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백치료가 먼저다
우리 동양권 의학에서는 처음부터 이 혼백을 의학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생사가 걸린 큰 병에서는 혼백부터 치료했다.
암치료에서는 신체에 작용하는 항암제나 방사선 그리고 정신신경계에 작용하는 진통제나 안정제만 가지고는 완치를 기대할 수 없다. 혼백을 다스려서 혼의 행복을 도모하고 영혼의 완전성(wholeness of soul ; completeness of soul)을 회복해야 신체가 암을 퇴치할 힘을 얻게 된다.
암을 근본적으로 물리치는 힘은 완전한 혼백에서 나온다. 영혼의 완전성과 혼백의 행복은 정서(emotion)의 안정을 가져오고 정서의 안정은 암을 물리친다는 자신감과 신체 면역력을 증대시킨다.
동양권의학에서 혼(魂)은 3종 백(魄)은 7종으로 분류하여 보통 3혼7백으로 논한다. 3혼은 간(肝) 3엽(葉)에 머무르고 7백(魄)은 허파에 주처(柱處)를 정하고 있는데 안혼정백환(安魂定魄丸) 등의 약이 바로 이 혼백을 안정시키는 약이다.
가슴과 뱃속에 있는 혼백이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이성(reason)을 조절 통제하는 존재(invisible being)이며 알려지지 않은 존재(unknown being)이다.
혼백은 정서를 통해서 사고와 이성을 통제하고 내분비계(endocrine system)를 통한 호르몬의 화학적 신호와 정신신경계(nerval system)를 통한 전기자기적신호(electro-magnetic pulse)를 이용하여 신진대사 등 신체기능을 조절한다.
암치료는 신체와 정신작용의 배후에 있는 미지의 주인공인 혼백치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혼백치료 수단은 동양권 의학서적과 신선(神仙)학이라 할 수 있는 도학(道學)서적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유불선(儒佛仙) 3가(家)의학으로 혼백치료방법은 얼마든지 개척될 수 있다.
최고의 암약은 환자의 행복과 만족감
임상사례 하나를 들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선효엄마는 1988년 말 병원으로부터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당시 연령은 45세, 고교생과 중학생인 딸, 초등생인 아들을 가진 1남2녀의 어머니다. 한양공대를 나와 방송사 기술부에 근무하는 남편은 가정에 충실하여 암선고를 받은 아내를 극진히 사랑했다.
아내가 계를 하다가 깨져 많은 빚을 지자 집을 팔아 그 빚을 갚고 홍제동 언덕배기에 붙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아내를 원망하는 마음 하나 없이 한층 더 사랑했다. 내조하기 위해 계를 하다가 빚을 진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기에 골몰했다.
남편을 도우려는 아내, 그런 아내를 고맙게 여기는 남편, 부모의 뜻을 잘 받드는 착한 딸들과 아들 5인 가족은 암선고를 받기 이전에 이미 그 혼백이 하나의 기운[一氣]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
계가 깨어져 입은 경제적 손실로 인한 정신적 타격으로 유방암이 급속히 진행되어 암선고를 받았을 때 암덩어리의 직경은 4cm, 부근 임파절 2개를 침범하고 있었다. 유방을 잘라내고 항암제 투여 등 병원치료를 다 받아도 5년 생존확률은 50%,
항암치료를 받더라도 둘 중에 하나는 5년 이내에 암으로 사망하는 유방암 2기 내지 3기에 해당했다.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할 경우에는 3년 안에 죽는다고 병원의사들은 말했다. 그런데도 이들 5인 가족은 병원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암을 치료한다고 장담하는 사람들을 찾아 여기 저기 전국을 헤매는 짓도 하지 않았고 암에 좋다고 선전하는 온갖 약을 구해 먹으려 하지도 않았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남편은 과학도답게 합리적인 상식의 범주 안에서 유방암에 대처하는 길을 스스로 열어나갔다.
얼빠진 짓과 넋잃은 짓을 하지 않고 환자의 행복과 정서의 안정을 확보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 직장을 마치면 바로 집으로 직행하여 아내와 주방 일을 함께 했고 아들과 딸들도 학교공부보다 엄마를 위하고 집안 일을 거들었다.
