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에서 외모까지, 치료 끝나도 또 다른 전쟁
김정수<newslady@joongang.co.kr> | 제101호 |
유방암, 1기나 2기에 발견할 경우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90%를 넘습니다. 그러나 치료가 끝난 후에도 정신적 후유증은 평생 갈 수 있습니다. 유방절제술을 한 경우 치료 결과가 겉으로까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암생존자 60만 명 시대입니다. ‘암생존자(cancer survivor)’란 말 그대로 ‘암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환자를 뜻합니다. 이들의 ‘치료 후 삶’은 4인 가족으로 환산하면 240만 명이 직결된 문제입니다. 미국 사이클 선수 출신의 랜스 암스트롱(고환암·사진 왼쪽)이나, 피아니스트 서혜경(유방암·가운데), 배우 양택조(간암·오른쪽)씨처럼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해 웃음을 되찾은 사람도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 곁의 생존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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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에 자궁내막암 3기 말 진단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어요. 암이 장까지 전이돼 직장 부분도 잘라냈죠. 그래도 그저 살 수 있는 게 황송하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통증 때문에 아직도 약을 먹어요. 겉으론 멀쩡해 보이니까 시댁 어른들은 다 나은 사람 취급하시니 너무 서운하고…. 우울증진단을 받은 지도 3년 됐어요.” (최문섭·여·48)
“3 년 전 처음 받은 건강검진에서 위암을 1기에 발견했으니 행운이죠. 위의 3분의 2쯤 절개했는데, 수술 후 얻은 게 더 많아요. ‘완벽주의’를 포기하니 생활이 더 즐거워졌죠. 매일 사과와 브로콜리·양배추를 식탁에 올려놓으니 남편과 아이까지 건강해졌고요. 그래도 정기검진 받으러 갈 땐 벌벌 떨어요. 재발하지 않나 해서….” (원치상·42.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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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술이 발달하고 조기 발견율이 높아지면서 암생존자가 크게 늘었다. 다른 질병과 달리 비장하게 ‘생존자’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암은 대개 치료과정 자체가 목숨을 건 전쟁이다. 그러나 의료기술적인 측면의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이들의 전쟁도 끝나는 건 아니다.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겪으며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사회와 담을 쌓고 지낼 수밖에 없는 암생존자들이 적지 않다. “모든 사람이 배려해 주며 희망을 갖고 암 치료에만 집중하던 때가 오히려 가장 행복했다”는 사람도 있다. 무사히 사회 복귀에 성공한 이들도 ‘재발’이라는 악령에 시달리곤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암생존자’는 암 진단 또는 치료 후 5년 동안 재발이 없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 경우를 말했다. 요즘은 암을 치료 중이거나, 재발했더라도 현재 살아있는 환자들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5년 이상 건강을 유지한 경우는 장기 생존자, 혹은 암 완치자라고도 부른다(암 진행 속도가 느린 편인 갑상샘암이나 유방암은 보통 10년 생존을 완치 기준으로 삼는다).
2009년 현재 우리나라의 암생존자는 60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암센터가 암 유병률과 사망률 등을 토대로 추정한 결과다. 불과 4년 전인 2005년의 34만여 명에 비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숫자다. 조기암검진 확대 등의 결과다. 2014년엔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한다. 암 환자들의 5년 이상 평균 생존율도 2008년 현재 52.2%에 이른다. 5년 생존율이 98.1%나 되는 갑상샘암을 제외하고 계산해도 49.1%다. 암 환자 2명 중 1명은 완치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삶의 질’ 문제에 사회적 관심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국립암센터와 주요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들이 암생존자(위암·유방암·자궁경부암) 총 31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장애물은 피로와 재정적 어려움이었다. 피로 증상을 호소한 유방암(14.9%)과 위암(15.2%) 생존자는 일반인(7.2%)의 2배 정도 됐고, 자궁경부암(19.0%) 생존자는 3배에 가까웠다.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한 암생존자는 일반인의 6~8배나 됐다.
