추억과 맛이 살아 있는 전통 쌀엿을 찾아...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13. 1. 9.

 


음식은 추억으로 기억된다. 추운 겨울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어렴풋이 마을 입구에서 들리기 시작하면 동네 아이들은 부산해지곤 했다. 집집마다 모아 두었던 빈병이나 양은 냄비, 찌그러진 세숫대야를 들고 나와 엿과 바꾸었다. 엿가락을 하나씩 받아들고 가른 뒤‘후우’하고 바람을 불어 바람구멍의 크기를 가늠해 보던 그 유년으로 간다.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줄 것 같은 달달한 맛을 따라 가는 길. 전북 임실군 삼계면 후천리 마을회관 옆에 위치한 ‘이정미 전통 쌀엿’의 방문을 열자 엿기름과 구수한 깨소금 냄새가 뒤섞여 수증기가 훅 끼친다.

 

따뜻한 온기와 수증기로 꽉 찬 방안에는 네 여자가 2인 1조가 되어 엿을 치대는 작업이 한창이다. 예전에는 모든 작업을 손으로 했지만, 지금은 초벌을 기계에서 작업한 후 50~60번 치대는 1차 과정을 거쳐 다시 40~50번 치대는 과정을 거친다.

 

마치 수타를 뽑듯 엿가락을 길게 늘이고 합하는 과정이 끝없이 반복된다. 이때 엿가락이 굳지 않도록 물을 끓이면서 더운 김을 계속 쐬어준다. 치대면 치댈수록 누르스름하던 가락엿이 하얗게 제 빛을 찾는다.

 

이 고단하고 수고로운 과정이 우리에게 어릴 적 엿치기의 추억을 선사해 준 ‘바람’을 넣는 과정이다. 많이 치댈수록 바람구멍의 크기가 커지고, 구멍이 클수록 바삭한 엿이 된다. 고소한 맛을 더하기 위해 직접 농사 지은 통깨를 뿌려준 뒤 다시 치댄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팔이 아플 지경에 이르러야만 어른 손가락 굵기 만한 가락엿이 만들어진다.

 

네 여자는 사촌 동서 간이다. 초벌 작업이 끝난 누르스름한 엿을 1차 치대는 작업은 첫째 동서(유현수, 72)와 둘째 동서(함명덕, 66)가 맡고 있고, 2차 작업은 셋째 동서(황운순, 62)와 막내(이정미, 56)가 맡고 있다. 이들은 얼굴만 봐도 흐뭇한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꽤나 어려울 것 같다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내가 손위인데도 셋째가 나를 구박해요.”라는 둘째 동서는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개구쟁이 소녀 같은 셋째 동서와 미소로 이들을 지녀보는 첫째 동서. 그리고 ‘전통쌀엿’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막내 이정미 씨까지.

 

이 노씨 집안 며느리 네 명이 함께 쌀엿을 만들어온 시간은 햇수로 22년. 첫째 며느리가 엿을 만들다 둘째 며느리가 들어오고, 셋째, 넷째 며느리까지 모였다. 시어머니에게 쌀엿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이제는 눈빛만 봐도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 입장이다 보니 함께 엿을 만들면서 시집살이의 고단함부터 자식들 걱정에 남편 흉까지, 할 이야기가 많기도 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고, 내년 벼농사 종자는 어떤 게 좋을지 의논도 한다. 네 여자의 엿 만드는 시간은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를 털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삼베 만드는 일까지 함께 했으니, 그 시간이 참으로 끈적하다.


희한하다. 치대기 작업을 끝낸 긴 엿가락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작업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데, 방안 어디를 둘러봐도 쌓여 있는 엿가락은 없다. 그 순간 벽 쪽에 앉은 둘째 동서가 빠른 손놀림으로 엿가락을 어딘가로 밀어 넣는다. 자세히 보니 벽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구멍을 통과해 긴 엿가락이 옆방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또 다른 방에서는 어르신 네 분이 가락엿을 끊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쪽에는 어른 손가락 길이만한 쌀엿이 가지런히 쌓여 있고, 벽에 걸린 저온기계에서 쌩쌩 찬바람이 분다.

한기가 몰려드는 냉방에서는 바람막이용 비닐 작업복을 입은 이정미 씨의 남편 노원혜 씨가 옆방에서 둘째 형수가 벽 구멍으로 밀어 넣어주는 엿가락을 가위로 잘라낸다. 그러면 나머지 세 사람이 어른 손가락 길이만한 나뭇가지를 기준으로 동일한 크기로 툭툭 엿을 끊어내는 것이다. 굳기 전에 빨리 끊어내지 않으면 손에 힘이 들어가고 깨끗하게 잘라내기가 어렵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오늘 이정미 씨네 엿 만들기에 품앗이를 나온 마을 분들이다. 오늘은 이 집으로, 내일은 저 집으로 엿 품앗이를 나가는 일은 이 마을에서는 자연스럽다.