죽염과 구운마늘의 항암기능
TV, 신문, 잡지 등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소위 암치료 전문가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이론을 전개한다고 생각되는 K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K는 당시 79세로 한의사면허는 없었지만 60년의 풍부한 임상경험을 쌓은 한의학자였다.
K의 처방대로 탕약을 달여먹고 마늘을 구워 죽염에 찍어먹었다. 마늘은 하루 2~3뿌리, 찍어먹는 죽염은 하루 3g정도. 죽염을 파는 사람은 더 많이 먹어야 된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 대신
죽염으로 장을 담고 김치를 만드는 등 반찬에 쓰이는 소금은 죽염으로 대체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지만 마음뿐이지 경제형편이 어려워 비싼 죽염으로 식염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탕약을 먹으면서도 과일과 날채소 김치는 식욕이 나는 대로 다 먹었다. 탕약 달이는 데서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K의 지시대로 쇠고기 염소고기를 고아 기름만 걷어내고 먹었다.
남편이 아내의 구미에 맞는 생선을 자주 사왔기 때문에 선효엄마는 영양을 골고루 충분히 섭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체중은 암선고 받기 전보다 오히려 불어났다. 암선고를 받았지만 선효엄마는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
남편과 아들딸의 집중된 관심과 극진한 보호를 받는 가운데 1년이 지나 1989년 겨울을 거쳐 1990년 봄이 되자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행복하고 기운도 회복되었다. 1990년 4. 13일 평소 다니던 절에 사는 C와 함께 K를 방문했다.
이제 약을 그만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K에게 말했더니 ‘이제부터가 중요한 시기’라며 선효엄마의 힘이 어느 정도로 회복되었는지 이것저것 물어본 뒤에 환자의 손으로 자기 손을 힘껏 쥐어보라고 하여 쥐는 힘을 측정해 본 후 말했다.
“이만한 힘이면 암의 기세는 꺾어 놓았어. 이제는 약 그만 먹고 한번 떠봐. 중완과 단전을 떠서 남아있는 암뿌리를 뽑아야 돼. 약을 써서 암을 눌러놓고 건강이 회복된 뒤에 암뿌리를 뽑는 데는 뜸이 더 효과적이니까. 이젠 떠도 되겠어.”
이 말을 들은 선효엄마가 물었다. “뜸이 더 효과적이면 왜 재작년 처음부터 뜸을 뜨란 말씀 안 하셨어요?”
“음, 그때 떴으면 지금쯤 죽었을 거야. 뜸이란 건 기력을 소모시켜. 건강한 사람도 뜸을 뜨면 힘이 빠지는데 암환자가 어떻게 떠? 암환자가 뜸뜨면 오히려 생명이 단축 돼. 뜨면 안 돼. 지금은 약 먹고 영양섭취도 잘 해서 건강이 회복되고 뜸뜰만한 힘이 생겼으니까 뜨라고 하는 거야.”
“마늘 구워서 죽염에 찍어먹는 건 계속해야 합니까?”
“그래 그건 뜸뜨면서도 해야 돼. 뜸 다 뜨고 뜸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약은 먹지말고. 약 먹으면 뜸 효과가 줄어드니까. 뜸자리 다 아문 뒤에는 다시 와 약 처방을 다시 해 줄 테니.”
“또 약을 먹어야 합니까? 뜸뜨면 암뿌리가 뽑힌다면서요?”
“마늘 구워 죽염 찍어먹는 건 암 다 낫고도 평생해도 좋고, 암약 먹는 건 몇 년 더 먹어야 될는지 두고봐야 되고. 암뿌리 뽑는 뜸, 올 봄에 한 철 뜬다고 다 빠지나? 어림없는 소리야. 암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야.
지금부터 진짜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각오 단단히 해야 돼. 마무리가 중요하거든. 약 먹고 이제 살만 하니까, 다 나았겠지 하고 경각심이 풀어지면 그건 죽은목숨이야. 내게 와서 이제 다 나았다는 소리 듣기 전에는 마음놓으면 안 돼.