암 치료의 각종 후유증과 성생활 문제, 신체 이미지 손상 등으로 인한 우울증 문제도 심각하다. 유방암과 위암 생존자의 절반 이상이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은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중증도 이상의 우울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성생활 문제는 암생존자들이 가장 흔하게 겪는 후유증이면서 대부분 혼자 끙끙 앓다가 가정불화로 연결되기도 한다. 성기능 장애는 암의 종류와 치료법에 따라 40~100%의 유병률을 보인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성욕 저하는 남녀 환자가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보이는 증상이다. 또 남성에서는 발기부전, 여성에서는 성행위 시 통증(성교통)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 강동우 성의학클리닉의 강동우 원장은 “암 치료에 따른 성기능 장애는 시간이 흘러도 자연적으로 개선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심리 상담이나 전문 치료를 받으면 다시 회복될 가능성도 작지 않은데 암 환자 스스로 그런 시도조차 포기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주 수입원의 감소는 암생존자들이 치료비 지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주요 원인이다. 2001~2003년 국립암센터에 내원한, 진단 당시 직업이 있는 남성 암생존자 305명을 2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53%가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23%만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의 조주희 부센터장은 “특히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이 큰 중년 남성들은 스트레스조차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다 상담을 받으며 눈물을 많이 흘린다”고 말했다.
암생존자들의 삶의 질은 가족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간병 부담과 스트레스로 인해 가족 3명 중 2명은 우울 증상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국립암센터의 윤영호 기획조정실장은 “암생존자들은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직장 및 가정에서 역할 장애도 심각하다”며 “이는 사회·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윤 실장은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자신감 상실이 가장 큰 적, 씩씩하고 바쁘게 살아요"
행복을 얘기하는 유방암 생존자 유선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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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선주(50·여.사진 왼쪽)씨가 기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오른쪽 젖가슴이 있어야 할 자리에 뼈가 나란히 만져졌다.“댕댕댕~느껴지죠? 하하. 그거 갈비뼈예요. 친구들도 만져보고 신기해 하더라고요.”유씨는 2004년 5월에 자궁근종(양성종양)으로 자궁을 제거했다. 2006년 1월에는 유방암으로 오른쪽 가슴을 전부 도려냈다.
“여 성으로서의 상실감? 에이~생리 안 해서 편하고…유방 재건술? 난 필요성을 못 느껴서….”옆에서 남편 조중휘(52.사진 오른쪽)씨가 “좋은 남편 만난 거지~”하며 너털웃음이다. 유씨가 웃으며 눈을 흘긴다. 검정 롱부츠에 무릎까지 오는 검은 반바지, 회색 베레모 차림이 마냥 발랄하다. ‘영업복장’이다. 부부는 경기도 시흥시 삼미시장 입구에서 여성복 가게를 한다. 가게 입구에선 머리띠도 파는, 그런 소박한 가게다.
“원래는 부유했어요. 인천에서 연매출 400억원씩 내는 조경 사업을 했는데…1994년에 부도가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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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년엔 시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유씨의 말대로 “아플 틈도 없이” 바빴다. 자궁근종 제거 수술 뒤에는 막내를 기숙사형 특목고(공주 한일고)로 보내기 위한 노력까지 보태졌다. 할아버지 기저귀를 갈아주며 한 방에서 지내면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아들을 위해 한일고에 몇 차례나 직접 편지를 써보냈다. 하루 2~3시간 눈을 붙이며 밤늦도록 공부하는 아들 곁을 지켰다.
아들의 합격에 기뻐한 것도 잠시, 유방암에 걸린 것을 알았다. 4㎝ 크기의 종양을 보고 의사는 “어떻게 이만큼 자라도록 몰랐느냐”며 답답해했다. “때 밀다가도 발견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 정도로 크다는데…그땐 공중 목욕탕 갈 시간도 없어서 대충 물만 끼얹고 살았거든요.” 오른쪽 가슴을 절제했다. 후유증으로 6개월간 오른쪽 팔을 쓸 수 없었다. 6개월 뒤 왼팔에도 이상이 왔다. 결국 1년가량을 물리치료에 보냈다. 그 사이 시아버지의 장례도 치러야 했다.