 
예전에는 엿이 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운 방에서 만든 엿을 손가락 사이에 하나씩 끼우고 수십 번 방과 추운 바깥을 드나들어야 했다. 그러다보면 힘든 것은 둘째 치고 방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찬 공기가 들어와 방이 식는다. 엿이 굳어 제대로 치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벽에 구멍을 뚫는 것. 사람이 직접 엿가락을 들고 가는 대신 구멍을 통해 쉽고 빠르게 엿가락에 찬바람을 쏘이면서 방안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이제 마을에서는 모두가 이 방법을 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정미 씨는 벼농사뿐만 아니라 1,200평(약 0.4ha)에 가까운 산머루 농사를 지었지만 지난 여름 태풍으로 반절 가까이 유실되고, 얼마 전의 폭설로 인해 나무들이 ‘판자때기’처럼 땅바닥에 아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하늘이 하는 일, 10년 간 애지중지하던 산머루 나무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정미 씨에게 남은 것이 쌀엿이다. 22년째 직접 농사지은 쌀로 시어머니에게 배운 방법 그대로 전통 쌀엿을 만들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마솥에 장작불을 때서 엿을 만들던 작업을 기계가 대신 하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달이는 데만 꼬박 이틀은 걸리는 작업이다. 쌀엿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들고들하게 찐 밥을 엿기름(겉보리 싹 틔운 것)과 섞어 삭혀야 하는데, 10~11시간 식혜가 되도록 삭힌 다음 자루에 붓고 꽉 짜낸다. 이 엿물을 큰 무쇠솥에 붓고 달이면 조청이 되고, 3~4시간을 더 달이면 엿을 만들 수 있는 갱엿 상태가 된다. ‘땀을 잘 맞춘’갱엿을 치대는 과정을 거쳐 엿이 만들어진다.

 

2011년에 안집이 있던 터에 갱엿을 만들 수 있는 기계와 엿을 만들 수 있는 두 칸짜리 방이 딸린 작은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과 저온기계 덕분에 오늘처럼 비오는 날에도 엿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정미 씨도 처음에는 마을에서 주민들과쌀 한말씩을 모아 공동으로 쌀엿을 만들었다. 160여 명의 박사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임실군 박사골이 정보화마을로 선정되면서 이정미 씨는 5년 동안 여성팀장을 맡아 활동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2~3년간은 친지끼리 나누면서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선물해 주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좋아 3년째부터는 동서들끼리 상품으로 판매를 해보자고 해서 시작된 일이다.

 

이정미 씨는 더 나은 쌀엿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게 된다. 엿의 특성상 주로 10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주문량이 많고 설날에는 주문량을 맞추기 어려울 정도이며, 평소에도 혼례용이나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이 꾸준하게 찾는다.

 

전통 쌀엿은 하루 정도 비닐을 덮어 바람이 통하지 않게 굳히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일반 엿에 비해 치아에 들러붙지 않고 과하게 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엿을 받아본 후 “왜 엿이 안 달아요?”라며 항의 아닌 항의 전화를 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 쌀과 엿기름밖에는 첨가한 게 없으니까 그 정도 단 게 당연하죠. 달게 만들 순 있습니다. 설탕이나 물엿넣어서 아주 달게 만들어드려요?”라며 야무지게 되묻는다는 이정미 씨.


비록 크진 않지만 4계절 엿을 만들 수 있는 작업 공간에서 네 명의 동서가 엿을 만든다. 이정미씨가 대표를 맡고 있지만, 오늘은 첫째 형님네 엿, 그 다음에는 둘째, 셋째 형님네 엿, 또 며칠 후에는 막내네 엿까지.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수익을 나누고 있다. 갱엿을 만드는 데 이틀, 엿을 치대고 굳히는 데 이틀, 보통은 나흘 간격으로 엿을 만든다.

이정미 씨가 만든 엿은 분홍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박사골 여성팀장 당시의 경험을 살려 지금의 포장법으로 결정했다. 당시 마을에서는 종이상자에 쌀엿을 넣어 판매했는데, 엿이 축축 늘어지곤 했다. 일단 바람이 들어가면 끈적끈적해지면서 들러붙는 엿의 특성상 바람을 통과시키는 종이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4kg은 대나무 바구니에, 2kg·3kg·5kg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았다. 대나무 바구니가 보기에는 좋지만 배달 과정에서 부서지기 쉬운 대나무 바구니에 비해 플라스틱 바구니는 단단하고 무엇보다 바람이 들어가지 않는다.

 

과정의 수고로움에 비하면 그다지 큰 소득이라고 할 순 없지만 비료 살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도 쌀엿이 주는 고마움이다. “농한기에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잖아요. 멍하니 앉아 있거나 TV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엿을 만드는 일이 여러 모로 좋죠.”라는 이정미 씨. 덕분에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갱엿을 달이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농촌의 겨울. 엿가락을 치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깨 근육이 성할 날이 없지만, 그렇게 해서 아들과 두 딸을 키워냈다. 내년 3월에는 막내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때도 이정미 씨가 손수 만든 쌀엿을 막내딸의 품에 안길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들에게 엿을 만드는 일은 정성이고 기도 같은 것이었나 보다. 그 갸륵한 수고가 있어 곳곳이 배부른 곳간이 된다.


[문의] 이정미 전통 쌀엿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후천리 452-1 , 063-642-7593

< 그린매거진 1월호에서... >

출처 : 쵸니
글쓴이 : 쵸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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