“재작년에 왔을 때는 약 한두 번 먹으면 암이 대번 나을 것처럼 쉽게 낫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때는 암선고 받고 죽은목숨이라 생각하고 낙담해 있을 때라 용기 돋궈줄라고 한 소리고. 이젠 약 먹고 좋아져서 암이 낫는다는 자신감이 생겼거든. 지금 다 나았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는 소리지. 암 재발하면 더 어려우니까 지금 완전 박살내라는 거야. 방심말고.”
“올 봄에 뜨고 난 뒤에 몇 년이나 약을 더 먹으면 되겠습니까?”
“글쎄 그건 두고 봐야 알아. 낫는다는 자신 생겼으면 됐잖아? 3년 뒤에 나아도 되고 5년 뒤에 나아도 되는 거 아니야? 약은 점점 가볍게 써도 돼. 이번 뜸 끝내놓고 다시 와. 그 때 상태를 봐서 약 처방 해 줄 테니.”
1990.4.23. C가 침구사를 데리고 와 선효엄마에게 뜸을 뜨게 해주었다. 단번에 커다란 뜸장을 중완에 놓고 불을 붙였다. 처음 불을 붙이고 쑥불덩어리가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약 5분이 걸리는 굵은 밤톨만한 크기의 뜸장이였다.
뜨거워서 생땀이 났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사랑하는 아들딸, 남편을 위해서라면 내가 살아야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이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무서운 결심으로 참았다. 이렇게 7장을 떴다.
4월25일에는 15장을 뜨는 등 힘든 하루 하루가 지나 29일에는 11장을 떠 모두 71장을 뜨고는 힘이 소진되어 더 이상 못 뜨고 고약을 붙였다. 뜸자리가 아무는 데는 두달이 걸렸다.
K를 다시 찾아가 처방대로 집에서 약을 달여 먹었다. 집오리 1마리에 금은화 포공영 등 약재를 넣고 달여서 3~4일에 다 먹었다.(당시만 해도 유황오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가을까지 먹은 약이 집오리만 해도 20마리가 넘었다.
C는 가을에도 뜸을 권했지만 다시 뜰 용기가 나지 않아서 뜨지 못했다. 그 대신 심심하면 탕약을 먹고 마늘죽염을 계속 먹었다. 일반소금 대신 죽염으로 장을 담가 온 식구의 반찬을 모두 죽염간장으로 조리했고 김치도 죽염으로 절여 담갔다. 이렇게
유방암을 고쳤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찾아왔다. 그 중에는 건강식품업자도 있었는데 자기네 방법으로 암을 고쳤다는 식으로 말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다 할 뚜렷한 치료를 받은 적이 없으니 무엇 때문에 암이 나았는지 뭘 먹어서 치료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K의 처방을 따라 달여먹은 탕약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마늘을 구워 죽염에 찍어먹었기 때문도 아니고 죽염으로 장과 김치를 담아 반찬에 쓴 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과학도다운 판단으로 늘 과일 고기 등 영양분 많은 식품 사오고 조리하고 챙겨준 남편의 사랑이 암을 물리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과 아들딸이 건전한 판단으로 격려하고 보살펴주었기 때문에 암을 이긴 원동력이 나왔다고 생각된다.
앞의 선효엄마 사례는 의과학연구소에서 11년째 추적 관찰해 온 유방암환자가 치료에 성공을 거둔 한 예다. 2기 말 또는 3기 초의 암환자 75명을 대상으로 13년 간 추적한 가운데 암에서 해방되어 약 10년 간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단 3명 중 하나다.
이들 3명 중 1명은 수술을 받는 등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암에서 벗어난(disease-free)상태라고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75명 중 처음부터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독자적인 가정치료를 한 선효엄마가 진정한 의미에서 암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 아닐까?
암선고 받은 후 10년 동안 건강하게 살아왔으므로 앞으로 10년 또 20년을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 확률이 그만큼 높으리라 예상된다. 이 경우 여성 평균수명 이상을 살게 되므로 암치료에 완전히 성공한 케이스로 봐야한다.