시장 골목에서 ‘달밤 배드민턴’
유 방암 수술 뒤엔 피곤함이 그를 괴롭혔다. 낮에도 수시로 잠에 빠져들었다. 운동은 꿈도 못 꿨다. 자신감도 점점 없어졌다. 일주일에 세 번씩 새벽시장을 씩씩하게 누비며 옷을 사왔던 때가 꿈만 같았다. “아이고 내가 어떻게 그걸 해…이런 생각부터 드는 거예요.” 결국 인천의 가게는 정리했다.
2007년 여름, 장염으로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가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골반과 가슴 부위에 암이 있고, 1년밖에 못 산다는 것이었다. 유방암 수술을 받았던 국립암센터로 달려갔다. 그것이 유씨에겐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암이면 어떠냐고, 지금 이상 없지 않으냐고. 더 이상 진행만 되지 않게 이 상태 그대로 80까지 살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의술도 계속 좋아지니까 절대 걱정할 필요 없다고요.”
유씨가 이상 고열로 응급실에 입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췌장암 수치가 높아 다시 국립암센터로 갔지만, “괜찮다”고 했다. “수치가 높은 거지 암은 아니라는 거죠. 이상이 생길 때마다 관리해 가며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다고요.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사실 얼마나 재발이 두려웠겠어요. 그런데 언제든지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하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마 음가짐이 바뀌자 신기하게도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국립암센터에서 시작한 ‘암 환자의 삶의 질 향상’ 프로그램이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잘라내고 약이나 주면 그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암 환자가 행복할지를 고민하는 거예요. ‘어디가 아픕니까’가 아니라 ‘기분은 어떠세요’라고 물어보셔서 참 기뻤어요.”
유 씨는 요즘 오전 3시에 자고 오전 9시에 일어난다. 아침은 거의 못 먹는다.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 백반을 시켜먹고 저녁은 오후 11시나 돼서야 먹는다. 가게 운영 때문이다. 삶의 질 프로그램은 이런 패턴을 애써 바꾸지 않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한다.
“무리하면 스트레스가 된다는 거죠. 식이요법도 간단해요. 우유 한 잔, 사과 한 쪽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 분량을 정해 놓았어요. 아침 먹을 시간이 없으면 사과를 반 쪼개 들고 나가는 식으로 몸을 챙기게 됐어요.”운동도 하루 30분. 틈날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가볍게 하면 된다.
“피곤해서 못하겠다, 시간이 안 난다, 도구가 없다 그러거든요? 저는 이 작은 옷가게에서 매일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있어요. 어떻게 운동을 하겠어요. 처음엔 이 가게 안을 무작정 걸어다니는 것부터 했죠.”유씨가 가게 구석에서 공중목욕탕에서 사용하는 것 같은 앉은뱅이 의자를 꺼내더니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것도 얼마나 숨 차는데요, 요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도 운동이 된다고요.”
3개월 전부터 남편과 함께 손님이 뜸한 시간, 가게 앞에서 배드민턴을 한다. 특별히 운동복으로 갈아입지 않고 하루에 몇 차례씩 5분만이라도 짬을 낸다. 손님이 오면 얼른 가게로 들어오면 그만이다. ‘달밤 배드민턴’도 마다 않는다.
이런 ‘토막 운동’ 덕분에 이젠 직접 새벽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갈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매사에 감사하는 밝은 성격도 고스란히 돌아왔다.
“의료비를 10%밖에 안 내거든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예요. 수술비도 150만원 정도밖에 안 들었고 진찰비도 한번에 1500원 밖에 안나와요. 암이라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연구하시는 분도 많잖아요.”
유 씨는 일자리를 나누는 것으로 그 고마움을 갚고 있다. 그의 가게 직원이 암 환자다. “다른 옷가게에서 일하던 친구였는데 난소암 수술을 하고 직장을 잃었어요. 일은 하고 싶은데 하루 종일 일할 자신은 없고…그런데 그 자신감 상실처럼 힘든 일이 없다는 걸 제가 더 잘 알잖아요.”
