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 조보연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조선일보 임호준, 임호준 기자] 갑상선은 우리 몸에서 혹과 암이 가장 많이 생기는 장기다. 전 인구의 5~8%에게 손으로 만져지는 혹이 있으며, 초음파 검사를 하면 적게는 전 인구의 18%에서 많게는 전 인구의 67%에게 갑상선 혹이 발견된다. 이같은 혹의 약 5% 정도가 갑상선암이다. 노화 또는 다른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의 부검 결과, 10~30%에게서 갑상선암이 발견됐다는 보고들도 있다.
서울대병원 내과 조보연 교수는 “갑상선암은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검진을 너무 철저히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조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전체 갑상선암의 1% 정도인 ‘미분화암’을 제외한 99%의 갑상선 암은 암 자체가 매우 천천히 자라며, 치료도 매우 쉽다. 또 암이 다른 조직으로 전이되거나 재발한 경우에도 치료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암 조기발견을 위해 굳이 초음파 검사 등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암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손으로 만져질때 치료 받아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만약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작은 혹을 발견하면, 그것이 암인지 아닌지 궁금해지고, 암이라고 판명되면 찜찜해서라도 수술을 받게 되는데, 이같은 조기진단-수술이 의학적으론 큰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혹이 1㎝ 정도 자라면 외부로 드러나게 되는데, 1㎝도 안되는 혹은 아예 무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혹이 1㎝ 이상이고, 그것이 암으로 판명된 경우엔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하며, 암이 전이된 경우엔 방사성 동위원소(요오드)를 복용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체중감소, 불안, 신경과민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치료와 관련해선 “의학적 판단보다 환자의 나이와 성격, 경제력 등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고 조 교수는 설명한다. 대개의 경우, 환자들은 약물치료와 방사성 요오드 치료법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
항갑상선제를 복용하는 약물요법은 짧아도 1년 이상, 보통 2~3년 정도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하며, 그렇게 해서 완치될 확률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약값도 만만찮아 경제적 부담도 큰 편이다. 그러나 방사성 요오드로 갑상선을 파괴하는방법은 효과가 즉시 나타나며,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 외래에서 방사성 요오드 캅셀을 복용하기만 하면 되므로 간단하고, 치료비도 매우 싸다. 그러나 치료하고 1년 이내에 20%의 환자에게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오며, 그 뒤에도 매년 1~2%씩의 환자에게 추가로 기능 저하증이 발병한다.
두 치료법 중 무엇을 택할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조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설명한다. 유럽과 일본, 우리나라 의사들은 70% 정도가 약물치료를 우선 선택하지만, 미국 의사들은 반대로 70% 정도가 1차적으로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선택한다는 것.
어떻게든 갑상선을 보존해 보려는 유럽과 일본·한국의사들과 달리, 미국인은 비싼 돈 들여 오랫동안 고생해 봤자 그 중 절반은 어차피 치료가 안되며, 결국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느냐, 차라리 처음부터 속편하게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고 기능 저하증이 오면 갑상선 호르몬제에 의지해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국적 실용주의다. 조 교수는 “어느 쪽이 옳고 어느쪽이 그르다고 할 순 없지만 개인적으론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의사와 환자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과 관련해선, 요오드의 지나친 섭취를 경고했다. 기능 저하증 환자 중에는 갑상선 호르몬의 원료가 되는 미역이나 다시마, 김 등 요오드 성분을 많이 먹으면 갑상선 호르몬 생성도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은 호르몬 생성에 필요한 요오드 양의 5~10배를 식사를 통해 섭취하므로 식사 외의 방법으로 요오드를 섭취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요오드가 지나치게 많으면 기능 저하증이 오히려 심해지므로 다시마를 갈아서 먹거나 차로 달여 마시거나, 매끼 미역국을 먹는 것은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상하게 으슬으슬 춥고, 피곤하고, 게을러 지며, 체중이 증가하는 등의 증상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너무 막연한 증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같은 증상이 심하다면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선 기능을 체크하고 필요한 경우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 )
환자마다 다른 갑상선 항진증 치료 효과 규명 조보연 교수는…
바쁘고 급할 때 하는 행동에서 대개 사람의 됨됨이를 엿볼 수 있다. 깊이가 없고 가볍다면 급박·초조함을 빙그레 웃어 넘기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스마일 맨’ 조보연 교수가 환자들에게서 신뢰를 받는 이유다. 그는 외래 진료 때마다 200여 명의 환자를 살펴봐야 한다.
한 자리에서 비슷비슷한 대답을 200번 넘게 되풀이 하다 보면 짜증이 날만도 하지만 환자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는 법이 없다. 이웃집 아저씨 같이 편안한 얼굴로 먼저 농담을 건네고, 환자가 가장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궁금함을 속속들이 풀어준다. 불필요한 권위의식은 그와 거리가 멀다. 그 때문인지 진료대기 환자가 7000여 명에 이른다.
조 교수는 “의대 스승이신 이문호, 고창순 교수님이 갑상선 클리닉의 기초를 워낙 탄탄히 다져놓은 데다, 서울대병원이란 이름 값 때문에 환자가 몰리는 것”이라며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고참’ 교수인데도 항상 겸손하고 솔선수범한다”며 “어떤 경우에도 흥분하지 않고 일을 처리해 별명이 ‘조 도사’”라고 말했다.
1948년 출생인 조 교수는 서울대병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쳤으며, 하버드 의대 베스이스라엘 병원과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에서 갑상선 질환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문호·고창순 교수가 터를 닦고 발전시킨 갑상선 클리닉을 통해 1주일에 4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그동안 30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특히 환자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치료효과가 다른 이유 등을 독자적으로 밝혀내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 교수는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장과 내분비·대사내과 분과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시아·대양주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 주말엔 부인과 함께 산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취미이자 즐거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