이런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케이스다. 그러면 이런 성공의 이유, 암치료에 가장 효과가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하나씩 검토해 보자.
무엇이 암을 고쳤는가?
첫째, K처방 탕약 : 선효엄마의 유방암처럼 상당히 진행된 암환자나 4기 암환자 중 K의 처방 탕약을 1달 이상 복용한 환자 37명을 13년 간 추적해 본 결과 5년 이상 생존한 사람은 대부분 병원치료를 받았던 사람이었고
병원치료를 완전히 거부한 환자는 7년 간 생존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 때문에 K처방 탕약이 선효엄마의 유방암 완치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알아 낼 수 없었다.
둘째, 구운마늘을 죽염에 찍어먹는 것 : K처방 탕약을 먹은 사람 90% 정도가 이 방법을 동시에 행하고 있었으므로 그 효과도 역시 측정할 길이 없다.
셋째, 죽염으로 김장 간장 담가 먹기 : K처방 탕약 복용자 중에 이 방법을 시행한 사람이 선효엄마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공장에서 제조한 죽염간장을 사 먹은 사람은 있었지만 간장 김치를 자기가 직접 만들어 장기간 먹은 사람은 선효엄마 하나뿐이었다.
선효엄마가 일상 식생활에서 섭취한 염분 1일 섭취량은 약 18g정도. 우리나라 일반 평균과 다를 바 없었던 반면 K처방 탕약을 먹은 사람 중에는 하루 15~20g의 염분을 섭취한 위에 죽염을 별도로 5g, 10g 심지어는 15g까지 섭취한 사람이 있었다.
죽염을 별도로 15g 먹는 경우는 하루 염분 섭취량이 30g이 넘어서 한국인 평균 섭취량의 2갑절에 해당한다. 심한 경우 죽염을 하루 50g씩 며칠동안이나 먹은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의과학연구소 멤버 중 상당수가 일반식염 대신에 죽염을 식용에 쓴 게 암치료에 기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특히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를 담글 때 죽염을 쓰면 염분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면서 인체에 필요한 각종 미네랄을 섭취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항암력을 증강시키지 않았겠는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암은 폐결핵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소모성질환이다. 건강유지에 필수적인 여러 종류의 미네랄, 양질의 다양한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을 기초대사량 이상으로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만성질병이다.
일부 한의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육식을 금하고 과일과 김치 등 야채를 날로 먹는 것을 금지시키면 환자의 체력이 떨어진다.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질병에 대한 저항력 면역력이 약화된다는 소리다. 이런 근거 없는 주장은 암환자의 수명을 단축시킬 따름이다.
행복은 혼백(魂魄)이 온전할 때 오는 것
선효엄마의 케이스는 처음부터 병원치료를 거부한 11명 중에서는 현대의학 이론에 가장 근접한 가정치료를 했다.
첫째, 한의사나 무면허 치료자들이 금지하고 있는 단백질식품(쇠고기 등), 신선한 과일, 김치와 야채를 충분히 섭취함으로서 영양상태가 극히 양호한 점.
둘째, : 과도한 염분섭취를 하지도 않았고 암에 좋다고 선전되는 특별한 식품류나 소위 건강식품류를 맹신하여 그것만 먹어서 다른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기회를 박탈하지 않은 점. 버섯종류나 생소금, 기소금 등을 많이 먹어서 간, 신장에 부담을 주어 예후가 좋지 않은 예가 많았는데 선효엄마의 경우는 암선고를 받은 후에도 평소와 같은 식생활을 했다. 온가족의 사랑과 보호가 환자 환 사람에게 집중되어 암선고를 받은 후에 오히려 식욕이 증가된 점이 특이했다.
셋째, 죽염으로 간장과 김치를 제조하는 등 양질의 염분 섭취를 생활화 한 점. 이상 세 가지 특이점이 암치료에 도움을 줬다고 판단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암환자가 이것들을 실천할 수 있느냐?
실천하면 암이 치료되느냐? 하는데는 의문점이 있다. 세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충분한 영양공급은 식욕이 있어야 가능한데 식욕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욕은 사람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욕구이다.