우선 하루 두 시간씩 일하며 적응해 가도록 했다. 기력을 잃었던 직원의 얼굴에 점점 활기가 돌았다. “이젠 하루 종일 일해도 끄떡없어요. 함께 가게 안을 뛰며 운동도 해요. 다른 암환자 분들께도 이렇게 차차 적응해 갈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남편 조씨가 한마디 툭 던진다. “같이 배드민턴 치고, 함께 가게에서 일하고…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부부가 마주보고 씩 웃었다.
“속 얘기 털어놓다 보면 두려움이 사라져요”
고통을 나누는 환우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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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암과의 투쟁을 끝낸 생존자들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전우들을 찾아 ‘환우회’로 모인다. 암생존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나 신체적 피로 등을 상담, 치료받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환우회는 단순한 친목모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암 환우회의 가장 큰 장점은 각자 치료 경험을 교환하며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 것이다. 국립암센터의 폐암 환우회인 ‘희망회’ 회장 J씨는 “함께 등산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면서 서로 의지하다 보면 병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된다”고 말했다. 모임은 암 환자의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삼성서울병원의 소아암 환우회인 ‘참사랑회’의 한 회원은 “치료 중인 자녀를 둔 보호자들도 환우회에서 암을 극복한 아이들 부모의 경험을 들으면서 큰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환우 회는 암생존자들의 건강 유지를 위해 운동과 관련된 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한다. 산악회나 걷기대회가 대표적이다. 삼성서울병원의 유방암 환우회인 ‘산샘회’는 치료가 끝난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6년째 산악회를 운영하고 있다. 2년 전에는 ‘어울림’이라는 댄스 동아리도 구성해 전문 강사에게 강습을 받고 있다. 이들은 각종 공연에 찬조 출연한 이력도 있다. 산샘회의 김정녀(64) 회장은 “춤을 추면 즐거우니까 우울함을 잊게 되고 운동도 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된 채소로 식생활을 개선하는 활동을 펼치는 환우회도 있다.
병원에서 지원을 받거나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환우회도 늘고 있다. 서울대병원 유방암 환우회인 ‘비너스회’ 등은 홈페이지에 전문의와 상담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회원 수가 100명 안팎인 다른 암 환우회에 비해 유방암 환우회들은 회원수가 500명 가까이 될 정도로 활발하다. 국립암센터의 유방암 환우회인 ‘민들레’의 조소혜(52)씨는 “여성성 상실에 대한 콤플렉스와 스트레스를 다른 환우와 대화하다 보면 우울함도 치유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환 우회의 장기 생존자들은 암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투병자를 상담해 주는 자원봉사 활동도 펼친다. 비너스회는 유방암센터에서 매주 두 번씩 상담 봉사를 한다. 회원인 양춘희(62)씨는 “오른쪽 가슴 절제 후 우울증 때문에 신경정신과까지 다녔는데 환우회 활동을 하면서 치료됐다”며 “내가 받은 도움을 다른 환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상담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 샘회는 항암치료로 인해 탈모가 된 여성 환우를 위해 화장을 비롯해 가발, 피부, 모자 연출법 등을 정기적으로 강의한다. 이 밖에 형편이 어려운 암 환자를 위해 일일찻집을 열어 병원 측에 수익금을 기부하는 활동을 펼치는 환우회도 있다.
“암도 관리만 잘하면 업무에 지장 없다”
일자리가 큰 힘된다는 폐암 생존자 김정길씨
김정수<newslady@joongang.co.kr> | 제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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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년 6월 말, ‘폐암 3기’ 진단을 받기 전까지의 김정길(53)씨 자화상이다. 그후 6년7개월이 지난 지금, ‘골초’ 시절의 말랐던 몸은 금연 후 10㎏ 가까이 늘었다. 겉모습만 달라진 게 아니다. 여전히 성실한 직장인이지만 이제 ‘일 중독자’는 아니다. 주말엔 다 큰 자녀들과 함께 갤러리에 가거나, 친구와 함께 산에 오른다. 아내 팔짱을 끼고 고궁 돌담길을 걸으며 뒤늦은 연애를 즐기기도 한다.
