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 올해 14년째. 다른 암과 달리 유달리 전이가 심해 10년은 돼야 완치 판정을 받는다는 유방암에서 나는 완전히 해방됐다. 수술 직후 1년간 항암치료가 필요하다는 처방을 받았지만 B형 간염 보균자라 항암치료는 시도도 못해 본 내가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만하면 내놓고 자랑할 만한 성공사례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주변의 지인들 중 가까운 사람들이 유방암에 걸렸다 하면 어김없이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 수술 받을 병원에서부터 항암치료 방법, 대체의학 또는 암 치료에 도움을 주는 음식까지. 질문은 참으로 다양했다.
"언니는 어떻게 유방암을 완치했어요?"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던 후배 시누이한테 뜬금없이 전화가 온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던지 의례적인 안부인사 마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언니한테 의논할 일이 있어 전화했어요. 제일 친한 친구가 몇 달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어요. 그런데 항암주사를 맞는 도중에 재발이 됐다내요. 언니는 어떻게 해서 완치가 됐는지 그 방법 좀 알고 싶어서요."
특별한 치료법 없이 어쩌다 보니까 살아난 나에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 바로 이런 질문이다. 명약과 명의를 갈구하는 환자들에게 이렇다 하게 내세울 투병과정이 전혀 없었으니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 친구의 상태가 지금 어떤 정도냐고 했더니 바로 옆에 있다고 냉큼 바꿔준다. 순한 목소리가 정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미혼이라고 했다. 후배 시누이 친구니 마흔 살은 넘었을 것이고. 44살에 수술을 한 나와 엇비슷한 시기인 것 같았다.
암 예후를 짐작할 때 병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나이. 젊을수록 완치율이 낮다는 것은 상식이다. 발견이 늦어 3기 말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항암제 주사약이 안 맞아 세 번째 바꾸고 있는 중인데 절제한 가슴 피부에 또 다른 암 덩어리가 생겨났고 폐도 이상하다더라는 말을 아주 담담한 어조로 전해줬다.
"여쭤보고 싶은 것은요. 친구가 아주 유명한 한의사를 소개해 주며 한약을 먹어보자고 하는데 어떨까 싶어서요. 혹시 한약 같은 거 들어보셨어요?"
우선 마음부터 아팠다. 아직 맞는 치료약도 못 찾은 상태인데 전이부터 되었다니 저 마음이 어떨까. 나는 한약을 먹지 않았지만 본인은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고 당사자 생각부터 물었다. 그랬더니 먹고 싶진 않지만 뾰족한 대책도 없어 거절하는 것 또한 불안하단다.
그렇다면 먹지 말라고 했다. 수많은 암 치료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이 가장 믿음이 가는 방법을 선택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 방법이 황당해 보여도 환자 자신이 철석 같이 믿고 따른다면 얼마든지 기적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거 해라, 거저 해라 등 떠미는 지인들, 중요한 건...
별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내 투병 과정을 자세히 얘기해줬다. 처음엔 내 병을 염려한 친구들의 마음이 상당히 부담됐다. 가뜩이나 불안한 환자에게 이거 해라, 저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해서 암을 이겼단다, 처방을 들이대는데 완전히 약 아닌 것 없고 명의 아닌 사람 없었다.
몸에 칼만 안 댔어도 살 텐데 칼을 대서 어렵게 됐다는 '기' 도사에서부터 침술, 생약, 사상체질에 맞는 약과 식이요법, 냉 온욕, 풍욕으로 대변되는 '니시 요법' 어디 그것뿐이랴. 나중엔 용한 무당을 찾아가 굿까지 하자는 성화를 받았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살리고 싶다는 지인들의 애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오만가지 처방은 정말 환자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수많은 방법을 따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안 하자니 그냥 손 놓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이 엄습했다.