암선고를 받고 근심걱정과 불안에 싸이면 식욕은 떨어진다. 돈과 지위 가족과 친구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해서 암선고가 초래하는 공포와 불안이 없어지지 않는다. 의사와 가족이 암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하더라도
암환자는 육감으로 짐작을 하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속일 경우에는 소외감만 더 주고 가족과 의사를 불신하여 의심과 초조감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
식욕은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욕구이다. 성욕은 의식과 의지로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지만 식욕은 조정과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암과 비만의 치료가 어려운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만큼 이 두 가지 질병 치료에는
식욕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암환자에게 식욕이 생기게 하면 암의 80%는 완치되고 비만환자에게 식욕을 줄게 하면 90%가 치료된다. 식욕은 인위적으로 조절되지 않는 욕구이기 때문에 암이나 비만 같은 만성현대병의 치료가 어려운 것이다.
이 식욕은 정서의 영향을 받고 정서는 영적 복지(spiritual being welfare), 영혼의 완전성(wholeness soul), 혼백의 행복(happiness of spiritual being)에 의해 좌우된다.
독실한 종교인이 암을 극복하는 비율이 높은 것도 신앙으로 영적 행복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식욕이 감소되지 않는 데 그 이유가 있다. 행복감에 차 있는 혼은 그 진동수가 무한이기 때문에 기적을 일으키는 괴력을 가진다.
혼백의 진행속도는 무한이기 때문에 시공(space time)의 제약도 받지 않고 과거와 미래도 관통한다. 여기서는 일반인의 이해를 위해 한의학 서적에 있는 내용을 알기 쉽게 예를 들어보겠다.
혼백이 강화되면 암은 치유된다
조선 세조 때 간행된 구급방을 보면 사람이 공포에 못 이겨 기절했을 때 그 치료를 혼백요법으로 했다. 깊은 밤에 멀리 떨어져 있는 변소에 갔다가 귀신 등 헛것을 보고 기절한 경우에는 밝은 불빛으로 옮기지 말고 그 자리에 둔 채
기절한 사람의 부모나 그 형제들이 에워싸고 응급조치를 하는 방법이다. 형제동기(兄弟同氣), 사제동기(師弟同氣)란 말속에 있는 뜻은 한 형제 사이나 스승과 제자 사이는 우연으로 된 것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혼백으로 온 사람들이란 의미가 있다.
기절이란 것은 혼의 일부가 몸밖으로 나가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그 세력이 위축되어 있는데 가까운 부모형제 등 일가친척이 환자를 에워싸면 환자의 혼백이 그만큼 강해진다. 혼백이 강해지고 기세를 얻으면 나갔던 일부 혼백을 체내로 끌어들이는 인력(引力)이 생겨서 소생하게 되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혼이 조금이라도 나가버린 사람은 그만큼 혼백이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혼백을 강화하여 온전한 혼백이 되도록 하는 약을 써야 하는데 이런 혼백 강화 탕약은 동의보감에 많이 기록돼 있다.
만약 이런 약을 쓰지 않으면 외상은 치료되더라도 혼백 약화에 의한 여러 가지 질병이 뒤따르게 된다. 암 고혈압 심장병 목디스크 같은 질병이 후유증으로 오는 수가 많다. 이런 만성질병들은 혼백의 약화로 초래되는 병이다.
이런 혼백요법이론에 비추어보면 선효엄마의 암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전 가족의 일치된 단합과 화목에서 환자의 혼백이 강화된 점이다. 혼백이 강해지고 완전해 짐에 따라 안정과 행복이 확보되고 불안과 의심 갈등과 소외감이 물러가면
새로운 식욕이 생기고 식욕은 영양상태를 좋게 하여 암을 이기는 체력을 솟아나게 한다. 선효엄마는 절에 더러 가기는 했지만 불교에 의지한 마음보다 전 가족의 사랑과 격려를 받아 암이란 무서운 질병을 이겨낸 것이다.
가정의 화목이 환자의 혼백을 강하게 하여 영적 행복과 건강을 구축했고 이 때문에 식욕을 잃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정상 식욕을 유지시킨 환자의 영적 만족과 행복이 암치료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건강도원 199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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