월드컵 함성에 묻혔던 기침소리
김 씨는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다만 담배를 하루에 세 갑씩 피울 정도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6개월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았다. 별로 문제될 건 없었다.한·일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5월 에어컨을 틀고 TV 중계를 보던 김씨. 한번 시작된 기침이 이상할 정도로 멎지 않는 걸 느꼈다. 6월 말 천식을 의심하며 가까운 병원에서 CT 검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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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와 함께 시작된 ‘출근 전쟁’
김 씨의 경우 수술에 앞서 종양 크기를 줄이기 위한 항암치료부터 받았다. 회사 측에 병에 대해 알리긴 했지만 출퇴근은 일단 계속하기로 했다. 집에서 쉬면 잡생각이 많아져 더 견디기 힘들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항암치료는 2주에 걸쳐 주사를 맞고 한 주 쉬는 걸 세 번 반복했다. 첫 주엔 너무 힘이 들어 도저히 회사에 나갈 수가 없었다. 둘째 주도 주사를 맞는 날은 출근을 포기했다. 나머지 날도 겨우 회사에 나갔다가 조퇴하기 일쑤였다. 항암주사를 맞기 시작하자마자 머리털도 쑥쑥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7, 8월 무더위 속에서 잘 맞지도 않는 가발을 쓰고 회사에 나갔다.
김 씨는 9월에야 휴직을 신청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가라”는 상관의 배려로 수술 후 12월까지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김씨는 “나를 진심으로 아낀 경영진이 그런 걸 다 이해해 줘 고마웠다”며 “투병생활을 끝내면 돌아갈 직장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됐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듬해 1월 복직한 그는 2년 후 임원으로 승진도 했다.
“가족을 위해 치료 열심히 받아”
항 암치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9월 말 폐의 우측 상엽 부분을 절제했다. 수술도 성공적이었다. 그는 수술 당일 저녁부터 수액이며 소변줄 등을 매단 채 병원 복도를 걸으며 재활의지를 다졌다. 수술 전부터 매일 걷기 등을 하며 키운 체력이 도움이 됐다.2주 만에 퇴원한 후에도 하루 2시간씩 꾸준히 걸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을 위해 야채와 된장이 들어간 음식 위주로 항상 식탁을 차려줬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열심히 먹고 운동하는 거였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의 부인은 아이들이 병문안도 못 오게 했다. 암환자 아들·딸이라고 괜히 불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싫었고, 그것 때문에 어린 자녀가 상처를 받을까 겁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나 역시 암 진단을 받은 후부터 어린 아들녀석을 볼 때마다 혹시,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며 “그런 아내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고 말한다. 얼마 전엔 큰딸이 “아빠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그땐 몰랐다”며 “충격을 받지 않고 지나게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더란다.