게다가 이것저것 하는 데는 상당한 돈이 들어가는지라 마음이 있다고 쉽게 덤벼들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치료 방법 선택도 내 마음 가는 대로 하자. 우왕좌왕 복잡할 때 내린 결론이었다. 의지와 믿음만 있다면 난치병에 효과가 있었다는 방법 중 어떤 걸 선택하든지 일정한 효험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섣불리 수술부터 하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충분한 임상결과를 가진 현대의술을 따르기로 했다. 수술 집도의와 주치의를 하느님 같이 믿었다. 그 분들의 판단과 처방을 한 점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 왠지 든든하고 편안했다.
건강한 먹거리와 운동 그리고 평상심
그러면서 가장 대중적인 요법. 아무리 해도 절대 부작용이 없는 처방. 바로 항암 성분이 많은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중심으로 한 식단과 운동을 병행했다. 매일 우리 콩을 삶아 구수한 콩물을 주스 마시듯 음용했고 싱싱한 무농약 내지 저농약 야채를 구해 나물과 쌈 채소로 활용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북한산 등산, 아파트 근처 공원에서 하루 한두 시간 걷기도 빼먹지 않고 했다.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주변에서 암환자와 고기는 상극이란 말이 하도 많아 그 말은 따르기로 했다.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에겐 단백질 보충이 필수적이라 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는 것이 의료진의 대체적인 생각이지만 콩을 비롯한 식물성 단백질로 대체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고 먹고 싶으면 생선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마음 속의 평화 즉 평상심이 환자 건강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가였다. 한 번은 가까운 후배가 '기'도사를 모시고 왔다. 아무리 가자고 졸라도 꿈쩍 안 하니까 참다못해 직접 내 앞에 대령한 것이다.
나를 찬찬히 관찰하던 '기'도사께서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을 있는 것이 기감을 잡으시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아주 안 됐다는 표정으로 위로를 건넸다.
"아직 젊은 나인데 안타깝네요. 큰 암 덩어리가 다른 곳에서도 자라고 있어서. 내 생각에 글쎄 한 1년 정도? 착하게 사셨는데, 마음 굳게 먹고. 그저 순리를 따라야 하겠지요."
뭐, 대충 이런 요지였다. 듣는 순간 너무나 놀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기'도사를 모시고 온 후배도 뜻밖의 진단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할 말이 없었다.
도사가 떠나간 뒤 갑자기 머릿속에서 불길이 솟는 것 같았다. '화탕지옥'처럼 끓는다는 말이 꼭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참을 수 없는 뜨거움이 온 머릿속을 헤집었다. 극심한 불안과 공포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그때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죽어도 여한 없다는 마음이 나를 살렸다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면역력 증진에 필수적이라고 한다. 낙천적인 마음을 가지려면 기도가 제일인 것 같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어떤 종교든지 상관없다. 각자가 모시는 신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주는 평화로움. 특별한 종교를 없는 사람이라면 명상과 참선도 좋을 것 같다.
밥을 먹을 때도 물을 먹을 때도 하찮은 풀꽃을 만났을 때조차도 늘 감사기도를 했다. 내 건강을 지켜주는 곡식을 키워낸 농부, 제 욕심만 차리는 인간을 위해 끊임없이 생명수를 공급해 주는 우주 그리고 나를 살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간병하는 가족 어찌 그뿐이랴. 행여 돈 때문에 치료 못 할까봐 치료비를 아낌없이 지원했던 사랑하는 친구와 선후배들. 감사 할 대상은 너무나 많고 많았다.
시도 때도 없이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지만 불안한 와중에서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그때 아니었는가 싶다. 원도 한도 없이 받았던 사랑,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이 나를 살렸는지도 모르겠다.
암 치료법에 어떻게 정답이 있겠는가. 다만 내 병을 치료해 주는 사람과 치료 방법에 대한 믿음, 병고에 시달리는 내 마음과 몸을 향한 끊임없는 사랑 그리고 면역력을 키워주는 싱싱한 먹을거리와 내 마음의 평화를 흩뜨리지 않는 뒷심만 있다면 사지에서 해방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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