“투병 경험, 조직관리에 활용하고 싶어”
암 환자는 대개 수술(항암치료) 후 첫해는 3개월에 한 번씩,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 다음 해엔 6개월에 한 번씩, 그 다음부터는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는다. 김씨는 “회사엔 ‘숙제검사 받으러 간다’고 말하곤 했다”며 “며칠 전부터 결과가 걱정돼 떨렸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몇 년간은 새해를 맞을 때마다 아내 앞에서 유서도 새로 써놓았다. ‘만약의 경우’ 재산은 얼마나 있고 어떻게 처리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지 등 가족들이 당황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사도 했다. 공기가 더 좋은 환경뿐 아니라 부동산 시세 추이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김씨는 ‘그거라도 남겨줘야 가족이 덜 고생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2007 년 9월, 그는 드디어 수술 5년이 지나도 재발 징후 등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정말 ‘완치’가 아님을 김씨는 안다. 요즘도 기침만 좀 심하게 하면 ‘혹시’ 하는 불안감에 병원으로 달려가곤 한다. 그렇지만 김씨는 ‘어떤 음식이 좋다더라’ ‘어딜 가면 암을 완전히 낫게 해준다더라’ 등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의 의료진을 굳게 믿어야만 치료가 최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2년 전 새로운 직장으로 옮겼다. 이직할 때 회사 측에 먼저 자신의 병력을 알렸다. 그는 “다행히 요즘엔 암도 치료 후 당뇨나 고혈압처럼 평생 관리만 잘하면 직장업무에 지장이 없는 병으로 생각하는 경영자가 많이 늘었다”고 했다. 물론 암 발병 이전처럼 일하긴 힘들다. 겉보기엔 자신도 남들처럼 2000cc급 차 같지만, 실제 엔진 배기량은 1500cc라는 사실을 알기에 스스로도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건 암보다는 나이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김씨는 “암의 진단-치료-극복의 과정은 기업 조직의 ‘암세포’를 관리하는 일과 똑같더라”며 “앞으로 나 자신의 암 투병 경험을 기업 조직관리 등에 활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암 생존자는 대부분 잦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김정길씨는 “회사에서 차별받고 싶지 않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전과 똑같이 하려고 욕심을 부리면 완치가 그만큼 늦어질 수 있다”며 “기업도 본인 의사를 고려해 업무를 바꿔주는 등 적절히 배려해 준다면 그동안 키워온 인재도 잃지 않고 사회적 손실도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Hope for the Best, Plan for the Worst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대부분 ‘하필 왜 내가’ 하는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우울증세가 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은 이런 감정 변화가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이해하고 잘 받아줘야 한다. 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동시에 희망을 잃지 않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
'毒'이 될 수 있는 속설
김씨가 받은 항암치료는 다국적 제약사가 임상시험 중인 치료제였다. 김씨에겐 큰 효과가 있었지만 상용화에 실패했다. 어떤 암 환자에겐 효과가 컸다는 식품대체요법도 다른 환자에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암 환자나 그 가족이 혼란을 겪을 만한 조언은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건강 유지는 물론 정상적인 사회 복귀도 도와야
토털 케어 시급한 암 생존자 재활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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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리나라도 많이 좋아졌어요. 전엔 암에 걸리면 살지도 못하면서 재산은 재산대로 다 날린다고 했는데…. 암 진단을 받고 보니 나 같은 사람이 주변에 의외로 많더라고요. 요즘엔 치료비도 생각만큼은 많이 들지 않고….”취재 중 만난 암생존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조기검진 확대나 치료 지원 등 정부의 암 관리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2006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제2기 암 정복 10개년 계획’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올해 말부터 현재 의료비(비급여 제외)의 10%인 암 환자의 본인 부담 비율을 5%로 더 낮추는 안을 정부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그 러나 암생존자의 재활 관련 프로그램이나 정보는 여전히 부실하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허대석(서울대 의대 교수) 원장은 “지금까지는 급한 불을 끄는 치료(cure)에만 집중해 왔지만 이제 살아남은 뒤에도 의미 있는 생활을 하도록 돕는 통합적 관리(total care)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특히 늘고 있는 장기 생존자들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허 원장은 “장기 생존율이 70%가 넘는 소아암 환자의 경우 성장기 때 항암치료를 받아 신체적 장애가 생기기 쉬운 데다 학교 복귀 후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 한다”며 “20~30대에 조기 발견한 성인도 결혼과 출산 등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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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재 암생존자들을 위한 ‘2차 암 조기검진 사업’은 연구단계다. 이들은 완치 후에도 또 다른 암에 걸릴 위험이 일반인보다 훨씬 크다. 나이나 성별, 암종, 치료 당시 암의 진행 단계 등에 따라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아직 개발 중이다.
또 유방암 생존자들을 위한 유방 재건술이나 특수 브래지어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03년 유방암 3기로 왼쪽 가슴을 완전히 절제한 박춘숙(60)씨는 “심리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가슴 무게 차이로 인해 한 쪽 어깨가 자꾸 처지며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특수 브래지어라도 착용해야 한다”며 “체형에 맞춘 실리콘 제품은 20만~50만원 정도 하는데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의 윤영호 기획조정실장은 “암생존자 관리는 복지부뿐만 아니라 여성부나 노동부, 교육과학기술부 등도 관련이 많다”며 “범부처적인 관리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 간 의료기관들도 서서히 ‘토털 케어’에 눈 뜨고 있다. 곧 대규모 암센터를 여는 서울아산병원이나 서울성모병원 등은 환자들을 위한 원스톱 치료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치료팀에 정신과나 재활의학 전문의 등을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환자들이 투병 중은 물론 치료 후에도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지 난해 1월 문을 연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는 이런 방향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암생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미술요법·음악요법·요가-치유명상·웃음요법·스트레스 관리를 해주고 있다. 또 외모 관리와 같이 재활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암과 부부의 성생활, 가족의 대화 기술, 보호자 스트레스 관리 등 가족 관련 프로그램도 있다.
이 곳의 조주희 부센터장은 “치료가 끝나면 당사자는 ‘암 환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삶에 임하려 노력하고 가족은 반대로 ‘아직 암 환자’라고 배려해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오해로 인한 가족 간 갈등을 막고 재활의 효과를 보다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대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 등은 ‘웃음치료교실’ 등을 열고 있다.
매년 6월 첫 일요일을 기념일로
미국의 암생존자 관리는
<암생존자 공원에 공통적으로 있는 조형물.>
' 암생존자(cancer survivor)’라는 표현은 1985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이라는 학술지에 처음 등장했다.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거나 완치된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광의로는 가족, 간병인 등 투병생활과 완치 이후의 진료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
암생존자는 미국에서 암 치료의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예컨대 매년 6월 첫째 월요일은 ‘전국 암생존자의 날’이다. 올해로 22번째인 이 행사는 미국과 캐나다의 700여 개 장소에서 개최된다. 의료시설, 지원 단체, 연구소 관계자들과 암생존자들이 강연·토론·시낭송·공연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진행한다.
‘암생존자 공원’도 있다. 1989년 캔자스시티에 처음 조성된 이 공원은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 22개가 있다. 모든 암생존자 공원에는 세 가지 공통 시설이 있다. 멕시코 조각가 빅토르 살모네스의 작품인 ‘암에는 희망이 있다’라는 조각물은 성공적인 암 치료 과정을 8개의 실물 크기 인물 동상을 통해 형상화했다. ‘긍정적 정신자세’라는 산책길에는 힘을 북돋워 주는 말이 새겨진 14개의 명판(銘板)이 있다. ‘회복의 길’에는 암 치료에 대해 설명한 7개의 명판이 놓여 있다.
미 국에는 1200만 명의 암생존자가 있으며 매년 150만 명이 새로이 암 발병 진단을 받는다. 국가암퇴치법이 등장한 1971년 미국 암생존자 수는 300만 명이었다. 암환자의 64%는 암 발병 판정 이후 5년 이상 생존한다.이처럼 암생존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생존율도 높아지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암은 곧 죽음’이라는 편견이 남아 있다. 게다가 비용 부담 때문에 200만 암생존자가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학아카데미(NAS) 산하 의학연구소(IOM)는 2005년 보고서에서 ‘암생존 간병 계획’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암생존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시민단체, 연구소, 정부·의회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암생존을 위한 국가 실행 계획’을 2004년에 발표했다. 의회는 종합암진료향상법(CCCIA)의 입법을 추진 중이다. 메디케어(연방정부 지원 건강보험 프로그램)에 암생존자를 위한 새로운 항목을 신설하는 게 목표다. 입법이 완료되면 의사들은 치료 초기에 치료 계획을 문서로 작성해 환자들에게 제공한다. 암치료가 완료되면 의사들은 암생존자들에게 부작용, 재발 방지, 음식, 운동 등의 내용이 포함된 계획서를 전달하게 된다.
민 간 차원에서는 이미 간단한 암 치료 계획서 작성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앙카링크(OncoLink)라는 웹사이트는 무료 암생존 프로그램인 앙카라이프(OncoLife)를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암생존자들이 프로그램 내에서 자신의 암 정보와 치료에 대한 각종 항목을 입력하면 보고서가 자동으로 작성된다. 보고서에는 해당 암생존자가 받아야 될 검사, 치료 과정, 부작용에 대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미국의 암생존 정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주요 기관으로는 텍사스대학에 있는 MD 앤더슨 암센터를 들 수 있다. 국립암연구소(NCI)가 지정한 39개 종합암센터 중 하나인 MD 앤더슨 암센터는 암생존을 암연구의 독립 분야로 확립했다. 2007년에는 암 연구비로 4억4000만 달러 지출했다.
이러한 공공부문의 암생존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활동이며 그 중심에는 전미암생존연합(NCCS)이 있다. NCCS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암생존 이익단체다. 1986년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 25명의 암 연구자, 지원단체 활동가 등이 암 치료 서비스 수준 향상, 암생존자 권익 향상을 목표로 설립했다. NCCS는 대 의회 로비활동과 더불어 암생존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암 극복을 위해서는 암생존자들이 일련의 기술(skill)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NCCS는 ‘암생존툴박스(CST)’라는 오디오 프로그램을 개발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CST는 암생존자의 권리 주장, 완치 후 계획, 노년 암생존자 활동 등 12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치료든 생존이든 가족의 역할이 중요”
미 국립암연구소 암생존국 줄리아 롤런드 국장
김환영<whanyung@joongang.co.kr> | 제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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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암생존자(cancer survivor)’는 암 투병자와 완치자는 물론 가족·친구·간병인까지 포괄한다. 지나치게 넓지 않은가.
“개 념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봐야 한다. 1986년 뉴멕시코 앨버커키에 모인 25명의 암 연구자, 지원단체 활동가들은 전미암생존연합(NCCS)을 결성하며 암생존자의 개념을 확대했다. 그때까지 암생존자는 발병·치료 후 5년간 생존한 사람들을 의미했다. 당시에도 암환자의 50% 이상이 5년 이상 생존했다. 개념이 협소해 출산 문제 등 치료시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들을 제쳐놨다.
암 치료의 철학을 바꾸기 위해서는 암생존자 개념의 수정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암 발병자들을 온전한 삶의 의미와 기능과 가치로 복귀하게 하는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NCCS의 창설자들은 또한 암 발병자의 가족들이 환자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을 주목했다. 가족들도 ‘2차적 생존자’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가족에게도 12주 무보수 휴가를 보장하는 가족 병가법 등의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가족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1인 가구의 확산 등이 암생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가 족은 특히 암 환자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생존에도 중요한 영향을 준다. 미국의 가족은 원래 핵가족 구조인 데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이혼·재혼 등이 가족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은 암 환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재혼 등으로 가족이 확대되면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외래 환자로 치료받는 암 환자가 느는 것도 가족의 역할을 크게 만들었다. 가족은 암 환자들과 함께 병원을 오가며 그들을 집에서 관찰하고 의사에게 병세를 보고하기도 한다. 가족의 역할은 저평가돼 온 측면이 있다.”
-정권이 바뀌면 국립암연구소에 대한 정책도 바뀌는가.
“국 립암연구소는 미 행정부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든 정부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동시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에 대해 책임이 있다. 이는 집권 정당과 무관한 것이다. 예산 문제도 정권보다는 경제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국립암연구소는 지난 3~4년간 예산 증액이 이뤄지지 못했다. 1998~2003년의 경우 의회는 의료 단체 예산을 두 배로 늘렸다. 예산 규모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달라진다.”
-현재 미국의 암생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무엇인가.
“암 발병자가 급격히 늘어난 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건강상의 효과는 극대화시키면서 암생존자 개개인의 신체적·금전적 비용은 극소화하는 게 최대의 문제다.”
-중앙SUNDAY 독자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은.
“암 발병 후에도 온전하고 활동적이며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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